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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양상
1. 현대 사회의 특징과 문제점
현대 사회란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를 통칭하는 말이다. 45억여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지구에서 인류가 문명 시대를 이룩한 것은 불과 수천 년 전의 일이었으며, 산업혁명과 프랑스대혁명을 거쳐 근대사회로 접어든 것은 고작 이삼백 년밖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또 다양하고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근대화, 산업화, 공업화, 도시와 등의 말들이 우리에게 친숙해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몇 십 년 전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이러한 말들도 구시대적 사회를 지칭하는 것처럼 들리게 되었고, 정보화 사회, 후기 산업사회, 대중 사회 등 현대 사회를 가리키는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 각각이 서로 다른 사회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만큼 사회가 다양하고 복잡한 특징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며, 하나의 총체적인 개념으로는 이러한 사회를 묘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현대 사회는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산업사회가 물질만능주의,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도시문제, 생태계파괴문제, 노동문제 등을 초래한 사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적 사례에 속한다. 위에서 언급한 정보화 사회, 후기산업사회, 대중사회 등 현대사회의 특징이 되고 있는 사회현상 또한 여러 가지 문제를 초래한다.
정보사회에서는 정보 노출에 의해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받을 우려가 있으며, 정보의 접근 가능성에 대한 불평등의 문제가 생겨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중사회에서는 획일화ㆍ규격화에 따라 개인의 특성을 상실한 익명성(匿名性)의 문제가 생겨날 뿐만 아니라, 성원간의 원초적 유대와 공동체 의식이 사라짐으로써 개인이 원자화되고 소외감에 빠지게 된다. 요컨대 대중사회는 대규모 도시사회의 성격을 띠게 되는데, 인간 개인은 이러한 대규모 사회의 운영 원리로서의 분업과 관료조직의 한 분자로서 소외된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E. 프롬은, 개인은 봉건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했으나, 현대사회의 개인은 소외된 자로서의 고독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자류로부터 도피해서 2차적인 속박을 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2차적인 속박은 대중사회에서는 ‘강제적인 획일화’로, 파시스트 국가에서는 ‘지도자에의 예속’으로 나타난다.
현대사회의 특징과 그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출제된 논술은 그 접근 각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모든 문제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통찰하고 여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창의적으로 개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 산업사회
예컨대 다음의 논제를 살펴보자.
<논제> 오늘날 인류의 삶은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편의 시는 우리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풍자, 비판하고 있다. 그 쟁점을 도출하여 이러한 삶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바람직한 방안 또는 삶의 자세에 관해 논하라. <98. 경희대 인문계 1,300 - 1,4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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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잔 커피와 갑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 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잔 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잇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 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서 / 괴로웠음 그런데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도/ 씽씽 바람 불어라……천상병[나의 가난은]
다 가고/ 나만 남으리 // 솔잎 누렇게 변해 / 새들 떠나고 // 길짐승도 물고기도 / 벌레 모두 떠나고 // 주위의 친구들 // 하나둘씩 병으로 죽어 없어지고, // 나만 남으리 / 지구 위에 홀로 // 지구마저 흙도 돌도 / 물도 공기도 마저 다 죽어 // 나라 이름 붙인 / 허깨비만 남으리 // 끝내는 / 오도가도 못할 천벌처럼 / 나만 오똑 남으리. - 김지하 [다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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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에서 화자는 물질이 행복의 조건이 되어 버린 오늘날의 현실을, 자신의 삶의 모습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가난한 삶을 살아왔으며, 또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돈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린, 이른바 소유 양식의 삶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 사회 시대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
두 번째 시에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라는 문제가 드러나 있다. 이 시는 인간 또한 생태계의 일부를 형성하며, 자연의 다른 생명체들과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인간이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연을 파괴해 나갈 때, 인간 자신만은 홀로 ‘오똑’ 살아남을 것 같지만, 이는 시적수사(詩的修辭)일 뿐, 인간도 자연도 다 죽어 없어진 황량한 지구의 모습만이 남을 것이라고 이 시는 경고하고 있다.
우선 두 시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이 근본적으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야 이 논제의 쟁점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두 시 모두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초래한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각각 물신주의(物神主義) 혹은 물질만능중의, 그리고 생태계 파괴라는 문제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정소유(私的所有)’를 기반으로 한다. 에리히 프롬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유재산, 이익이라는 규범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은 판단이 극도로 치우쳐 있다. 산업사회에서 취득하고, 소유하고, 이익을 올리는 것은 개인의 신성하고 빼앗을 수 없는 권리이다. ‘사유(private)’ 재산(라틴어인 privare[빼앗다]에서 유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들만이 주인이며, 그것을 사용하거나 즐기는 권리를 타인으로부터 빼앗을 완전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규범[사적소유]은 그 구성원의 성격까지도 형성한다. 산업사회의 그 규범은 재산을 취득하고 그것을 지키고 그것을 늘리겠다는, 즉 이익을 올리겠다는 소망이며, 재산을 소유하는 사람들은 뛰어난 존재로 찬양을 받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프롬이 말하는 이른바 ‘소유양식’의 삶은 이러한 사유재산의 본질에서 유래하고 있다. 생존 양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내 재산을 취득하는 것, 그리고 취득한 것을 지키는 무제한의 권리를 지니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산업자본주의와 그 추동력으로서의 과학, 기술의 발전이 환경파괴를 가속화시켰다는 데는 이론(理論)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만이 그 이용이 가능함은 우리나라의산업화 과정에서도 여실히 겪었던 사실이다. 이제는 환경을 이용이라는 측면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이용이 가져오는 반작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생태론적 위기 (ecological crisis)에 직면하여, 인류는 급기야 1972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UN 인간 환경선언’을 채택하였고, 이후 이 선언을 공고히 하는 ‘리우 선언’이 개발과 환경보전의 균형을 취지로 열렸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위에서 파악한 쟁점을 전제로 하여, 이러한 삶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또는 삶의 자세를 논의할 수 있겠다. 양자택일의 논제이지만, 그 내용의 유기적인 성격상,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곧장 리우선언류의 물리적 처방을 내린다거나,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처방을 내리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제시된 두 가지 시가 말해주는 병리적 현상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하는 맥락에서 논의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두 시에 나타난 사회적 병폐는 모두 자본의 확장이나 재화의 획득이라는 외형적인 가치추구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질의 소유가치에만 치중하는 개인들의 문제나 재화를 획득하기 위해 결국 자연을 파괴한 자본가들의 문제는 예컨대 ‘가치전도’라는 관점에서 그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즉 물신숭배(物神崇拜)를 원인으로 설정하여, 인간가치나 정신가치를 추구하는 태도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내용으로 논의를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한국사회의 특성을 감안하여, 물질만능주의의 경우, 근본적으로 빈부격차를 줄여 나가는 복지정책을 통해, 개개인이 물질에 의해 소외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거나, 환경문제의 경우, 환경문제를 중심이념으로 삼는 전치집단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내용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여러 가지 방안들이 물리적이고 외형적인 제도의 형태를 띠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는 지속적인 하나의 시대정신(時代精神)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99 한양대(인문계) 논술도 산업사회의 문제에 대한 것이다. 엘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가), 에리히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나)에서 발췌한 대목과, 박목월의 시 「산이 날 에워싸고」(다)전문이 제시되어 있다.
<논제>(가)와 (나)는 현대인의 삶의 양식의 어떤 측면들을 보여주는 글이다. 이 두 글에 비추어, (다)의 시의 화자가 희구하는 삶의 방식을 설명하고 이러한 삶의 방식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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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1만년이나 계속되어 온 농경사회가 한 두 세기만에 일어난 산업사회에 밀려나고 바야흐로 탈산업화 시대가 우리 앞에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최근 고도로 진화된 산업사회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량이 15년마다 배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토록 혁명적인 변화는 일찍이 없었다. 더욱이 배증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점차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습관, 신조, 생활양식 등에 폭넓은 영향을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이처럼 고도로 가속화하고 있는 생활양식에 편승하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버리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생활의 페이스가 늦어지면 오히려 걱정을 하거나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제임스 월슨의 조사에 의하면 유럽의 많은 우수한 과학자가 미국이나 캐나다에 이주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빠른 생활의 페이스였다. 실제로 북미로 이주한 5백 17명의 영국 과학자나 의사들에 대한 조사 결과, 그들이 이주를 결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보다 많은 급료나 나은 연구 설비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다 빠른 사회적 템포가 커다란 배후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다른 것보다 북미의 빠른 페이스를 선택한 것이다.
유사한 예를 최근 파리에서 개점한 미국식 트럭스토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처음 이 가게들이 개점되었을 때에는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옥외의 비스트로(주점)에서 1-2시간을 소비하며 한잔의 아페리티프를 마시던 프랑스인들이 얼마 되지 않아 트럭스토어에서 서둘러 밀크셰이크를 마구 들이키게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트럭스토어식의 가게들이 널리 퍼져감에 따라 약 3만이나 되는 비스트로는 문을 닫게 되었었다. 타임지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들 가게는 ‘즉석 주문’의 희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히피족이 일반사회에서 뛰쳐나와 한가로운 생활을 하거나 또는 좀 더 다른 생활을 찾고 있는 까닭은 기술 문명의 가치에 대한 혐오감도 한 원인이 되지만 견딜 수 없는 정도의 생활의 페이스에서 무의식중에 도피하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산업시대 개막이래 여러 세대들은, 자연을 지배하고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며 최대 다수에게 최대 행복을 가져다주고 방해받지 않는 개인적인 자유가 보상되리라는 약속을 믿어 왔고 그 약속이 실현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기계 에너지와 핵 에너지가 동물의 힘과 인간의 노동력을 대치하고,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는 산업 발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우리에게 무한한 생산과 무한한 소비의 길이 열렸으며, 기술이 우리는 전능하게 하고 과학이 우리를 전지의 존재로 만들게 외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시대는 결국 이 위대한 약속을 이행하는 데 실패하였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즉, 모든 욕망의 무한정한 충족은 안녕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그것은 또한 행복의 길로 이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최대의 쾌락으로 가는 길조차도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또한 우리의 사상, 감정, 취미가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이들이 지배하는 대중매체에 의해 조종되고 있으며 우리는 모두 관료적 기계장치 속의 톱니바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눈이 뜨이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꿈은 끝나버렸다.
이제 우리는 사유재산, 이윤, 힘을 지주로 삼고 있는 사회에 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취득하는 것, 소유하는 것, 이윤을 남기는 것이 산업사회에 사는 개인의 신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재산을 획득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데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좀처럼 생존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으며 대부분의 사라들은 소유 양식을 가장 당연한 생존 양식으로, 심지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생활양식으로 알고 있다.
(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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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고도 산업사회[탈산업사회ㆍ후기산업사회]의 삶의 양식에 대한 논의이다. 고도의 산업사회에서는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량이 15년마다 배로 늘어나는데 비해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속도의 변화가 사람들의 습관, 신조, 생활양식을 바꾸어 놓았다.
즉 사람들은 가속화되는 생활양식에 편승하기 위하여 모든 일에 ‘페이스’를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의 많은 과학자들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주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빠른 생활의 페이스 때문이라는 것과, 비스트로[주점]에서 한 두 시간 술을 마시던 프랑스인들이 얼마 되지 않아 미국식 트럭스토어에서 서둘러 밀크셰지크를 들이키게 되었다는 것이 그 사례로 제시되어 있다.
(나)에는 산업화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논의가 이루어져 있다. 즉, 개개인은 대중매체에 의해 사상, 감정, 취미가 조종되고 관료제의 톱니바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존재양식의 삶을 버리고 재산을 획득하고 이윤을 남기는 소유양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다)의 시는 (가), (나)의 삶의 양식에 각각 대응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가)의 ‘빠른 페이스’의 삶에 대한 ‘느림’의 삶이며, (나)글의 ‘소유양식’의 삶에 대하여 ‘존재양식’의 삶이다. 이 시는 우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류의 느린 어조와 또 그러한 어조에 상응하는 유유자적하는 삶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고 화자는 물질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세속을 떠나, 자연 가운데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고자 소망하고 있다.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의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논제에서는 특히 수험자 개인의 가치관이 적극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가치관 자체는 채점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든 그 논의는 타당한 근거제시를 통해 설득력 있게 개진되어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논술은 통상적으로 그 논제와 제시문을 통해 논의의 방향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 방향은 충분히 고려될만한 성질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 논술의 경우는, (다)에 나타난 화자의 삶의 방식을 전적으로 긍정 또는 부정하기보다는, 그 의의와 한계를 지적하면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무난하다. 말하자면 오늘날 소유욕에 눈멀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물욕을 버리고 여유 있게 살고자 하는 모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경쟁에서 도피하는 삶만이 결코 최선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논의를 전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대중사회
’97 서울대 논술은 이른바 대중사회 혹은 거대한 조직사회라는 현대적 삶의 조건을 함의(含意)하고 있는 작품을 제시문으로 하여 출제하였다.
제시문은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 왕자」에서 발췌한 글이다. 그리고 논제는, 오늘날 인간 개개인의 익명화(匿名化)된 삶이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기인한 것이며, 참다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제시문에 나타난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어떤 의의와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제시문은 일곱 번째 별, 지구에 도착한 왕자가 여우와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하고 있다. 왕자는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가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에 이른다. 왕자는 자기가 살던 별에서 사랑했던 그 꽃이 지구에서는 이렇게 흔한 꽃이었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끼고 울었다. 그때 여우 할 마리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건넨다. 왕자가 함께 놀고 싶다고 여우에게 말하자 여우는 아직 ‘길들여지지’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길들임’이란 서로 참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은 십만 마리 여우 중에서 그저 한 마리의 여우에 불과하지만, 만약에 왕자가 자기를 길들인다면 자기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여우가 될 거라고 말한다. 여우의 말을 들은 왕자는 별에 두고 온 꽃을 생각하고 그 꽃이 자신을 길들였다고 생각한다.
“내 생활은 늘 똑같애. 나는 닭을 잡구, 사람들은 나를 잡는데 사실 닭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구, 사람들도 모두 비슷비슷해. 그래서 나는 좀 따분하단 말이야.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달라질 거야. 난 보통 발소리하고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야. 보통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는 굴속으로 숨지만 제 발자국 소리는 음악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안 먹으니까 밀은 나한테는 소용이 없구. 밀밭은 보아두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어. 그게 참 안타깝단 말이야. 그런데 너는 금발이잖니. 그러니까 네가 나를 길들여 놓으면 정말 기막힐 거란 말이야. 금빛갈이 도는 밀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리구 나는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도 좋아질꺼야.”
여우는 말을 그치고 어린 왕자를 한참 바라보더니, “제발 나를 길들여 줘”라고 말했다. “그래. 그렇지만 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친구들을 찾아야 하거든.” 어린왕자가 말했다. 여우는 힘없이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는 파는 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 친구가 필요하거든 나를 길들여.”
자신의 별에 있는 단 한 송이의 장미꽃과 헤어져 구도(救道)의 여행을 떠난 왕자가 도착한 지구 역시 왕자가 바라던 곳은 아니다. 그곳은 소중한 장미도 군락(群落)을 이루어 본래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지 못하고 여우도 수만 마리 중 한 마리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모두 비슷비슷한 존재일 뿐이다. 그 존재를 그 존재이게끔 해 주는 그 무엇,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을 상실한 채, 지구에는 인간들이 서로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사회적 삶이란 상품을 가게에서 사는 일뿐이며, 누군가를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뿐만아니라, 이 익명(匿名)의 존재들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상호간에 늘 경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제시문에는 대중사회(mass-society)의 특성과 관련된 여러 현상, 이를테면 도시화, 관료조직, 물질주의 등을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이 동화적(童話的)으로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중 사회란 오늘날 고도 산업사회의 속성이 질적인 것보다는 양적인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 사회현상이다. 대중화라는 현상은 정치적으로는 대중민주주의라는 정치이념과 관련되어 등장하는 문제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대량산업과 대량소비라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대중화 시대에는 사람들이 사물에 대한 판단과 취향과 행동의 근거를 타자에서부터 얻게된다는 특징이 있다. 매스미디어, 친구, 기타의 정보 등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상황을 흔히 인간성 상실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대중사회에 있어 사회 문화적 현상은 '획일화'로 나타난다. "95 프리메라의 가을 테마는 시네마 칼라 햅번 브론즈/ 로맨틱한 카키로 단아한 눈매/ 브라운의 신비함으로 감각적인 입술을." '햅번 브론즈 씨리즈'라는 화장품 광고는 그 뜻을 알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다만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미(美)의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이 광고는 한 때 우리나라 여성들의 얼굴에 온통 핏기를 걷어가 버린 장본인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나오미 울프(Naomi Wolf)의 '미의 신화'라 했다. 그녀는 [미의 신화] (The beauty Myth)라는 저서에서, 여성의 미는 개개인의 선택과 사고를 넘어서서, 일정한 시기 한 사회 전체와 구조적으로 연관된 무엇이라는 점에서 신화의 집단성을 반영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美)의 신화는 특히 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의류산업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물적 요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개개인의 외모에 대한 관심은 자본과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멋' 이라는 상품에 농락당하고 있다. 애초에 개개인이 지닌 다양한 욕구와 미의식은 획일적인 요구나 기준에 종속당한다.
우리가 어떤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먼저 상품이 개발되고 여성잡지나 기타 대중매체는 이를 재빨리 광고한다. 자본과 매체의 결합으로 여성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거나 선택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여성의 다양한 멋내기가 지닐 수 있는 긍정적 기능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 미에 관한 기준은 자본주의적 대량생상 - 소비- 대중문화라는 연쇄고리에 꿰어 맞춰졌고, 무한한 이윤 추구의 속성은 여성들의 실제 삶과 동떨어진 허상들을 미의 원형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여우가 만난 똑같은 수많은 장미처럼.
이상은 특히 대중사회에 있어 여성의 미에 대한 사례이지만, 요컨대 이러한 강요된 획일화가 비단 여성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현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거리에 흡사 유니폼을 맞춰 입은 듯 수많은 젊은이들이 비슷한 옷에 비슷한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닌다. 라디오에서는 거의 구분할 수 없는 옷차림의 가수가 나와, 또 거의 비슷비슷한 대중가요를 부른다. 다른 취향의 음악을 접할 기회는 없다. 아니, 다른 취향의 음악을 들을 필요조차 별로 느끼지 못한다. 대중사회에서 현대인은 획일화된 대중문화의 무차별적 공격에 무방상태로 놓여있다. 그리고 개인은 스스로 인간성과 개성의 '자유로부터 도피'해서 획일화된 대중사회에 휩쓸려가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현대인은 낡은 권위나 전통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의식을 획득했지만, 이와 동시에 생겨난 불안과 무력과 고통 때문에 자신을 새로운 강제적이고 비합리적인 활동에 순응하게 만들었다. 즉, 외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향유하는 한편, 여론과 상식등의 '익명의 권위'에 복종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표현으로 말하면 '...에로의 자유'를 상실하게 되면서 이른바 '인간소외'가 보편화된 것이다.
대중사회는 직접적이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맺기 힘든 사회적 상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기업과 대량생산체제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를 도의적 협동이나 애정적, 인격적, 영속적인 상호유대 관계가 아니라, 계약적, 형식적, 물질적 이익추구 관계로 전락시켰다. 프롬이 든 사례에 의하면, 백화점의 출현과 슈퍼마켓의 증대는 손님을 다만 추상적인 고객으로 맞이할 뿐, 과거에 상이노가 단골 손님 사이에 가졌던 따뜻한 인간관계를 찾아 볼 수 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참된 인간관계의 상실은 관료제나 기계화로 인한 사무적인 인간관계, 분업화로 인한 기능적인 인간관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요인이든 결국 현대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특성에 기반하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여우가 말하는 '길들임'즉 인간 상호간의 참된 관계추구는 이러한 오늘날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여우가 말하는 길들임은 물론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기초를 둔 그러한 관계 맺기는 아니다. 그것은 여우의 말대로 물질적인 관계가 아닌, 참된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며, 상호간에 정성을 들이고 또 끝까지 '책임'을 지는 그러한 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어른의 세계보다는 어린이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순수한 인간관계이다. 생택쥐페리가 책의 서문에서 [어린왕자]를 어른들을 위해 쓴 동화라고 밝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 다수의 병폐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임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라이홀트 니부어릐 표현에 기대자면, '개인들의 비이기성은 국가의 이성으로 전환된다.' 즉 인간은 도덕적(moral)이나 사회는 비도덕적(Immoral)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 일어나는 문제점들은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어떤 것이다. 혹자는 개인의 힘으로 변화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러한 사회제도적인 악을 '구조화된 악(structured evils)'이라 말하기도 한다. 즉, 개인적인 덕목과 수행과 실천만으로는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 차원의 노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합리적인 사회적 힘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책과 제도상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생태계파괴는 물론, 위에서 논한 대중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점 또한 정책이나 사회제도의 개선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예컨대, 대중사회의 익명화(匿名化)와 이해관계(利害關係)에 기초한 인간관계가 관료제적 기업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소규모 프로젝트 그룹을 중심으로 하는' 정의적(情誼的)인 공동체의 근무제도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 즉, 공식적인 대규모 조직 속에서 비인격적인 이차적 관계에 기초한 사회적 연대가 아니라, '자율적'이고 '평등한' 개인들간의 '자발적'인 연대에 의해 형성되는 소규모의 '인격적'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비인간화된 인간관계가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에서 기인한 광범위한 사회적 요인에 있다고 한다면, 예컨대 앤서니 기든스가 말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선 '제 3의 길'에서 암시를 얻어, 좀 더 인간화된 자본주의가 필요함을 역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정보 사회
끝으로 오늘날 사회의 화두(話頭)가 되어버린 정보 사회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1973년 다니엘 벨(Daniel Bell)이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The coming of post - Industrial society)]를 출간한 이래, 많은 학자들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현대사회 (modern society), 산업사회(Industrial society), 또는 자본주의 사회 (capitalistic society) 등르오 불러왔던 현대의 사회구조에 심상치 않는 구조적 대전환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이 등장하는 사회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사회과학자들은 다가오는 사회를 막연히 '후기' 또는 '탈'(post)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후기 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 후기 자본주의 사회 (post-capitalstic society), 탈근대 사회(post-modern society)등이 그와 같은 명칭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해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거시적인 사회변동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 중인 사회를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 '거시 경향(Megatrends)', '불연속성의 시대 (Age of Discontinuiyt)'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변화의 특징과 미래 사회의 성격을 나름대로 규정하기 위한 시도로서, 벨은 스스로 예상한 후기산업사회를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브레진스키는 기술전자사회(Technetronic Society)라고 부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의 정보사회 (Information Society)라고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의 성격이 무엇보다도 정보 산업에 의해 특정지을 수 있다는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한 책
*E. 프롬 (이상두 역) [자유에서의 도피] 범우사
*E. 프롬 (최혁순 역) [소유냐, 존재냐] 범우사
*D. 리스먼외 (권오석 역) [고독한 군중] 홍신문화사
*서소영 외<'미의 신화'> [여성과 사회] 96 제 7호, 창작과 비평사
*임희성 <정보화 사회의 구조> [정보화 사회와 우리] 소화
*민경배 [사회학 나들이] 퇴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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