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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강해2)
마귀가 삼켜도 소화 못시키는 성도
230924낮 (요나1:17-2:10)
<1:17)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2:1)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아멘
지난 시간 말씀 듣고, 요나서를 읽어 보신 분?
계속 요나서를 읽으시기 바라고, 말씀 전하다가 시간 되면 끊고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이어서 말씀 전하겠습니다.
지난 시간 줄거리를 요약하면, 요나가 선지자로 부름 받고 적대국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에 불순종하여 욥바 항구에서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반대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하나님이 배에 큰 폭풍을 만나게 하심으로 결국 요나 때문이 이런 일이 일어 난 것을 알고, 요나가 “나 때문이다. 자신을 바다에 들어 던지라” 하죠? 배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풍랑을 이겨보려고 해도 안 되고 오히려 풍랑이 더 거세지자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시간 본 말씀입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도 성경을 다 찾으시고, 한절 한 절 보며,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을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한절 한 절 강해하며 영적의미를 전할 때, 큰 은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1장17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17)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큰 물고기에 삼켜지게 됩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는 과연 살 수 있을까요?
고래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래는 4시간이면 어떤 음식물도 소화시킬 수 있는 소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요나가 고래에게 삼켜져 뱃속에 들어가면 4시간이면 다 속화가 되어 배설물이 되어 나오던지 아니면 빼만 추려져 입으로 발려져 버려지던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나를 삼키고도 3일 동안 요나를 하나도 소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민족성을 가리켜 요나를 닮았다고 한답니다. 아무리 주변의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삼켰어도 소화를 못시키고 토해 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 랍비로 유명한 빅터 M, 솔로몬은 말하기를 ‘유대인을 삼키려고 한 민족이 많았지만 완전히 삼키지는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애굽이 완전히 삼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켰으나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놓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이 삼켰습니다. 그러나 토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가 삼켰습니다. 그들도 소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로마가 삼켰습니다. 그러나 쏟아놓고야 말았습니다.
사라센제국이 삼켰습니다. 그러나 먹지는 못하였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독일도 심지어는 소련도 삼켰었으나 소화는 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스스로 요나민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부터는 "어떤 질병이, 어떤 환경이, 어떤 실패가, 어떤 부정적인 것들이 여러분들을 삼킨다 할지라도 결코 소화시키지 못하고 뱉어 놓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벧전5:8절입니다.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성도들을 삼킵니다. 설사 마귀가 우리를 삼켜도 절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다시 토해내는 요나 같은 성도가 돼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고 말씀합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마귀에게 삼켜졌어도 기도하는 성도는 마귀가 소화시키지 못하고 다시 뱉어 낼 줄로 믿습니다.
그 어떤 것들이 여러분들을 삼킨다 할지라도 소화되지 못하도록 몸부림을 치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나도 고래 뱃속에서 기도함으로 고래가 삼일동안을 배안에 넣고 소화시켜 보려 했으나 결국은 육지로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그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요나서 2장은 요나가 고래 뱃속에서 기도한 기도문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요나의 간절함을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래에게 명령하여 요나를 다시스가 아닌 니느웨에 토하게 만들었습니다.
1. 병이 삼켜도 병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성도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병이 우리를 삼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병에 소화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게 나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마8장17절)(사53장 인용)
여러분들이 잘 아는 바울 사도는 한창 일하여야 할 때 가시와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이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그 병이 바울을 삼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몸부림을 치며 병이 자신을 삼키지 못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결국은 그 병 때문에 하나님께 더 많은 기도로 매달리게 되었고, 오히려 병에 안 걸렸을 때보다 더 능력을 받아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병으로 죽지 않고 장렬하게 순교하였습니다.
어떤 성도는 질병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이 꺼진 듯이 한숨을 쉬고, 절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곧 질병에 삼켜져서 소화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남 유다의 왕 중에 아사 왕이 있었습니다. 이 아사 왕은 왕이 된 후 모든 우상을 척결하고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심지어는 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을 때는 자기 모친이라도 태후의 위를 폐위시킬 정도로 하나님을 잘 섬겼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년에 발에 병이 들었는데, 그 병이 매우 위독했으나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했다고 대하16:1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사왕은 인생 말년에 얻은 질병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등졌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의원들에게만 매달렸습니다. 아사왕은 신앙도 좋았고, 임금 노릇도 잘했었지만, 질병에 걸렸을 때, 그 질병에 삼킴바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도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중에 다윗을 닮은 선한 왕이 많지 않았으나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도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몸에 종양이 생겼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피부암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는 그 병으로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니 죽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의원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자신을 살릴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그 병을 고쳐 주셔서 15년을 더 살게 해 주셨습니다. 질병에 삼킴바 되었지만 소화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성도는 질병이 찾아 와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질병 때문에 더 많이 기도하고,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성도가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질병에 삼킴바 되었지만, 질병이 결코 소화시키지 못하는 바울과 같고, 요나와 같고 히스기야왕 같은 성도입니다.
질병에 삼킨바 되어도 질병이 소화시키지 못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실패가 삼켜도 실패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성도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실패와 좌절, 절망과 우울, 고통과 짜증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우리의 정신 건강을 해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나처럼 고래가 삼켜도 고래에게 소화되지 않았듯이, 실패가 몰려와서 실패에 빠질 때가 많아도 실패에 소화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미국의 에브라함 링컨의 이야기를 잘 알 것입니다. 링컨의 전기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기 전에 정말 믿음이 크고,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교제하는 신앙인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일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일 때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모친 없이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학교도 초등학교 2학년 밖에 다니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1831년에 사업에 실패하였습니다.
1832년에는 주 의회 의원에 출마하여서 낙선하였습니다.
1883년 사업에 또 실패하여 얼마나 빛을 많이 졌는지 그때 진 빛을 그 후 17년간이나 갚아야 했습니다.
1834년 처음으로 주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성공의 경험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1836년 너무 많은 신경을 쓰다가 신경쇠약 환자가 되었습니다.
1838년 하원의장에서 낙선하였습니다.
1840년 또 낙선했습니다.
그리고 1843년에는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낙선의 고배를 또 마셨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또 전진한 결과 드디어 1846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1848년 다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낙선하였습니다.
1855년 상원에 낙선, 1856년 부통령에 낙선 등 계속하여 실패만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1860년 미국의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미 국민과 전 세계가 놀랄만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바로 노예 해방입니다. 링컨의 일생은 거의 실패로 얼룩진 생이지만 그를 향하여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실패가 무수히 삼켰어도 실패가 소화시키지 못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실패가 우리를 삼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픔이 우리를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절망이 우리를 못 견디게 삼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삼키더라도 소화만은 시키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요나 같은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실패가 삼켜도 실패가 여러분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죄가 삼켜도 죄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성도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마귀가 주는 것이요 마귀는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죄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 지니라"(창4장7절)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못된 사람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모습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리고 죄지은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무화가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 묻은 옷인 가죽 옷을 입혀서 에덴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이처럼 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다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성경에 죄를 안 지은 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세도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를 지었던 사람입니다.
바울도 예수 믿는 이들을 체포하고 못살게 굴었고 스데반을 돌로 처 죽일 때, 동참하고 증인을 섰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하였던 제자였습니다.
다윗도 간음죄, 살인죄를 지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면밀히 보면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죄가 이들을 삼키려고 하였으나 죄에 소화당하지 않고 죄에서 벗어났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죄가 마귀에 의하여 들어와 점령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죄가 삼키려 하여도 죄에 소화되어버리면 안됩니다. 요나가 고래가 삼켜도 소화되지 않고 고래 밖으로 나왔듯이, 죄가 삼키려 해도 죄에 소화되지 않고 죄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어떤 세상 문화가 범람하여 삼킨다 해도 소화되지 않는 성도가 돼야 합니다.
요즘 세상 문화가 얼마나 타락되어 갑니까? 얼마나 재밌고, 흥분시키고, 현란하고, 오감을 자극하는 문화들, 사탄의 문화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물질과 과학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며 믿음생활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할 수 있겠습니까?
소돔과 고모라 때도 세상문화에 삼켜져 소화되었고, 노아시대에도 세상의 악한 문화에 삼켜져 소화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했으며, 가나안에 정착해서 살던 이스라엘이 풍요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짐으로 나라가 망하여 70년을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세상문화에 삼켜져 소화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소돔과 고모라나, 노아시대나, 사사 시대나,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와 비슷한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화를 벗어나서 살 수는 없지만, 이런 문화에 삼키어 소화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문화가 아무리 급속도로 요동치며 성도들을 유혹하여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순수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동성애 합법화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며칠 있으면 추석입니다. 고향을 찾고, 부모형제를 만나는 것은 기쁨이요 행복이지만, 제삿상에 절하고, 묘에 절하는 조상숭배는 엄연한 우상숭배입니다. 제사문화와 괜당 문화에 쪄든 제주에서 사는 우리지만, 지혜롭고도 단호한 믿음으로 제사문화에도 삼켜져 소화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요나입니다. 병이 삼켜도 병이 소화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실패가 삼켜도 실패가 소화시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죄가 삼켜도 죄가 소화시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세상문화가 삼켜도 소화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무엇이 여러분들을 삼키더라도 그것에 소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래전 지방여름성회 때 오신 강사님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 하면서 섭섭한 마음이 들 때 삐치지만 않아도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인간적인 섭섭함때문에 실족하고,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일이 의외로 많습니다. 섭섭함이라고 하는 고래가 우리를 삼켜도 그것에 소화되지 맙시다. 섭섭한 마음이 들 때,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 때, 실족하거나, 상대를 미워하거나 믿음이 하향곡선을 긋는다면 곧 섭섭함이라고 하는 고래에 삼켜져 소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귀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성도를 삼키려 합니다. 마귀에게 삼켜지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행여 마귀에게 삼켜졌을 지라도 절대로 마귀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소화 시키지 못하고, 뱃속에 담고 있다가 결국은 육지에 토해 냈던 것처럼, 마귀가 삼킨 것을 후회하고 토해 낼 수밖에 없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후4장 7-9절에서 바울은 마귀에게 삼켜져도 소화 되지 않는 성도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시간관계상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에 이어서 말씀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