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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的家在山的那一邊~ (鄧麗君第十年的眞相)_有田芳生 著
우리 집은 산 그 옆에 있어요 (덩리쥔 제10년의 진상)_有田芳生 저술/ 김강현 번역
[私の家は山の向こう_テレサ.テン十年目の真実] 文芸春秋 2005年 3月
우리집은 산 그 옆에 있어요_테레사 텐 10년째의 진실 문예춘추 2005년 3월
[第1章] 想い出の余白
[回忆中的空白]
제1장 추억의 여백 (3편)
约经过两年后的一九九四年十月二十四日,在日本仙台市的宫城县民会馆地下楼的后台休息室前,和邓小姐又再次见面,
而且此次的日本行竟然成为邓小姐最后一次赴日之行。 “很光荣……”邓小姐望着我用极小的声音说话,
我告知她想将她的一生和中国及台湾的关联背景写成书时,她这样的回答我,而且她还说出令我更意外的话。
약 2년이 지난 뒤 1994년 10월 24일에 일본 센다이시의 宫城县民会馆 지하층의 무대 뒤 휴게실 앞에서 등소저를 다시 만났다.
게다가 이번 일본 여행은 뜻밖에 등소저의 마지막 일본 나들이가 되었다.
매우 영광입니다... 등소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하였다.
나는 그녀의 삶과 중국 그리고 대만의 관련된 배경을 책으로 쓰려 한다고 그녀에게 말을 하였을 때
그녀는 이처럼 대답을 하였다.
게다가 그녀는 또한 나에게는 더욱 뜻밖인 말을 하였다.
“我往后人生的重点就是为了中国的和平自由而努力。” 一听到她开口说这话时令我很惊讶,但同时也令我感到“果然如此”。
上次的采访当中邓小姐曾说过:“极小的暴力会演变成巨大的战争,我最讨厌战争,所以为了和平,我愿意尽一己之力。”
나는 앞으로 삶의 중점은 중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서 노력하는 것이에요,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
나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는데 그러나 동시에 나를 과연 이렇구나 하고 놀라게 하였다.
저번의 인터뷰하는 중에 등소저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주 작은 폭력도 거대한 전쟁으로 바뀔 수 있어요, 나는 전쟁을 가장 싫어해요,
그래서 평화를 위하여 나는 나 하나의 힘을 끝까지 다하길 바래요.
邓小姐如此强烈的表达出“为了中国的和平自由而努力”的心意,我想这是第一次也是最后一次了,能如此自然地表达出肺腑之言,
应该是内心经过许久的纠葛后,坚决地流露出真情,这跟只想把信念传达给他人,有着很大的差别。
邓小姐口中的“为了中国的和平自由而努力”的含意,是因处在中国和台湾的特殊关系背景下,
时逢现代史上的关卡时,明显反映出一位女性精神的形成。
등소저는 이처럼 강렬한 주장은 중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한 노력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나는 이것 이 처음이자
또 마지막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저절로 마음속의 참된 말을 들러낼 수 있는 것은 마땅히 속마음이 오랫동안의 갈등을 겪어서
굳건하게 진심을 토로하는 것으로, 이것은 단지 신념을 남에게 전달하고자만 하는 것과는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다.
등소저의 말 가운데의 중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한 노력이라는 말의 뜻은 중국과 대만의 특수한 관계 배경하에서 일어난 것이다.
현대사에서 때때로 만날때나, 난관에 처할 때에 뚜렸하게 한 여성의 정신이 이룬 것이 반영되었다.
邓小姐甚至和笔者约定,过完年后要在香港再找时间慢慢聊,但最终这个约定并无法实现。因为邓小姐在半年后的一九九五年五月八日,
逝世于泰国清迈。邓小姐健在的时候,也有过几次“死亡说”的传闻。第一次是在一九九0 年邓爸爸过世,而邓小姐并未出席丧礼,
所以谣传邓小姐“因受打击而引发肾脏病恶化在巴黎的医院逝世了”。第二次是在一九九一年的时候,邓小姐久未在媒体曝光,
因为邓小姐曾表明支持×××事件的student 运动立场,又实际参加声援演唱会,所以谣传已被暗杀,
日本的女性周刊杂志还专题报导过这些在香港谣传邓小姐奇怪的“病死说”及“暗杀说”。
등소저는 더 나아가 필자와 약속을 하였는데, 정월을 보내고 홍콩에서 다시 천천히 잠시 시간을 찾아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끝내 이 약속은 결코 실현 될 방법이 없게 되었다. 등소저가 하반기인 1995년 5월8일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서세하였기 때문이다.
등소저는 건강할 때도 여러 차례 사망설 소문이 있었다.
제1차는 1990년 등려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등소저가 끝내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기에 그래서 등소저가 충격을 받아서
신장병이 악화 되어서 파리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풍문이었다. 제2차는 1991년 때로 등소저가 미디어에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고
등소저가 일찍이 ×××사건을 지지하는 학생운동 입장을 표명하였고 또 실제로 성원하는 공연장에도 참가 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이미 암살되었다는 풍문이어서 일본의 여성주간 잡지는 또한 이것을 홍콩에서 등소저의 괴이한 병사설
그리고 암살설 풍문을 특정 제목으로 보도하였다.
隔了一年九个月后,邓小姐在一九九一年为新歌《与悲伤共舞》(悲しみと踊らせて)赴日上节目宣传时,以很不屑的口吻说了以下的话:
“香港的杂志写出这样的谣言实在太肮脏了,原本只有两千本发行量的杂志,想利用诽谤来卖杂志,因而捏造谣言。”
1년 9개월이 지난 뒤, 등소저는 1991년 신곡 [与悲伤共舞 : 悲しみと踊らせて]때문에 일본에 가서 프로그램 선전을 할 때
매우 경시하는 말투로 아래의 말을 하였다: 홍콩의 잡지는 이런 뜬소문을 실제로 너무나 추악하게 썼는데
본래 단지 2000권이 팔리던 잡지로 헐뜯어서, 잡지를 팔려고 생각하여서 뜬소문을 날조하였겠지요.
四年后,邓小姐客死泰国清迈,以往传说的“谋杀论”更让人深信不疑,尤其当和清迈这个地方联想在一起时,更传出“因毒品死亡”、
“因爱滋病死亡”等等许多说法。之后又因贵为以国葬处理,导致产生“是军方特务”的说法,这个特务的话题被大规模的报导,
尤其足以令人采信的根据,是邓小姐过世前五年间,好几年都拒绝了所有电视的演出,只热衷参加劳军活动而且不收酬劳。
4년 뒤, 등소저가 태국의 치앙마이에서 객사를 하자, 이전의 떠돌던 모살설이 더욱 철석같이 믿어지게 되었다.
더욱이 치앙마이 이곳과 함께 연상될 때, 더욱 약품으로 인한 사망, 에이즈로 인한 병사 등등의 수많은 설들이 퍼졌다.
뒤에 또 높이 기려서 국장으로 장례를 하게 되어서 이 군부 간첩(军方特务)이라는 설을 야기시켰는데,
이 특무의 화제는 대규모로 보도되었고, 더욱이 믿을 만한 근거가 되었다. 이것은 등소저가 서세 5년 동안,
몇 년간 모두 다 모든 텔레비전의 출연을 다 거절하였지만 단지 군 위문 활동에 참가 뿐만 아니라
보수도 받지도 않고서 간절히 바랐다.
邓小姐比较大规模的劳军活动有:在美国待了一年七个月后,在一九八一年刻意返台至金门古宁头做劳军活动的“君在前哨”,
之后在一九九二年参加台中清泉岗的劳军“永远的情人”,以及最后的一九九四年,高雄凤山劳军的“黄埔建军七十年”。
最初报导邓小姐曾是军方特务的是《独家报导》这本台湾杂志,而且出面证实“邓小姐是特务”的人,
就是曾担任台湾情报局的高官谷正文先生。他回答记者的问题如下:
등소저는 비교적 대규모의 군 위문 활동으로는 이런 것이 있다:
미국에서 1년 7개월를 기다리고서는 1981년 고심하여서 대만으로 돌아와서
金门(진먼도)의 古宁头로 가서 군 위문 활동을 한 君在前哨,
이 뒤로 1992년 台中(타이쫑)의 清泉岗의 군 위문의 永远的情人,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4년 高雄(까오슝)의 凤山의 군 위문의 黄埔建军七十年이다.
최초로 등소저가 일찍이 군부의 특무라는 것을 보도한 것은 [独家报导]라는 대만 잡지이다.
뿐만 아니라 등소저는 특무라는 것을 실지로 증언하는 사람이 얼굴을 보였는데 바로 일찍이
대만 정보국를 담당한 고관 谷正文이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아래처럼 대답하였다.
记者:日本媒体大胆地推测邓丽君曾是中华民国军方的特务。
谷:根据我的了解,邓小姐是军方的人员应该不会错,如果我没有记错,应该归国家安全局第三处管理才对。
기자: 일본 매체는 대담하게 등려군이 일찍이 중화민국 군부의 특무라고 추측을 하였습니다.
谷正文 : 나의 판단에 의하면, 등소저는 군부의 직원이라는 것이 틀릴 수가 없는데, 만일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다면
마땅히 국가 안전국 제3처 관리에 속해야 맞는 것이다.
六月二十三日,香港《信报》将这篇《独家报导》的内容刊出,引起共同通信社的香港支局将《信报》刊出的文章发布,日本的《每日新闻》
也刊登《邓丽君曾是谍报员?》“由台湾国家安全局退休的中将(其实是情报局退役的少将)爆料证实”的消息(六月二十四日的报纸)。
这篇《独家报导》的文章在日本引起很大的回响,日本杂志《周刊现代》七月八日号,更是在未采访到谷正文之情况下,
就刊登《邓丽君是台湾版的金贤姬》的大标题(金贤姬是北韩派到日本的特务,是日本家喻户晓的人物),
而且又在文中置入住在台湾的评论家福雷特·吉野说的:
6월 23일 홍콩 [信报]는 이 [独家报导]의 내용을 출간하였는데, 共同 통신사의 홍콩 지국은 [信报]가 출간한 기사를 펴내게 하였고
일본의 [每日新闻]도 대만 국가 안전국을 퇴직한 中将(사실은 정보국 퇴역한 少将)이 증언하는 특종의 기사인
[邓丽君曾是谍报员?:등려군은 일찍이 첩보원이다?]을 게재(6월 20일에 보도 되었다)하였다. 이 [独家报导]의 기사는
일본에서 매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잡지《周刊现代》7월8일자 호는 더욱 谷正文과 인터뷰도 아직 하지 않은 상황에서
[邓丽君是台湾版的金贤姬:등려군은 대만판 김현희이다] 이라는 대 표제의 기사를 실었다. (김현희는 북한이 일본에 파견한 특무인데
일본의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또 글 속에서 대만에 주재하는 평론가 福雷特(Foret) 吉野가 말한 것을 인용하였다:
“邓丽君的工作应该是在东亚,尤其是日本的可能性最大。”之类的言论佐证。更被扩大报导的是一九九五年七月二十号的《周刊宝石》,
以《邓丽君二十年来本来就是秘密情报员!!》为大标题,作出专题报导,而且出面证实的人就是谷正文先生,
文章的一开头就用《惊人的真相》——谷先生的发言为引言。
등려군의 공작 활동은 마땅히 동아시아, 특히 일본에서 가능성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런 부류의 언론 증거는 더욱 널리 보도된 것은
1995년 7월 20일자의 [周刊宝石]에,[邓丽君二十年来本来就是秘密情报员!! : 등려군은 20년 동안 본래는 바로 비밀정보원!!] 이라는
큰 제목으로 특집으로 보도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증언하는 사람 즉 谷正文이 얼굴을 드러내었다.
기사 첫머리에 바로 [惊人的真相: 사람을 놀라게 하는 진상]__谷正文의 말를 인용하였다.
“在我离开情治局之前,邓小姐就被吸收为谍报员,我和她第一次见面的时候是在她十三岁的时候。”
谷正文又说明:“她的父亲邓枢原本是国民党军的陆军中尉,和我本来就认识,后来经介绍也知道邓丽君,在审查吸收的人员资料时,
一看就知道是她了。我退役以后,她仍然还是安全局的成员。当然一九八九年×××事件的时候仍然还是,一直到她过世于泰国为止,
她都是台湾的谍报员,资历超过二十年以上。”
내가 情治局을 떠나기 전에 등소저는 받아들여져서 첩보원이 되었고, 나와 그녀는 처음으로 만났을 때는 그녀가 23살 때이었다.
谷正文은 또 말을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 鄧樞는 본래 국민당 군대의 육군 중위로 나하고는 본래 알고 있었고 이후에
소개를 통하여서 등려군도 알게 되었다. 받아들일 사람의 자료를 심사할 때 한 번 보니 바로 그녀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퇴직한 뒤에 그녀는 여전히 또한 안전국의 직원이었다. 당연히 1989년 ×××사건 발생했을 때에도
여전히 또한 내내 그녀가 태국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완전히 대만의 첩보원이었고 경력도 20년 이상을 넘었다.
《周刊宝石》的文章里还特别提出因无法确信《独家报导》所写的内容是否真伪,所以标榜“亲自采访谷氏”。
“在谷氏台湾的家中”、“访问详细的内容”等等词句,到底什么才是真的?邓小姐曾亲口说过: “我是国际难民”,她的人生中留下了太多无解的谜题。
특별히 인용된 [周刊宝石]의 기사속에도 특히 [独家报导]가 보도한 내용이 정말인지 가짜인지를 확신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래서 "스스로 인터뷰한 谷氏" 라는 제목을 표방하였다.
"谷氏의 대만 집에서" " 상세한 내용을 취재" 등등의 기사, 도대체 무엇이야 말로 정말인가? 등소저는 일찍이 직접 말을 하였다:
"나는 국제 난민이에요", 그녀의 삶 가운데에 너무나 많은 풀수 없는 수수께끼를 남겼다.
因接获邓家家属说巴黎的公寓即将处理掉的联络,我特意在一九九八年五月十九日, 去法国采访。
房间里单人床上铺着粉红色条纹的床单,沿着枕头往墙上看去,墙壁上挂着法国地图,
还有九一年发行的新歌《与悲伤共舞》宣传海报,
另外还贴了一些有关如何减肥的剪报。
不知道为什么,其中一张照片特别令我在意,是一张边角微卷的彩色照片,邓小姐带着一顶镶着黑边草帽的全身照片,
身穿一件全黑的洋装,外面罩着有花纹的白色外套,颈上带着珍珠项链,手上拿着一条蕾丝质的披肩,嘴边泛着微笑,
眼神看起来很安详。
등려군 가족들이 파리의 아파트를 곧 팔아 버린다는 연락을 접하였기에 나는 특별히 1998년 5월 19일에 프랑스로 가서 인터뷰를 하였다.
방에는 일인용 침대 위에 분홍빛 줄무늬의 침대보가 덮혀져 있는데, 베개를 따라 있는 벽을 쳐다보니, 벽에는 프랑스 지도가 걸려 있는데,
또한 91년 발표된 신곡 [与悲伤共舞: 悲しみと踊らせて]의 홍보 포스터가 있다. 이외에 또한 어떻게 하면 살을 뺼 수 있는가와
연관된 신문 스크랩 몇 장이 붙어 있다. 어째서인지는 알지 못하나, 이중에 한 장의 사진이 특별히 마음이 머물게 하는데,
이것은 사진 가장자리가 약간 말린 칼라 사진으로 등소저는 검은 테두리의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전신 사진인데,
온통 검은 빛의 양장을 전신에 입었고, 겉에는 꽃무늬의 흰 빛 외투를 입었고 목에는 진주 목걸이를 걸고
손에는 레이스로 된 망토를 들고 있으며,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눈빛은 보기에 편안하였다.
衬托着她黑色身影的背景,是受到法国建筑影响的折户式窗户,和充满创意的条状遮阳板的建筑物,
也像是在东南亚的殖民都市常可看到的哥洛尼亚文艺后复兴时期的白色建筑物,庭院前有一大撮深绿色凤尾兰挺直着腰身,
盛开着一串串的小白花,再过去一点的地方则有绽放许多嫣红的波罗尼花栽。
그녀의 검은 빛의 몸 그림자의 배경에 두드러지는 것은 프랑스 건축의 영향을 받아들인 折户식의 창문에,
아이디어가 넘치는 나무 막대기 모양의 차양 판이 있는 건축물인데 또한 마치 동남아의 식민 도시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哥洛尼亚 문예 이후 부흥기의 흰 색 건축물의 정원 앞에 하나의 커다란 진녹색의 鳳尾蘭이 한 움쿰 곧게 서있으며,
작은 흰 꽃이 여기저기 활짝피어 있고 다시 다른 곳에도 또 수많은 붉은 波罗尼花가 심어져 피어나 있다.
看起来不像在整理相簿的样子,而是在日常生活中每天都会看到的地方不经意地贴上的一张照片,没有特别标出摄影的日期和地点,
是否只是因为她想随时可以看到她喜欢的风景而已,还是有着什么特殊的意义呢?我真的想知道这张照片里隐藏着写什么意义,到底是在何时?
何地拍的?而那个时候,邓小姐的内心反映着何种风采……?循着邓小姐的足迹, 终于追到那个“现场”之后,
看见眼前展现出宛如就是她逃离亚洲后波折不断的历史片段一样。(笔者所述照片见尾页)
마치 사진을 정리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날마다 볼 수 있는 곳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서 붙여 둔
한 장의 사진에는 촬영한 날짜와 장소를 특별하게 표시는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때때로 그녀가 좋아하는 경치를 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특별한 뜻이 있었는지?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이 한 장의 사진에 어떤 뜻이 숨겨져 있는지,
도대체 언제인지, 어디서 찍은 것인지, 그리고 언제인지 등소저의 속마음이 어떤 모습이 반영되고 있었는지 입니다.
등소저의 발자취를 따라서 마침내 그 현장에 다다른 뒤에, 바로 그녀가 아시아를 벗어난 뒤의 끊임없는 파란의 역사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필자가 묘사한 사진은 말미에서 볼 수 있습니다:역자 주; 사진은 위에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邓小姐如此强烈的表达出“为了中国的和平自由而努力”的心意,我想这是第一次也是最后一次了
/// 등소저는 이처럼 강렬하게 "중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노력하려는" 심정을 나타내었는데
나는 이것이 처음이자 또 마지막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邓小姐甚至和笔者约定,过完年后要在香港再找时间慢慢聊,
///등소저는 더 나아가 필자와 약속을 하였는데, 정월을 보내고 홍콩에서 다시 시간을 내어 (짜내서)천천히 이야기 하자고 하였다.
这个特务的话题被大规模的报导,尤其足以令人采信的根据,
是邓小姐过世前五年间,好几年都拒绝了所有电视的演出,只热衷参加劳军活动而且不收酬劳
/// 이 특무의 화제는 대규모로 보도 되었는데 더욱이 믿을 만한 근거가 된것은 등소저가 서세 하기 전 5년 사이,
몇 년간 모든 탤레비젼의 출연을 모두 다 거절하고 단지(다만) 군 위문 활동에만 열중하였을 뿐만 아니라 보수도 받지 않았던 것이었다.
몇 년간 모두 다 모든 텔레비전의 출연을 다 거절하였지만 단지 군 위문 활동에 참가 뿐만 아니라
보수도 받지도 않고서 간절히 바랐다.
在美国待了一年七个月后,
/// 미국에서 1년 7개월을 체류하고 난 후...
他回答记者的问题如下:
/// 그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我和她第一次见面的时候是在她十三岁的时候。”...
///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는 그가 13살 때였다....
到底什么才是真的?...
/// 도대체 무엇이야 말로 진실인지? (진실인가?)
나는 앞으로 삶의 중점은 중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하여서 노력하는 것이에요, ...에서
/// 나의 앞으로 ...............................................................................것이예요...로
2. 나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는데 그러나 동시에 나를 과연 이렇구나 하고 놀라게 하였다.
/// 나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는데 그러나 동시에 과연 이렇구나 하고 나를 놀라게 하였다.... 혹은
나는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는데 그러나 동시에 나로 하여금 과연 이렇구나 하고 놀라게 하였다......
3. 그래서 평화를 위하여 나는 나 하나의 힘을 끝까지 다하길 바래요...
/// 그래서 평화를 위하여 나는 나 하나의 힘을 끝까지 다할 거에요....로 하시면 어떤지요?
윗글이 더 올바르기에 이렇게 읽기를 바랍니다
어느 회원분이 정성을 다하여 미처 부족한 곳을 교정하지 못한 곳을
정성스럽게 손을 대서 보내 주셨네요
감사하게 올려 드리니 잘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