|
대제사장의 3중 축복 (민 6:22-27)
서론
오늘 말씀은 구약시대의 예배 시에 사용한 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예배를 드리고 나면 축도를 하게 됩니다. 목회자들이 맨 마지막에 축도를 하게 되는
데 그 근거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
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신약시대의 축도입니다. 신
약의 축도에는 성부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약시대의 축도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성호가 세 번이나 반복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
늘 민수기 6장 22-27절의 말씀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
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철저
하게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축복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첫째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로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도 하나님의 성품이 없
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 하나님의 일을 안해서
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 목적으로 구원을 해주
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고하라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삼중의 축복을 해라 그러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
께서 직접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축복의
도구로 쓰시고 그들에게 축복의 언어를 주시고 그 두 가지를 도구로 해서 자기 백성들
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성
도들을 향한 축복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마음속에도 축복이 가
득 차고, 입술의 언어도 축복의 언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6장 45절에서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
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또 마태복음 11장 35-37절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
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
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내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여러분, 첫째로 마음
에 선을 쌓으시고 둘째로 입술로 축복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디즈니랜드를 창설한 사람은 월트 디즈니입니다. 이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만화를 그려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광고 대행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소질이 없다
고 하는 이유로 해고당하게 되었습니다. 여섯 달 동안 실업자가 되어 집세도 내지 못
하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목사님
이 울고 있는 월트 디즈니에게 다가와서 축복의 말씀을 했습니다. “형제여 다른 사람
은 자네를 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형제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내십시오.” 그 말씀에 용기를 얻었지만 월트 디즈니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교회 창고에서 잠을 자도록 허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창고에서 생쥐들이 돌
아다닙니다. 그때 월트 디즈니는 생쥐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미키 마
우스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동물 캐릭터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일 것
입니다. 그래서 그는 55,000명의 종업원을 가진 어마어마한 디즈니랜드를 만들게 되었
고 소유주가 되었습니다. 축복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키고 사람을 새롭
게 만들고 사람을 승리자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우리를 축복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우리를 축복
하시는 생애입니다. 예수님의 전 말씀도 산상수훈이 팔복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해방하시
고, 슬픔이 있는 자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축복하시기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이요, 부
활 승천하신 것도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을 닮
기를 바랍니다. 마음에 축복으로 가득하고 입술의 언어에도 축복으로 가득하게 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대제사장의 축복은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27절 말씀에 “그들은 이 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찌니 내가 그들
에게 복을 주리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축복의 언어는 내
용 없는 공허한 언어가 아닙니다. 반드시 현실적인 실체로 나타납니다. 아론의 축복
이 반드시 현실적인 실체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증하는 이유는, 첫째로 축복의 도구
가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도구라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대제사장으로 혹은 제사장으로 자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 그들을 부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의 축복의 언어도 그들 스스로가 고안해낸 언
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입에 그 언어를 집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렇게 단언적으로 선언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
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축복은 현실적으로 반드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제사장 아론의 축복과 오늘 우리를 사는 우리들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대제사장 아론은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론을
통해서 축복해 주셨듯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축복해 주십니
다.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나님
은 모든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
지 않고는 아무런 축복도 있을 수 없습니다. 혹시나 축복인줄 알았던 것도 도리어 복
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전통에 따르게 되면 대제사장은 아침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렸습니다. 아침 상번제를 드
리고 나서 백성에게 축복의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저녁 상번제를 마치고 나서는 백성
을 축복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는 분은 따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
리스도는 여러분을 축복하시기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육간에 축복 받
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사람 의지하지 마십시오. 물질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리스
도 예수님을 의지하시고 예수님을 붙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999년도에 500만 달러를 수출해서 수출훈장을 받은 올해 44세의 이레전자산업 정문
식 사장이 있습니다. 이분은 휴대폰 충전기를 만들었고 초소형 무선 전화기를 생산해
서 수출을 많이 했습니다. 이분이 처음에 신림동에서 시작해서 처음에는 가내 수공업
을 했는데 전선을 가공하는 공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29살이 되던 1900년에
한강으로 갔습니다. 가서 발을 담갔습니다. ‘이제는 내가 죽어야겠다. 뛰어 내려야겠
다.’라고 생각하는데 그 때 갑자기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빵’하
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도들끼리 서로 인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는 순간 이 사람
이 한강물에서 발을 뺐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아 주님이 계시는구나.’ 그
래서 이분이 정신을 차리고 교회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이 마침 금요일 밤이
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금요철야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도 기도했습니
다. “하나님.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 없이 사업을 했었습니다. 어려서 내가 교회 다녔
지만 지금까지 내가 예수님과 동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노력해서 복을 받겠다고 노력
을 하다가 이렇게 망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시기 원하나이다” 기도하는데
마음에 “네가 한강에 빠져 죽을 용기가 있으면 죽을 용기를 가지고 한번 살아봐라.”
라는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가지고 이 사람이 죽을 용기를 다했다고 합
니다. 그 때부터 “나는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사업을 하겠다” 다짐하고 사업을 시작
해서 9년 만에 대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9년에 이레전자산업은 500만 달러를
수출하는 수출훈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축복은 영적인 복이든, 물질의 복이든, 육적
인 복이든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되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아니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3중축복의 내용
대제사장이 축복을 할 때에 축복의 내용은 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네
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기서 복을 주신다고 하는 히브리어 동사
는 문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섬긴다는 뜻입니다. 마치 하인이 주인을 섬길 때에 물 한
잔을 따라도 무릎을 꿇고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화요일 크로스
웨이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언제나 무릎을 꿇고 섬기는 모
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그 모습이 복을 주신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
님께 축복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는 얼마나 황공스러운 일입니
까? 하나님이 무릎을 꿇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섬기시고, 우리를 축복하
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격스럽고 황공스러
운 일입니까? 축복하신다고 하는 것은 이처럼 무릎을 꿇고 섬긴다고 하는 그런 뜻입니
다. 하나님이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다고 할 때 우리는 아마 물질적인 축복을 원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이 땅에서 잘 살고 남도 도와주고 유산도 남기고 그렇게 물질의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가정적인 축복을 원
하실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이 잘 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또 살고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고 좋은 평판을 누리시기를 원하실 것입니
다. 또 좋은 건강을 누리고 장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출세
해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 되지 않는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이런 축복
을 원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축복을 원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그
색깔이 조금 다릅니다. 언어의 색깔이 조금 다릅니다.
첫 번째 축복은 보호의 축복(Blessing of protection)입니다. “너를 지키시기를 원한
다.”(24절) 여기서 지킨다고 하는 것은 목자가 양을 지키듯이 울타리를 치고 갖가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으로 얼마나 위험
한 세상입니까? 육신적으로 위험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걸어 다녀도 위험하
고, 차타고 다녀도 위험합니다. 언제 내 혈관이 막힐지 모릅니다. 언제 내 심장박동
이 중지될지 모르는 겁니다. 언제 내 몸의 세포가 변화되어 암세포로 변할지 모르는
겁니다.
더더구나 영적으로도 위험한 세상인 것입니다. 잘못된 말 한마디를 타고 악령이 들어
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잘못 본 장면 하나를 가지고 악령에 사로잡힐 수도 있는 것입
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이요, 공중 권세잡은 자는 마귀요, 마귀는 악령
들을 통해서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고자 얼마나 역사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는 육신적으로도 위험하고 영적으로도 위험한 세상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
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기적입니다. 오늘도 살아서 눈뜨고 호흡하고 예배
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런 위험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고 하는 것
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이처럼 여러분을 보호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축복은 은혜의 축복(Blessing of grace)입니다. 25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기서 은혜의 개념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얼굴을 우리를 향해 돌리시고 환한 빛을 비추
어 주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향해 얼굴을 돌리시
고 진노하시고 화를 내신다면 우리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와께서
얼굴을 우리를 향해 돌리시고 환한 빛을 비추어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이
것은 마치 구름이 잔뜩 낀 날이 지나가고, 밤이 지난 후에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상쾌
한 아침과 같습니다. 온 세상이 더욱 밝아 보일 것입니다. 파란색은 더욱 파랗게 보
일 것이고, 녹색은 더욱 신선해 보일 것입니다. 온 세상은 더욱더 따듯해 보일 것입니
다. 햇빛도 신선하고 따듯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사도 따듯할 것입니다. 온 세상
은 더욱 따듯해집니다. 온 세상이 생명과 활기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햇빛만 비춰
주어도 세상이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고 얼굴빛을 비추어 주신다면
우리 피조물들은 얼마나 용기를 얻고 얼마나 생기를 얻고 얼마나 새 힘을 얻겠습니
까? 죄가 있는 자는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슬픔이 있는 자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무
능력한 자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소망 없는 자는 소망을 얻게 됩니다. 망한 자는 다
시 살아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하
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얼굴빛을 비추어 주시고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축복은 평강의 복(Blessing of peace)입니다. 26절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
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사람이 아무리 부요를
누리고 아무리 존귀를 누리고 해도 심령의 평안이 없으면 그것은 큰 폐단입니다. 전도
서 6장 2절에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이 재물과 부요와 존
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니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부요와 재물과 존귀를 얻어도 그
것을 누릴 만한 평강이 없다면 그것은 악한 병입니다. 전도서 6장 6절을 보겠습니다.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갈 것뿐이 아니냐” 천년의 갑절, 2천년을 산다 할지라도 심령의 낙과 평강을 누
리지 못하면 결국 그의 가는 길은 사망길이라는 것입니다. 재벌의 딸도 평강이 없으니
까 자기 생명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평강의 복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가 이런 평강의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이런 평강의 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저는 이 축도를 볼 때에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축복기도
를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 여러 명을 놓고 축복 합니다. 그런데 이 축복의 말씀은 언
제나 단수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며 너를 지키시기
를 원하며” 단수입니다. 너희들에게 복을 주시고 너희들을 지키시기를 원한다고 기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25절에도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라고 말씀 하셨지
“너희들에게 비추사”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단수입니다. 복수가 아닙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놓
고 축복할 때에 단수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
성 전체를 하나로 보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백성
이 하나 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한 주를 모시고 한 침례를 받았고
한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서 하나
가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
복을 주시되 보호의 축복과 은혜의 축복과 평강의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시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얼굴빛을 비추어 주
사 여러분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얼굴을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
를 간절히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