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정에 모인 우리 회원들이 10시에 막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나종만이 오늘 산행에 참여하고 싶다하여 잠시 그 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막내딸과 사위가 장인 어른 나종만을 모시고 와서 우리 회원들은 약 한 달여만에 반가운 상면을 할 수 있었다.
나종만 딸과 사위를 집으로 돌아가도록 보내고, 바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친구들이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것이 어떠하냐고 나종만의 건강을 걱정하여 말하였더니, 굳이 동행하겠다고 하였다. 강공수가 '내가 동행할 터이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나도 잠을 어젯밤에 못 잤기 때문에(1시간 30분 정도 잠) 걷는 것이 힘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띠어야 하였다. 쉬어야 할 곳에서는 쉬면서 올라갔다. 등나무 쉼터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쉬었다가 박남용과 함께 하산하였다.
내려오면서 박남용에게 물었다. 이번에 주식으로 번 이익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1억이 못되지만 이 돈으로 1억을 채워서, 기금(基金) 1억을 보람 있게 쓰기 위해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바로 전국 수의과 대학 출신의 수의(獸醫) 학도(學徒)들 중에서 해마다 수의학 발전에 공이 있는 학자(學者)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술상(學術賞)을 수여하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털어 놓았다. 2026년이나 2027년 말에는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춘강(春岡) 학술상>이 수여될 것을 기대해 본다.
얼마 전에는 춘강(春岡)이 교수직에서 퇴직한 후, 자기가 재직하였던 전남대 수의과 대학에서 동물병원을 지을 때, 1억을 쾌척하여 전남대학교 숙원사업이었던 동물병원 준공에 힘을 보탰더니, 학교 당국에서 강의실 하나에 <박남용 홀>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후학들에게 박교수의 수의대(獸醫大) 사랑을 길이 기리고 있어서 만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나는 박남용의 거룩한 뜻을 존경하고 부러워하면서도, 나는 왜 그러한 생각을 해 보지도 못하고 일상을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범부(凡夫)로 살아갈까! 왜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에 나의 미련한 삶을 되돌아보지만 특별한 수(數)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우리는 음악정자에 한 사람(월전 윤상윤)만 빠지고 9명이 모였다. 강공수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뻥튀기를 먼저 나누어 주고 식당에 가서는 팝콘을 나누어 주었다. 오늘 부를 노래는 윤춘병 작사, 박재훈 작곡의 <어머님 은혜>였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장 많이 배웠던 곡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하늘과 바다에 비유한 순수한 가사가 특징이다. 작사가와 작곡가가 모두 목사님이었다. 1948년경, 윤춘병 목사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쓴 시에 박재훈 작곡가가 선율을 붙였다. 당시 박재훈 작곡가는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린 곡들을 많이 썼는데, 이 곡 역시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교과서의 ‘스테디셀러(steady seller, 꾸준히 잘 팔리는 책)’가 되었다고 한다.
강공수가 어머님 은혜를 부르고 나서 이번에는 <과수원길>을 부르자고 하였다. (어머님 은혜>나 <과수원길>이 모두 8분의 6박자 곡으로 조금 경쾌하게 불러야 하는 노래였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강공수가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말하라 하니까, 장휘부가 어렸을 때, 충북 단양군 가산면에서 살면서 어머니와 관련된 사연들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윤정남이 9남매의 장남으로 살면서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 이용환이 역시 태어나면서 8남매 속에서 자라 온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하였다.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주문하였다. 그런데 아침에 나종만의 딸과 선교사 사위가 장인어른 친구들을 대접하고 싶다 하여, 우리 모두 나종만의 빠른 회복을 마음속으로 빌면서 사위의 선교활동이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롭기를 빌었다. 나종만이 얼마나 친구들이 그리웠으면 아직 지병이 완쾌되지도 않았는데 산행에 참여하겠다고 출석한 것을 보면 우리 목요산우회가 진실한 교감을 하면서 산행을 해 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첫댓글 오늘도 산행 후기 쓰느라 수고 많았어요 지난 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헸다는데도 글 솜씨는 여전하고 날마다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하루가 되기를 모두 함께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