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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기도처로 유명한 팔공산(八公山) 관봉(冠峰) ‘갓바위’ 석조여래좌상> 고영화(高永和) -소원을 빌며 기도하는 불국정토(佛國淨土)-
팔공산(八公山) 남쪽 관봉(冠峰, 해발 850m) 꼭대기에 웅장한 스케일의 ‘갓바위(冠巖)’가 있다. 이곳을 찾아가 정성껏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전설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명소(名所)가 되었다. 대구시와 경북 경산시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관봉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식 명칭도 ‘관봉 석조 여래 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이다. 또 갓바위는 1965년에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었고, 5.48m 크기의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으로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조성된 석불로, 아주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
소원을 빌며 기도하는 불국정토(佛國淨土) ‘팔공산(八公山) 갓바위(冠巖)’는 여래좌상(如來坐像) 석불(石佛) 민머리 위 상투 모양 위에 돌갓(石冠)을 쓴 모습을 하고 있다. 굵고 짧은 목에 나 있는 3줄 주름인 삼도(三道), 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 형식화된 옷주름, 탄력성이 없는 평판적인 몸통은 9세기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투박한 특징만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선비나 과거 급제를 한 사람이 머리에 쓴다는 ‘관(冠)’ 모양의 두께 15cm, 지름 180cm 판석이 머리 위에 올려진 불상을 보고, 사람들이 예로부터 그냥 '갓바위'로 불러왔다. 현대에는 갓 쓴 모습이 학사모를 쓴 것 같다고 해서 수능 기도처로 유명하다. 덧붙여, ‘갓바위 부처’라고도 불리는 약사여래좌상은 원광의 제자 의현(義玄)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여 638년(선덕여왕 7)에 이 여래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지성껏 빌면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지며, 영험이 많다는 갓바위 부처를 예불하기 위하여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갓바위 백과사전 참고]
○ 한편 팔공산 갓바위 석불은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합을 들고 가부좌로 앉아 있어 여래좌상(如來坐像)이자,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라고 부른다. 약사유리광여래는 중생들의 온갖 질병을 치유, 재난 소멸(재앙 구원), 수명 연장과 함께 극락왕생 등을 베풀며 세계를 주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약사유리광여래는 약사여래(藥師如來), 유리광왕(瑠璃光王), 대의왕불(大醫王佛), 의왕선서(醫王善逝), 의왕불(醫王佛)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석보상절 9책>에서 부처께서 말하길, “만일 법을 믿는 선남선녀가 저 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를 공경하여 공양하고 불경을 외우게 되면, 장수(목숨)를 구하면 장수를 얻고 부유함을 구하면 부유함을 얻고 벼슬을 구하면 벼슬을 얻고 아들딸을 구하면 아들딸을 얻고 또 병이 적고 귀신에게 정기를 뺏기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 [찾아가는 길 2가지] 여기 ‘팔공산 갓바위’는 수험생 부모들 사이에서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믿음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다. 갓바위를 찾아 올라가는 길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① 먼저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선본사 코스인데, 흔히 ‘뒷길’로 불린다. 이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거리가 짧아 갓바위에 오르는 가장 쉬운 길로 알려져 있다. 경산시 와촌면에 위치한 관음휴게소(갓바위 공영주차장)에서 등산이 시작된다. 관음사 휴게소 주차장에서는 출발하면 갓바위 정상까지 약 45분시간 정도 걸리고, 그보다 위쪽 선본사 사찰에서 출발, 갓바위까지 올라가면 약 30분 정도 걸려 도착할 수 있다. 관봉(갓바위) 체류시간을 제외하면 하산 시간은 20분도 채 안 걸린다.
② 두 번째는 흔히 ‘앞길’로 불리는 대구시 관암사 코스다. 갓바위 제5공영주차장(대구시 동구 능성동)에서 출발하여 관음사를 거쳐 갓바위까지 오르는데 1,365개의 계단이 있어 체력 소모가 크고 멀어 왕복 2시간30분(갓바위 체류시간 제외)은 족히 걸린다. 가볼 만한 주변 명소로, 대구시 쪽에는 파계사와 동화사가 있고 경산시 쪽에는 영천시 은해사가 인근에 있다.
✱ [갓바위 산행] 2024년 12월28일 토요일, 선배 다섯 분과 함께, 오전 10시에 경북 경산시 와촌면 관음휴게소에서 모여 등산을 시작했다. 얼굴을 핥기는 차가운 산바람이 불어오는 추위 속에 등반을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약1Km 떨어진 선본사 입구에 도착해서, 다시 가파른 산길로 약 1Km 올라가는데 기존 산길에 대형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새로 만든 계단 길을 따라 거침없이 올라갔다. 제법 가파른 산길이라 시간이 제법 더디게 걸렸다. 갓바위에서 20분 이상 체류하면서 둘러보고 또 기도도 올렸다. 그리곤 인근 ‘노적봉’으로 향했다. 산 북쪽에 완만한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산정상 가파른 돌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바위를 타다보니 다리가 후들거려서 나는 도중에 포기를 했는데, 운곡, 중곡, 만촌 선배 세 분은 고집스레 갔다 왔다. 저러다 요단강을 건너면 어쩌려고....ㅠ 하산 길은 의외로 평온하고 상쾌했다. 내 젊었을 때에는 대구시 동구 능성동 쪽에서 올라왔었는데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등반 시간 1시간 30분). 내려오는 길에 모두 함께 갓바위 바로 아래 자그마한 절의 3층 석탑을 3바퀴 돌면서 “약사 여래 불”을 일제히 중얼거리며 탑돌이를 했다. 이번 산행은 비교적 순탄하고 가뿐했다. 갓바위 방문은 특히 50대 이상이면 체력을 고려해서 무조건 경산시 와촌면쪽에서 올라갈 것을 추천한다. 이후 우리 팀은 중곡 선배의 친구집, 대구시 북구 연경중앙로 ‘프리미엄 무한리필’ 샤브몰 식당에서 식사와 커피 한 잔의 시간을 가진 후에 집으로 귀가했다. 참, 뜻깊고 행복한 하루였다.^^ 벌써 내년이 기다려진다.
◉ [갓바위 좌불상의 특징]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갓바위 좌불상은 하나의 돌에다 새겨 조성한 석불로 머리 위에 마치 갓을 쓴 듯한 자연 판석이 올려져 있어 속칭 ‘갓바위 부처님’으로 더 알려지고 신앙되어 왔다. 또한 풍만하지만 경직된 얼굴, 형식화된 옷주름, 평판적인 신체는 탄력성이 배제되어 8세기의 불상과는 구별되는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투박하지만 정교한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는데, 오른손 끝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유사한 손모양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았다. 그러나 불상의 왼손바닥 안에 조그만 약합을 들고 있는 것이 확실해서 약사여래불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관봉석조여래좌상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조성 배경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불두(佛頭, 불상의 머리) 위의 갓으로 불리는 자연 판석은 불상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인터넷 옮긴 글]
○ 갓바위 좌불상의 오른손은 땅을 가리키듯 손끝을 아래로 내려뜨렸으나 왼손은 배 앞에 두어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였는데, 일반적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 자세와 달리 손바닥 위에 조그마한 둥근 약그릇이 놓여 있는 모습이다.(뚜렷하진 않다) 불상은 기본적으로 물건을 들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약사불(藥師佛)의 경우 약호(藥壺)나 약합(藥盒)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불상이 석가모니불의 수인인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지만 약사불상일 가능성?도 있다. 약사불(藥師佛)은 중생을 질병으로부터 구원하고 법약을 준다고 하는 부처이다.
◉ 덧붙여 팔공산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성지(聖地) 가운데 하나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경주 남산에 버금갈 정도로 수많은 불교문화유산이 산재되어 있으며 매년 적지 않은 불자들은 이곳을 찾아 자신의 신앙심을 고양시키고 심신을 수련하는 장소로 이용을 하고 있다. 특히 팔공산(八公山) 관봉(冠峰)의 ‘갓바위’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찾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 여래좌상 불상에는 둥근 빛을 표현하는 광배(光背)가 없는데, 마치 뒤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암벽이 이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불상과 대좌 모두가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어, 매우 큰 한 바위로 조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의 민머리 위에는 둥글고 큰 육계가 뚜렷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풍만하며 탄력이 있으며, 백호를 두드러지게 표현하여 부처님의 상호를 나타내었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굵고 짧은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표시되어 있다.
대좌는 신체에 비해 작고, 길게 입은 옷의 끝자락으로 대좌 윗부분을 덮은 상현좌(裳懸座)로 되어 있다. 이러한 대좌의 모습은 7세기 후반의 군위 제2석굴암의 아미타여래삼존 본존불 대좌형식과 유사하다. 무릎 위에 올려진 두 손은 석굴암의 본존불과 닮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불상의 왼손바닥에 조그만 약함을 들고 있어 이 불상의 존명을 약사여래좌상이라 한다. 근엄한 얼굴, 거대한 체구에 밀착되어 흐르는 유려한 옷주름선은 선각화(線刻化)되어 긴장감과 탄력성이 다소 배제된 점으로 보아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불상이다.[갓바위 안내문]
◉ 아시다시피 팔공산(八公山) 갓바위(冠巖)의 정식 명칭을 ‘관봉 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이라 부른다. 그런데 여기서 관봉(冠峰)은 산봉우리 이름이고, 석조(石造)는 돌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래(如來)는 부처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며, 좌상(坐像)은 앉아 있는 형상이라는 말이다. 여래(如來)는 범어(梵語)로 타타아가타(tatha-gata)라고 한다. 부처들과 같은 길을 걸어서 ‘열반의 피안에 간 사람’, 또는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여래는 ‘여실히 오는 자’, ‘진여(眞如)에서 오는 자’라는 뜻이며, 진여 세계에서 와서 진여를 깨치고 여실한 교화활동 등의 생활을 한 뒤에 사라져 가는 이로서, 부처와 같은 뜻을 가진 낱말이다. 후세에는 여래(如來)와 불(佛)이 구별 없이 사용되어 아미타불을 아미타여래, 약사불(藥師佛)을 약사여래(藥師如來), 약사유리광(藥師琉璃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팔공산 선본사(禪本寺)]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관음휴게소에서 ‘팔공산 갓바위’를 오를려면 여기 선본사(禪本寺) 일주문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선종(禪宗)의 본사(本寺)라는 선본사 사찰 입구에서 대부분 갓바위 방향의 길로 등산하지만 하산 후에 선본사를 둘러본 후에 돌아오는 방문객이 많다. 선본사(禪本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영 사찰로, 491년(소지왕 13)에 극달(極達)이 창건하였으며, 1641년(인조 19)에 수청(秀廳)이 중창하였다. 이후 여러 번의 중창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1965년 보물로 지정된 관봉석조여래좌상(갓바위 부처)을 비롯하여 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선본암 삼층석탑, 석등대석 등이 있다.
[목련 한 그루] 선본사 경내를 구경하려면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선정루(禪定樓)를 통과해야 본전인 극락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처음 경내로 들어서는 선정루 입구에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신기하게도 그 목련 나무에 꽃망울이 벌써 온통 돋아나 있다. 며칠 후에 기온만 조금 높아지면 꽃잎을 터뜨릴 것만 같다. 만일 목련꽃이 새해에 맞춰 일찍 핀다면 내년에는 우리나라에 큰 행운이 도래할 조짐이라 여겨진다.^^ '신기방기'
● 다음 ‘眞’ 운목(韻目)의 칠언율시 <석불을 바라보며(觀石佛)>는 조선후기 문신 염헌(恬軒) 임상원(任相元 1638~1697)의 작품이다. 돌로 만든 갓을 쓴 커다란 석불(石佛)을 보고 느낀 점을 쓴 글이다. 극락세계의 불상(佛像)인 듯한데 푸른 이끼가 조금 끼였으도 반공 중에 불상이 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하늘의 기교로 만든 듯하고 불교의 신(神)이 나온 듯하다고 밝혔다. 혹시나 설법(說法)의 공력(功力)으로 미진(迷津)의 세계로 이끌어 주지 않을까 기대해 보기도 한다.
1) 석불을 바라보며[觀石佛] / 임상원(任相元 1638~1697)
石冠如鏡照嶙峋 돌로 만든 갓이 거울 같아 첩첩 가파른 산을 비추고
仿佛西方丈六身 마치 서방 극락세계의 커다란 육척 불상(佛像)인 듯하네.
經劫不敎蒼蘚蝕 액운이 지나가면 푸른 이끼를 좀 먹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倚空時放白光新 허공에 의지한 불상이 때마다 흰빛을 발하니 새롭기만 하구나.
渾成似奪天工巧 마치 공교한 하늘의 기교를 빼앗아 만든듯하고
涌出還驚象敎神 불교의 신(神)이 솟아 나온 듯하여 더욱 놀라웠네.
若待點頭仍演法 만약 불법을 펼침으로 인하여 점두(點頭) 하길 기다리면
須邀迦釋導迷津 마침내 석가모니를 만나 미진(迷津)의 세계로 인도하리라.
[주1] 서방(西方) : 서쪽으로 십만 억의 국토를 지나면 있다는 극락세계.
[주2] 점두(點頭) : 승낙하거나 찬성하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완석점두(玩石點頭)는 설법(說法)의 공력(功力)으로 돌까지도 술을 마신다는 뜻임.
[주3] 미진(迷津) : 오(悟)의 피안(彼岸, 저승)에 대(對)하여, 미(迷)의 차안(此岸, 이승)을 이르는 말. 나루터에서 길을 헤매다. 세속의 번뇌
● 다음 ‘刪’ 운목(韻目)의 오언절구 <석불(石佛)>은 조선후기 영남의 학자 두곡(杜谷) 홍우정(洪宇定 1595~1656)의 작품이다. 절의(節義)가 탁월했던 유학자로서 석불(石佛)을 보고 난 후의 소감을 적은 글이다. 고통과 어려움이 많은 인간 세상에서 돌부처는 여전히 무심히 서 있을 뿐이다. “어찌 완고한 돌부처가 세상살이 험한 줄을 알겠느냐?”고 되묻고 있다.
2) 석불[石佛] / 홍우정(洪宇定 1595~1656)
多苦人間世 괴로움 많은 인간 세상에서
無憂石佛頑 근심 없는 돌부처 완고하여라.
原頭牢住腳 언덕 위에 버티어 섰는데
誰識道途艱 세상살이 험한 줄을 뉘 알랴.
● 다음 ‘先’ 운목(韻目)의 칠언절구 <석불(石佛)>은 조선후기 문신, 서예가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3~1887)의 작품이다. 그는 밤비 내리는 어느 날, 개성(開城)에 있는 송산(松山)에서 옻칠한 등(燈)을 내 걸은 사찰의 석불을 보고 읊은 글이다. 오백 년간 고려의 문물과 문화를 생각하다가 문득 이 석불은 그때의 일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상상한다. 아마도 석불은 망해가는 고려국을 보고 망연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3) 석불[石佛] / 조면호(趙冕鎬 1803~1887)
麗國風流想可憐 고려국의 풍류를 생각하니 가히 즐거운데
松山夜雨漆燈懸 밤비가 내리는 송산(松山)에 옻칠한 등(燈)을 내걸었네.
悽凉五百年間事 오백 년간의 일이 처량하기만 하니
石佛生前已惘然 석불도 생전에 이미 망연했을 테지.
● 다음 ‘銑’ 운목(韻目)의 오언절구 <바위 사이 석불(巖間石佛)>은 조선후기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운석(雲石) 조인영(趙寅永 1782~1850)의 작품이다. 그는 문장·글씨·그림에 모두 능한 문신이었고, 풍양 조씨 세도 가문의 일원으로 큰 권세를 누리기도 한 인물이다. 주자학의 원리를 고수한 정치인으로 불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다. 이 글에서도 천년 세월 묵묵히 앉아 있는 무심한 석불에게 무엇을 기대 할 수 있겠느냐고 따지듯 힐난하고 있다.
4) 바위 사이 석불[巖間石佛] / 조인영(趙寅永 1782~1850)
巖間小石佛 바위 사이에 작은 석불이 있는데
寂寞生苔蘚 적막함에 이끼가 생겨났다.
默坐經千劫 묵묵히 앉아 오랜 세월 보낸다고
眞妄那得辨 어찌 진실과 망령을 분별할 수 있으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