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균과 칭의 메르스 사태로 지난 한달여 동안 온국민이 고통을 당했다. 그 사태는 아직도 진행중이다.오늘 현재(7월11일) 확진자는 모두 186명(이중 삼성병원에서 감염된 사람이 90명)이고 사망자는 36명이다. 치사율이 무려 20%에 육박하는 이 전염병 사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중동에서 발병된 메르스는 이미 3년전에 처음 발견되어 전세계에 알려진 신종바이러스다.충분히 예고된 전염병이었다. 그러나 정부(국가)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역관리로 인해 이제까지 서른 세 명이나 귀한 목숨을 잃었다. 그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막대한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당했다. 국가의 핵심 임무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 그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 메르스를 진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골든타임을 정부는 비상식적인 비밀주의로 날려버렸다. 누구를 위한 비밀주의였나. 이번에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큰 요인은 삼성서울병원에도 있다.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독점자본의 생리가 이번 메르스 사태를 키웠다. 지네발식 경영을 해온 삼성재벌이 의료사업에까지 뛰어들어 보여준 민낯은 역시 '사람보다 자본, 생명보다 이윤'이라는 꼴이었다. 삼성병원은 메르스 발병 초기부터 아주 기초적이고 상식적인 방역 조치조차 취하지 않고 은폐하며 메르스 사태를 키웠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지경까지 키웠다. "국가가 뚫린 겁니다" 이는 지난 6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메르스대책특별위원회에 나온 삼성병원 의사(감염내과 과장)가 한 말이다. 삼성을 대표한 그가 한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람의 생명보다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무슨 짓을 해도 괜찮을 만큼 국가의 관리망이 뻥 뚫린 현실을 그대로 솔직하게 증언한 말로 여겨진다. 삼성자본은 정부(국가)의 관리 영역 밖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 말로 보인다. 몇년전 '삼성 X파일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우리 사회의 정치계, 법조계 등을 삼성자본이 관리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막대한 불법 자금을 뿌리며 사회 전반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있는 것이다. 여러 해 전 김용철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는 삼성의 불법 비자금조성과 전방위적 로비 행각을 폭로하기도했다. 작년에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겪었다. 그 아픈 사건을 통해 우리가 똑바로 확인한 것은 국가와 자본의 병적인 유착관계였다. 즉 자본 편에 선 국가, 국가를 등에 업은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일반국민의 생명을 언제라도 저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 304명을 수장시키더라도,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자본은 기꺼이 이윤 쪽을 택한다 . 동시에 정부 관료조직은 돈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자본을 위해 봉사하고 수종을 든다. 탄저균 반입사건 지난 5월 22일 미국 메일랜드의 한 연구소가 탄저균 샘플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국 당국에 신고했다.그런데 이 신고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얘기라는 사실이 곧이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확인된 사실은 4월 25일 미국 국방부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탄저균 샘플을 미국 내 9개주 연구소와 오산기지에 보냈던 것이다. 오산기지에 보낸 방법은 놀랍게도 일반택배였다. 5월 27일 주한미군은 탄저균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폐기했다고 밝혔다. 탄저균은 치사율이 40%까지 오른다는 메르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서운 균이다. 치사율 95%다. 탄저균 100 Kg으로 사람 200~ 300만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군은 왜 탄저균을 여기저기 보냈는가? 그것도 우리나라엔 일반택배로 보내는 장난을 왜 치는가? 소량으로도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생물무기 실험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실험이나 훈련을 주한미군은 여기서 하는가. 생물무기 실험은 이번이 처음인가. 탄저균을 한국 내 오산에만 보냈는가. 여기서 하는 주한미군의 생물무기 실험은 탄저균뿐일까? 정부는 그동안 탄저균 반입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할 임무를 가진 정부는 이번에도 직무 유기를 하고 있다. 사실 주한미군은 2013년부터 생화학무기 방어전략인 주피터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이번 탄저균실험도 그 일환이다. 최근 한 시민단체가 국방부에 주피터에 대한 공개 질의를 했다. 대답은 이렇다. "한국 국민 방어와 한미동맹군 보호에 필요한 주한미군사의 역량을 향상하기 위한 것" 이 말을 하면서 국방부는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을 언급했다. 이번에도 북한 위협을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오래된 습관을 드러냈다. 주피터가 과연 북한만을 겨냥한 것일까? 작년 12월 미국 주피터 책임자인 피터 이매뉴얼은 한국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주한미군이 원했고 ,한국이 우방국이고 미국의 자원이 집중된 곳' 이라고 하며 , 그는 덛붙여 말하기를 " 한국에서 설계된 틀은 미군의 아프리카 ,유럽, 태평양사령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놀라운 말이다. 그리고 솔직한 말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한국은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미군을 위한 실험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한국은 전세계를 무대 삼아 잇권을 추구하느라 혈안이 된 미국의 이용물인 것이다. 언제라도 미국의 이익을 위한 전쟁의 생화학무기 실험장일뿐만 아니라 총알받이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한국에 배치된다면,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고 ,우리는 총알받이 노릇을 강요당하는 현실이 한층 다가올 것이다. 아무튼 한국은 독점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이용되는 나라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하기야 자신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게 자진하여 갖다 바친 마당에 이 확인은 부질없는 짓이긴 하다. 미국은 천민자본주의 국가다. 그 나라는 아주 천박한 자본의 논리를 따라 냉정하고도 교묘하게 움직인다. 자유니 민주니, 정의니 평화니 하는 가치는 자국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국외에서는 전혀 아니다. 미국이라는 국가와 자본은 오로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맹활약한다. 탄저균 실험도 그 활약상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그 실험을 통해 중국과 북한 등을 자극함으로써 적대적 관계를 심화시키고, 신냉전체제를 더욱 굳히려는 것 같다. 그 목적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활성화시키고,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꾀하는 것이리라. 이 과정에서 어쩌면 탄저균백신을 전국민에게 맞춰야한다며 법석을 떠는 슬픈 코미디(제약 자본이 떼돈을 버는 기회)가 연출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탄저균실험 대상이자 탄저균백신의 소비자 노릇을 강요당하는 지경까지 갈지도 모른다. 한편 '국가자본주의'를 강고히 하고 중화주의사상을 강화하는데 여념이 없는 중국과 3대째 세습을 하고 있는 기형적 왕조체제, 북한은 불안정한 정권 유지,강화를 위해 미국(일본 포함)의 적대 정책을 은근히 즐기며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이에 더하여 일본은 집단자위구너을 발동하여 유사시 한반도에 진군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역사가 말해주듯 독점자본은 무자비한 살상과 파괴를 하는 전쟁을 먹고사는 냉혈한 같다. 돈이 왕노릇하는 사회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철저히 짓밟을뿐 아니라, 그것을 지키며 살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 사회는 생명을 증오하고 ,오히려 죽음의 문화-Necrophllia를 장려한다. 전쟁, 폭력, 범죄,패권주의, 군사문화, 권위주의, 잔혹행위, 마약중독, 정신병 등을 조장하고 격려한다. 얼마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방대한 저서 '21세기 자본'이란 책울 발간했다. 그를 통해 그는 자본주의 세계의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얼굴을 폭로했다. 지난 2~3백년 동안의 세계 자본주의 역사의 방대한 통계 자료를 갖고 분석한 결과, 그는 자본주의의 낙수효과는 없고 갈수록 돈이 돈을 버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음을 밝혔다. 1:99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다. 지금 세계는 제 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과 흡사한 위기 상황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우리에게 주권이 있는가. 오늘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누구인가.,무엇인가. 나 그리고 우리 사회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교회의 머리는 무엇인가.친미를 넘어 종미,숭미적인 성향을 가진 한국교회의 머리는 과연 누구인가. 서기 4세기 이래 줄곧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노릇을 해온 주류 기독교와 예수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구원의 진리는 도대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로마제국주의 시대-노예제사회를 살았던 바울은 그 엄혹한 시대 상황에서 칭의 -구원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하며 기도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경험을 가진 그가 주님으로부터 받아 전한 칭의- 구원에 대한 진리는 이렇다. 그는 다음과 같이 압축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칭의- 구원이란 '주권의 전이'(Lordship transfer)임을 바울은 여기서 맹백히 천명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은 소위 칭의를 의미한다.그런데 그 칭의는 바로 흑암의 지배를 받던 사람이 아들(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 권세'나 '나라'는 통치개념이다. 바울은 여기서 예수께서 전한 복음의 핵심주제인 '하나님 나라'와 칭의를 직결시키고 있다. 칭의는 예수께서 전한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인 표현이다. 오늘날 이 시대 흑암의 핵은 독점자본이다. 그리고 그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국가)다. 지구촌 전체가 돈이 왕노릇하는 자본주의사회화된 이 시대에 그 흑암의 권세는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강력하며 치밀하다. 독점자본의 논리(생리)는 사람들 마음 깊이 새겨 있다. 얼룩말의 무늬처럼 새겨진 그 논리는 마음을 지배하다 못해 성격까지 만들어 버린다. 영구히 자본에 종노릇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성격을 그냥 둔채 기복주의신앙,성공주의신앙,소원성취신앙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모인 교회에서 흔히 하는 짓은 신을 만드는 일이다.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백성처럼 기독교라는 간판 아래서 금송아지- 돈신을 만들어 놓고 절하며 섬긴다. 그리고 춤춘다. 오늘의 구원 한국교회가 구원의 공동체가 되려면 이제라도 돌이켜 '주권의 전이' 은총을 구해야 한다.돈을 왕으로 섬기는 마음과 생활이 주님을 진정 왕으로 모시고 섬기는 마음과 생활로 변화되지 않는 한 칭의나 구원은 없다. 이 '주권의 전이' 없이 구원을 확신하거나 칭의를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제 환상 가운데서 자위나 하는 가련한 사람이다. 돈이 왕노릇하는 사회에서 돈에 종노릇하는 노예의 마음을 갖고 살면서, 자본이 좌지우지하는 목숨을 갖고 살면서 구원을 확신하는 모습은 마약에 취한 모습과 같다. 지금 현실은 야만적인 독점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으면 구원을 받았다고(받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자기모순이자 병적인 자기도취다. 일종의 정신증이다. 지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적인 지배를 받는 마음과 삶이 칭의요 구원이다. 다시 말해 칭의-구원은 사랑, 정의, 생명, 평화의 지배를 받는 삶이다. 칭의는 개인적 칭의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적 칭의도 있다. 개인의 칭의 없는 사회적 칭의 없고, 사회적 칭의 없는 개인의 칭의 없다. 그런데 얼룩말처럼 새겨진 자본의 논리,체질을 누가 지울 수 있을까. 개인의 마음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진하게 새겨진 그 무늬, 체질을 누가 고칠 수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지울 수 있다. 그의 보혈과 십자가의 도만이 지운다. 십자가(사랑과 정의)는 돈 우상을 부수는 강력이다.악을 죽이는 능력이다. 십자가 사랑만이 자본보다 사람, 이윤보다 생명이 넘치는 마음과 사회를 능히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에서 그랬듯이 오늘 의인(칭의를 얻는 자) 10명을 찾으신다. 믿음으로 응답하고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을 찾는다. 바닷물을 짜게 하는 3.5% 소금기를 가진 사람 말이다. 회개는 믿음으로 응답하는 방법이다. 회개는 그리스도를 힘입고 개인의 마음에서 왕노릇하는 돈을 밀어내는 작업이다. 동시에 그것은 사회에서 왕노릇하는 독점자본과 그에 수종드는 세력을 밀어내는 작업이다.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이 작업은 점진적이면서 획기적이다. 이는 마치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이는 50년마다 한번씩 실천해야 할 대대적인 사회변혁이었다)을 지키듯 일상적으로 해야 할 작업이다. 노동자를 쉬게 하는 안식일, 종을 풀어주는 안식년, 모든 토지를 아무 조건 없이 원주인에게 되돌려주고, 모든 종들을 석방하는 대대적인 희년을 지키듯 하면 된다. 가정과 일터에서 저마다 자신의 달란트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신 첫마디는 희년(주의 은혜의 해)의 실현이었다(눅4:16-19) .성령께서는 오늘날 오로지 희년정신 실현에 몰두하신다. ------- 김달성목사 (평안감리교회 담임.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