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0장 2-6절 이스라엘땅부터 시작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렇게 부르시고 세우셔서 권능을 주신 열두 사도의 이름과 그들이 복음을 전할 대상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2-4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여기서 보면 열두 제자가 아니라 열두 사도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할 당시 교회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제자들과 열두 사도를 구별하기 위해 사도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열두명을 자신의 사도가 되게 하시려고 제자로 삼으실 때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열한 명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복음의 일군으로 세우셨지만 한 명은 사도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오히려 후에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 자를 세우셨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도들을 세우시고 자신의 권능을 제자들에게 주신 이유는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이 온 세상 끝까지 전해질 것과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군들이 세상 끝날에 이를 때까지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이 일이 열두 사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임을 아셨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묘사하신 것처럼 예수님 자신도 시대가 가고 역사가 가도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신 분으로써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그 대역사의 시작점이 바로 여기서 열 두 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파송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5-6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당부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당부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맡기신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야 할 영역을 한정하십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 영역을 제한 하신 이유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자들이 지금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송하시는 것은 훈련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복음을 전하셨지만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구경하면서 전도방법을 배운 것입니다. 구경하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게 전도방법들이 몸에 배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장학습 교육의 효과입니다. 보고 듣고 같이 행동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영역을 제한하신 두 번째는 복음의 확산을 이스라엘에서 시작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에 오셨고 이스라엘에서 복음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 제자들이 친숙한 환경에서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영역을 제한하신 것에서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제자들에게 영역을 제한하신 이 명령이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할 영원한 명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는 복음이 이스라엘 전역 뿐 아니라 사마리아를 거쳐서 이방땅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스라엘을 염두해두고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사람에게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지는 않으십니다. 한 사람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전도의 영역이 어디인지를 기도하면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베드로와 자신의 전도 영역이 다르다는 것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2장 8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베드로의 영역은 할례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영역은 이방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전도하면 안되고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 전도하면 안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것은 주 사역이 베드로는 할례자들에게 바울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전할 직무를 맡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듯이 베드로도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인 백부장에게 복음을 전했고, 사도 바울은 회당에 가서 할례자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간 사람이 한국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안되고 한국에서 사역하는 사람이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게 하시면 언제나 그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이 정하신 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다른 곳에 전해야 할 때가 오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여쭙고 그대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괜히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참견하지 않아도 되는 지역에 가서 다른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 지역의 목회자나 사람들이 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가서 도와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협력 사역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이 일에 열려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주변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복음을 함께 전해달라고 요청하는 곳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이단이 아닌 것을 잘 분별해보고 이상이 없으면 가서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요청하면 개인이 가고 교회적으로 요청하면 교회가 가되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라 거리낌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은 함꼐 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많은 생명을 열매로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예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실 것을 믿고 우리에게 맡기신 영역을 우선으로 전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타고 가거나, 병원에 갔다가 어떤 사람과 같이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거나, 식당에 갔다가 전혀 예상치 못하게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거나 시장에 갔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거나, 일을 하러 갔다가 자신의 삶을 누군가와 나누게 되었을 때, 또는 운동을 하다가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 또는 목욕탕에 가서 상대방의 때를 밀어주게 되었을 때나, 또다른 경우는 미용실이나 이발소에 가서 머리카락을 자르다가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담대히 입을 열어 그 사람에게도 전도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외에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다보면 얼마든지 여러분들에게로 이끄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고, 또 교회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여러분 곁으로 인도하셨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이웃을 위하여 깨어 있고, 또 열려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깨어있고 열려있어 항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하나님의 일꾼들과 교회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여러분들이 기억할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당부하신 두 번째는 여러분들에게 맡기시는 것은 바로 잃어버린 양인 영혼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양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육체를 부탁하신 것이 아니라, 또 교회 건물을 부탁하신 것이 아니라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역은 영적인 것을 위한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만큼 중요한 사역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체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한은 영과 혼과 육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은 거룩하고 육은 부정하다고 해서 육을 학대하며 산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의 영뿐만 아니라 혼과 육이 모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으로써 여러분들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흠없이 보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바라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가라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지금은 이 지역의 잃어버린 양과 대한민국, 그리고 온 세계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 주변의 가족들과 형제들, 그리고 이웃들을 구원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일부터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의 자리에 올리시기 전에 아버지의 양을 치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다윗은 자기에게 맡은 일들을 충실히 행했습니다. 막내로써 자기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고 불평을 가질 만도 했지만 다윗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자기에게 맡긴 양 떼를 지키기 위해 물매를 이용한 돌팔매질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서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양을 치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목자는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의 양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맡기시고 그들을 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친숙한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최선을 다하여 전도를 하면 여러분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적은 역사에서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역하면 할 수도록 더 많은 사람들을 붙여주셔서 구원하게 하시고, 또 양육하게 하시고 그 결과로 칭찬과 영광을 얻게 하십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에게는 큰 상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는 우리 교회에게 맡기시는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에서부터, 또 친숙한 사람들에서부터 복음을 전해 그들의 영혼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잘 양육하여 전도자요 사역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왕성하게 확장됩니다. 이스라엘로부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고 계시듯이 지금 여러분 주변에 있는 한 영혼에 집중하시고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그들을 예수님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때가 이르면 우리 교회를 차츰 차츰 넓은 영역으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