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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주모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톰 크루즈 분)
[ 영화, 발키리(Valkyrie) ]
영화 <발키리>는 히틀러 암살 계획을 배경으로 한 실화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비단 이 영화의 간판 스타로 나오는 톰 크루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액스맨>과 <유주얼 서스펙트>를 연출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오랜만에 스릴러 장르로 돌아와 만든 작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발키리>에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면면은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톰 크루즈는 부족할 것 없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또한 여러 중견배우들과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 편입니다.
* 암살작전의 주모자들
실화를 영화화하는 것, 특히 잘 알려진 역사를 영화로 만드는 것에는 꽤 위험이 따릅니다. 결론이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단순한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게 아니라 픽션의 요소를 가미해 일종의 가상역사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역사를 통해 관객이 결론을 미리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기대감(영화 속에서라도 통쾌하게 쿠테타가 성공하는 것)을 품게 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인 것입니다. 장면 장면이 긴장감 속에 숨이 막히고 작전에 개입되는 수많은 우연의 순간들이 가슴을 저리게 만듭니다.
* 사형 집행 광경
이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독일이 제작에 참여한 것은 영화라는 콘텐츠를 통해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 속에도 “의인이 적어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하는 독일인들의 의도가 도사리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유태인을 구하고자 했던 오스카 쉰들러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감행했던 사람들이 독일에 있었다는 것, 당시 독일인들이 전부 히틀러에 맹종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실화의 주인공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후손들이 톰 크루즈가 실제 인물에 비해 키가 너무 작다고 항의했다고 하는데...그래도 이렇게나마 주인공의 활약을 다이나믹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바로 톰 크루스가 아닐까싶습니다.
* 쿠데타 진압군 부대장, <택시 운전사>의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
* 발키리(Valkyrie)
북유럽 신화에서 주신(主神)인 오딘을 섬기는 싸움의 처녀들을 말합니다. 고대 노르웨이어로는 발퀴랴(Valkyrja)라고 부르며, '전사자(戰死者)를 고르는 자'란 뜻입니다.
이들은 반신녀(半神女)들로서 평소에는 전사자들의 궁전인 발할라에서 전사들을 접대하다가 인간계의 전쟁에서 용감한 전사자가 생기면 오딘의 명에 따라 여신 프레이야의 통솔을 받으면서 전장에 나가 전사자들을 발할라 궁전으로 데리고 가는 역할을 합니다.
[ 간략한 줄거리 ]
독일군 장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폭탄을 맞아 오른팔과 왼쪽 손가락 2개를 절단하고, 눈 하나를 잃은 장애인입니다. 군에서는 그에게 제대를 권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예비군 참모가 됩니다.
강직한 성품의 그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 전체가 히틀러라는 미치광이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어떤 방식으로 히틀러를 제거할까 고심하던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집에서 아이들이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발키리의 기행>을 틀어놓고 전쟁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바로 발키리 작전입니다. 발키리 작전은 본래 히틀러가 베를린이 비상사태에 빠지게 될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비상작전인데, 이것을 역이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부관과 함께 총통의 작전 본부인 늑대 굴로 들어갑니다. 늑대 굴에는 모두 세 개의 검문소가 있지만, 슈타우펜베르크는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합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히틀러의 측근인 카이텔로부터 히틀러가 오후에 무솔리니와 회담이 있어 회의를 일찍 끝낼 것이며, 날씨가 더워 회의 장소가 바뀌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슈타우펜베르크는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며 대기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부관과 함께 가방에서 폭탄 캡슐을 꺼내 조심스럽게 캡슐을 깹니다. 이때 시간은 12시 32분. 폭탄은 10분 후에 터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12시 36분, 회의실로 들어가기 직전, 슈타우펜베르크는 전화 교환수에게 베를린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올 예정이니 오는 즉시 알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중간에 회의실을 빠져나오기 위해 미리 구실을 만들어놓은 것이죠.
* 늑대 소굴로...
대령이 회의실에 들어갔을 때 육군 참모총장 호이징거가 히틀러를 비롯한 20여 명의 사람들 앞에서 동부전선과 이탈리아 전선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었습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안내자에게 청력이 좋지 않으니 총통과 가까운 자리로 안내해 달라고 말합니다. 폭탄이 든 가방을 히틀러와 가까운 곳에 놓기 위해서입니다. 히틀러 옆으로 간 대령은 근처에 있는 테이블 밑바닥에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이제 5분 후면 폭탄이 터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대령에게 전화가 왔다고 누군가 알려줍니다. 그는 전화를 받는다는 핑계로 회의실을 빠져나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불행한 일이 벌어집니다.
* 늑대굴의 폭발, 그러나...
호이징거의 부관 브란트 대령이 테이블 밑에 있던 가방을 발로 건드린 것입니다. 브란트는 가방 때문에 히틀러가 거추장스러워할 것이라고 여기고, 폭탄이 든 가방을 자기가 있는 쪽으로 끌어다 놓습니다.
호이징거의 브리핑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폭탄이 터지고,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무사히 폭탄이 터진 것을 확인한 대령은 부관과 함께 서둘러 늑대 굴을 빠져나옵니다. 폭발음을 듣고 히틀러가 죽었다고 확신한 대령은 12시 55분, 라스텐부르크 비행장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갑니다.
* 부상당하기 전, 북아프리카 전선의 슈타우펜베르크
하지만 슈타우펜베르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거나 중경상을 입었지만, 히틀러는 가벼운 부상만 입은 채 살아났습니다. 히틀러는 배신자들을 남김없이 죽여 버릴 것을 명령하고,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을 비롯해 암살 계획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이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 히틀러 암살 음모 - 발키리 작전 ]
클라우스 센크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대령은 프로에센 귀족출신의 장교였습니다. 그도 젊은 시절에는 한때 히틀러를 독일 민족을 구할 진정한 지도자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1939년에는 대 폴란드전이 시작될 쯤에는 ‘바보가 불장난을 시작하고 있다’고 비난할 만큼 반나치주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좋은 가문과 훌륭한 경력, 뛰어난 능력으로 촉망받는 청년장교 슈타우펜베르크는 1943년 4월에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오른쪽 팔과 한쪽 눈을 잃었고, 이 부상은 전도양양하던 이 장교의 인생행로를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 암살현장의 히틀러와 무솔리니
병상에서 일어난 그는 손가락이 세 개밖에 남지 않은 왼팔 하나로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예편을 하고도 남을 중상이었지만 슈타우펜베르크는 군대에 남을 것을 원했고, 그런 그에게 OKW(국방군 최고사령부)의 예비군 동원 참모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졌습니다. 예비군 참모장은 수시로 라슈텐부르크의 총통지휘소를 들락거리며 보고를 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루드비히 베크를 만났고, <발키리 작전>이라 명명된 거사 계획이 완성되었습니다.
‘폭음과 함께 히틀러의 몸이 산산 조각이 나는 그 순간 볼프 하인리히 폰 헬도르프가 지휘하는 전투경찰부대와 하인리히 힘러의 SS 병력을 제압하고 정부청사와 방송국, 신문사를 점거한다. 멀리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에서도 쿠데타에 가담한 장교들이 병력을 이끌고 대대적인 봉기에 나설 것이며, 베크가 수상으로 추대된 독일 임시정부가 곧바로 연합군과 화평교섭에 착수한다‘는 그 계획은 상당히 구체적이고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특히 슈타우펜베르크는 자신이 존경하던 에르빈 롬멜원수가 이 쿠테타 계획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고 놀랐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사막의 여우로 용맹을 떨쳤던 원수는 수십만의 부하들이 그곳에서 절망했고, 그 후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을 때 히틀러에게 이제 그만 서방연합국에 평화조약을 요청할 때라고 탄원서를 내었지만 그것조차 거부당하자 마침내 쿠테타에 가담할 것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 영화에서...진압부대
1944년 7월 20일 새벽
바야흐로 노르망디의 독일군이 팔레즈에서 몰살위기에 처해있고 동부전선에서는 소련본토를 완전히 수복한 소련군이 폴란드 국경을 넘기 시작한 그 시각,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은 베를린의 저택에서 일어나 세 개뿐인 손가락으로 힘겹게 군복을 입었습니다.
약 2시간 후
백작은 부관 헤프텐 중위와 함께 베를린의 란스도르프 공항을 떠나 동프로이센의 라슈텐부르크를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짐짓 태연한 척 했지만 젊은 중위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습니다 - 두 사람의 서류가방 안에는 영국제 플라스틱 폭약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영국 정보부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게 공수해준 것을 우연히 입수한 이 폭탄은 신관 속에 작은 유리관이 깨어지면 산성용액이 유출되고, 이것이 신관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철제핀을 부식시키면 곧바로 용수철이 뇌관을 때려 폭발하는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폭탄은 금속제 외피가 없기 때문에 살상력이 높은 파편을 발산시킬 수 없고, 순전히 폭발에서 발생하는 폭풍과 열 그 자체만이 유일한 살상수단이므로 가능한 한 목표물 가까이서 폭발해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 실제 슈타우펜베르크와 톰 크루스
하지만 총통지휘소 안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은 허리의 권총을 풀어 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친위대의 경호원들로부터 금속 탐지기로 샅샅이 몸수색을 받게 되어있으므로 다름 무기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라슈텐부르크에 도착한 슈타우펜베르크는 조종사에게 즉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고 기다릴 것을 지시하고 총통지휘소롤 향했습니다. 세군데의 검문소를 통과한 차는 마침내 늑대굴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총통의 집무실 겸 숙소에 도착했고, 회의가 시작되는 정오까지 슈타우펜베르크는 식사를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동료 장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 사건 후의 히틀러와 괴링, 히틀러가 부상당한 팔을 만지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국방군 총사령부의 통신감 에리히 펠기벨 중장이 "모든 것이 잘 되길 비네"라는 말과 함께 슈타우펜베르크와 악수를 하고 헤어지는 의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정오가 지나자 슈타우펜베르크는 카이텔 원수의 집무실에 들러 총통에게 하도록 되어있는 브리핑 내용을 요약하여 보고했습니다.
12시 20분경에 두사람은 함께 총통회의실로 가기위해 방을 나왔고, 그때 슈타우펜베르크가 말했습니다. "아! 참, 모자를 부관실에 두고 나왔군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무도 없는 총사령관 부관실에서 슈타우펜베르크는 가방속의 폭탄을 꺼내었습니다.
* 영화에서...늑대굴에서 초조해하고 있는 통신감 펠기벨 장군
세 개뿐인 손가락으로 집게를 사용하여 유리캡슐을 깨는 그 작업은 그 동안 수십번이나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손이 떨렸습니다. 마침내 캡슐이 깨어졌고 슈타우펜베르크는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았습니다 - 이제 폭발까지는 딱 10분이 남았습니다.
슈타우펜베르크가 가방을 들고 돌아왔을 때 카이텔은 약간 화가 나 있었습니다. "회의시간에 늦는 것을 총통이 아주 싫어하는 걸 모르나? 그나저나 불편해 보이는데 그 가방 내가 들어줄까?" "괜찮습니다. 오늘 총통께 보고할 자료가 들어있습니다." 백작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섰을 때 회의는 시작되어 있었고, 히틀러가 의자에 앉은 채로 뒤를 돌아보며 두사람을 맞이했습니다. 그 바람에 총사령부의 작전참모 호이징거 중장의 동부전선 전황보고가 잠시 끊어졌지만 카이텔이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고, 두사람이 제자리에 앉자 회의는 계속되었습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옆사람에게도 들릴 만큼 쿵쿵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면서 두툼한 참나무 테이블 밑에서 바닥에 내려놓은 서류가방을 슬그머니 히틀러 쪽으로 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주의가 호이징거에게 쏠려있는 틈을 타서 살그머니 빢으로 빠져나왔습니다.
백작이 자리를 뜬 직후, 히틀러의 부관 브란트 중령의 발이 서류가방에 닿았습니다. 단단한 서류가방이 바닥에 쓰러질 때는 꽤 큰소리가 난다는데 생각이 미친 중령은 그것을 집어 테이블의 저쪽 - 히틀러의 반대편 -에 기대 놓았습니다. 폭발 2분전이었습니다.
* 영화에서...
1944년 7월 20일 낮 12시 42분.
슈타우펜베르크는 총통지휘소에서 100여m 떨어진 자신의 승용차 앞에서 펠기벨 장군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폭음이 울렸습니다. 백작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멀리 튕겨버리고 차에 뛰어 오르면서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터졌군요." 자동차는 공항으로 달렸고, 오후 1시 무렵에 백작이 탄 비행기는 라슈텐부르크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죽었다. 이제 틀림없이 히틀러는 죽었다." 슈토르히 경비행기에는 무전기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백작은 이때부터 베를린에 도착할 때까지 약 4시간동안 전혀 외부소식을 접할 수 없었지만, 만일 진실을 알았다면? 그 때 지상에서는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 히틀러는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 영화에서...
폭발 순간 히틀러는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상체를 숙이고 있었고, 그 때문에 총통이 직접 골랐다고 하는 두터운 참나무 테이블이 충격을 차단해 버렸던 것입니다.
회의실 천정에 큰 구멍이 뚫리고 유리창이 모두 날아가 버린 그 아비규환 속에서 4명이 죽고 열댓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바지가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귀고막이 터져버린 총통은 카이텔에 이끌려 무사히 회의실을 빠져 나왔습니다.
* 영화에서...
살아있는 히틀러의 모습을 직접 확인한 펠기벨 장군은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습니다. ‘틀림없이 히틀러가 죽었다고 믿은 다른 동지들은 예정대로 발키리 작전을 개시한다면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고 생각한 그는 즉시 동지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총통 지휘소에서 외부로 연결하는 모든 전화는 친위대에 의해 도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신감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펠기벨의 경고신호는 무슨 얘기인지 요령부득이 되어버렸고, 이 바람에 베를린에서 대기하고 있던 베크를 비롯한 음모자들은 도피의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 반 격 >
3시 35분, 베를린의 란스도르프 공항에 도착한 슈타우펜베르크는 경악했습니다. 그가 하늘에 떠있는 세시간 동안 모든 상황이 숨가쁘게 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습니다. 퇴역 육군대장 루드비히 베크는 그 시각 독일의 새 국가원수로 취임할 준비릉 갖추고 국방성에 도착해 있었고, 반란군 부대는 행동을 개시하여 관공서 건물들을 장악했습니다.
슈타우펜베르크를 비롯한 반란군 주모자들은 몇몇 부대의 지휘관들에게 이제 히틀러는 죽었으니 대의를 위해 우리 편에 가담하라고 설득하기위해 동분서주 했고, 오랫동안 양쪽의 힘을 저울질 하면서 어느 쪽에 붙는 것이 유리할까를 계산하고 있던 국민 예비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프롬 같은 자들은 총통이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 영화에서...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그날 오후가 다 지나갔고, 오후 9시경에 발표된 라디오 뉴스가 결정적으로 대세를 갈라놓았습니다. 암살기도 사건이 있었지만 총통은 무사하며, 곧 총통의 특별성명이 발표될 것이라는 그 뉴스는 베크를 비롯한 반란자들에게 있어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곧이어 라슈텐베르크의 카이텔 원수도 독일 전역과 모든 점령지 사령관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총통이 살아있음을 알렸습니다. 일선부대를 지휘하는 장군들 중에서 누가 반역자이며 누가 믿을만한 사람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한시바삐 쐐기를 박아놓을 필요가 절실했던 것입니다. 그 정도만으로도 프롬처럼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자들이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는 충분했습니다.
* 늑대굴에서 히틀러
프롬은 당장 부하들을 이끌고 국방성으로 달려가 베크와 슈타우펜베르크, 그리고 다른 몇사람의 쿠테타 핵심인물들을 체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개처럼 끌려나와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불빛 아래서 국방성 앞뜰에 나란히 세워졌고, 거기서 바로 총살이 집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비겁자 프롬에게 돌아간 것은 '반역음모를 분쇄한 영웅'이라는 찬사가 아니라 교수대의 밧줄이었습니다. 곧바로 시작된 친위대의 수사에 의해 그 자신도 오래전부터 이 음모를 인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장난쳐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체포와 복수의 피바람이 독일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히틀러는 "그 더러운 배신자들을 한꺼번에 죽일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여라"고 펄펄 뛰었고, 특히 친위대 장관 히믈러는 오랜만에 물을 만난 고기와 같았습니다.
* 암살현장, 흰 제복의 제국 원수 괴링
이 사건의 수사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이 이끄는 친위대와 게쉬타포에 맡겨진 이상, 손톱만큼이라도 나치와 SS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세력을 뿌리채 일소해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검거되었습니다.
체포된 용의자는 공공연히 반나치주의자로 알려진 전 라이프치히 시장 칼 괴르델러,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첩보국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인물 빌헬름 카나리스 제독, 국방군 통신감 펠기벨 장군,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 장군같은 핵심인물로부터 말단 위관급 장교들에 이르기까지 7,000명에 달했습니다.
특히 슈타우펜베르크 백작 일가에 내려진 형벌을 가혹했습니다. 백작의 아내를 포함하여 슈타펜베르크라는 성을 쓰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남김없이 체포되었습니다. 악명 높은 나치주의자 프라이슬러 판사의 주재로 진행된 재판은 정당한 사법절차라기 보다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 그 자체였습니다.
* 슈타우펜베르크와 자녀들
노르망디에서 후퇴 중인 독일군을 지휘 중인 크뤼거 원수가 그 와중에 자살했습니다. 그의 자살이 단순히 패전의 책임을 진 무장으로써의 결단이었는지, 혹은 일찌감치 발을 빼긴 했지만 총통암살의 음모를 인지하고도 그것을 친위대에 밀고하지 않은데 대해 추궁받게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지는 알도리가 없습니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이 대대적인 검거와 숙청의 피바람이 상당수의 유능한 지휘관들을 처형하거나 사기를 떨어트려 놓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궁지에 몰려있던 독일군의 전력이 더욱 악화일로를 치달아가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 영화에서...아프리카 전선의 슈타우펜베르크
이 사건 이후로 히틀러는 육군의 군복을 입은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고, 신병의 징집과 병력배분 업무까지 친위대 장관 히믈러에게 맡겨버림에 따라 치열한 힘겨루기를 계속해오던 무장 친위부대(SS)가 육군보다 모든 면에서 우위를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때부터 독일 육군은 전통적인 군대의 거수경례대신 오른손을 굳게 쳐드는 나치당원들의 경례방식을 강요받게 되었고, 군의 모든 요직은 무장 SS의 장교들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 영화에서 부인과...
이후로도 종전시까지 독일 육군은 군인의 명예와 애국심으로 최선을 다해 싸움을 게속했지만, 육군에 소속되어 있던 수많은 외국출신의 의용군들이 무장 SS로 전속되고 신규 보충병과 최신형 무기는 무장 SS에 가장 먼저 보급되는 등의 노골적인 차별대우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필연적으로 제3제국의 패망을 그만큼 더 앞당겼을 거라는 점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런 피바람을 불러온 히틀러의 목숨은 그 이듬해인 1945년 4월 30일에 베를린 총통 지하호에서 한발의 총성이 울려 퍼질 때까지 약 10개월간 더 연장되었을 뿐이었습니다.
* 영화에서...
사형판결이 내려진지 불과 두시간 후인 8월 8일 오후에 8명의 주모자가 히틀러의 말 그대로 ‘도살장의 돼지처럼’ 교수대에 매달리는 것을 시작으로 거의 200명의 관련자가 처형되었습니다. 이처럼 복수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히틀러도 자신이 그토록 신임했던 롬멜과 크뤼거 두 원수가 이 음모에 연루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는 충격을 받은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 두사람에 대해서만큼은 “명예롭게 죽음을 택할 기회를 주라. 독일의 국민적 영웅이 더러운 음모에 가담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국민들의 사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다소 지각있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 롬멜 원수
* 롬멜의 장례식
롬멜 원수는 순순히 자결을 택하면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고 아프리카에서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했다는 발표와 함께 성대한 국장을 치러주겠다는 조건에 동의하고 독배를 마셨습니다. 때마침 노르망디 전선의 팔레즈에서 대패를 당하고 후퇴하고 있던 크뤼거 원수도 자결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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