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죄와 벌 》
살후 1:6~12
〈 하나님이 주신 ‘죄의식’ 〉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사람은 웅크리고 잡니다.
왜 웅크리고 자야 합니까? 다른 사람을 때린 ‘죄’가 있어서입니다.
우리의 양심에는 죄를 깨닫게 하는 ‘죄의식’이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 죄로 인하여 불안합니다.
사람들의 양심에는 왜 이렇게 ‘죄의식’이 있을까요?
누군가 나에게 괴로움을 주었을 때, 그래서 밤잠 못 이루고 괴로울 때,
나에게 괴로움을 준 그 사람도, 내가 당하는 괴로움, 최소한 그 만큼,
아니, 그 이상 괴로워야야 한다는 기대가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그 사람은 멀쩡하다면 이는 매우 불공평합니다.
이런 차원에서 ‘죄의식’은 매우 소중한 감정입니다.
☞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죄의식’을 담아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신 것은 매우 소중하고 귀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죄의식과 함께 어떤 것이 죄인지, ‘죄의 기준’ 또한 정하시어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죄악이라 선포하시고 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할 때 그것이 곧 죄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을 때 괴로움을 느낍니다.
“더 잘 믿어야 되는데…”
“더 신실하게 순종해야 되는데…”
“내가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괴롭게 하고 있구나…”
“나의 신실치 못함으로 성령께서 탄식하시는구나…”
이러한 자기 성찰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곧 회개입니다. 이것이 자복입입니다. 통회자복입니다.
☞ “믿는 자여 어이할꼬” 찬송가 515장을 우리가 늘 부르는 이유입니다. 할렐루야~
〈 2가지의 죄, 2가지의 벌 〉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2가지로 선포하십니다.
☞ 첫째는 수평적 관계에서 짓는 죄가 있습니다.
나와 이웃 간에서 짓는 죄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웃을 괴롭게 하는 죄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괴롭게하고, 아내가 남편을 괴롭게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괴롭게하고, 부모가 자녀를 괴롭게 하기도 합니다.
이웃 사람의 것을 부당하게 차지함으로써 이웃을 괴롭게 하기도 합니다.
남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죄도 있습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죄입니다.
☞ 둘째는 수직적 관계에서 짓는 죄가 있습니다.
수직적 관계의 죄는 개인이 국가에 대하여 범죄 하는 경우입니다.
한 개인이 죄를 짓는데, 국가, 나라에 대하여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죄의 피해자가 국가가 됩니다. 이 죄를 지으면 국가에게 배상을 해야 합니다.
이 죄를 지으면 국가가 나서서 죄를 정하고 국가가 개인을 벌합니다.
☞ 이렇게 죄가 둘로 나뉘기에 죄를 확정하는 법도 둘입니다.
모든 현대 국가에서 죄를 정하는 법은 2가지입니다.
개인과 개인간에 벌어지는 범죄를 정하는 법은 ‘민법’입니다.
누가 내 돈을 떼어먹고 갚지 않습니다. 그러면 민법 조항을 근거로 소송을 합니다.
국민과 국가간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규정하는 법은 ‘형법’입니다.
이 죄를 지으면, 검사가 나서서 죄 지은 자를 기소합니다.
국가를 대신하여 검사가 원고가 되고, 죄 지은 사람이 피고가 됩니다.
무기를 휘둘러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사람을 다치게 하면 형법 조항을 적용합니다.
왜냐면 국가의 기강, 국가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라서 그렇습니다.
☞ 일단 기억해 둡시다. 죄의 종류는 두 가지다. 죄에 대한 벌칙도 두 가지다!
수평적인 죄, 개인과 개인간의 죄에 대한 벌은 그냥 ‘벌’이라고 합니다.
수직적인 죄, 개인과 국가간의 죄에 대한 벌은 특별히 ‘벌’ 앞에 한 글자를 더 붙입니다.
‘형’자를 붙여서 ‘형벌’이라고 합니다. 벌과 형벌입니다. 구분하여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 오늘 제가 법률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왜요? 본문에 “형벌”이 나와요!
〈 벌과 형벌 〉
(8~9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오늘 설교는 제가 본문을 묵상하다가, “왜 여기서 굳이 ‘형벌’을 썼을까?”하다가 나왔습니다.
쓱 읽고 지나가면 ‘그저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대충 쓰여진 책이 아닙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매우 소중합니다. 매우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설교자들이 또 저의 설교를 보고 설교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지금 지금 개인과 개인간의 죄에 대한 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과 ‘하나님의 나라’ ‘천국’ 즉, 개인이 하나님께 범죄한 수직적 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를 말할 때 민법상의 죄와 형법상의 죄를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에 대한 벌은 그냥 벌이 아니라 ‘형벌’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에 대한 벌은 “형벌”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만 이렇게 벌과 형벌을 구별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찌감치 민법상의 죄와 형법상의 죄를 구별했습니다.
벌에 대해서도 민법을 적용한 벌, 형법을 적용한 형벌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출 21:18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의 상대방을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19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걸으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그간의 손해를 배상하고 그가 완치되게 할 것이니라”
맞은 사람이 다행이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걸었습니다.
가해자는 “형벌”은 면하지만, 손해를 배상하고 피해자가 완치되게 해야 합니다.
손해를 배상하고 완치되게 하는 민법상의 “벌”이 부과되었습니다.
다행히 폭력의 정도가 경미하여 국가가 부과하는 “형벌”은 면했습니다.
☞ 성경에서도 세상에서도 죄와 벌은 이렇게 둘로 나뉩니다.
☞ 세상 어느 종교에서 이렇게 죄를 둘로 나눕니까? 오직 성경 뿐입니다.
☞ 세상이 죄와 벌을 둘로 나눔을 보고, 성경을 이해하라는 하나님의 심오한 배려입니다.
〈 하나님의 공의 〉
한 3~4주 전, 주일 오후, 저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웬 전화일까?’ 하고 받았더니 경찰관이었습니다.
교회 차, 스타렉스가 뺑소니로 사고 접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확인했습니다.
픽업하시는 분이 주차 되어 있는 차를 긁었답니다.
예배 시간은 다 되었는데, 차 주인과 연락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 자동차에 있는 핸드폰 번호를 메모하고 성급히 예배 시간에 맞추었습니다.
제가 대신 전화를 건 경찰관에게 사과하고, 피해 차량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경찰관이 말합니다. “피해자와 연락해서 원만하게 해결하세요!”
피해 차량 소유주와 통화했습니다. 수리비를 변상하고 사건을 마무리 했습니다.
경미한 접촉사고라서 한가지 죄를 면제 받았습니다.
출 21:19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걸으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그간의 손해를 배상하고 그가 완치되게 할 것이니라”
딱 이 말씀이 적용되었습니다.
만일 차량 파손의 정도가 심각했거나 인명 사고가 겹쳤다면 형사입건이 됩니다.
이렇게 죄는 수평적 범죄로서 개인간의 해결로 끝내는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경우 수직적 범죄에 해당하여 “형벌”이 부과 됩니다.
☞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죄, 성도를 박해하는 죄, 매우 중하게 봅니다.
☞ 당사자 간 손해를 배상하고 치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박해하는 죄, 형벌이 부과됩니다.
이렇게 법을 적용하시는 하나님, 구약시대부터 이미 민법과 형법을 따로 적용하셨습니다.
그렇게 적용하신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이 훤히 밝히고 있습니다.
(6~7a)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a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 성도에게 환난을 가하면 환난으로, 환난 당하는 성도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하나님!
☞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에 있는 유비 〉
세상에서 형벌을 가하는 주체는 국가입니다.
국가는 국민들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기구입니다.
국가가 잘 할 때, 국민은 태평성대를 누립니다.
국가가 바라보고 벤치마킹할 상대가 있습니다. 누구이겠습니까? ~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스리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국가는 배워야 합니다.
☞ 역사에서 국가가 성경을 따라가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드러납니다.
☞ 출애굽기 18장에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조언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면서 밤잠 못자고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이때 모세의 장인이 와서 보고 방안을 냈습니다.
혼자 다 하려고 하지말고 백성 중에서 지혜 있는 자를 뽑아서 역할을 분담하거라~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선발하여 다스리는 업무를 분장하는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날 모든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 욥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천상의 회의를 주재하실 때 사탄이 참여합니다.
사탄의 역할은 참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보라 하시면서 욥을 칭찬합니다.
이때 사탄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많이 베푸시니 욥이 그리하지, 하나님이 주지 않으면 그렇게 안 합니다.”
사탄의 이 역할은 현대 국가에서 검사가 하는 역할입니다.
검사는 국민이 국가의 시책에 반발하는 이들을 참소하여 형벌을 부과하도록 기소합니다.
성경을 제외하고 어느 종교 어느 경전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유일합니다.
☞ 예수님의 말씀도 이 땅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예수님은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여기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나왔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일찍이 실현하도록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 성경은 이렇게 놀라운 책입니다. 할렐루야~
〈 가장 큰 형벌 〉
현대 국가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법전을 민법과 형법으로 분류한 것도 그렇습니다.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의 뿌리도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검사제도가 있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도 성경에 근거합니다.
인류의 잠재의식 속에 성경은 깊숙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의 통치 속에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유비를 심어두셨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리시는 형벌은 세상에서 내리는 그 어떤 형벌보다 무겁고 영원합니다.
(8~9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9절을 유심히 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아니하는 불신자들, 그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리고 우리에게, 믿는 자에게, 믿고 구원 받은 자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7a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세상도 신상필벌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내립니다.
세상이 주는 상과 세상이 주는 벌은 이 땅에 있을 때에 한정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이것이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 오늘 설교 제목이 “죄와 벌”입니다.
이후로 “죄와 벌”하면 도스토예스키의 소설이 아니라 오늘 설교를 기억하십시오!
믿고 구원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로움으로 영생을 주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