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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1 팡틴
진짜 장발장의 선택(2)
마들렌은 고된 여행 끝에 아라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재판소에 가서 방청석에 앉았다. 이미 샹마티외 사건은 변론이 끝나 가고 있었다.
군중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마들렌 시장을 주목하지 않았다. 모든 시선은 오직 한군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재판소 왼쪽, 벽에 따라 나 있는 문 곁의 작은 나무 의자였다. 몇 개의 촛불이 켜진 이 의자에 한 사나이가 두 경관 사이에 앉아 있었다.
샹마티외였다. 장 발장은 그 사나이가 금방 눈에 띄었다. 그 사나이가 어디 있는지 미리 알고라도 있던 듯이 자연히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그는 나이 든 자기 자신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얼굴이 닮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푸석푸석한 머리,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 작업복을 입은 모습과 태도는 디뉴에 왔을 때의 장 발장 자신이었다. 당시 그의 마음은 교도소의 돌 위에서 19년이나 키워 온 무서운 생각을 자랑스러운 보석인 양 간직한 채 증오에 불타고 있었다. 그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저 꼴이 무어람! 나는 다시 저렇게 되어야 하는가?’
그 사나이는 적어도 60세는 되어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우둔하고 거칠어 보였다.
장 발장이 들어갔을 때 피고의 변호인은 막 변론을 끝내려 하고 있었다. 검사는 변호인의 발언을 반박했다. 과연 검사답게 준엄하고 통렬했다.
그는 우선 변호인의 공정성을 칭찬하고 그 공정성을 교묘히 이용했다. 변호사가 행한 모든 양보를 피고에 대해 역이용했다. 변호사는 피고가 장 발장임을 인정한 것 같았다. 그는 이 점을 찔렀다. 그러므로 피고는 장 발장이다. 이것은 기소장에 이미 밝혀져 있으므로 새삼스레 논의할 여지도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가 사과를 훔친 사건 하나만을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가 전과자이며, 그것도 장 발장이라는 세상이 다 아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경찰은 오래전부터 그에 대한 수사망을 빈틈없이 펴 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8년 전 툴롱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온 뒤에도 또다시 도둑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선 이번 범행에 대한 결판을 내린 후에 따로 전과에 대한 죄상을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검사가 이같이 논고하고 있는 동안, 피고는 약간의 감탄마저 포함한 일종의 놀라움을 갖고 멍청히 입을 벌린 채 경청하고 있었다. 가끔 논고가 더욱 정력적으로 행해질 때, 웅변을 억제할 수 없어 신랄한 형용사가 파도처럼 넘쳐 폭풍같이 피고를 에워싼 순간, 그는 천천히 고개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말 없는 슬픔의 항의였다.
샹마티외는 변론이 시작될 때부터 이렇게 참고 있었다. 그의 곁에 있던 방청객들은 그가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몇 차례 들을 수가 있었다.
“발루 씨에게 부탁하지 않아서 이런 꼴이 됐어!”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그의 어리석은 태도를 지적하면서, 이것은 분명히 계획적인 범행이며 우둔이 아니라 교묘하고 교활하게 당국을 기만는 습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나이의 뿌리 깊은 사악성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 말했다. 검사는 프티 제르베 사건은 보류하고 엄벌을 요구하면서 논고를 끝냈다. 분명히 종신 징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피고는 더 할 말이 없는가?”
사나이는 일어서서 몹시 더러운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아무 말도 안 들린다는 태도를 보였다. 재판장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이번에야 이해한 듯 그는 눈을 번쩍 뜨는 듯한 동작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청객, 경관, 변호사, 배심원과 재판장을 연달아 본 그가 커다란 주먹을 의자 앞에 있는 난간에 올려놓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돌연 검사를 응시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말씀드리죠! 저는 파리에서 수레 만드는 목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발루 씨네 집에서요. 고통스런 벌이었어요. 언제나 옥외나 마당에서 일을 합니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헛간에서도 하지만, 문이 달린 작업장에서 하는 일은 없습니다. 장소가 넓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에는 추워 몸을 좀 녹이려고 제 팔을 치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주인은 이런 짓을 싫어합니다. 시간이 낭비된다는 것입니다. 돌바닥 틈새가 얼어붙는 추위에 쇠를 만진다는 것은 여간 고통스런 일이 아닙니다. 몸을 빨리 망치게 됩니다. 그 일에 종사하다 보면 일찍 늙어 버리고 맙니다. 마흔 살쯤 되면 이미 끝장이죠. 저는 쉰 세 살이니 그 일이 무척 힘들었어요. 참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물어보세요. 물어보란 말입니다.! 아 참, 나는 정말 바보라니까요! 파리는 악마의 구렁텅이 같은 곳인데 누가 샹마티외 영감을 알겠습니까? 하지만 발루 씨가 있어요. 발루 씨한테 가서 알아보세요. 그런 다음에 저를 아무렇게나 해도 좋습니다.”
사나이는 입을 다물었으나 역시 서 있었다. 주의 깊고 친절한 재판장이 큰소리로 말했다. 재판장은 배심원에게 ‘피고가 일했다는 발루라는 사람을 소환했으나 불가능했다. 파산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재판장은 피고를 향해 앞으로 하는 말을 잘 들으라고 권고하면서 첨가했다.
“그대는 지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 아주 중대한 추정이 내려지고 있어. 최악의 결과가 초래할 지도 모른다. 피고, 그대의 이익을 위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겠는데, 다음 두 가지 점에 관해 분명히 대답해 주기 바란다. 첫째, 그대는 피에롱 과수원의 담을 넘어 가지를 자르고 사과를 훔쳤는가? 즉 침입하여 절도 행위를 저질렀는가? 둘째, 그대는 석방된 전과자인 장 발장인가 아닌가?”
피고는 잘 이해하고 대답하는 사람인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입을 열어 재판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선……”
그런데 그가 자기 모자를 내려다보고 다음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입을 다무는 것이었다. 이에 검사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피고, 들어보라. 그대는 질문에 대해 아무 대답도 못 하는군. 그대가 말을 못 하는 것은 죄가 있다는 증거다. 그대는 샹마티외가 아니라 모친의 성을 따서 장마티외라 하며 숨어 있던 중죄인 장 발장임에 틀림없다. 그대는 오베르뉴에 갔던 일이 있고 고향인 파브롤에서 가지치기 기술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대가 피에롱 과수원의 담을 넘어 익은 사과를 훔친 것도 사실이다. 배심원 여러분이 판단하실 것이다.”
피고는 앉아 있다가 검사가 말을 마치자 다시 벌떡 일어났다.
“당신은 참 나쁜 사람이군요. 내가 말하려던 것은 이런 것이었소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가만히 있었소. 나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요. 나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인간이오. 사과가 달린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져 있기에 이런 신세가 될 주 ㄹ모르고 주워 먹은 것입니다. 이미 석 달이나 감옥살이를 하다가 이렇게 끌려 나온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처럼 나를 죄인 취급을 하고, 하지도 않은 일을 대라니! 순경은 좋은 사람인것처럼 나를 팔꿈치로 치며 작은 소리로 ‘대답해’하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할 말이 없어요. 배운 게 있어야죠. 어째서 내 마음을 몰라줍니까? 도둑질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아요. 길에 떨어진 것을 주웠을 뿐입니다. 당신네들은 장 발장이다. 샹마티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알지도 못해요. 마을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로피탈가의 발루 씨네 집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내 이름은 샹마티외입니다. 당신들은 용캐도 내 고향까지 알아냈구려. .나도 모르는 고향을.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집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게 오히려 편리할지도 모르죠. 우리 부모는 집 없는 떠돌이였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분명한 것은 아닙니다. 어려서는 꼬마라 불렸고 지금은 영감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세례명 같은 것입니다. 그건 어떻게 생각하건 당신네 마음대로 하세요. 물론 오베르뉴에도 있었고 파브롤에도 있었어요.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오베르뉴와 파브롤에 있던 사람은 모두 전과자란 말입니까? 나는 도둑질 따위는 하지 않았어요. 나는 샹마티외 영감일 뿐입니다. 결국 당신네들이 엉터리 같은 말을 하며 내게 고통을 주고 있을 뿐입니다. 도대체 무슨 까닭에 이토록 나를 못살게 구는 겁니까?”
그 자리에 선 채 피고의 말을 듣고 있던 검사는 재판장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재판장님, 피고는 백치처럼 위장하고 있으나 그렇게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못 하게 할 것입니다. 이 피고의 애매하면서도 극히 교묘한 부인에 대하여 죄수 부르베, 코슈파이유, 슈닐디외 및 경감 자베르를 재차 법정에 소환해 피고가 중죄인 장 발장과 동일 인물인가 아닌가에 대해 최후로 불러서 물어볼 것을 재판장님 및 법정의 모든 재판관님에게 청원하는 바입니다.”
재판장이 말했다.
“검사에게 말해 두지만 자베르 경감은 공무로 인근 군청의 부름을 받고 진술이 끝나자 법정을 떠났고, 이 도시에서도 떠났습니다. 그런 허가를 내린 것은 검사 및 변호인의 동의하에 행해진 것입니다.”
검사가 계속했다.
“재판장님, 그 말씀은 옳습니다. 자베르가 부재중이라면 그가 앞서 말한 것을 배심원 여러분이 상기해 주셨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자베르는 비록 지위가 낮지만 중요한 임무를 엄격하고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저는 피고의 부인을 반박할 정신적 추측이나 구체적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를 철저하게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나이는 샹마티외가 아닙니다. 장 발장이라는 극히 흉악한 전과자입니다. 형기가 끝나 석방한 것은 지극히 유감스런 일이었습니다. 악질적인 절도로 19년을 선고받았습니다. 5-6회나 탈옥도 시도했습니다. 프티 제르베 사건, 피에롱 사건 외에도 디뉴의 주교 예하 사택에서 절도를 한 혐의도 있습니다. 저는 툴롱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있을 때 가끔 그를 보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철저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정확한 진술은 방청인과 배심원에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검사는 자베르를 뺀 나머지 세 증인인 부르베, 코슈파이유, 슈날디외를 불러 엄중히 신문할 것을 주장하고 이야기를 마쳤다.
재판장은 법원의 직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증인실의 문이 열렸다. 법원 직원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경관과 함께 죄수 부르베를 데리고 나왔다. 방청인들도 모두 한 덩어리가 된 것처럼 침을 삼키며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재판장이 말했다.
“부르베. 그대는 수치스런 형을 받았으니 선서를 할 수는 없지만…..”
부르베는 고개를 숙였고 재판장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자, 부르베. 이 사람을 똑똑히 보시오. 그리고 이 사람이 옛날 툴롱 감옥에서 함께 복역을 하던 장 발장인지 아닌지를 말해 보시오.”
부르베는 피고를 자세히 바라보고는 재판장을 향해 말했다.
“그렇습니다., 재판장님. 처음으로 이 사나이라고 생각한 것은 저였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나이는 장 발장입니다. 1796년 툴롱에 입소하여 1815년에 출감했습니다. 저는 1년 더 있다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바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마 나이 탓일 겁니다. 교도소에서는 음험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 사나이를 알고 있습니다.”
재판장이 말했다.
“앉아도 좋아. 피고는 그대로 서 있어.”
다음에는 슈닐디외를 출정시켰다. 재판장은 그에게 침착하라는 말을 하고 부르베에게 했던 질문과 똑같이 피고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슈닐디외는 웃기 시작했다.
“암 알다마다요! 우린 5년 동안이나 같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걸요. 이 사람아, 날 몰라보다니 괘씸한 걸.”
재판장이 말했다.
“앉아도 좋아.”
이어 코슈파이유가 들어왔다. 그 역시 무기수로서 슈닐디외와 같이 붉은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에서 소환된 것이었다. 재판장은 나직한 말로 그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했듯이 눈앞에 있는 사나이를 알아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코슈파이유가 말했다.
“이 사람은 장 발장입니다. 기중기 장이라 불릴 만큼 힘이 장사였어요.”
분명하게 인정한 세 사람의 정직한 말에 방청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피고에게 있어서 불길한 징조였다. 방청인들의 수군거림은 증인의 진술이 거듭됨에 따라 더욱 고조되었다. 장본인 피고는 이들의 진술을 놀라운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재판장이 그에게 물었다.
“피고! 그대가 들은 대로다. 더 할 말이 없는가?”
사나이가 대답했다.
“대단들하군요!”
방청성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일어났다. 그 소리는 배심원석까지 퍼졌다. 피고의 파멸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때 재판장 바로 곁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우렁찬 소리였다.
“부르베, 슈닐디외, 코슈파이유! 이쪽을 보라.”
뜻밖의 소리에 사람들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그 목소리는 아주 처절하고 마음을 깊이 울리는 소리였다. 모두들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법관석 뒤에 앉아 있던 특별 방청인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 법정과 재판관석의 경계를 이루는 칸막이를 열고 나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재판장도 검사도 그 밖의 많은 사람도 그를 보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아니, 마들렌 씨가!”
과연 그는 마들렌 시장이었다. 아라스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반백이었던 머리가 이제는 백발이 되어 있었다. 거기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이렇게 머리가 세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방청인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아주 비통한 음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본인은 매우 침착한 태도로 방청석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처음엔 다들 무슨 일인지 몰랐다. 누가 소리친 거지 하고 의아해했다. 그토록 무서운 음성을 내지른 사람이 그 침착한 사람이라고는 미처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재판장과 검사가 한마디도 내뱉기 전에, 경관과 법원 직원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틈도 주지 않고 마들렌 씨라 불린 사나이는 증인인 코슈파이유, 부르베, 슈닐디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자네들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나?”
그이 말에 세 사람의 증인들은 벙어리처럼 그저 고개를 저어 모른다고 대답했다. 코슈파이유는 겁에 질려 군대식 경례를 했다. 마들렌은 배심원과 재판장 쪽을 돌아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재판장님, 저 샹마티외를 석방시키고 나를 체포해 주십시오.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내가 바로 장 발장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처음의 놀란 웅성거림 뒤에는 무덤과 같은 침묵이 흘렀다. 법정 안에는 무언가 위대한 일이 수행되고 있을 때에 군중을 사로잡는 종교적인 엄숙함과 비슷한 느낌이 감돌고 있었다.
재판장의 얼굴에는 동정과 비애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검사와 재빨리 눈짓을 하고 배석 판사들과 나직한 소리로 속삭였다. 재판장은 방청석을 향해, 누구나가 그 심정을 헤아리고 있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혹시 방청객들 중에 의사가 없으시오?”
검사가 재판장의 말을 받아 이야기했다.
“배심원 여러분, 방청을 혼란케 하는 이런 기괴한 이변은 우리와 여러분에게 설명할 필요를 느끼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나 적어도 세상의 풍문으로라도 몽투뢰유쉬르메르의 시장이신 존경하는 마들렌 씨를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만일 방청인 가운데 의사분이 계시다면 저와 재판장님과 함께 마들렌 씨를 모시고 댁까지 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마들렌 시장은 검사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온화하고도 위엄에 찬 어조로 감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검사님, 나는 당신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하마터면 큰 과오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내가 불쌍한 그 죄인입니다. 이 사건을 똑똑히 알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입니다.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느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은 나를 체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부자가 되고 시장이 되었습니다. 진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서 내 일생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요. 나를 체포해 주십시오. 검사님은 머리를 흔들고 계시는 군요. 당신은 마들렌 씨의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말씀하시는군요. 그리고 내 말을 믿지 않는군요. 곤란한 일입니다. 어쨌든 이 사나이를 처벌하는 것만은 중지해 주십시오. 뭐라고요? 이 사람들이 나를 몰라본다고요? 자베르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 사람이라면 나를 알아볼 텐데!”
마들렌은 증인으로 끌려 나온 세 명의 죄수에게로 돌아섰다.
“여보게, 나는 자네들을 기억하고 있네! 부르베, 나를 모르겠나?”
마들렌은 말을 끊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자네는 교도소에서 가지고 있던 바둑무늬 짠 멜빵을 기억하지 못하나?”
부르베는 놀라서 몸을 떨며 겁먹은 모습으로 마들렌 시장의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살펴보았다. 마들렌은 계속해서 말했다.
“슈닐디외, 자네는 무신론자란 별명을 갖고 있었지. 오른쪽 어깨에 심한 화상 자국이 있고. 그것은 자네가 T. F. P(종신 징역을 뜻하는 약자)라는 세 글자를 지우기 위해 난롯불에 어깨를 지졌기 때문에 생긴 흉터인데, 그래도 아직 글자는 남아 있을 걸세. 대답하게, 그렇지?”
“맞습니다.”
슈닐디외가 대답했다. 마들렌은 이번에는 코슈파이유에게 말했다.
“코슈파이유, 자네는 왼팔 안쪽에 화약으로 지진 푸른 글자로 된 날짜가 쓰여 있어. 그 날짜는 황제가 칸에 상륙한 1815년 3월 1일일 걸세. 팔을 걷어 보게나.”
코슈파이유가 소맬르 걷었다. 주위의 모든 시선이 그 팔에 집중되었다. 경관이 램프를 가까이 댔다. 과연 그 날짜가 있었다.
불행한 사나이 마들렌은 미소를 띠며 방청인과 재판관 쪽을 돌아보았다. 그 미소를 본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때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했다. 그 미소는 승리의 미소인 동시에 절망의 미소이기도 했다. 마들렌은 말했다.
“이젠 믿으시겠지요? 내가 바로 장 발장입니다.”
법정 안에서 이미 판사도 검사도 경관도 없었다. 모두들 취한 것처럼 장 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장 발장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자기 대신 다른 사람이 처벌받는 것을 막기 위해 당당히 나선 장 발장의 용감하고도 착한 마음씨에 모두들 감동되어 있었다.
“전 더 이상 여러분을 방해할 생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를 체포하지 않겠다면 난 가겠습니다. 정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검사님께서는 제가 있는 곳을 아실 테니까 아무 때든 필요한 때에 저를 체포해 주십시오.”
마들렌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누구 하나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를 방해하려고 가로막는 사람도 없었다. 이때 그에게는 한 인간이 다수를 물러가게 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 있었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군중들을 헤치고 나갔다. 누가 문을 열어 주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가 문가로 갔을 때 열린 것만은 확실했다. 거기서 그는 뒤를 돌아보며 한 번 더 말했다.
“검사님, 나는 언제나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그가 나갔고 문은 열렸을 때처럼 도로 닫혔다. 어떤 숭고한 행위를 하는 자는 언제나 군중 속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한 시간도 못 되어 배심원의 결정은 샹마티외란 사람에 대한 기솔르 완전히 기각했다. 즉시 석방된 샹마티외는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사라졌다. 모두 미친 사람들이라 여기며 앞서의 광경은 뭐가 뭔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변론이 끝난 날 밤, 자베르는 즉시 장 발장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튿날 아침 자베르는 겁에 떨고 있는 팡틴의 침대 머리에서 장 발장을 체포했다. 팡틴은 심한 열에 시달린 데다 또 코제트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하여 갑자기 베개 위로 쓰러졌다. 그녀의 머리는 침대 머리에 부딪혀 가슴 위로 덜컥 떨어졌다. 입은 벌어지고 눈은 열린 채 흐려져 있었다. 그녀는 죽었던 것이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시 교도소에 감금했다.
마들렌의 체포는 몽트뢰유쉬르메르에 이상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중죄인이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이 그를 버렸다는 것을 슬프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행한 모든 선행은 불과 두서너 시간 만에 모두 잊히고 겨우 3-4명만이 그에 관한 일을 충실히 기억했다. 문지기 노파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날 밤 이 충실한 노파는 아직 겁에 질린 채 슬픔에 잠겨 수위실에 앉아 있었다. 공장은 그날 안으로 폐쇄되어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졌으며 문 앞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집 안에는 팡틴의 유해 곁에서 밤샘을 하는 두 수녀만이 있었다.
평소 마들렌이 돌아올 무렵이 되면, 충실한 문지기 노파는 기계적으로 일어나 마들렌 시장의 방 열쇠를 열고 매일 밤 주인이 자기 방에 들어갈 때 사용하는 촛대를 꺼낸 뒤 다시 열쇠를 잠그곤 했다. 노파는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듯 촛대를 곁에 놓고 의자에 앉아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이 가엾은 노파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서야 노파는 겨우 생각에서 깨어나 소리쳤다.
“아아! 이 무슨 짓이냐! 그분 열쇠를 못에다 걸어 놓다니!”
그때 수위실 창문이 열리고 손 하나가 들어와 열쇠와 촛대를 잡았다. 그러고는 켜져 있는 촛불에 불을 당겨 촛대를 밝혔다. 문지기 노파는 놀라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 냈다. 노파는 그 손, 그 팔, 그 프록코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들렌 시장이었다. 노파는 잠시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시장님! 저는 아직 시장님이……”
그는 노파가 하려던 말을 대신했다.
“교도소에 있는 줄 알았겠죠. 그 말이 옳아요. 창살을 부수고 지붕에서 뛰어내려 이러헥 온 거요. 나는 내 방으로 갈 테니 생플리스 수녀나 불러 주시오. 틀림없이 그 불쌍한 여자 곁에 있을 것이니.”
노파는 서둘러 그 말에 복종했다. 마들렌은 방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갓다. 그는 탁자 위, 위자 위, 사흘 전부터 손을 대지 않았던 침대를 둘러보았다. 그저께 밤의 혼란스러웠던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옷장에서 헌 셔츠를 꺼내 몇 조각의 헝겊을 만들어 두 개의 촛대를 쌌다. 이러는 동안 그는 전혀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누가 문을 두어 번 조용히 두드렸다. 그가 말했다.
“들어와요.”
생플리스 수녀였다. 장 발장은 종이에 글을 몇 줄 적어 수녀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을 신부님께 전해 줘요.”
그 종이는 펼쳐진 채였다. 수녀는 종이에 시선을 떨구었다.
“읽어 봐도 좋아요.”
수녀가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신부님께 부탁드립니다. 여기에 두고 가는 모든 것을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저의 소송비와 오늘 운명한 여자의 장례비를 지불해 주시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수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햇으나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몇 마디 겨우 중얼거리기밖에 못했다. 수녀는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
“시장님, 저 가엾은 사람을 한 번 더 보시지 않겠습니까?”
그가 말했다.
“아니오. 나는 지금 쫓기고 있소. 그 방에서 붙들린다면 오히려 잠든 영혼에게 폐가 될 것이오.”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계단에서 큰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오는 시끄러운 발소리를 들었다. 문지기 노파가 아주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리, 하느님께 맹세합니다마는 낮이고 밤이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나는 문에서 떠난 일이 없어요.”
한 사나이가 말했다.
“하지만 저 방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은 그것이 자베르의 음성인 것을 알았다.
그 방은 문을 열면 오른쪽 벽 구석이 가려지게 되어 있었다. 장 발장은 촛불을 끄고 그 구석에 숨었다. 생플리스 수녀는 탁자 곁에 무릎을 꿇었다.
문이 열리고 자베르가 들어왔다. 자베르는 수녀를 보자 곧 나가려 했다. 이와 동시에 또 하나의 의무가 그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그는 멈춰 서며 적어도 한마디 질문을 더 하려고 했다. 이 생플리스 수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일이 없었다. 자베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수녀님, 이 방에는 혼자 계십니까?”
무서운 순간이었다ㅏ. 문지기 노파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수녀는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네.”
자베르는 계속했다.
“그러면, 내 의무라서 자꾸만 묻게 됩니다마는, 오늘 밤 수녀님께서는 한 사나이를 보지 못했습니까? 탈주했기 때문에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 장 발장이란 자를 보지 못했나요?”
수녀가 대답했다.
“네.”
수녀는 거짓말을 했다. 한 자리에서 두 번이나 머뭇거리지도 않고 헌신적으로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그럼 실례합니다!”
자베르는 말을 마치고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갔다.
오오, 청순한 여인이여! 그대는 이미 오랫동안 이 속세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대는 자매인 동정녀들과 형제인 천사들, 그리고 광명과 함께 있었다. 부디 이 거짓말이 천국에 기록되지 않기를!
수녀의 단언은 자베르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금세 불어서 꺼 버린 채 아직도 탁자 위에서 연기가 나고 있던 그 초마저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한 시간 뒤 한 사나이가 나무와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그는 몽트뢰유쉬르메르를 벗어나 파리 쪽으로 향했다. 이 사나이는 장 발장이었다. 그를 만난 몇몇 마부의 증언에 따라, 그가 꾸러미 하나를 들고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는 작업복을 어디서 구했을까? 이것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이보다 며칠 전 공장 병동에서 늙은 공원 하나가 죽었는데, 남긴 것은 작업복 한 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