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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언약궤
삼상 7:1-4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삼상 7:1-4 / 그래서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내려와 법궤를 모셔 갔다. 그들은 온 도성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집에 법궤를 모셔 놓고, 그 집 주인인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을 성별하여 여호와의 법궤를 지키게 하였다. 2) [다시 구출되는 이스라엘 백성] 법궤가 기럇여아림으로 돌아와서 머문 날로부터 20년이 지났을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의 비참한 처지에서 여호와를 생각하고 그분께로 돌아왔다. 3) 그러자 여호와를 찾아온 백성에게 사무엘이 올바른 회개를 가르쳐 주었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아 돌아올 작정이라면 남신이든 여신이든 그동안 섬기던 다른 나라의 우상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십시오.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고 그분만을 섬기시오! 그러면 여호와께서 분명히 여러분을 블레셋 족속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4)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의 온갖 신상들을 가져다가 깊은 땅속에 묻어 버리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겼다.
여호와의 궤를 벧세메스에서 산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온 족속들에게 전합니다.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킴(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벧세메스 사람들의 요청으로 여호와의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놓았습니다. 그후 다윗 시대까지 이 곳에 머뭅니다(삼하 6장 이하). 한편 아비나답의 집에 여호와의 궤를 모셔 놓은 이유는 그가 레위인이었기에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훗날에 여호와의 궤를 옮길 때에도, 그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함께 하였습니다(삼하 6:3). 또한 본문에서 한 아들의 이름을 엘르아살이라고 하였는데 성경에서 엘르아살이라는 이름은 아론의 뒤를 이어서 대제사장이 된 아론의 셋째 아들의 이름과 같습니다. 아비나답이 엘르아살을 구별한 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출 28:3-41). 따라서 산 위의 안전한 곳, 레위인의 집에 여호와 궤를 두고 지켰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여호와를 위해서 여호와 궤를 지킨 것이 아니라 다시는 벧세메스같은 불상사(삼상 6:19)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사모함(2) 기럇여아람에 여호와의 궤가 들어간 지 20년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제대로 여호와의 궤 앞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가나안 땅은 블레셋의 영향 아래 있었고, 여호와의 궤는 산 위에 멀리 있어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 앞으로 나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여호와를 찾고, 사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사모하다’라는 말은 ‘큰 소리로 부르짖다, 울다’라는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서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전히 사사 시대 말기의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여호와의 법궤가 다윗에 의해 옮겨지는 것은 약 70년 후의 일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만을 섬기라(3-4) 드디어 사사이자, 선지자이며, 이스라엘 족속의 왕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무엘은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합당한 신앙의 3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돌아와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앞서는 것은 안 됩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아스다롯은 성(性)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만을 ‘섬겨야’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뿐입니다. 이것만이 이스라엘을, 그리고 오늘날의 성도들을 자유하게 합니다.
적 용 :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만을 섬기기 위하여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날이 갈수록 인간들은 기술 문명의 우수성과 자기들이 만든 것들의 정확성을 자랑합니다. 매우 정확한 첨단 제품이 나왔다 해도 곧 그것보다 나은 정교한 제품이 생산되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손을 거친 어느 것도 제로(zero)의 오차를 자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제로에 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가 정해놓으신 법칙은 영구불변하며 태초에 약속하신 사랑은 그의 아들을 죽음에 내놓기까지 지키시는 무한한 사랑이란 신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신뢰도는 오차 제로(zero)입니다.
< 설 교 >
미스바로 모이라
사무엘상 7:1-11
주변에서 근속 20년, 30년 한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귀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성실하게 인내하며 달려가는 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평생을 믿음으로 달려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귀해 보입니다. 들어보면 그 여정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고 하는 고백을 듣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지속한다는 것이 때로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상대인 보이지 않는 마귀가 틈을 타고 있다가 넘어뜨리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그 생명을 풍성히 얻으려고 하는 것을 시기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던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미 심판받기로 정해진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사도바울은 엡 6:12에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악한 영들의 꾀임에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말세의 끝을 달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날마다 거룩함을 회복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무시로 깨어서 기도하며 성령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로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결단과 더불어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가 또한 신앙으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랐다고 하는 그 순간에도 위기가 찾아오고 문제가 연속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 몇 명과 변화산에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사람들과 변론하면서 소란스러웠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자 한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이는 말 못하는 귀신이 들린 아이였는데 귀신이 그를 괴롭힐 때는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날마다 파리해 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에게 선생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안 계셔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달라고 했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 했습니다. 때로는 귀신을 제 아들을 죽이려고 불과 물에 던졌나이나 그러나 무엇을 할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처음에는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왔는데 예수님도 못만나고 제자들이 능히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자 예수님에 나왔을 때는 이미 믿음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책망하시면서 그 아버지의 믿음을 일깨워주시고 그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셨습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믿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결국은 성령으로 되어지는 은혜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 경내인 벧세메스로 들어왔습니다. 그 동네는 레위인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벳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가 들어온 것에 대해서 기뻐하며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그 중에 호기심으로 궤를 들여다 본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70명의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어났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두려움과 슬픔가운데 궤를 자기들 중에 두기를 꺼려하고 기럇여아림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결국 법궤는 옛날 법궤가 위치에 있었던 실로에서 가까운 지역인 기럇여야림으로 결정되었으며 이들이 가지고 가서 그 중에서도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궤를 안치하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합니다. 이 부분이 6장 마지막 부분에서 7장 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아비나답에 집에 모셔둔 지 시간이 오래 지났습니다.
20년 동안 오래 있었습니다. 그동안 서서히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2절에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사모’한다는 말에는 ‘부르짖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여호와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쉬운성경
turned back to the Lord. NIV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된 것, 곧 부르짖게 된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거룩한 영으로 우리의 심령을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룩한 것을 사모하게 하는 마음, 거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거리끼는 마음을 갖는 것, 거룩하지 못했을 때 죄를 회개하는 마음 이 모두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심령을 살펴서 주름진 것을 펴주시고 점이 박힌 것은 빼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연약해서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회개하지 못할 때에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주십니다.
롬 8:26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이 시들시들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이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시려는 선하신 그 분의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이 시들시들하게 될 때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되는 때입니다. 그 때가 바로 기도의 타이밍, 회개의 타이밍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때에 계속해서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으면 시들시들하게 만드는 성령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어서 속 시원하게 하나님께 털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서 막힌 것이 없는 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막힌 것은 없는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막힌 것은 없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는 때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편 51편은 대표적인 다윗의 회개의 시입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게 하고도 다윗은 바로 회개하지 못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그대로 있었습니다. 곧 그의 심령은 시들시들해졌습니다. 회개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고백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다윗은 영과 육은 날마다 메말라 갔습니다. 뼈가 말라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찾아오신 성령의 책망과 감동 앞에서 베개를 눈물로 적시면서 지은 시입니다.
그는 10-12절에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라고 자신의 심정을 쏟아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분이 떠나시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상황인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7절 하나님께서 목말라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반석을 치게 하심으로 생수가 터져 나오듯이 우리 성도들도 성령께서 주시는 생수의 강물을 마셔야 살게 됩니다.
언약궤가 20년간 기럇여아림에 있는 동안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령을 어루만지신 것입니다. 은혜의 때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회복과 종교개혁을 서서히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 속에 하나님께 돌아가고픈 열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기 시대에는 많은 사사들을 사용하셨는데 일시적인 회복과 승리였습니다. 계속되는 우상숭배와 하나님 앞에서의 불신앙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세우신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사사시대를 끊고 신앙회복과 종교개혁의 시대를 책임지는 사사겸 선지자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담대하게 외칩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3절
사무엘은 세 가지 종교 개혁의 기치를 선포했습니다.
첫째,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 (고대 근동의 여신 아스다롯 - 풍요와 전쟁과도 연관된 신)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라 (이 단어는 돌이키다 제거하다 떠났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명령하면서 신명기 7:5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고 말씀했는데 그 땅의 우상을 깨뜨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여호와께 자신을 맡기고 (위탁하고), 여호와께 자신을 바치고 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일시적이고 현세적인 믿음을 탈피하여 확실히 그 분 앞에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셋째. 그만을 섬기라.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언제까지 머뭇머뭇 거리겠느냐? 바알이 하나님이면 바알을 섬기고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면서 신앙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은 없는지 놓으면 죽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놓아도 죽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 주기철 목사님 예화를 들면서 말씀드린 일사각오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 본문을 보아 이스라엘은 아직까지 블레셋의 압제의 영향력 아래에서 탈피하고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지배는 아니지만 시시때때로 공격의 위기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궤가 블레셋에 빼앗긴 7개월 동안 그 궤를 찾으려고도 하지 못했겠습니까?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자신들이 함께 섬겼던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만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종교 개혁에 성공한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의 기념비적 집회인 미스바 성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해발 780M의 고지이고 가나안 중앙지대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중보기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신본주의적 통치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미스바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6절 /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물을 길어 부었다는 것은 회개를 통해 자신의 마음 전부를 하나님 앞에 전부 쏟아 낸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종일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금식은 가장 모든 것을 내려놓는 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겸손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백성들이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복하고 그의 은혜를 누리고자 하는 절실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고백함으로 회개했습니다. 자신들이 여호와께 범죄한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동안 신앙의 흉내만 낸 것, 우상과 하나님을 적당히 섞어서 섬긴 것,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지는 않으면서 언약궤의 신비한 힘을 빌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 볼려고 했던 모든 불신앙을 회개한 것입니다.
7절 후반부에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는 말씀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정통치가 시작됐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통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력한 지도자인 사무엘의 지도하에 미스바에서 집회를 열고 있는 것은 블레셋 편에서 자신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부담스러운 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초장에 힘으로 제압하여 이스라엘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편에서 볼 때는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렵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회복하는 중요한 집회 자리가 피흘리고 싸워야 하는 자리, 전쟁의 자리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패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군대는 그 때에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력상으로 매우 우세했습니다. 그에 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집회장소에 있습니다. 무기를 가져왔거나 전투를 준비 했을리 만무합니다.
신앙생활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 상황입니다. 이제 회개하고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했는데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죽게 되었구나. 이제 제대로 예수 믿고 하나님을 따르기도 했는데 어려움이 왔구나 문제가 겹쳤구나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다시 한 번 믿음의 편에 서야 합니다. 한 번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끝까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병거 앞에서 더 이상 언약궤의 신비스러운 힘을 의지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사무엘의 중보의 기도를 의지합니다. 온전히 신앙적 힘으로 대처했습니다.
8절 /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신뢰하고 선지자를 신뢰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회개의 지점에서 적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그 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입니다.
백성들의 요청을 받은 사무엘은 곧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여호와께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지척까지 몰려왔는데 하나님께서 그 군대 진영에 큰 우레를 발하심으로 그들을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삼하 22:14 /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아마도 군대의 질서가 무너지고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가서 블레셋을 추격하였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역대하에도 나옵니다. 19장에서 여호사밧이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나라가 안정되고 만들고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모압 암몬 세일산 사람들이 연합하여 여호사밧을 치러 올라옵니다. 이 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에게 영이 임하여 선포합니다.
역대하 20:15 /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크게 힘을 얻은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며 권면합니다.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0절
그리고 찬양대를 앞에 세우고 찬송하며 행진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연합군을 공격하게 하셨고 또 서로 간에 자중지란에 빠져 서로 공격하면서 이스라엘은 어부지리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신앙의 결단과 순종이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에 삶에 이러한 믿음의 결단을 통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주변에서 믿음만으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세상 방법도 좀 써야 한다고 합니다. 신앙만으로는 안된다고 할 때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좌우로 치우지지 말고 끝까지 신앙의 길에 서십시오.
갈라디아서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나중에 율법주의자들이 할례도 받아야 된다고 하고 절기도 지켜야 한다고 하니 그 가르침을 따르는 모습을 보고 바울이 통탄했던 것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성령으로 시작한 것으로 성령으로 마치지 못하고 육체로 마치려고 하는가? 라고 책망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으로 시작한 것을 반드시 성령으로 마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