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그림은 프랑스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1830년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이다.
〈인민을 이끄는 자유녀신(自由女神)〉이라고 번안될 수 있을 윗그림은 한국 시인 김수영(1921~1968)의 〈푸른 하늘을〉이라는 시(詩)에 쓰인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다는 구절을 상기시킬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한때 꽤나 열망되었을 자유의 피비린내는, 저 야릇한 혈취(血臭)는, 적어도 근래의 한반도에서는 어느덧 “거의” 망각되었든지 아니면 비린내나 구린내나 지린내 따위로 변질되어, 예컨대, “인간은 무엇보다도 과거의 한계들에 단순히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자율적 존재가 확실하거늘, 자신이 지독하게 혐오하던 과거로 그토록 쉽사리 복고해버리는 인간의 몰골은 정녕 황당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프랑스 철학자·작가·사회학자·인류학자·예술사학자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의 탁견을 예증할 만하리라.
박봉성 프로덕션의 2007년판 장편만화 《신(神)이라 불리운 사나이: 비하인드 스토리》(제97권, 117쪽)에 등장하는 ‘세리나’라는 인물은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진실이란 이렇게 아픈 건가요?”
비록 게으르고 꾀죄한 죡변도 ‘인간을 불쾌·불편·뜨악하게 할 수 있는 진실의 성질(발통성; 發痛性)’을 일찍이 미미하게나마 미적미적 감지했으니 꽤나 괴괴(愧怪)했어라.
☞ 인간과 불편한 진실
더구나 진리와 진실(眞實)이 이따금 혼동될 수 있듯이 진심(眞心)과 진실도 이따금, 아니, 어쩌면 때때로, 혼동될 수 있으리라.
☞ 가치들의 기원과 계보학; 자연반응 현상 기준 사막 고정관념 분별력 진심 진실 체면 욕망
그리고 인간이 과연 욕망의 주체이냐 객체이냐 상품이냐는 의문의 정답을 콕! 팩! 찍어버리지는 못할망정 방답(傍答)이나 잠답(暫答)이라도 꾀죄하게나마 따져버릇하며 진실을 감지하려고 애쓰는 개체는 차라리 이방인이나 아웃사이더일 확률이 적잖겠지만, 농익은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아득하게 추방당해버리는 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뿐더러 욕망시장(慾望市場; market of desires)마저 그윽하게나 은근하게 노려볼 수 있으리라.
☞ 인간 욕망 주체 객체 대상 상품 진실 인식 이방인 아웃사이더 실존주의 추방 잔인성 쾌감; 욕망시장
그런 한편에서 위에 인용된 만화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비하인드 스토리》(제97권, 120쪽)에 등장하는 ‘쓰메이’라는 인물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자유라는 거 별거 아닙니다. 그 한 단어에는 수많은 조건과 명분이 숨어 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게으르고 꾀죄한 죡변은 얄궂게도, 또 일찍이, “우스운 자유 한 낱”을, 그러니까, “노예의 자유와 심리, 신앙심, 고정관념, 체면의식, 이념, 이데올로기”나 그것들의 지스러기 따위를 또 미미하게나마 미적미적 감지하다가, 아뿔사, “자유의 엘레지(Elegy of Liberty)” 비스럼한 것마저 어스레하게 감각해버렸으니 또 꽤나 괴괴했어라.
☞ 노예떼를 반성하지 않는 노예떼에게 들리지 않을 노예식 자유의 엘레지
이쯤에서 상기될 수 있을 독일 출신 미국 정치철학자 한나(해너) 하렌트(Hannah Arendt)는 흥미롭게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듯이, 다른 모든 사람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바란다면 실제로 그리할 수 있다고 믿어마지 않는 확신에만 의존하는 자유”를 노린다.
☞ 한나 아렌트 자유 생각 방법 위험 무념 비판 사유 착각 과거 미래 사이 르네 샤르 고야 괴몽
그런데도 이 시절에는, 적어도 한반도에서는, 심지어 ‘자본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마저 여전히 “거의” 무분별되거늘 ‘노예의 자유’가 ‘기계의 자유’와 어찌 분별될 수 있으랴.
하물며 자본해방, 인간해방, 노동해방, 노예해방, 기계해방 따위들이 어찌 분별될 수 있으랴.
이쯤에서 지레 발끈불끈하여 “그따윗것들을 왜 분별해야느냐!”고 히스테릭하게 버럭질할 개체가 혹시 있기는 있거나, 아주 영영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개체도 먼저 “나는 왜 하필 발끈불끈하여 ‘그따윗것들을 왜 분별해야느냐!’고 히스테릭하게 버럭질할까?”라고 우물쭈물하게라도 켕기듯이 자문(自門)할 수 있다면 쉽게 뚝딱 매끄럽게 진정되지는 않더라도 대략 얼추 진정될랑말랑할 수 있는 있으리라.
(2023.05.11.01.25.)
☞ 유기체 기계 반응 인공지능(AI) 로봇 감각 감정 인지 생각 자본주의 노동 해방 마르크스 엥겔스 자본 인간 자유
아랫그림은 폴란드 화가 유게니우스 스타인스베르크(Eugeniusz Steinsberg, 1855~?)의 1898년작 〈엘레지(엘레기아): 묘지에 몰아치는 눈보라(Elegia: Zadymka na cmentarzu)〉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