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이번 여행은 백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여의 문화유적지를 찾아 떠났다.
새벽, 남편이 제천역에서 대전행 열차에 오르는 나를 배웅해주었다.
대전에서는 김천 친구와 합류했고, 서울 친구들은 부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덕분에 한결 여유로운 여정이 됐다.
이번에는 의상에도 조금 신경을 썼다. 봄빛처럼 화사한 옷차림에 친구들은
“얼굴까지 환해 보인다”며 한마디씩 건넸다.
이 나이에는 무채색보다 밝은 색이 사람까지 환하게 만든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택시 기사님은 아무 인연도 없는데도 친구 차 트렁크에 짐을 실어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부여의 첫인상은 그렇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점심은 궁남지 근처 ‘사비향’에서 연잎밥으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사장님께서 “차는 두고 궁남지를 구경하고 가라”고 권했다.
부여 사람들의 온화함과 배려가 몸에 밴 듯해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 때 조성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다.
연꽃이 피는 계절이면 얼마나 장관일지 상상해본다.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잠시 스쳤지만 곧 그쳤다.
연못 주변을 산책하기에는 오히려 운치가 더했다.
연둣빛 새잎과 붉은 연산홍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우리는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친구들과의 여행은 그 자체로 감성 여행이다.
체크인 시간에 맞춰 롯데리조트에 도착했다.
한옥과 양옥이 어우러진 건축,
곡선형 배치 속 중앙의 한식 건물이 백제의 미를 상징하는 듯했다.
객실의 탁 트인 산 전망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열어주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정림사지로 향했다.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속한 이곳은 사찰 터로 발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백제 석탑 양식을 보여주는 오층석탑이 인상 깊었다.
이어 박물관을 찾았으나 관람 시간이 지나 문이 닫혀 있었다.
저녁에는 낙화암 야경을 보기 위해 구드레나루터로 향했지만 이미 운영이 끝난 뒤였다.
TV에서 보던 화려한 야경 대신 적막함이 흐르고 있었다.
내일은 꼭 배를 타고 고란사와 낙화암을 둘러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둘째 날
아침은 숙소에서 직접 준비했다.
시골에서 가져온 두릅, 엄나무순, 오가피, 미나리 등을 삶아 양념에 무치고
친구들이 준비해온 반찬을 곁들였다.
여행 중 함께 차려 먹는 이 소박한 아침 밥상이 어느 고급 한정식보다 맛있다.
여유로운 일정으로 늦은 오전에 선착장으로 향했다.
전날과 달리 사람들로 북적여 비로소 관광지에 온 기분이 났다.
우리는 배를 타고 고란사와 낙화암으로 향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바라본 낮은 산세는 부여만의 고즈넉한 정취를 전해준다.
이 지역은 백제 문화 보존을 위해 고층 건물을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고란사는 백제 멸망 당시의 넋을 기리기 위해 중건된 사찰이다.
고란사 뒤편 약수터에서는 “한 잔 마시면 3년 젊어진다”는
이야기에 모두 웃으며 물을 떠 마셨다.
낙화암 위 백화정에 올라 백마강을 내려다보니
백제의 마지막 순간이 겹쳐지며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
흔히 알려진 ‘삼천궁녀’ 이야기는 후대의 과장된 표현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느끼는 역사적 무게는 여전히 깊었다.
점심은 장원막국수에서 했다.
오래된 가옥 형태의 식당 앞에 긴 대기 줄이 있었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큼
맛과 가성비 모두 만족스러웠다.
오후에는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았다.
입구 디지털 전시에서 금동대향로를 대형 영상으로 접하는 순간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실제 전시관에서 마주한 금동대향로는 더욱 빛나며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날은 일정이 다소 과했지만 왕릉원까지 둘러보며 백제의 흔적을 깊이 새겼다.
저녁은 숙소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밤에는 윷놀이로 웃음꽃을 피웠다.
소소한 내기에도 승부욕이 더해져 여행의 재미를 더했다.
셋째 날
마지막 날, 우리는 서동요 테마파크를 찾았다.
드라마 촬영지로 조성된 이곳은 자연스럽게 빛바랜 한옥 구조가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준다.
출렁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풍경과 동굴 속 호랑이 조형물은 색다른 즐거움을 줬다.
점심은 부여 외곽 식당에서 취나물밥과 버섯찌개, 떡갈비로 든든히 했다.
이후 서울 친구들을 터미널에 배웅하며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늘 헤어짐은 짧지만 여운은 길다.
김천 친구는 내 열차 시간에 맞춰 국도로 천천히 데려다주었고
제천역에는 남편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깊어졌다.
이번 부여 여행은 백제의 역사뿐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느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따뜻한 인심과 정겨운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