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 纓 會(관 끈을 끊고 술 마시다)"
삼년불비(三年不飛) 라는 故事가 있다. 삼년부동 불비 불명(三年不動 不飛不鳴) 이라고도 하는데,뜻은 같다. 즉, 중국에 어떤 사람이 주석에 당선 되어서는 아무 것도 안하고 三년을 주색에 빠져 있는 것과 진배 없는데..) 심지어 초장왕은 다음과 글을 써서 내시를 시켜 朝門 밖에 내 걸었다. <어떤 者든지 감히 짐(朕)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者가 있으면 死刑에 處한다.> 이 글을 보고 누가 감히 간(諫)하겠는가! 그래도 나라를 근심하는 충신은 있기 마련이다. 두명의 신하가 연달아 王이 酒色에 빠져 질탕히 노는 자리에 나타나 울면서, "三年不飛"라는 말로 王이 '정신차리기를 간(諫)'했다. 아뢰는 내용이 이렇다. "三年不動 不飛不鳴...몸에 오색빛이 찬란한 큰 새가 있는데 그 새가 초(楚)나라 높은 곳에 앉은 지 三年이 지났답니다.그런데,그 새가 나는 걸 본 사람이 없고 우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그 새가 무슨 새냐는 것 입니다." 초장왕(楚莊王)은 臣下가 풍자(諷刺)하는 뜻을 알았다.王이 웃으며 말 한다.
"과인은 그 새를 알겠다.그것은 비범한 새다. 三年을 날지 않았다 하니 한 번 날기만 하면 하늘 을 찌를 것 이며 三年을 울지 않았다 하니 한 번 울기만 하면 반드시 천지를 놀라게 할 것 이다.그대는 그때를 기다리라!" 그리고 얼마후,음악과 술을 금하고,殺生을 재미로 했던 사냥도 금하고,그 예쁘고 나긋나긋한 후궁들을 멀리하고 번희(樊姬)라는 여자를 정식 婦人으로 맞아 들였다.
(樊姬는 春秋時代의 三名의 어진 婦人중에 한명이고, 晉文公의 딸로 조쇠(趙衰)에게 시집간 趙姬와 秦(목)穆公의 婦人인 穆姬이다) <穆姬는 春秋五覇 2人者인 晉文公의 누님이기도 하다.)
楚莊王이 太子 시절에 父王께서 정책상 이웃나라 공주와의 혼담을 주선 했었으나 그는 굳이 반대하고 혼인을 안했었다.王이 혼인해 살다가 맘에 안들면 어떤 수 라도 써서, 내 칠수'있었건만,그러나 王은 그런 사람이 아니고 자기를 진정 좋아하는 평범한 집안의 여자를 골랐던 것이다. 신하들이 나중에 문의 했을때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어도 婦人은 예쁘고 날씬해야만 하는게 아니라 어질고 부덕이 있어야 한다. 과인은 살생을 일삼는 사냥을 좋아했건만 그럴때마다 번희(樊姬)는 말렸고 사냥해서 잡아 온 짐승을 번희는 먹지않았다.이것은 樊姬의 어진 천성이 나의 거친 성격을 내조한 것 이다." (그러니까 초장왕은 요샛말로 연애 결혼을 한 것 이다.)
그리고 그가 太子 시절에 본 투월초(鬪越椒)는 父王을 對함에 있어 功이 있다하여 '오만방자'하고,다음으론 권력을 너무 많이 쥐고 있었다. 요샛말로, '회사 사장이 주총에서 쫓겨날수도 있는' 그 정도의 권력과 패거리들을 쥐고 있어서 父王도 어쩌지 못하다가 아들인 太子에게 王位를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던 것 이다. 家庭부터 가즈런히 해놓은 초장왕은 그 뒤로 예쁘고 늘씬 날씬한 후궁들을 멀리하고 음악도 술도 모두 멈췄다. 그리곤 지금으로 말해서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방장관 재무.총무처.내무장관 등,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가장 두려운 상대 투월초의 모든 지위를 박탈하고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令尹 한자리만 갖게했다.
아침 일찌기 조회를 열고 법을펴고 명령을 내리고 모든걸 몸소 실천했다. 말하자면 어느날 갑자기 초장왕의 활약은 눈 부셨다.鄭나라가 宋나라에게 침입을받자 '위가'를 보내 돕게하고 鄭나라를 도우러 온 晉軍을 물리치는 등..활약이 대단했다. 초나라 세력은 점점 강성해 졌고 초장왕은 覇權을 잡고자 결심했다. 그러니까 周定王 원년(서기前,605년경)초장왕은 속국(屬國)들이 오랑케의 잦은 침입으로 피해가 크자,친히 군사를 이끌고 北林의 오랑케를 치려고 떠났던 것 이다. 투월초를 경계해'위가'를 국내에 남겨두고 떠났었는데 투월초가 위가를 잡아죽이고 王이 되고자 반란을 일으킨 것 이다.
그리곤 遠征에서 본국으로 돌아오는 초장왕을 도중에서 기다렸다가 칠 작정 이었다. 춘추시대때에'神弓'있는 것 처럼 초장왕은 오히려,부하인 투월초에게 잡혀 죽을뻔한 절대의 위기에서 뜻밖에 이름도 없는 젊은 쫄짜 養由基의 활약으로 大勝을 거두고 귀환했다.
이제 근심걱정은 다 사라지고 초나라는 태평성대가 됐다.王은 너무도 기뻐서 날자를 정해 宮中안 높은 臺에다 크게 잔치를 차리고 모든 신하들을 초대했다. 꽃같은 후궁들과 비빈(妃嬪)들도 왕명을 받들어 잔치 자리에 참석했다.
초장왕이 모든 문무백관들에게, "과인이 술과 음악을 들지 않은지가 수년이 지났다.이제 역적은 죽고 사방은 안정 되었노라. 과인은 모든 경(卿)들과 함께 오늘 하루를 놀까하니 모두들 즐겁게 마시고 놀도록 하라!" 그리고 잔치 이름을"太平宴'이라고 命名했다. 이 잔치는 벼슬의 上 下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음껒 즐기기 위한 놀이 였다. 모든 신하들은 초장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자리에 좌정했다. 동시에 요즘말로 웨이터들은 山海珍味를 날르고 가장,귀한 술을 아낌없이 차렸다. 요즘 말 로 밴드도 등장하고 모두들 흥에겨워 먹고 마시고그랬다. 대낮에 시작된 잔치는 해가 서산에 기울고 컴컴해지자,王은 촛불을 밝히게 하고 계속 술잔을 들었다.잔치 자리는 꽃동산 처럼 휘황찬란한데.
초장王은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가장 사랑하는 후궁 許姬에게, "그대는 모든 대부들에게 큰 잔에다 일일이 술을 권 하여라.!" 왕의 명 으로 허희가 일어나 첫번째 줄에 앉아있는 대부에게 술을 따르자, 모든 대부들이 감히 앉아서 술잔을 받을수 없어서 모두 술단을 들고 일어선체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許姬가 대부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르며 잔치 자리를 반쯤 돌았을때 쯤 인가...?? 바람한점 없던 곳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잔치 자리의 모든 촛불이 일시에 꺼져 버렸다. 잔치 자리는 갑자기 지척을 분간할수없는 어둠의 천지로 변했다.
그러니까 아직...내시가 불씨를 가지고 오기 前인..바로 그때,한 대부의 억센 손이, 매미 날개같은 옷을 입고 향기로운 지분 냄새 발산하며 늘씬하고 천하 미인인 허희의 허리를 와락 끌어 앉았다.어둠 속에서 허희는 누군지도 모르는 대부의 가슴을 밀어내며 다른 손으로 번개같이 그 대부의 관 끈을 잡아 끊었다. 그제야 그 대부는 크게 놀라 허희의 허리를 놓았다. 허희가 관 끈을 손에 쥐고 가서 초장왕의 귀에 대고 아뢴다. "첩(妾)이 대왕의 命을 받들어 공경하는 뜻에서 대부들에게 술을 따랐습니다. 그런데,그 중에 한 무례한 사람이 첩의 몸에 손을 대지 않겠습니까?첩이 그 사람의 관 끈을 끊어 가지고 왔습니다. 속히 불을 밝히도록 하령 하시고 그 대부가 누군지 밝히 십시요." (촛불이 밝혀지면 그 즉시 그 대부는 죽은 목숨이다.) 허희의 말이 끝나자, 불씨를 가져온 내시가 불울 밝히려는데,
초장왕이 황급히 만류하고는,좌중을 보고 하는 말이, "아직 불을 밝히지 말라.과인이 오늘날...이렇듯 잔치를 베푸는 뜻은 모든 卿들과 서로 기뻐하기 위해서다. 卿들은 우선,그 거추장 스러운 관(冠) 끈 부터 끊어버리고 진탕 마시자. 만일 관끈을 끊지 않은 者가 있다면, 그는 과인과 함께 즐기기를 거역하는 者일 진저..!!" 당사자인 대부만 빼놓고..모든 문무백관 들은 영문도 모르는체. 요즘 말로 회사 사장이 직원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술이 좀 들어가니까 기분이 좋아져서.(지금도그런 사장들이 있다.) "주 목 (注目: 어텐션)ㅡ ' 하고는, 의기양양하게 한쪽 구두를 벗어서 거기에다 소주를 가득 딸아 단숨에 마시곤 구두를 술잔으로 돌리는 것처럼...일제히 冠끈을 끊었다. 모두가 관 끈을 끊어 소매속에 넣은걸 어둠속에서 합창으로 확인한 순간, 그때서야 초장왕은 촛불을 밝히게 했다.그렇게 되니까 허희도 누가 자신의 허리를 끌어 앉았는지 알수가 없다. 그리고도 한참후에야 잔치가 끝났고 王은 침소에 들었다. 허희가 초장왕에게 앙탈하며 아뢴다. "첩이 듣건데, 남녀는 함부로 범하지 못한다 하옵니다. 더구나 임금과 신하의 사이는 더 말할 것 있겠나이까.오늘 밤 잔치 자리에서 대왕은 첩으로 하여금 모든 대신들에게 술을 따라 주게 하시고,대신들에게 공경하는 뜻을 보이셨건만 그런데도 첩의 몸에 손을 댄 者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王은 그 무례한 자를 잡아내려고 하지 않으셨나이다.이러고서야 어떻게 상하의 예의를 밝히며 남녀의 구별을 바로 잡겠나이까?"
王은,조목조목 사리에 맞게 말하는 허희를.. 미소를 머금은체 바라보며, "이는 부녀자가 알 바 아니다.자고로 임금과 신하가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실 때엔, 서로 석잔(三杯)이상을 못 마시는 法이다. 그것도 낮에만 마시고,밤엔 못 마시게 되어 있다.그런데 과인은 오늘 모든 신하와 함께 취하도록 마셨고,또 촛불을 밝히고서까지 마셨다. 누구나 취하면 탈선하는 것이 人情이다.
만일 그 대부를 찾아내어 처벌하고,그대의 절개를 표창하고, 그 大夫의 마음을 괴롭힌다면,모든 신하의 흥취가 어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과인이 오늘 잔치를 차린 의의(意義)가없지 않겠는가? 그대의 절개를 내 알았으니 그대는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 허희는 이 말을 듣고 초장왕의 큰 도량에 감복했다. (지금도 술이 취하면 자세가 흐트러 지는건 마찬가진데 술 안취한 사람이 이해하라는,뜻이다.) 그래서 後世 사람들은 太平宴인 그 잔치를 절영회(絶纓會)라고 고쳐 불렀다.
또한, 후세 사람들이 초장왕의 큰 도량에 감복해 지은 詩가 있다. 암중견매 취중정(暗中牽매 醉中情)어둠속에서 여인에게 손을 대는 것은 취한 사람의 상정이라 (소매 '매) 옥수여풍 기절영(玉手如風 己絶纓) 그런데 아름다운 손이 바람처럼 관 끈을 끊었도다 진설군왕 강해량(盡說君王 江海量)초장왕의 그 바다 같은 도량을 알수 있으니 축어수기 십분청(畜魚水忌 十分淸)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느니라 초장왕이 어느 봄날,몇몇 신하와 점심 식사를 하는데 상큼한 미나리 반찬이 먹음직스러워 王이 젖갈로 집어 먹으려는 순간 왕도 신하도 미나리에 거머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신하들이 '잡숫지 말라'고 순간적으로 외쳤지만, 초장왕은 거머리가 있는줄을 알면서도 지체없이 미나리 반찬을 맛있게 으적으적 씹어 꿀꺽 삼켜 버렸다.말하자면 증거물을 없애 버린거다.
그걸 먹지 않았으면 선반(膳飯)<주방장>의 목숨은 사라질 터,선반의 목숨을 살리기 위에 순간적 으로 취한 초장왕의 행동은 본받을 만 한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목숨이라도 귀하게 여기는 초장왕의 행동에 뜻있는 선비들은. "초장왕이 覇業을 달성할 것 이다" 그렇게 예언했고 초장왕은 春秋五覇중, 제나라의'桓공'晉나라의 文公에 이어 三位에 오르며, 春秋時代 이름을 남긴 유명한 인물이 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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