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證言) - [49] 지생련 (池生蓮) - 하늘 섬기며 이 길 따르리 3. 뜻을 위해 제물 된 이화여대 퇴학 사건 - 2
퇴학당하기 며칠 전 나는 뜻길을 지켜 나가기로 결심함으로써 하늘과 인연 된 우리의 모습을 꿈을 통해 보게 됐다. 꿈속에서 이화여대의 모든 건물은 물론 교수들까지 불길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먹구름이 전체를 뒤덮었고 잠시 후 큰 황소 한 마리가 기숙사 쪽에서 달려와 운동장에 드러누워 뒹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검은 먹구름과 시커먼 연기가 학교 전체에 꽉 차 있었는데 학생 몇 명과 내가 기차를 타고 그 연기 속을 헤쳐 나와 멀리 빛으로 밝게 보이는 조그마한 집으로 향하게 되었고 기차에서부터 그 작은 집으로 우리가 옮겨지는 것이었다. 그 집은 다름 아닌 세대문집이었다. 당시 퇴학을 맞고도 지금까지 뜻 앞에 남아지게 된 것은 그때 꿈이 많은 계시적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언론사들도 처음에는 통일교에 다니고 있던 우리의 주장을 대변해 주고 옹호했지만 나중엔 다들 돌아서서 오히려 이단이니 사이비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우리나라는 신앙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또 학교에는 무속인의 딸도 다니고 그보다 더 못한 별 요사스러운 종교를 믿는 학생도 다니는데, 왜 단지 통일교 신앙을 한다는 이유로 우리를 반대하느냐고 총장을 비롯해 학교 당국과 언론사에 항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의 고위층 반대세력과 미국 감리교 재단에 연관된 큰 힘에 눌려 어쩔 도리가 없었다. 퇴학을 맞은 후에도 우리는 학교에 나가 우리의 입장을 밝히려고 했지만 학교 측이 경비를 불러 쫓아내고 통제를 해 학교에는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나는 우리의 퇴학 사건은 단순 퇴학이 아닌 섭리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역사적인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날 이화여대를 중심 삼고 탕감 조건을 나 혼자라도 세워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에서 부활절에 입었던 흰 치마 한 폭을 잘라 면도 칼로 손가락에 상처를 내어 거기에 다음과 같은 혈서를 썼다.
‘2천 년 전 대제사장과 교법사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인 것을 모르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때처럼 새 역사가 시작되는 이때에 2천 년 전과 같이 다시 오신 주님을 몰라보고 십자가에 못 박는 제사장이나 바리세인이 돼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었다.
혈서를 쓰고 보니 이와 같은 조건을 나 혼자 세워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더 찾아 삼위 기대를 세우기로 했다. 다음날 나는 혈서를 쓴 치마를 갖고 법정대학의 강정원과 이계순을 찾아가 그들을 불러내어 함께 피로써 탕감 조건을 세우자고 했다.
그래서 그들도 그 흰 치마에 혈서를 쓰게 되었다. 학교 채플 시간이 끝나자마자 우리들은 그것을 게시판에 붙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와 보고서 웅성거리자 조교수 한 사람이 와서 그것을 잡아떼고 그를 저지하는 우리를 힘으로 제압한 뒤 갖고 가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