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3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16. 구원의 제물로 오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
고전 15:1~11
〈 천도제 - 씻김굿 〉
한국의 토속 종교에 천도제가 있습니다.
죽은 이의 영혼이 구천을 떠돌지 않고 극락으로 가도록 해 준다는 의례입니다.
전라도에서는 이를 씻김굿이라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쌓인 한을 훨훨 털고, 좋은 곳으로 보낸다는 굿입니다.
예수 안 믿는 이들이 돌아가신 부모를 위하여 씻김굿을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때로는 수천만 원, 혹은 1억 원, 그 이상을 들여 굿을 합니다.
기독교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가끔 왜 그리 많은 돈을 들여 천도제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은 이미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닙니다.
영혼의 세상, 영계의 혼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 남아 있는 후손이 천도제를 지낸다고, 영의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크거나 작거나 간에 한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며 살다가는 인생은 없습니다.
한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숨을 거둡니다. 문제는 남아있는 유족입니다.
더 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난 부모님, 한은 오히려 유족에게 더 크게 남습니다.
살아 계실 때, 미처 하지 못한 일들, 돌아가신 후에 봇물 처럼 밀려옵니다.
그렇게 가실 줄 알았다면, 서둘러 효도했을 것인데, 이제는 늦었습니다.
망자의 한보다, 유가족의 가슴에 맺힌 한이 더 큽니다.
그 한을 풀어낼 길이 없습니다. 유명을 달리했으니, 사실은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한국 토속종교의 천도제, 씻김굿은 솔직히, 말하면 망자의 한풀이 굿이 아닙니다.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자식들의 한풀이 굿입니다.
그것을 망자의 한에 투사하여 영혼을 위로한답시고 굿판을 벌입니다.
겉모습은 위령제, 속내는 산자의 한풀이 굿입니다.
그렇게라도 한풀이를 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분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에 살아가지 못합니다.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아야 하니 말입니다.
겉으로는 위령제라고 말합니다.
☞ 솔직해야 합니다. 씻김굿이 아니라, “내가 잘못했다!” 실토하면 될 일입니다!
〈 회개하라! 〉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의 죄입니다.”
“당신의 한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나의 한입니다.”
“나의 죄입니다!” 이 한 마디가 이토록 어렵습니다.
인류 역사 수천 년이 흘러도 “내가 죄인입니다.” 이 자복이 어려워 살풀이 굿을 엽니다.
천도제를 빙자한 수천만 원 짜리 푸닥거리는 아마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망자에 대한 자신의 죄가 씻겨내려갈 듯 싶거든요!
푸닥거리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망자의 한으로 포장한 가식의 살풀이’입니다.
씻김굿으로도 나의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돌아가신 분의 한이 아니라 너의 죄다’라고 직언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 이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누가 이렇게 외쳐 줍니까?
마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2천년 전,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 앞서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이 선포합니다. “회개하라”
“네가 죄인이다!” 너의 죄를 돌아가신 분을 위한 씻김굿으로 “전가”하지 말라!
망자의 영혼을 위한다는 행위는 위선입니다.
망자의 영혼을 위하여 거금을 들여 푸닥거리한다고 자기의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죽은 자의 일은 죽은 자에게 맡기고, 산 자는 자기의 죄를 바라보면 됩니다.
마 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죽은 자를 위한 일은 오직 죽은 자가 할 수 있을 뿐입니다.
☞ 산 자는 오직 자기의 죄를 직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될 일입니다!
〈 제사상 차림 vs 제물 〉
기독교는 예수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죽은 자의 한을 푼답시고 천도제나 씻김굿을 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산 자는 회개하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죽은 자 앞에 음식을 차리지 않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 기독교에서 제물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입니다.
살아있는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한 제물입니다.
나의 죄를 씻어내는 제물, 그것은 희생제물입니다.
나의 죄,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내가 제단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나 대신 제물을 올려 그 제물을 희생시킴으로써 내 죄값을 치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구약시대 희생제물로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비둘기, 염소, 양, 소 그리고 곡식과 기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단에 이러한 제물을 올렸습니다.
이 제물은 죽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상은 딱 둘입니다.
①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입니다.
“하나님! 이 제물을 받아주옵소서!”입니다.
② 다음은 나를 위한 제물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하는 제물입니다.
나의 죄를 대신하여 올리는 제물에는 내가 손을 제물의 머리에 얹습니다.
‘나의 죄를 희생제물에 전가’한 다음에 제단에 올립니다.
① 씻김굿이나 푸닥거리는 ‘나의 죄책감’을 ‘죽은 자의 영혼 달래기’로 포장합니다.
②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나의 죄’를 ‘희생제물’에 전가한 다음 제단에 올렸습니다.
어느 쪽이 진실이고, 어느 쪽이 진리입니까?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자기 죄를 비둘기, 염소, 양, 소에 전가하여 희생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의 죄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그 죄에 합당한 죄의 값을 치름으로써 죄 문제를 해결합니다.
☞ 죄인에서 벗어나, 의인이 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습니다.
☞ 죄인에서 벗어나, 의인이 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있습니다.
☞ 죄인에서 벗어나, 의인이 됨으로써 지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갑니다. 할렐루야~
〈 희생제물 〉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는 어떻게 해야 사라집니까?
지은 죄가 그냥 사라진다면, 사람이 죄 짓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은 죄는 해결하기 전까지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그 죄는 반드시 죄의 후유증, 죄의 영향으로 나타납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지은 죄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 괴로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천도제’라는 형식으로 해결코자 했습니다.
경제적 부담을 무릎쓰고 수천만원 짜리 씻김굿을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습니다.
‘이제는 부모님의 영혼이 극락에 갔겠지~’합니다.
그러나 실은 ‘이제는 부모님께 대한 죄스러움에서 놓여날 수 있겠지~’하는 위장입니다.
이러한 가식적인 푸닥거리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꺼내놓고 자기의 죄를 직시해야 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자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죄를 시인하고, 자기가 죄인임을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야 죄 문제에서 놓여납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비둘기, 염소, 양, 소를 희생제물로 삼아 죄를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려서 그렇게 하도록 율법을 하사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따랐습니다.
죄 지은 사람마다 그에 합당한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희생 제물에게 ‘전가’한 다음 제단에서 불태웠습니다.
사람의 죄를 비둘기, 염소, 양, 소로써 탕감하도록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습니다.
사람의 죄를 어찌 감히 희생제물로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입니다.
사람이 자기 목숨을 내놓아도 부족한 죄를 하나님은 동물로 탕감해 주셨습니다.
레위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를 탕감하는 속죄일 규례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온 백성의 죄를 달랑 염소 두 마리로써 받으십니다.
1년에 한 차례, 속죄일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온 백성을 의인으로 인정하셨습니다.
〈 속죄일 제물의 한계성 〉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자비를 허락하시어 1년에 하루 속죄일 제사로 죄를 탕감하셨습니다.
그것도 염소 두 마리를 제물로 하여 이스라엘 온 백성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속죄일 제사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우선 매년 한 차례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일 년에 한번이지만 항상성이 떨어집니다.
한편 속죄일 제사를 지내는 일에 국민적 관심도가 들쑥날쑥합니다.
속죄일 제사로 죄 사함 받음을 분명히 믿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이도 있습니다.
① 매년 제사를 지내야 하는 문제, ② 집단적 죄 사함의 문제,
여기에 날로 사람들의 죄가 심각해집니다. ③ 죄의 심각성입니다.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의 죄 문제가 있습니다. ④ 죄의 보편성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염소 두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받으셨지만, 사람들은 천차만별입니다.
큰 죄를 지은 죄인이 있고 작은 죄를 지은 죄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률적으로 죄에 대한 제물을 받고 죄를 탕감하심이 영속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온 세계 만민이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죄 값으로 희생제물을 받으심에 있어서 하나님은 진심이십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회개, 온전한 희생제물로써 죄 사함을 베푸시고자 하십니다.
① 죄사함의 반복성 _해마다 속죄제
② 죄사함의 불완전성 _집단적 행사의 한계
③ 죄사함의 보편성 _온 세계 만민이 받아야 할 죄 사함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나님은 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제물의 완전성과 회개의 완전성을 기하십니다.
_ 사람들의 죄악을 대신하는 제물의 완전성
_ 죄의 광역성, 심각성, 시간성을 일거에 해결하고자 하십니다.
① 회개의 완전성은 진정한 회개냐를 묻습니다.
② 이어서 진정한 희생제물을 드렸냐를 묻습니다.
☞ 하나님의 결단은 독생자 예수의 파송입니다. 성육신입니다.
〈 구원의 제물로 오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
죄의 문제, 자기의 죄책감을 망자의 영혼 달래기로 포장하는 태도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 나의 죄에서 비롯함을 직시해야 합니다.
나의 죄, 분명히 깨닫고 예수님의 말씁을 들으십시오!
“회개하라!”
죄인인 우리가 회개하면, 구원의 희생제물로 오신 예수님이 그 다음을 담당하십니다.
“회개하라! 그러면 내가 책임진다.”
어떻게요?
“내가 너를 대신하여 희생제물이 되어주마!”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내가 죽어 마땅한 것을 그 분이, 예수님께서 대신 죽어주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희생제물이 되어주신 예수 믿음이 기독교입니다.
오직 유일한 진리입니다. 하나뿐인 구원받는 길입니다.
예수만이 살 길입니다. 할렐루야~
평안이 어디 있습니까?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혼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살아있는 나의 문제입니다.
지금 숨쉬고 있는 나, 나의 죄 문제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십시오!
회개하고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내 죄에 합당한 제물, 희생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어떻게요? 무엇으로요?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구원의 제물, 희생제물오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구원의 제물로 오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