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김곳
딸기 우유와 소주 외
-서규정 시인
도무지 상상이 안 가는 궁합입니다
황야를 주름잡던 사나인데요 알콜 중독은 아니라면서
술만 입에 댔다 하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깡소주에 유일한 안주가
딸기우유랍니다
그래도 딸기코는 본 적이 없습니다
텔레비전 중독도 아니라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야구랑 드라마로
이빨을 깝니다
그가 향수병을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 같습니다
태양의 후예 괜찮던데 드라마 봐? 감성이 앞서 말랑해져서는
찰진 언변으로 청중을 휘어잡는 전기수가 됩니다
휴머니티도 있고 남자 주인공 송중기가 나긋나긋하니 괜찮아,
삶을 돌아보며 순간순간의 포착으로 지난 삶의 퍼즐을 맞춰가는데
그 장면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억의 공유자가 유일한 향기 아니겠나,
달달하고 나긋나긋한 딸기우유 향기가 나는 시가 써질 것도 같습니다
그의 말처럼 포착되는 순간들이 다 삶이 되든 시가 되든 뭐라도 된다면
내일이라도 나는 쪽팔리지 않은 시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쩡쩡한 그의 시 세계만큼이나 말솜씨 또한 여문 알밤처럼 오독오독 맛났는데
밥보다 술이 더 찰랑거린 탓인지 뚝뚝 끊어진 시간을 붙들지 못합니다
벌써 퍼즐 빈칸이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규정 시인 시집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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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감정
너의 ‘보고 싶다’가 혀끝에서 맨드라미꽃으로 피고 있다
너는 그것을 화병에 꽂아두기도 할 것이다
검은 모래로 쏟아질 ‘대량 씨앗’이라 말하면 너는
전화기 너머에서 붉으락푸르락 시들어 버릴지
충만함을 남용하니까 쉽게 삼키고 쉽게 뱉는 거야
넌 향기가 없는 게 매력인 것 같다
그냥 버려도 미련이 없으니까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가볍게 중심을 잃고
진짜 맞어? 뽑아도 또 있고 버려도 또 있고
거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모래에도 싹이 트겠다
너의 오늘이 간편한 일회용이 아니길
‘기대하셔도 좋습니다’는 번번이 산화된다
넘치기 위해 솟구치는 탄산음료처럼
기대보다는 대비를 해야할 것 같다
어제 하던 일은 끝냈을까 궁금하지만
오늘 일을 마무리하기 전 내일마저 부푸는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기대는 하지마
어떤 모습으로든 성형 가능한 기분이
우리를 허무하게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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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곳|2012년 시집 『숲으로 가는 길』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고래가 사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