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7. 07;00
연휴 마지막 날,
오랜만에 늘어지게 자고 황산숲길을 향한다.
평소보다 두 시간 늦게 나온 곳,
새벽 5시 전에는 두세 명 정도만 보였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더위가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간밤에도 열대야가 기승을 부렸고,
지금도 26도, 습도 95%로 후덥지근하니 이러다가
가을은커녕 겨울이 바로 오겠다.
딱! 소리와 함께 도토리가 머리를 때렸다.
더위가 물러가지 않았어도 도토리와 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익어가는 모양이다.
산길에 어지러이 떨어진 도토리를 피해 가며 시절의
수상함을 느낀다.
둘레길 1,200보 왕복을 하고 황톳길에 들어서니 어느새
5 천보가 넘었다.
집에서 산길까지 1,600보, 둘레길 1,200보, 다시 황산
정상인 96m까지 오르내리면 왕복 1,000보가 된다.
황톳길의 매력에 빠진 지 어느새 2달 여,
처음엔 발바닥이 아파 280m 길이의 황톳길을 간신히
2번 정도 걸었는데 이젠 제법 이력이 붙었는지 5번
왕복을 거뜬히 한다.
황톳길을 짧은 날은 2km, 긴 날은 3km 정도 걸으니
많이 발전했다.
산길을 걷고 왔기에 이미 온몸은 다 젖었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황톳길에 들어서서 걷기
시작한다.
숲길도 이길도 내 사유(思惟)의 창고라 나는 금세
동적명상(動的冥想)으로 들어간다.
생각이 깊어졌다가 질퍽거리는 흙을 밟으며 잠시
몸이 갸우뚱했다.
미끄러지며 넘어질 뻔하다가 위기를 넘기고 느리고
깊은 심호흡(深呼吸)으로 몸과 마음을 정리한다.
좋은 숨이란 무엇일까.
현인들은 호흡에서 생각을 빼낸 숨이라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한순간도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들은 아마도 무념무상(無念無想)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군대에서 편안한 호흡법을 배웠다.
매일 아침 점호시간엔 약 2km, 행정병이라도 수요일
체력단련일에는 8~10km 정도 구보를 했다.
그때 배운 호흡법이 코로 두 번씩 들이마시고 두 번씩
끊어서 입으로 내쉬는 방법인데, 요즘도 산행 시나
운동을 많이 할 때 유용하게 써먹는다.
최근엔 요가 수련의 기초가 되는 4,7,8 호흡법을
알게 되어 4초간 숨을 들이마시고, 7초간 참았다가
8초간 입으로 완전히 숨을 내쉬는 방법으로 3번 이상
반복한다.
그러나 이렇게 더운 날 4,7,8 호흡법은 조금 힘들고,
2번씩 끊어서 하는 군대 호흡법이 더 편하다.
잠시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발밑에 질퍽거리는
황톳길에만 집중을 했다.
세상에 겁낼 것이 무엇인가,
계절이 더위로 가혹하게 고문을 해도 애쓰지 않고,
힘을 내려놓은 채 유유히, 마음 가는 대로 편안한
자세로 걷는다.
걸음수가 1만 보가 지나자 비로소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졌다.
아! 몸과 마음이 개운하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은 날마다 이렇게 좋은 날을
만드는구나.
2024. 9. 17.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