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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기에 통상의 탁구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내가 탁구 칠 때 입고 있는 복장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동우회에서 나의 공식적인 탁구복은 청바지였습니다. 어지간하면 실내화조차 갈아 신지 않은 채 심할 경우에는 랜드로바나 구두를 신고 탁구를 치기도 하였습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우리 동우회는 그냥 놀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곳이라 이런 나의 복장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밌어 하고 저 사람은 원래 그러려니 하면서 좋게 봐주는 쪽이 더 많았지요. 나 역시 그런 줄만 알고 아무 문제를 못 느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법 놀랄만한 일이지요? 올해 들어와서는 내 복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집 근처 가까운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우회 바깥에서 탁구를 쳐봤더니 거긴 딴 판이더군요. 모두가 탁구 복에 탁구화에 깔끔한 복장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청바지에 랜드로바를 신고 탁구를 치면 큰 실례가 된다는 건 누구라도 단 번에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럭저럭 티셔츠나 반바지나 운동화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제는 제법 멋쟁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나의 청바지 복장은 내가 탁구를 처음 배우던 시기의 복장이었습니다. 그 때는 탁구장에 회원이 아닌 일반손님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들은 전부 오다가다 탁구를 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장이 전부 제 각각이었습니다. 양복 정장에 여성이면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친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요. 나아가 우리 동우회는 세태와 다소 무관하게 움직이는 곳인 만큼 나는 아무생각 없이 옛날 복장 그대로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실은 지금도 우리 동우회에 가면 옛날 그 복장을 계속 유지할 지도 모릅니다. 게으른데다가 그곳에서는 그런 복장이 어딘가 정감이 있고 추억이 서려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편한 복장에 길들여져 다시는 옛날 복장을 안 입을 수도 있겠지요. 하여튼 별나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때그때 분위기에 어울리는 거니까요.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몇 년간 탁구복장과 탁구용품의 변화는 극적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 특히나 무관심 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이 변화는 길어야 5년 내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선 티셔츠와 바지와 신발에 각종의 탁구 용품회사들의 경쟁적인 상품개발이 눈에 띱니다. 오로지 버터플라이 스리버 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라버의 다양화에 정신을 못 차립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탁구장에 올 때마다 러버를 떼어내고 다시 풀칠을 합니다. 나는 한 번 라버를 블레이드에 붙이면 풀칠이 떨어지거나 라버가 닳기 전까지는 몇 년이고 그냥 놔두곤 했는데 그런 모습들을 보니 놀랍기만 합니다. 듣기로는 라버 풀칠을 시작하면 안하고는 못 배긴답니다. 타구감과 구질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나는 아직도 풀칠을 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말들을 지금까지도 이해 못합니다. 또 탁구 양말과 가방이라는 것도 최근에 와서야 처음 보았습니다. 어지간한 촌놈인 나인지라 탁구가방이 따로 필요하다는 건 아예 상상도 안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런 변화가 하나의 패션이나 매력으로 자리매김 되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는 내가 요즘의 탁구대회를 구경하고 나서 실감나게 느낀 점입니다. 탁구복은 단순한 기능을 훨씬 뛰어 넘는 복장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탁구복장의 맵시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탁구복이 색상과 디자인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의상인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버터플라이 니타쿠 도닉 엑시옴등 각 회사들의 사활을 건 전쟁이었습니다. 이는 정성들여 화장을 하고 악세사리를 착용한 채 경기에 임하는 여성들이나 말끔하게 자세를 가다듬은 남성들의 몇몇 면모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들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나에게 선사했습니다. 과연 볼만한 광경이었지요. 청바지에 랜드로바 탁구, 와이셔츠에 부담스러운 땀을 흘리던 옛 시절에 비추면 이는 얼마나 괄목한 만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탁구는 이제 단순한 운동을 넘어 패션과 매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골프나 테니스처럼 탁구도 여타의 부대조건을 거느리는 그런 운동이 된 것이지요. 이렇게 얘기를 하다보니 어쩐지 죄송한 생각도 듭니다. 남들은 다 아는 이야기들을 구석탱이 촌놈의 놀란 눈으로 수다를 떨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숱한 질문들이 맴돌고 있습니다. 가령 이렇습니다. ‘이렇게 탁구인들이 재주를 부리고 있는 동안 돈을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서커스단의 진짜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말이 나왔으니 이런 질문을 몇 개 더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넓어진 시장과 경쟁에도 불구하고 탁구회사들이 주최하는 아마추어 탁구대회와 그 상금은 왜 그렇게 적은가? 그들은 몇 천 만원 정도의 투자가 그 몇 배의 광고효과를 불러온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적어도 탁구계에서는 그런 광고효과가 없다는 것인가? -용품이 이렇게 다양하고 확대되었을 때 이를 배급하는 일선 소매상들의 입지는 현재 어떠한가? 어디나 그렇듯 용품의 그 화려한 외형 뒤에 가난하고 고달픈 소매상들의 좌충우돌이 만연하는가? -한 때는 청바지는 아닐지언정 싸구려 라켓에 츄리닝이나 입고 탁구를 치던 탁구인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것은 한국사회의 경제적 향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이런 변화는 일반 고객을 위주로 하던 탁구문화에서 클럽과 회원을 위주로 하는 탁구문화로의 변화에 동반되는 것인데 이는 탁구인들의 의식과 문화를 어떻게 바꾸었으며 이에 따른 제반 혼돈과 적응과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너무 심각한 주제들일까요? 그런데 이런 질문은 총 12회로 계획된 이 칼럼의 원래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탁구문화에 관한 좀 더 거시적이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배우고 싶다는 필자의 욕심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도가 잘 될지는 나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래 그러했으니 당분간 몇 회는 그런 쪽으로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 동우인님들은 어떤 생각일까요? 마당쇠 촌놈의 시선을 통해 그려진 탁구복장과 매력 혹은 문화적 변화에 대한 다른 분들의 다른 생각이 있을까요? 여러 에피소드나 복장에 관한 개인적인 기호등, 동우인님들의 재미난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은 위의 주제에 관한 입구를 열었으니 여기까지만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동우인 님들의 많은 가르침이나 정보를 기대해 봅니다. |
첫댓글 어휴.. 대충 다 읽었네요. 시간 있을때 다시.. 생각없이 치는 탁구에서 저도 연구좀 하면서 해야겠네요.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천천히 읽도록 하겠습니다... 싸장님. 본업에 부업에 많이 피곤하고 힘드실텐데 문탁회원들을 위해서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천히 숙지해야할 내용이 무지 많네요 좋은 분위기의 탁구장을 이끌기위한 세심한 배려가... 제가 못하는 일들도 많군요 ^^
제목만 뿌려놓고 흥미를 유도하며 일주일에 한편정도씩만 올려놓으시지...성질급한 저는 마지막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