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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역사 교과서, 군주 리더쉽의 要諦 정치 시사 / 몽블랑
2016.11.18. 14:36
http://blog.naver.com/wiselydw/220864808646
<기막힌 역사 교과서, 군주 리더쉽의 要諦> 20161118
金瑞雲 형이 난마와 같이 얽혀있는 난세를 극복해 내는 지혜의 글을 보내왔다.
‘마키아벨리, 당신 말이 맞소!’(최국영)라는 글이다. 기막힌 지혜,
기막힌 역사 교과서, 군주 리더쉽의 要諦, 기막힌 貞觀政要다.
물을 채운 커다란 양동이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물을 데우면, 개구리는 물이 점점
더워지고 있는 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헤엄을 치며 논다. 그 유유자적(悠悠自適)함은
거의 비등점(沸騰點)에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된다. 개구리가 견딜 수 없게 돼서야
도망치려 하지만 이미 뜨거워진 물에 옴짝도 못하다가 죽어간다. 때가 늦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죽는 줄도 모르고 유유자적하고 있는 개구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건국 200년 만에, 임진왜란이라는 국난(國難)에 닥쳤다. 주변국 일본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유유자적하다가 그들과 7년 전쟁을 치렀다.
혼군(昏君) <선조>는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몽진(蒙塵)하는 비겁함을 보였다.
그것도 모자라, 초토화된 나라를 팽개치고 압록강 건너 명나라에 의탁할 생각까지 했다.
치욕의 역사다.
그 전쟁이 남긴 교훈을 뼈저리게 새기고 심기일전 했더라면 나라를 개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으련 만 전쟁이 끝나자 그 치욕을 까맣게 잊은 듯 조선은 그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몇 발자국 못가서 또 다른 혼군 <인조>가 나타나 이번엔
청나라로부터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을 당했다. 그 9년 전 정묘년에 호란을 겪었지만
아무런 대비도 않고 있다가, 병자년에 재침하자 싸우자는 척화파의 무리한 주장을
인조가 가납(加納)했다.
그 어리석은 결정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어서, 싸우기 전에 이미 승패가 나있는
전쟁이었다.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던 인조는 결국 산성에서 내려와 적장 앞에서 삼궤구고
(三跪九叩= 三拜九叩頭)라는 항복례(降伏禮)를 올렸다. 이른바‘삼전도의 굴욕’이었다.
치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선조 말에는 혼군 <고종>이 나타나, 그 애비 흥선 대원군의 시대착오적 쇄국정책으로
우물 속에 갇힌 채, 애비와 민비 및 개화파와 수구파 그리고 야욕을 품은 外勢 사이에
끼어 줏대 없이 오락가락하며 국정을 그르쳤다. 결국, 내부의 적(敵),매국노들까지
합세한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 백성은 개같이 살았다. 어때요? 마치 혼군열전(昏君列傳)을
보는 듯하다. 모두 양동이 속의 개구리처럼 죽을 운명 앞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유유자적하다 당한 참변을 당해온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인물들이 이 열전(列傳)에 이름을 올렸을까?
IMF환란(換亂)을 초래한 김영삼, 그에겐 민주화라는 미명으로 사회기강을 무너뜨린
원죄가 있다. 적(敵)의 수령에게 막대한 자금 갖다 바쳐 핵개발 하도록 도와준 김대중,
그에겐 赤化作業의 원흉이라는 죄가 있다. 반미 친북주의자 노무현, 그는 임기 말에
적의 수령 앞에 가서 자기 임기 내 후임자도 거스를 수 없는 대못을 박자고 협상한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겁쟁이 이명박, 그는 전임자들이 뿌려놓은 從北左派들을 제어
하기는커녕 맘껏 번식하도록 토양을 만들어 주었다. 이들은 모두 역사의 죄인이다.
그들이 임기 중 한 일은 치명적 亡國化작업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은 지금 그 후유증을 앓느라고 건강하지 않다. 김대중, 노무현의 추종자들이
싱싱하게 살아서 나라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저지르고 있는 여적죄
(與敵罪)를 아무도 심판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死文化 됐고 刑法이 있어도 처벌의지가 없으니 그들은 기고만장하고 있다.
종북 좌파들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나 다름없다. 내부의 적이 국가를 먼저 치고 있으니
나중에 외부의 敵이 그로키 상태가 된 이 나라를 치는 일은 여반장(如反掌)이다.
몽매함을 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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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이 몹시 혼미(昏迷)하고 쇠(衰)해 가는 기운이 역력하다. 우리 역사엔, 망하기
전에 정신 차렸으면 망하지 않았을 것을 스스로 망해놓고 독립운동을 한 예가 있다.
혼미할 때 위기를 느끼고 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실천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 시스템 곳곳이 썩어서 제대로 작동도 안 되고 나날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지금,
이 나라를 치유하는데 도대체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또 다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국운쇠퇴의 기운이 역력한 요즘, 오백여 년 전 피렌체의 <마키아벨리(1469~1527)>를
생각한다. 그 당시의 피렌체는 이름뿐인 공화국이었고 사실은 <메디치>가문이 지배하는
전제군주 도시국가였다. 당시의 유럽 사회는 프랑스와 독일이 한 발 앞서서 안정된
통일국가로 발전하고 있는데 비해, 이태리는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많은 도시국가들
(바티칸, 밀라노,피렌체, 나폴리,베네치아,제노바)이 세력다툼을 하며 혼돈의 분열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였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상황은 외세의 침입에도 허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가 쓴
[군주론]은 이 같은 조국의 운명을 직시하고 조국을 구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야
되겠다는 결심의 산물이었다. 오늘날에도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수두룩하다.
피렌체의 로렌초 군주(Lorenzo de Medici)에게 헌정된 군주론은 총 26장으로 돼 있다.
그 가운데, 지금 우리에게 지침이 될 만한 철학적 주장 몇 가지를 살펴보자.
제3장, 로마인이 어떻게 미래를 대비하고 어떻게 고난을 피해갔나?
[의사들은 어떤 질병이든 초기에는 치료하기 쉽지만 진단하기가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큰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미리 발견하면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뛰어난 현명한 통치자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를 미리 파악하지 못하여 모든 국민들이 알아차릴 만큼 문제가
커지면 어떠한 해결책도 소용이 없다. 로마인들은 늘 크고 작은 문제점을 미리 파악
했기에 고난이 닥치기 전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인들은 전쟁을
피해보려는 생각에서 문제가 커지도록 방치하는 일이 절대로 없었다.]
문제의 조기발견과 유비무환(有備無患)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고치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키우는 쪽으로 행동하고 있다. 국가파괴
세력의 창궐로 나라가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대통령조차 해결의 칼을 빼지 않고
있다.커지는 문제를 방치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고난이 닥칠 것은 뻔한 일이다.
[인간을 대할 때는 원하는 것을 넘치도록 충족시켜 주거나 철저하게 짓밟거나 둘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 인간은 사소한 손해를 입었을 때는 보복을 꿈꾸지만, 막대한
손해를 입었을 때는 감히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주가 백성에게 해를
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확실하고 철저하게
제어해야 한다.]
<제3장>
최근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그렇게 하고 있다. 마약범죄를 일소하기 위하여
‘모든 마약사범은 죽여도 좋다’는 인권 유린적 강경책을 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비인권적 조치(긴급조치 9호)와 전두환 대통령 때의 “삼청교육대”도 그렇다.
그런 조치들을 두둔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같은 조치들이 행해
지고 있을 때 사회는 기강과 질서가 바로잡혔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한 없이 자유를 주면, 도덕과 질서와 자유의 가치를 파괴하는 자유까지 허락
하게 된다. 통제하되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되고,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복수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확실하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이 매설한 亡國化
지뢰는 마땅히 후임 대통령들(이명박, 박근혜)에 의하여 제거됐어야 했다.
그들이 대통령이 됐을 때가 바로 <군주가 백성에게 해를 가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였던 때 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책무를 수행하는데 확실하고 철저하지 못 했다.
그 결과 대통령의 관용 하에 탈법적 자유를 누리며 성장하고 번식한 내부의 적들에게
지금은 오히려 공격당하며 궁지에 몰리고 있다. 마키아벨리여!, 당신 말이 정말로
맞소이다.
[인간이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방식과 이상적으로 살아가야 할 방식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상을 좇아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는 이는 자기 앞가림은커녕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매사에 늘 선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반드시 몰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상황에 따라 악행을 행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제15장>
즉, 무슨 일에서나 그리고 어디서나 스스로를 선하게 보이려고 하다 보면 반드시 악인의
무리들에 파멸 당할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려는 군주는 선하기만 해서도
안 되며, 필요에 따라서는 악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
<제17장>에서는, 군주의 잔인함과 인자함에 대해서도 이렇게 얘기했다.
[인자함이 지나쳐 혼란을 초래하는 군주보다는 잔인하게 보일 정도로 엄격해 보이는
군주가 개인에게는 나쁠지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더 이롭다. 지나친 관대함 때문에
사회가 무질서하게 되어 살육과 약탈이 난무하는 상태보다는 소수를 본보기로 처벌함
으로써 질서를 바로잡는 군주가 훨씬 더 인자하다. 지나친 관대함을 베푼 군주는
온 백성에게 해를 끼치지만 소수를 처벌하는 군주는 특정 개인에게만 영향을 줄 뿐이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매력에 빠진 군주는 악덕을 행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 이명박은‘중도실용노선’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정책을 폈다. 좌편향하면 우익에서, 우편향하면 좌익에서, 욕하는 것을 피하고자 고심
끝에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얼핏 보면 합리적인 것 같지만, 좌우(左右)는 동시에
수용할 수 없는 개념이다.
실제로도 좌파들에게만 인자함을 베푼 꼴이 된, 아주 비겁한 정책이었다. 좌파를 소탕
하라고 뽑아준 대통령이 인자함을 베풀자 그 덕에 잠수하려고 했던 종북 좌파들이
얼씨구나 활개를 치며 더욱 번식하고 말았다. 나라가 불행해지고 있는데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 악행을 하지 않은 것이다. 암살이라도 당할까봐 그랬을까?
덧붙여서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백성들의 경멸을 받는 것은 변덕스럽고 경박하며, 나약
하거나 비겁하고 결단력이 없는 모습을 보였을 때다.] 라고 충고했다. 마키아벨리여!,
당신 말이 정말 맞소이다. 저들은 온 백성에게 해를 끼쳤습니다. 경멸받아 마땅합니다.
국가파괴 세력을 응징하지 못하고 번식을 방치한 것은 역사적 과오이며 비극의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제부터라도 응징의 칼을 빼들어야 한다. 그것은 정의로운 과업이며 한바탕의 전쟁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피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완력에 약하나니 철퇴를 가하라! 처음엔
강하게 저항하겠지만 강하게 대응하면 나중엔 수그러들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이기리라! 그것을 삼간 것이 오늘의 불행을 불렀느니라.
끝으로 마키아벨리가 제26장에서 인용한 [로마史]의 저자 <리비우스>의 말을 인용한다.
[불가피한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고 유일한 희망이 무력에 있다면 무력 또한 신성하다]
[출처] 기막힌 역사 교과서, 군주 리더쉽의 要諦|작성자 wisely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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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넘 힘들어도
끊고 맺는
확실한 뭔가가
있어야지!
왜란 호란 다 격고서도
한일합방!
625!
아직도
정신 못차려!
헛약은ㄴㅁ들의 감투싸움 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