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왔던 책을 반납하고 또 다른 책을 빌리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인천중앙도서관은 내 정신의 양식 공급원이기도 한 것이니.
그 날 나는 마이클 호튼의 '은총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앙드레 말로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편지'
찰스 디킨스의 '이탈리아 기행'을 빌렸다.
대출 절차를 마치고 내려와 시청 후문을 지나 버스 정거장으로 가서 잠시 후 8번 버스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상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봤다.
집 열쇠 사무실 열쇠 등 열쇠 꾸러미가 없어졌다.
이제껏 여러 번 열쇠 분실 사고가 있었지만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찾았었다.
그 한 번의 분실 사고 후 만들어 십 수 년 간 몸에 지니고 다닌 그 열쇠꾸러미를 잃은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내가 지나왔던 궤적을 따라 돌아가 도서관 4층으로 올라가 프런트에서
혹시 신고 된 열쇠꾸러미가 있는가를 물었다. 없단다.
대출받은 책들이 꽂혀있던 곳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없었다. 그래, 이번엔 실패다.
첫째 문제는 나의 부주의였겠지만, 둘째 문제는 그 날 입은 내 상의 주머니 하단이
물건 흘러내리기에 좋을 정도로 일직선형이었다는 데 있었다. 어디선가 모르는 사이에 열쇠가 빠져나간 것이다.
그 날의 도서관행은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이 됐다.
집, 사무실 등을 열 수 있는 열쇠 꾸러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것을 찾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보다 십 수 년 간 지니고 다니며 정이 든 것을 상실했다는 의식이 들었을 때 씁쓸한 입맛이다.
열쇠를 잃는다는 것은 내 처소에 들어갈 수 없고 나는 내 처소와 유리된 외인이 된다는 것이다.
한 10년 전 쯤의 일이다.
입맛을 돋구기 위해 어떤 생선을 사라고 방송음을 소란하게 틀어놓은 사람들,
가정 문제 부부 문제의 해법을 찾아 움직이는 드라마 속의 배우들,
사랑의 열쇠라는 제목으로 CD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
국내 정세와 국제 정세의 실타래를 풀기 위한 열쇠를 찾아 헤매는 정치인들,
요즘 건강을 해치는 미세먼지와 세균을 차단하는 열쇠라도 되는 양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
어떤 차를 사면 행복의 열쇠를 거머쥔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광고들,
아니면, 열쇠가게에서 열쇠를 팔거나 복사해주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열쇠를 잃지 않은 사람들일까?
저마다 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비와 눈과 먼지 속에서도, 우산을 들고 부츠를 신고 마스크를 쓰고,
걸으면서 뛰면서 차를 타면서 저마다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모든 사람들은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은 사람들일까,
말은 안 해도 아니면 의식을 못해도 애타게 구원의 열쇠를 찾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철제품 몇 개를 잃어도 다시 맞추면 된다.
나는 보이지 않는 높은 세계와 그곳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건방질 정도의 견고한 인식과 확신을 가지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말이다. 그 열쇠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정체성의 기반이었고,
나는 그에 대한 가치관으로 내 생을 영위하고 있지 않은가?
존재의 열쇠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이여!
내가 만들어 거머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내게로 찾아와 내 안에 소유가 되어주신 그 열쇠여!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내게도 영원히 잃을 수 없는 내부에 열쇠가 있기를...
2024. 5. 18
이 호 혁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멘! 영원한 열쇠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원히 잃을 수 없는 내부의 열쇠이자 주인이신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