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행22:3-24)
갈등
1. 사람이 죽음의 위협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구조된 후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합니다.‘하나님이 왜 나를 살려 주셨지?’혹은‘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여러분도 삶에서 극적으로 구출되거나 기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으셨나요? 여러분 중에는 큰 병을 이겨낸 분도 있을 것이고, 인생의 큰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경험을 가진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그 순간부터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의 위기에서 구조되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이방교회의 구제헌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방인들이 힘을 모아서 유대인들을 도왔으니까요.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사도 바울을 죽이고자 기다린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갈등을 줄이려고 머리를 깎고 유대교적 결례를 행했습니다. 그가 이 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과 화목을 하려고 순종했어요. 하지만, 이 일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바울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했던 유대인들은 아시아(시리아-터키)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군중들에게 외쳤습니다.“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 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21:28) 바울이 1-3차 전도 여행을 하며 복음 전도하는 것을 현장에서 보았던 유대인들이 분개했습니다
2. 복음과 유대교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가 못 박아 죽였고, 여전히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부정해요. 바울이 주님을 믿는 헬라인과 예루살렘 시내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성전에 들어갔다고 착각하며 공격을 했습니다. 성전에는 바울만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성전에서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과거 유대교의 열성적 지도자로서 자신의 동족과 전통을 배신한 듯 보였고, 그들의 분노는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성내에서 소동하는 것을 보고 이 소식이 로마 장교 천부장에게 들렸습니다. 천부장이 백부장들과 함께 달려가 보니, 유대인들이 바울을 치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달려오자,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 치기를 멈추었습니다. 이 일에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했던 천부장이 개입하고 바울을 결박하고 상황 파악을 했어요. 군중들이 각기 이런 말로 저런 말로 외쳤고, 천부장은 바울을 자기 영내로 데려갔습니다. 군인들이 압송하는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바울을 폭행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보호해주며 압송하는 천부장과 대화하며 유대인 군중들에게 말을 할 수 있도록 청했습니다. 바울이 천부장에게는 헬라어로, 군중들에게는 히브리어로 말했습니다. 바울은 자칫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천부장을 통해 구사일생으로 구조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는 그들을 향해 진리를 전하려 합니다. 왜일까요?
갈등 심화
3. 사도 바울은 군중들에게,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고 말했습니다.(22:1) 변명, apology는 법정에서 변호사가 변호하는 말인데 복음 전도 메시지를 당시에는 변명이라고 대신했어요. 바울이 해외인 다소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는데 그가 헬라어로 말하지 않고 히브리어로 말할 때 그들이 처음에는 조용히 바울이 무슨 변명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어떻게 전했는지 당시 현장으로 갑니다. 바울은 유대인 군중 앞에서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3-4절,“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는지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먼저 말을 했어요. 그가 누구였는지 듣는 청중들이 다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여러분처럼 하나님께-율법에 대해서 열심이었던 것을 여러분이 잘 알지 않습니까? 내가 이 도-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고 결박하여 감옥에 감금했습니다.
4. 내가 복음-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보다 내가 하나님과 율법에 충성되었던 것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증인입니다. 내가 이분들에게 공문을 받아서,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고 했어요. 다메섹에 거의 다가가는데 정오쯤 되어서 하늘에서 갑자기 내게 큰 빛이 둘러 비쳤습니다. 나는 무기력하게 엎드러졌고 비몽사몽 가운데 있었는데,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서 나오는 그의 경험 이야기를 그대로 유대인 군중들 앞에서 이어갔습니다.
다메섹에서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들었던 경건한 사람 아나니아와 만난 이야기-그가 자신의 눈을 뜨게 기도해준 이야기-또 아나니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비전까지 전했습니다. 14-15절,“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바울은 자기 소명 이야기를 군중들에게 계속했고, 그의 말을 들은 군중들이 더욱 성내게 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의 간증을 들으면 더욱 성낼 것을 알면서도 왜 굳이 이 말들을 했을까요?
실마리
5. 사도 바울은 아시아와 유럽에 세 차례 전도 여행을 하면서 항상 유대인 회당을 찾았습니다. 그는 회당에서 설교할 자격이 있었어요. 그는 바리새인-서기관(소페르, 율법 교사-라비)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유대교 회당에서 설교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가 설교를 한 후에 반응은 항상 극단으로 나눠졌습니다. 경건한 이방인들과 극히 일부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믿고 따랐지만, 대부분 유대인들은 복음을 듣지 않고 바울을 해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는 늘 격렬한 반대와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저것 따져서 유익이 될 경우에만 복음을 전하는 지혜로운 사람-비겁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임을 당해도 복음을 지금까지도 전했어요.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음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셔서 다시 호흡이 살아나고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돌을 던졌던 그 성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성난 유대인 군중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천부장의 개입으로 구사일생을 했습니다. 그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신상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6. 사도 바울은 성난 유대인 군중들 앞에서라도 지금 아니면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이 천부장에게 유대인 군중들을 향해서 말할 수 있도록 간청한 이유가 이것이었습니다. 군중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외국에서 주로 사는)인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고, 히브리 말을 잘하는 것이 신기한지 경청을 했어요. 바울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듣고 저렇게 말하면 듣지 않을 것을 따지며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을 부를 때 주신 소명처럼, 보고 들은 것을 철저히 증언하는 자였습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자라는 말과 일치합니다. 죽어도 거짓을 말하거나 보고 들은 것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서 보고 들은 것을요. 바울은 자신도 히브리인이고, 바리새인이고, 서기관-율법 교사 출신이기에 현재 자기와 같은 동족들이 자신과 같이 변화되기를 바랬습니다. 자기의 말을 듣고 있는 군중들 중에서 몇 명이 듣고 변화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경험적 이야기를 그들이 들으면서 그들이 자기와 같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7.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초기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듣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18절,“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바울이 이 이야기까지 공개하는 것을 보면, 그는 정면돌파형입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깨닫기 원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듣지 않는다고 해도 바울은 그들에게 끝까지 복음을 전할 것이라는 의지를 전했습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인 이야기,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유대인들이 아닌 멀리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셨던 이야기를 하자, 성난 군중들은 더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감정 폭발을 했습니다. 22-23절,“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바울은 그가 말할 때 이렇게 반응할 것을 모른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완악함을 알면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 제시
8. 사도 바울이 바보가 아니면서도 정면돌파를 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동력은 그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험의 정도에 따라 전도하는 열정과 모습이 확연히 달라요. 전도자의 모습을 보면서 나무라지 말고 그들이 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고 협력할 줄 아는 것이 좋습니다.(성숙한 신앙인의 자세) 하나님은 여러 유대교인 리더십 가운데 바울을 선택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는 차세대 유력한 유대교 리더십에 속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복음을 믿고 따르기가 어려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를 부르신 방식이 독특했던 것은, 그를 한 번에 완전히 사로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각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바울은 자기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받은 것을 매우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을 아는 그는 언제나 겸손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이 만나주신 사람들 이야기 목록을 이야기하며,“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전15:5-10) 바울에게 그 사랑은 자신의 안전보다도 더 큰 가치였고, 오히려 이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그분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기대
9.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고서, 그를 본받으며 전도와 선교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아무나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확실한 은혜를 경험하고 누려본 사람이 할 수 있어요. 오늘 우리가 전도와 선교에 참여하기를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돌아보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말씀을 읽고 순종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세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과 함께 하고 성령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살라고요.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할 때 바울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여러분은 복음을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내가 보고 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증언하기 위해, 내 삶에서 바울처럼 용기를 낸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나요?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신대로 그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