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사이공을 찾아서/靑石 전성훈
을사년 새해 첫날, 손녀와 손자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베트남 호찌민으로 여행을 떠난다. 베트남은 일본 다음으로 자주 찾는 나라이다. 거리가 가까워 비교적 비행시간이 짧고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여행지로 노년의 나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한때는 ‘동양의 진주’ 사이공으로 불리던 곳인데, 베트남 전쟁에서 북측의 승리 후 북측 지도자인 호찌민의 이름을 따서 호찌민시로 부른다. 호찌민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린 지가 벌써 50년이 된다. 그럼에도 내게는 사이공이라는 이름이 더 정겹게 느껴진다. 호찌민시 아니 사이공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젊은 남녀의 풋풋한 사랑을 노래한 뮤지컬 미스사이공이다. 뮤지컬 미스사이공은 프랑스의 클로드 미셸 쇤베르가 작곡한 것으로, 이탈리아의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모티프를 얻고 시대와 장소를 1970년대 베트남으로 옮긴 뮤지컬이다. 베트남에 파병된 미 해병과 베트남 여인과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198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 날(1월1일), 오전 7시경 공항 이용객이 많다는 소식이 들려서, 새벽 5시 40분 집을 나선다. 손녀와 손자가 곤히 자는 새벽 시간에 군소리 없이 깨어나 정말 고맙다. 아들이 인천 공항까지 데려다준다. 인천대교를 건너서니 짬짬이 길이 막히기 시작한다. 공항에 도착하여 트렁크에서 짐을 꺼낸 후, 여행사 담당자를 만나 확인하고 베트남 항공사 창구에서 짐을 부치고 항공권을 받는다. 생각보다 물 흐르는 듯이 출국 수속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다. 출국장으로 가는 트램을 타고 이동하여,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대합실 커다란 창문으로 새해 첫날의 붉은 해가 황홀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손녀와 손자는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열심히 어린이 만화 영화를 찾아서 보기 시작한다. 출발 예정 시각보다 조금 늦게 베트남 호찌민행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바쁜 부모 대신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하는 게 마음에 드는지 시종일관 재잘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낮 비행이라서 눈을 감아도 쪽잠 자기가 쉽지 않다. 가지고 간 두 번째 시집 ‘기다리는 마음’을 꺼내어 천천히 읽어보니, 몇 군데 표현을 바꾸고 싶은 곳이 눈에 띤다. 몇 번씩이나 고치고 다듬고 하였지만, 훗날 다른 감정으로 바라보면 또 다르게 느껴지는 법이다. 글을 쓴다는 게, 시를 짓는다는 게 갈수록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5시간 30분간 비행 끝에 호찌민에 도착하여 입국 절차를 밟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14세 미만 아이를 데리고 베트남에 입국할 때 필요한 가족관계증명서를 영문으로 발급받아 공증을 받아둔 서류와 여권을 입국 심사 담당자에게 보여주니 상당히 세심하게 검사한다. 무사히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러 갔더니, 누군가 이미 우리 짐을 컨베이어벨트에서 내려놓았다. 덕분에 바로 입국장을 벗어나 공항 밖으로 나가 현지 한국인 가이드를 만나 미니밴을 타고 ‘비싸 사이공’ 호텔로 향한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5분 정도 거리로 이곳에서 하루를 머문다. 손녀와 손자는 야외수영장에서 신나게 몸을 푼다. 방에서 쉬다가 가이드를 따라 저녁을 먹으러 가니, 경북 대구가 본점인 ‘맛찬들’이라는 한국식당이다. 버섯 된장찌개인데 간도 심심하고 버섯도 듬뿍 넣고 끓인 게 맛이 좋다. 베트남 맥주 ‘타이거’ 한 캔을 아내와 나누어 마신다.
둘째 날(1월2일), 호텔에서 맛있게 아침을 먹고, 다른 일행들과 합류하여 버스를 타고 본격적인 여행에 나선다.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가득 찬 도로가 대단히 혼잡하여 차량 이동이 쉽지 않다. 프랑스 식민 통치 시대인 1886~1891년 사이에 설립된 중앙우체국을 둘러보는 동안 잠시 소동이 벌어진다. 화장실 때문이다. 실내 어딘가에 직원용 화장실은 있지만, 화장실 안내 표시가 없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방문객은 바깥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우여곡절 끝에 화장실을 찾아가니 유료 화장실이다. 소액 베트남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은 탓에 이용 할 수 없다. 쩔쩔매면서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한국인 가이드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니, 현지인 가이드가 안내해 준다. 사용료를 내지 않고 들어가도 화장실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지 어쩔 도리가 없다. 시내에서 관광버스는 잠시 정차만 가능하기에, 일행이 모두 모이자, 가이드가 운전기사에게 연락하여 버스를 부른다. 호찌민 시내를 벗어나 남부 메콩강 유역의 미토를 찾아간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재미있는 여행 프로를 방송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미토는 호찌민에서 약 2시간 정도 거리다. 망고와 람부탄 등 열대과일의 산지이며, 메콩강 유람선 여행과 쪽배 투어가 유명하다. 미토 지역으로 가는 한산한 도로 주변은 전형적인 베트남 지방 모습이다. 커다란 야자나무와 열대 유실수가 보이고, 논농사를 짓고 논 가운데 사당도 있고, 가족묘와 공동묘지도 보인다. 산지가 별로 없는 지역에서는 논 가운데 묘를 쓴다고 한다. 한가한 듯한 풍경이 호찌민 시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쌀농사는 1년에 3모작이다. 아침 식사할 때 흰쌀밥을 조금 먹어보니 그 맛이 우리와는 딴판으로 생쌀 씹는 느낌이다. 소위 안남미의 맛이다. 안남(安南)이라는 말은 옛날 중국 당나라가 주변 국가를 정복하고 통치하려고 설치했던 기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구려 지역에 안동도호부, 베트남 지역에 안남도호부 등 6도호부가 있었다고 한다.
미토 선착장에 도착하여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통통배를 타고 유니콘 섬으로 이동한다. 메콩강은 길이가 4,600km나 되는 매우 긴 강으로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를 지나간다. 강폭도 한강보다 몇 배나 넓어 보이는데 완전히 누런 흙탕물이다. 다양한 물고기가 살고 악어도 있고, 메콩강은 지나가는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고 한다. “어머니의 강”으로도 불리우며 사이공강을 지나서 남중국해로 흘러 들어간다. 쪽배는 길이가 3m 정도인데, 좁은 수로에 몇십 척의 쪽배가 서로 부딪치기도 하며 지나간다. 뱃사공은 두 명으로 대개 나이 드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이다. 팁을 받아 집안 생계에 도움을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메콩강을 통해서 먹고사는 수많은 백성의 가난한 모습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천혜의 은총이라는 생각도 든다. 점심은 해물 김치찌개와 생선구이 그리고 새우찜이다. 배가 고픈 김에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서 먹는다. 커다란 생선구이는 종업원이 뼈를 발라 주었는데 미리 구워 놓은 시간이 제법 되어 살이 뻑뻑하다. 마시는 물이 바뀌면 종종 배탈이 나서 얼음을 채워놓은 생수를 마시지 않는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손녀와 손자가 이것저것 생소한 것을 보고 소리를 지르기에 정신이 없다. 양어장 울타리에 바싹 다가서서 물속을 들여다보는 모습에 떨어질까 봐 불안하여 할아비는 자꾸만 걱정이 앞선다. 손녀와 손자가 조심하면서 행동하지만,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늙은이 심정이다. 점심 식사 후 호찌민을 거쳐서 숙소가 있는 판티엣 무이네로 가는데 버스로 대략 5시간 이동한다. 호찌민에서 200km 정도인데 도로 사정이 워낙 열악하여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판티엣은 베트남에서 가장 건조한 곳의 하나로 바다와 산과 사막이 있는 특이한 곳이다.
셋째 날 (1월3일), 어제저녁에 일찍 자는 바람에 새벽 3시 반에 눈이 떠져,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오전 6시 반에 일어난다.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무이네 사막 투어하는 날이다. 호텔 조식으로 쌀국수, 흰죽, 토스트에 계란후라이를 먹고 과일까지 챙긴다. 손녀와 손자는 오전 이른 시간에 야외수영장에서 실컷 물놀이한다. 호텔을 출발하여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을 닮은 모습의 ‘포사누이’ 참탑 사원을 둘러본다. 규모가 워낙 작아서 앙코르와트를 보았을 때와 같은 가슴이 벅차고 신기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다음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니파벨리’를 모티브로 건축한 와이너리, ‘와인캐슬’에서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곳곳에 장식된 다양한 조각상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우리나라 깨나리 액젓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베트남 정통 피쉬 소스를 만드는 박물관 구경을 하고, 무이네 사막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힌두 신앙과 대승불교가 혼합된 특이한 모습의 불교 사찰, ‘천광사’를 둘러보며 종교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드디어 무이네 사막 투어이다. 뜨거운 날씨는 아닌데 조금 끈적끈적하다. 지프를 타고 흰 모래 언덕 구릉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지붕이 없는 4륜 자동차를 타고 흰 모래 언덕에서 신나게 달리는 체험을 한다. 급경사를 달리는 자동차가 뒤집어 질 듯하여 긴장이 되지만 스릴 만점이다. 손자와 손녀도 긴장한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모습이 역력하다. 손녀와 손자에게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준 것 같다. 흰 모래 언덕 밑에는 아담한 크기의 호수가 있다. 미니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붉은 모래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니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붉은 모래 언덕에서 바라보는 바닷가 전경 또한 매력적이다. 바쁜 하루 일정을 보내고 숙소에 돌아와 샤워하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꽤 비싼 돈을 내고 모처럼 랍스터와 다금바리회, 새우구이와 가리비구이까지 먹으니, 입이 호사한다. 늙어가면서 이렇게 한 번쯤 호기를 부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훌륭한 안주에 사랑의 묘약 술이 빠질 수 있나, 보름 만에 소주 한잔 곁들인다. 소주 한 병에 5불, 콜라 한 캔에 3불이다.
나흘째(1월4일), 일찍 잠자리에 든 까닭에 배꼽시계가 현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시간에 알람을 알려준다. 별수 없이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오늘은 여행을 마치고 한밤중에 귀국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오전에 판티엣 무이네를 출발하여 버스로 호찌민으로 돌아가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호찌민으로 돌아와 우리나라 메밀국수 비슷한 베트남 ‘분자’로 점심을 먹는다. 미리 준비해 둔 탓에 국물이 식어서 그다지 맛을 못 느낀다. 사람이 붐비는 우리나라 남대문시장 같은 전통 시장을 구경하고 백화점 지하에서 차 한잔 마시는데 여기저기서 우리나라 사람들 떠드는 소리만 들린다. 드디어 멋진 야간 시내 투어에 나선다. 시내 투어에 마스크는 필수품이다. 공기가 좋지 못하여 목이 따끔할 정도이다. 호찌민시를 상징하는 건물의 하나인 인민위원회 청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피곤한 몸을 위하여 돌 마사지를 받고 저녁 식사 후 늦은 시간에 공항으로 이동한다.
낙수, 베트남 역사는 5천 년이 넘는 데, 4천 년이나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역사상 대제국과 맞서 싸워서 승리한 유일한 나라(?)이다.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와의 전쟁,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미국과의 전쟁, 현대 중국과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한 나라이다. 우리가 일본에 대한 독특한 감정이 있듯 베트남도 중국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감정이 충만하다고 한다. 인구가 1억 명이 넘은 베트남은 6,500만 명 정도가 40대 이하의 젊은 층이다. 오토바이는 만 15세를 넘으면 탈 수 있는데 반드시 운전면허증과, 소유증명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약 6,500만 대의 오토바이가 거리를 질주하는 그야말로 오토바이 천국이다. 호찌민시는 인구가 약 1,500만 명인 베트남 최대 도시로 면적은 서울의 3배 정도이다. 호찌민은 관광도시가 아니고 경제 비즈니스 도시이기에 돈벌이가 안 되어 한국인 가이드는 50명 정도라고 한다.
미스사이공은 어디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호찌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젊은 남녀가 거대한 오토바이 물결 속으로 신나게 달린다. 약동하는 젊은이 모습에서 빠르게 도약한 베트남의 오늘과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갈 내일을 기대해 본다. 과거 우리나라와 얽힌 쓰라린 전쟁의 흔적을 치유하고 서로 손잡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기원한다. (2025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