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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거제도 계룡산 산행은 오고 가는 시간 때문이리다.
흔히들 말하는 무박 산행으로 전일 밤 11시가 넘어서야 출발을 한단다.
연 이틀을 코피가 터지는 가 하더니 급기야는 멀쩡하던 무릎팍 마져 할라당 벗겨 지는 중상을 당하고서야 인간 승리랄까?
마침내 존경하는 예팬네로 부터 감격스런 외박증을 받아 드니 콧잔등이 찡하면서 지옥같던 악몽의 이틀밤이 자꾸만 떠 오른다.
여자는 나이가 들면 자꾸만 생성되는 남성 호르몬 덕분에 부끄러운 것이 없어 진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사실인 가 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상 같은 기술의 연장이었다.
내가 위에서 넉십자 조르기를 시도하면 구냥 얌전하게 사지를 쭈욱 뻗고 누워만 있던 예팬네가 요즘은 네발로 방빠닥을 기지를 않나?
어떨 적에는 침대 난간을 부여 잡기도 하고는 귀더욱 힘이 뻗히는 날은 벼루빡에 들러 붙기도 한다.
신혼 여행 갔다 온 이후로 내 무릎팍이 발라당 까져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팬네 생각도 틀린 건 결코 아니다. 아무렴 오고 가는 버스칸에서 발라당 날밤을 새우는 무박 산행인데 설마 차내에서 백예수 같은
외간 여자들과 무신 일이 벌어 질 수는 결코 엄따는 것이다.
발랑 까진 무릎팍에 여러 겹의 탄력 붕대를 동여 매고서야 오리역 4번 출구를 향해 횡단 보도를 건너니 멀리 강남에서 오신 야생화님들과
대지산님,비산님들,그리고 인디언 말총머리의 꼭지님 등등의 정겨운 모습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기다렸다는 듯이 강 대장님이 새로운 느림보님 한 분을 소개하신다.
멀리 일산에서 오신 선녀님이신데 경북 상주가 고향이라신다.
정갈한 모시 수건을 연상시키는 지성과, 절제되어 내면으로 승화된 정숙함이 어느덧 후광이 되어 오리역의 밤거리를 훤히 비추이고
있는 선녀님의 모습을 뵙느라 정신이 없는데 야박한 느림보 리무진이 브레이크를 밟는다.
미리 탑승하신 여러분들께 정신없이 인사를 드리며 리무진 맨 끝쪽으로 다가 가니 야탑에서 미리 승차한 내 친구 본즈가 손을 내 미는데
목소리 하며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내가 눈짓으로 무신 일이 있냐고 운을 떼니 뜬금없이 마후라가 터졌다고 한다.
아니 구런 중차대한 일이 벌어 졌으면 산행 예약을 취소함이 당연한 일이 아니 였냐고 하니 이 삼일 전에 그런 일이 벌어 졌으면 당근
예약을 취소했겠지만 출발 당일 아침에 예약을 취소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무리인 줄은 알지만 일단 나왔다고 한다.
고지식하여 앞 뒤가 콱 막히기는 어쩜 나와 이리도 비슷한지 정말 신기할 정도다.
워낙이 삼겹살을 좋아 하는지라 아침부터 불판에 올려 놓은 삼겹살을, 두어 점을 먹지 않아 속이 이상하여 수저를 놓았는데 오래지 않아
소식이 왔다고 한다.
원래 식중독은 체내에서 최소한 이 삼일 정도는 잠복을 한 연후에야 발병을 하기 때문에 식중독은 아닌 것이 틀림 없다.
아마도 우리들이 민간에서 흔히들 말하는 토사 곽란 같은 증세인데 원래 장거리 여행에서 가장 두려운 쥐약은 다름 아닌 설사병이다.
체면 불구하고 삐져 나오기 시작하면 천하 장사도 아무런 대책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매일 매일 쏟아 내는 똥 덩어리이지만
이놈 똥을 시간과 장소를 잘못 선택하여 분출하게 되면 두고 두고 개망신을 당하게 되는 결코 만만하게 볼 수가 없는 비상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이 똥인데 똥 중에서 아예 철판을 깔고 사람을 괴롭히는 무자비한 넘이 바로 묽은 설사똥이다.
아버님이 전근을 하시는 통에 국민학교 4학년 때 선녀님의 고향이신 상주땅에서 안동으로 전학을 왔는데 아직 전학을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들을 제대로 사귀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그날은 학교에서 사육하는 토끼들 먹이를 주는 토끼풀 당번이어서 약간은 늦은 시간에
하교를 했는데 그날도 안기천을 건너 석가탑처럼 생긴 삼층 화강암 석탑이 있는 철도 직원 관사를 지나는 중이었다.
오줌이 마려운 걸 요의를 느낀다고 젊잖게 말하는데 똥이 마려운 건 아마도 변의를 느낀다고 하겠지요.
한 손엔 책가방을 들고 또 한 손으론 동테를 굴리면서 신나게 뛰어 가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싸늘해 지더니 금새 똥이 마렵기 시작한다.
왼쪽 오른쪽 다리를 트위스트 치듯이 번갈아 꼬면서 전신의 힘과 기를 괄약근에 내려 보내면서 연신 몸을 비비 꼬아 보다가 급할 때는
네 손꾸락을 똥꼬에 바짝 드리 대곤 온 힘을 다하여 힘껏 밀어 넣어 보기도 하지만 온 창자가 요동을 치면서 밀어내기를 하는 그 위대한
힘을 감당하기엔 난 아무래도 너무도 연약한 존재였다.
제 예팬네가 심심하면 나한테 던지는 말이 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종로를 오 가던 전차처럼 앞 뒤가 콱 막힌 참으로 깝깝한 존재란 것인데 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 없는 촌넘이다.
똥은 뒷간에서 보아야 한다는 유교적 고정 관념이 시골길에 널부러진 고추밭이나 풀이 무성한 개골창에 들어 가서 잠시 앉았다 일어
서면서 한 덩어리 슬쩍 떨구어 버리기만 했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아주 사소한 일을 결국에는 대형사고로 만들고야 말았다.
낯빛은 이미 백짓장 처럼 아니 산행할 때 몹시 힘이 들면 강시처럼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에쉴리 여사님 처럼 되면서 목구녕에선 욱 욱
하는 소리가 치밀어 오르기를 수 없이 하며 사투를 벌인지가 아마도 십여분이 지날 무렵에서야 포플라 가로수 뒷편에 기대 선 나는
마침내 내면에서 밀고 나오는 용틀임에 항복을 하고야 만다.
한마디로 말 하면 괄약근에 쏟아 붇던 힘을 풀어 버린 것인데 난 한순간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체념의 자유로움과 분방함이란
묘한 경지를 체득케 되는데 문제가 여기서 끝 나는 것이 결코 아니였다.
묽은 설사똥이였으면 대충 반바지 아래로 스물 스물 흘러 내렸을 터인데 고구마 처럼 딱딱한 똥 막대기가 허벅다리를 꽉 조이고 있는
삼각팬티를 채 통과하지 못하고 그냥 그자리에 매 달려 있는데,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내 뱃속에서 나와 일심 동체가 되었던 이 넘의 오뎅이
내 뱃속을 나오기 바쁘게 웬수같은 애물단지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난 정말 어린 나이에 그 전 날 달콤하게 마셨던 물이 다음날 낮에 보니 무덤 속에 있는 해골에 고인 물이 란 것을 알고는 토역질을 하면서
확철대오한 원효 스님의 유심론의 껍데기를 혀로 핥아 보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던 것이다.
오뎅의 무게로 추욱 쳐진 반바지를 뒤로 돌려 잡은 가방으로 간신히 가리곤 정말 길고도 긴 거리를 정신없이 걷고 또 걸어서 집에 왔는데
아마도 냄새가 진동을 했었던 가 보다.
여고 졸업하고 잠시 집에서 쉬던 셋째 누나가 코를 연신 킁 킁 거리더니 아무 말 없이 펌푸가 있는 우물가로 데리고 가더니 반바지와
삼각팬티를 홀라당 까 뒤집으니 정말 강아지 대갈통만한 누런 똥덩어리가 하수구로 투욱 떨어 진다.
벌건 대낮에 똥을 싼 넘이 고추를 가릴 겨를도 여유도 없었다.
흐르는 펌프물에 대가리에서 부터 발끝까지 푸욱 담그고는 내 방으로 뛰어 들었는데 그날은 참으로 일진이 나빴던 가 보다.
내가 하교를 하던 그 시간에 우리집 마루에는 신작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꼼보 누나가 놀러 와서 내 셋째 누나와 대담을 하다가
내가 똥 싼 꼬라지 하며 아직은 비록 잘 영글었지는 않았지만 구래도 무었보다도 더 소중한 내 밑천을 온통 보았던 모양인데 당시 시골의
미장원이란 곳은 여인네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곳이다.
빠마 한답시고 천쪼가리 뒤집어 쓰곤 시어미 흉으로 부터 시작해서 심심하면 주먹질이나 해 대는 남편을 거쳐 주근깨 다닥 다닥 붙은
얼굴에 딱분을 겹겹히 쳐 발라 밀가루 푸대에 들어 갔다 나온 생쥐처럼 치장을 하는 옆집 아줌마 꺼정 연신 씹어 대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곳이 미용실인데 꼼보 누나는 온 동네 소식 모르는 소식이 없을 뿐 아니라 꼼보 누나 귀에 무엇이 들어 갔다 함은 방송국에
원고를 주는 것과 같이 채 오분이 지나지 않아 온 동네에 사발통문이 돌려 지는데 내가 똥을 싼 얘기라고 결코 예외일 수는 없었을 터이다.
똥을 싸고 한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 친구들과 신작로로 나가서 정신없이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꼼보 누나네 미용실
앞에서 놀았던 가 보다.
여러개의 유리가 덕지 덕지 붙은 미용실 유리문이 드르륵 하면서 옆으로 열리더니 이죽거리는 듯한 특유의 표정을 한 꼼보 누나가
야! 똥싸개 시끄러우니 딴데 가서 놀라는 것이다.
황급히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가는데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퍽 하고 쏴 지기 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간절하였다.
대부분의 느림보님들이 산행을 막 출발하고 나선 본즈와 난 우선 주변에서 가까이 보이는 대단지 아파트를 찾아,입구에 있는 버스 정류장
에서 버스를 기달리고 있는 아주 착하고 성실해 보이는 두 남학생에게 저기 보이는 단지 내 상가에 병원이나 약국이 있냐고 하니 없다고
하여 낙담을 하곤 학생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시내를 향한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버스인데 요금을 받지 않아 학생들에게 사유를 물어 보니 단지내에 사는 가구들이 월 일만원씩 내서 운영하는
비영리 셔틀버스라고 한다.
거제도 중심 상가 지역에서도 몇 번을 지나 가던 행인에게 길을 물었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친절히 아니 자신이 가던 길을 잠시
접고는 골목까지 따라 들어 오면서 우리를에게 정말 자상하게 길안내를 해 주신다.
마침 9시라는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내과 의원이 있어 잠시 기다리던 본즈는 근육 주사를 한방 맞고는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 들어가
소중한 약봉투를 받아 든다.
사람들이 설사라고 하면 어제 오늘 마시고 먹었던 물과 음식의 수분이 대충 쏟아져 나오는 걸로 착각을 한다.
인체는 대부분 수분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흔히들 말하는 설사가 시작되었다 함은 대충 뱃속에 있는 수분을 내 보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쉽게 말하면 창자같은 내장을 행주 짜듯이 바짝 뒤 틀어서 살 속에 있는 수분을 몽창 뽑아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한방에 보내 버릴
수도 있는 참으로 위급한 상황이 설사란 병이다.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돌아 가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니 산행을 했었던 여러 산벗들이 왁자하게 내려 온다.
인원점검이 끝나고는 몽돌 해변을 비롯하여 거제도를 일주하며 여러 경관 좋은 곳에서 막 피어 나기 시작하는 동백을 비롯한 여러
꽃들을 감상하며 오랜만에 불어 오는 따뜻한 봄바람의 체취를 느껴 보며 행복한 시간을 가져 본다.
봄 숭어회가 너무도 맛깔스레 진상된 오늘의 휘날래 뒷풀이 장소에 마침내 당도하고야 마는데 만 하루를 넘게 쬴쬴 굶었던 본즈가
상다리가 휘어 지도록 잘 차려진 횟상을 보면서 쥔장이 특별히 장만해 준 전복죽만을 갠신히 훌쪅여 본다.
아무래도 음식이 남을 듯 하여 젓가락을 대기 전에 마침 옆좌석에 앉으신 비산님께 드리니 무척이나 반가워 하신다.
비산님이 함께 자리를 하신 분들을 인사 시키는데 두분은 언니시고 한 분은 동생이라신다.
자매분들이 함께 모여서 이런 좋은 산행과 여행을 함께 하는 아름다우신 모습들을 보면서 나 또한 무척이나 즐거웠었다.
꽁지 빠진 닭처럼 혼자서 종이컵에다 쐐주를 퍼 마시는 내 모습이 무척 안스럽게 보였던 가 보다.
옆에 앉으신 비산님 큰언니 분이 술이다 머다 여러가지를 참으로 자상하게 잘 챙겨 주신다.
감사한 말씀을 미처 드리지 못했었는데 다행히 지면으로 라도 인사를 드릴 수가 있어서 무척이나 다행스럽다.
사람은 군대를 가던 어디를 가던 일단 줄을 잘 서야 한다.
나와 등을 하고 있는 내 뒷편 좌석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어서 누구 누구가 앉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채 수저도 들기 전에 이미 음식이 메뚜기 떼가 지나 간 것 처럼 동이 나 버렸던 모양이다.
내 테이블에 있던 생미역,멍게,생굴,소라 등등이 내 대갈통을 지나 뒷좌석으로 마구 넘어 간다.
참고로 그 좌석에 우연히 합석을 했던 김 대장님은 숭어회 딱 두점과 매운탕 국물 반 국자로 겨우 주린 배를 달랬다고 돌아 오는 차 중에서
내내 푸념을 하더만요.
옛날 여자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내숭이나 떨었지 지금은 정말 웬만큼 벌어 서는 우리 집꾸석 마냥 마누라 입에 쳐 발르는 엥겔계수로
몸살을 앓는다고 합니다.
구래서 남정네들이 음식값이라도 좀 쎄이빙을 할려고 바짝 말라 비틀어진 여성을 구하는 가 봅니다.
한밤중에 오리역에서 버스를 탔던 기억뿐이데 하루 온종일이 어떻게 지나 갔는지 참으로 꿈만 같은 하루다.
그래도 밤차를 타고 저 남녘땅 어딘가로 안직은 떠날 수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진실로 기쁘게 한다.
좋은 산행을 같이 하면서 여러 본 받을 점으로 나에게 많은 배움을 주시는 우리 느림보님들께 그리고 비산님 자매님들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재삼 드리며 오늘의 산행기를 마칩니다.
탄천변에서 바닷가 갯찐내가 채 가시지 않은 돌삐 인사드립니다.
첨언 : 똥을 쌌던 그날 이후로 난 물론 꼼보 누나 미용실이 있는 신작로 근처엔 결코 얼쩡이지 않았다.
언제나 뒷길을 돌아 다녔는데 학교를 파하고 돌아 올 때 철도 직원 관사가 있는 삼층탑이 보이면 멀리서 아무도 몰래 고개를 숙이고는
요즘 말하는 기도란 걸 올리곤 했었다.
내 쓰린 과거를 알고 있는 꼼보 누나가 괜찮은 놈팽이를 만나서 이 동네를 떠나 주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던 기억이 오늘 따라 무척
이나 새삼스럽다.
괜스래 이넘의 똥 때문에 거제도라고 하면 김 영삼 대통령의 생가 부터 육 이오 동란시 임시로 설치되었던 포로 수용소 얘기 부터 해서
엄청난 이바구가 도사리고 있는데 무척이나 아쉽군요.
내년에도 이처럼 멀쩡하게 살아 있으면 반드시 거제도 가서 계룡산 올를 날이 꼬옥 있겠지요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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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돌삐님의 산행이야기 주제는 아무래도 본즈님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즈님이 그렇게 힘든 상황이면 예약 취소를 하셨어야지..요.
아무리 약속을 했다고해도 몸이 아픈걸 어찌 한답니까..
약속을 지키려고 얘쓰시는 모습..참으로 고마운데
'고지식하여 앞 뒤가 콱 막히기는 어쩜 나와 이리도 비슷한지 '
그러니까 두분이 친구가 되셨겠지요..
다음부터는 이런 급한 사정이 생기면 꼭 말씀해주세요..
본즈님의 증상은 이제 다 나으셨는지..궁금하군요..ㅎ
맛있는 생선회를 눈 앞에 두고도 못드신 그 마음..
고생 많으셨습니다.ㅎㅎ..
그래서 뒤에앉은 분들께서 포식을...그래서
자리를 잘 잡아야만...뭔소리인지 이해가
않되었는데 확실하게 알았어요.그심정이야~~~
돌삐님 산행기는 주제가 하도 다양해서 어디로 튈지 흥미진진합니다.
혹 잘 못 보여 산행기 주제라도 되면 ㅎㅎ 큰일이지요.
결론은 산에는 못가시고 술만 드셨다는 얘긴데
사진에 생선회 정말 군침돕니다.
이번 산행 못한게 천추에 한이 되는데요.
돌삐님 괜찮아유
내년에 우리 멀정한 모습으로 함께 가는거예유
제가 아니가니까 고런일이 생기는가봐요
돌삐님의 글 솜씨는 어디로 향해도 해학이 묻어나요.
남을 웃게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 나십니다.
대단 하십니다.
빗속의 거제도 여행!즐거웠습니다.
어린시절 추억담을 참으로 잘 풀어내심니다.
비박 티켓을 구하기위해서 무릅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