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7일 물날
날씨 : 조금 흐린 하늘, 밤바람이 차다
마침회를 하려고 자리에 앉으며 어린이들이 낸 하루생활글을 펼치자 영호가 “어제 하루생활글 안 쓴 사람~” 하고 묻는다. 아이들은 모두 썼다고 한다. 그러자 오제가 “선생님은 어제 하루생활글 썼어요?” 하고 묻는다.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인웅이가 “선생님은 날마다 쓰지요?”하고 되묻는다. “응, 거의 날마다 쓰는데 어제는 못 썼어.”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선생님이 하루생활글을 안 써?’ 하는 낯빛이다. 다시 오제가 “선생님, 오늘 남아서 쓰고 가요. 회의 시간 이런 때 쓰지 말고 꼭 일 다 끝나면 남아서 쓰고 가요^^” 한다. 1학년들은 하루생활글 쓰기에 힘을 주지 않다가 가을 10월 들어서면서부터는 일주일에 세 번을 쓰기로 약속을 했다. 그럼에도 며칠씩 쓰지 않는 때가 있어서 어제는 이틀 넘게 쓰지 않은 친구들은 모두 남아서 하루생활글을 쓰고 가라고 했더니 오제는 선생님도 남아서 쓰고 가라고 한 것이다. 오제 말처럼 학교에 남아서 쓰고 오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추석 전부터 몸이 많이 아프다. 좁고 답답한 공간 이어도 마음껏 늘어질 수 있는 자취방이 좋다. 어지간하면 자취방에 일찍 들어오는 것 좋아하지 않는데 벌써 2주쯤은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드러눕는다. 그러니 추석 즈음부터는 하루생활글도 쓰지 못했다. 하루생활글 뿐이랴,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나도 모르는 엔돌핀과 카페인이 나와 아픈 줄 모르고 보내다가 학교를 마치는 시간이 되면 절여 놓은 배추처럼 늘어지다 보니 교사회에서 내가 해야 할 일 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선생님들 손을 빌려야 했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니 다른 선생님들은 그만큼 더 바쁘고 많은 애를 썼다. 고맙고 미안하다.
가을 학기는 참 바쁘다. 자연이 그대로 준 선물들(밤, 도토리)도 거둬야 하고 텃밭 작물들도 그 열매들을 바쁘게 익혀내고 거둔 것으로 공부하고 먹거리 놀거리 만들고, 이럴 때 선생이 할 것과 내려놓을 것을 가려야 하는데 난 아직 그것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선생들 방에 들어가면 “고단하면 좀, 쉬어요.”라며 쿠사리를 듣는다. 타고 나길 그런 건지, 배우길 그리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몸이 자꾸 욕심을 낸다. 아이들과 맷돌 호박 두 개와 마디 호박 하나를 두고 씨앗이 이만큼 자라기까지 과정을 이야기 나누고 만져보고 안아보고 냄새 맡아보고 그림을 그리고 <호박에는 씨앗이 몇 개 들어있을까?>란 책을 읽으며 정말 우리 호박에는 몇 개의 씨앗이 있을까? 상상해보고 그것을 잘라 주물주물 호박씨 골라내고 채치고 갈아 늙은 호박전도 부쳤다. 아이들이 껍질 벗기고 선생이 잘라 바짝 말려 호박꼬지도 만들었다. 하루 말린 호박씨로 정말 얼 만큼의 씨앗이 들어있나 세어보고, 열 개씩 묶어 세는 모둠, 다섯 씩 묶어 세는 모둠. 아이들은 저마다 뜻이 다르다. 선생이 미리 이렇게 하세요. 라고 길을 제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천천히 길을 찾아간다. 맷돌호박과 마디호박의 씨 모양도 비교해보고 맛도 비교하고, 수세기 하는 과정을 글로 써보기도 하고. 텃밭에서 얻은 호박하나로 참 많은 것을 하며 지난 한 주를 보냈다. 추석을 쇠고 와서는 야생팥과 동부, 울타리콩을 따서 그것으로 분류와 단위, 측정을 공부하고 시를 쓰고, 지난해 거둔 콩으로 콩주머니를 만들기 위해, 광목천에 아이들이 염색펜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 하고, 콩알 넣고, 또 바느질 하고, 요번 주는 그것으로 아이들이 놀이를 했다. 놀잇감 하나(콩주머니)를 만드는데 아이들이 쏟은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세상에 단 하나뿐이 내가 만든 콩주머니, 아이들은 천에 그림을 그려 마지막 창구멍 막은 것 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했으니 그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모든 과정에는 이야기와 협력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물론 어린이들이 협력을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다투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나니 마음에 드는 쪽이 달라 천을 나눌 때도 다툼이 있다. 하지만 이 다툼은 서로 살아가는데 함께 사는 것을 배우고 맞춰가는 아주 큰 공부가 된다. 서로 자기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고 듣고 설득하고 때론 양보하는 것이 이런 때 이뤄진다. 어린이들은 본디 다투며 크는 것이다.
어제는 시와 그림 내보이기에 내보일 시를 현수막 천에 옮겨 쓰는 것을 했다. 올해 1학년의 모든 공부 바탕에는 ‘되살림’이 있다. 하여 예쁘고 깨끗한 새 종이에 쓰지 않고 버려지는 것 가운데 다시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버려지는 현수막 천에 시를 썼다. 유성매직으로 써야하고 선생이 줄도 쳐주지 않는 오롯이 혼자 해야 하는 일들이었는데 아이들도 아나보다. 선생이 모두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참 대견하게도 투정 없이 즐겁게 한다. 영호와, 은후, 단희, 시우는 글씨가 너무 크거나, 잘못 쓰거나 줄이 맞지 않아 몇 번을 새로운 천에 다시 써야 하는데도 속상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참 고맙다. 쓰면 쓸 수로 글씨도 반듯하고 시원시원하게 쓴다. 현수막 천을 잘라 쓰다보니 잘린 부분 천들이 풀어진다. 불로 지지면 호르륵 타버릴 것 같다. 재봉틀로 박고 있으려니 소리가 무척 시끄럽다. 에고 처음부터 1학년 교실에서 재봉질을 할 것을. 다른 선생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냥 끝까지 앉아서 다 박아버렸다. 아이들 글이, 모습이, 마음이 예뻐서 또 팔푼이처럼 이선생, 저선생 붙잡고 자랑을 하고 말았다.
오늘은 아침나절엔 한글날 행사를 하고 낮공부로 시와그림내보이기에 보일 작품을 하나 더 쓰려했는데 시간이 마땅치 않아 1주일에 걸쳐 정성을 쏟아 만든 콩주머니로 놀이를 했다.
짝궁과 마주보고 서서 "하나, 둘, 셋" 소리내어 호흡을 맞추고 던져 받기
둥그렇게 서서 퐁당퐁당 노래를 부르며 옆으로 전해주기
조금 더 멀리 서서 던지고 받기
머리에 이고 2층마루와 교실을 걷기
콩주머니 하나로 할 수 있는 거리들이 참 많다. 아마도 내일을 아이들이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놀이는 아이들에게 균형감, 조화로움을 자연스레 몸에 익게 한다.
놀이 속에서 서로를 살피고, 마음을 맞추고, 균형을 찾는다
덕분에 마침회가 길어졌다
난 공부라 말하고
아이들은 놀았다고 하는
마침회 시간이다^^
첫댓글 글게 영호야, 텃밭은 덥고 벌레가 너무 많지.. 귀여운 푸른샘들..>.<
그나저나 우리 송쌤 골골하셔서 우짜나.. 그저 연휴엔 좀 쉬시길.. 자연속학교 가셔서 즐기려면 쉬셔야합니다~^^
^^ 어제까지 골골
오늘은 싹 나았어요.
자연속학교 즐겁게 신나게 다녀오겠습니다
현수막 시 참 예쁘더라고요. 선생님이 자랑하실만해요~^^
콩주머니도, 박스와 나뭇잎을 이용한 시화도, 현수막 시화도 정말 일학년들이 한게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하더군요~ 우리 아이들이 넘 기특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 앞에서 이끌어주시고 뒤에서 받쳐주시느라 고생하시는 우리 송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연휴때 푹쉬시고 자연속학교때도 아이들과 신나게~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