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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좋은 제자들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참좋은 제자
인생살이에 단맛을 더해주소서! (시편 19:7-14)
아프리카든 남아메리카든 정글 속 어디에서든 빠지지 않고 꼭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꿀입니다. 꿀이 귀한 것이므로 벌에 쏘이면서도 꿀을 땁니다. 어떤 용감한 남자는 목숨을 걸고 높은 나무 꼭대기 위에 오랜 시간에 걸쳐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꿀을 따다주는 남편을 하늘에서 별을 따다주는 것처럼 여기고 “우리 남편 최고야!”라고 추켜 세워줍니다.
꿀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럴까요? 꿀을 먹지 않으면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꿀에 어떤 성분이 있기에 힘이 날까요? 꿀에는 단백질과 미네랄 등의 영양 성분이 종합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종합영양식품이라고 합니다. 특히 당류가 80% 정도인데, 그 가운데 과당과 포도당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포도당은 주로 체내 근육 세포에서 연소하여 생명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발생합니다. 당분은 이처럼 우리 몸에 에너지를 생산하고 공급합니다. 그러므로 당분이 부족하면 정상 활동이 어렵습니다. 심한 피로가 옵니다. 그럴 때 꿀을 먹으면 피로가 빨리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영양을 회복하려고할 때 포도당 주사를 놓기도 합니다.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에 혈당을 공급해야 정상적으로 활동합니다. 그런데 아침을 먹지 않거나 해서 뇌에 당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현기증을 느낍니다. 머리가 “띵” 해집니다. 그리고 뇌에 당분이 부족해지면 신경질적이 됩니다. 이것이 보내는 신호는 “당분을 더 공급해주세요!”라는 신호입니다. 그럴 때 음식을 먹거나 단것을 먹으면 뇌에 당분이 공급되어 기분이 한결 좋아집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성경 말씀은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꿀은 ‘벌꿀(데바쉬)’을 말합니다. 그런데 송이꿀은 어떤 꿀일까요? 송이꿀이 어떤지를 알려고 양송이에다가 꿀을 묻혀 먹은 적이 있습니다. 향긋하고 달콤한 맛이 났습니다. “바로 이 맛일거야!” 아닙니다. ‘송이꿀(노페트)’은 ‘벌집(추프)’에서 “뚝뚝” 흘러 떨어지는 꿀을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은 이러한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14절) 꿀맛보다 더 답니다.
그렇다면 먼저 꿀맛이 어떤지 알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꿀맛을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꿀맛 참외, 꿀맛 수박” “밥맛이 꿀맛이네.” “꿀맛 같은 휴가”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이런 사이트도 있습니다. 서울시 교육청 사이버 가정학습 사이트인데 “꿀맛 닷컴”입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꿀맛을 잘 알고 꿀맛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인생살이가 여전히 힘들 때가 있습니다. 사는 게 신경질이 나고, 피로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머리가 “띵” 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내 인생살이에 당분을 더 주세요!”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럴 때 무엇을 더 집어넣으면 될까요? 꿀을 더 집어넣으면 됩니다. 꿀이 들어가면 단맛이 나고 감칠맛이 나고 살맛이 납니다.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달콤한 노래를 부르는 인생을 삽니다. 우리도 이러한 달콤한 인생이 될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생살이에 있어서 꿀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이 내 몸에 들어오고 내 인생에 들어오면 꿀맛이 납니다. 힘들고 지친 몸과 인생에 에너지가 생기고 사는 게 재미가 있어집니다.
본문 7절에서 9절까지를 보면 말씀이 그렇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합독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아멘.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은 꿀이 피로를 회복시켜주는 것처럼 말씀이 우리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성경은 생명을 주기도 하고, 성경은 진리가 무엇인지도 깨닫게 해줍니다. 그리고 성경은 참된 길이 되어줍니다. 이 길을 알고 사는 사람은 우왕좌왕하지 않습니다. 어느 길이 구원의 길인지 압니다. 생명의 길인지 압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길이요 천국의 길인지 알고 예수님을 믿고 따릅니다. 이 길은 살맛이 나게 만듭니다. 지금 여기서만 아니라 영원히 살맛이 나게 만듭니다.
이런 재미가 있는 뉴스가 있습니다. 부산은행이 기존 상품과 차별화된 통장을 선보였습니다. ‘달콤한 인생 통장’ ‘달콤한 인생 정기예금’ ‘달콤한 인생 적금’ 이란 세 가지 통장입니다. 멋지게 살아온 고객의 인생이 앞으로 더 빛나고 달콤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라고 합니다. 달콤한 인생이 되도록 여러 가지 많은 혜택을 준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장치는 달콤한 인생에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을 위한 보다 확실한 투자는 보장받지 못합니다. 참된 달콤한 인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금은 육신의 평안을 위해서는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이 살맛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아멘.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우리 영혼을 살리고 살맛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평안과 더불어 영적인 도움도 받아 사시길 바랍니다.
에스겔 3장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두루마리 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 3:2,3). 아멘.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루마리 말씀을 먹으니까 꿀같이 달아졌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으면 우리 인생도 달게 될줄로 믿습니다.
꿀의 효능은 큽니다. 꿀은 천연약제로 종합영양식품입니다. 세례요한은 아이 때 광야에 가서 어른이 되어 본격적으로 사역하기 전까지 오랜 세월동안 광야에서 살았습니다(눅 1:80).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사는 동안 메뚜기와 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 3:4). 석청은 꿀을 말합니다.
다윗 왕의 절친한 친구인 요나단도 꿀을 먹고 원기를 회복했습니다(삼상 14:24-27).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그들이 다 수풀에 들어간즉 땅에 꿀이 있더라. 백성이 수풀로 들어갈 때에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그들이 맹세를 두려워하여 손을 그 입에 대는 자가 없었으나, 요나단은 그의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하여 명령할 때에 듣지 못하였으므로 손에 가진 지팡이 끝을 내밀어 벌집의 꿀을 찍고 그의 손을 돌려 입에 대매 눈이 밝아졌더라.”
꿀은 이처럼 몸에 매우 좋은 효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꿀은 이보다 더 큰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을 시킨 후에 어디로 데려가셨습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에스겔 20장을 보면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노라. 그 날에 내가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겔 20:5,6). 아멘.
가나안 땅은 실제로 들이나 산에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앞서 봉독해드린 말씀 가운데 “꿀이 있더라”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 “벌집의 꿀을 찍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이 송이꿀입니다. 이러한 꿀이 가나안 땅에 실제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영적으로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땅은 영적으로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면 꿀맛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으면 영혼이 소생하고 살맛이 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잘 받아먹어서 꿀맛 인생을 살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푸념하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나는 마지못해 사는 산다. 나는 죽지 못해 산다.” 그런데 이런 삶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나는 살맛이 난다”라고 말합니다. 살맛이 나는 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표본 조사한 것에 의하면 사랑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많습니다. 가족도 있고, 직장도 학교도 있습니다. 친구도 이웃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면 성도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대상이 많습니다. 그들을 사랑해보십시오. 그들과의 사랑에 “푹” 빠져 보십시오. 살맛이 저절로 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커피는 어떤 커피일까요? 가장 단 맛이 나는 커피일까요? 이런 시가 있습니다. “커피가 아무리 맛이 있다 해도, 사랑이 아무리 감미롭다 해도, 아무리 커피를 좋아하는 그대일지라도, 커피만으로 그대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듯이, 사랑만으로 그대의 가슴을 채울 수는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커피는 사랑하는 이와 마시는 커피랍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처럼 살맛이 납니다. 똑같은 인생을 살아도 꿀맛이 납니다. 그러므로 사랑에 “푹”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그 가운데 더 큰 사랑에 빠져보십시오. 그러면 더 살맛이 납니다. 인생살이에 단맛이 더해집니다. 그 사랑의 대상은 무엇일까요?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과의 사랑에 푹 빠진 사람은 꿀맛이 납니다.
리처드 그리넘이란 분은 성경 말씀에 빠진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말씀에 설복 당할 때, 나는 마치 꿀을 맛보듯이 달콤하고 즐겁나이다.” 박윤선 박사는 말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주석합니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은 그 사랑하는 대상에게 점령되는 법이다. 진실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론적으로 접촉하지 않고, 온 인격을 기울여 관계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얼마나 성경을 사랑했는지 “모든 영토는 버릴지언정 성경은 버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19편 162절과 163절을 보면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성경 말씀에 “푹” 빠지면 본문 10절과 같이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라고 고백합니다. 사랑하고 사모하는 대상이 성경이 됩니다.
성경이 만든 사람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도 성경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세계 주일학교 연합회 총재로 선출된 후 세계 주일학교 대회에서 전한 메시지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구세주 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 주님 안에서 제 인생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이었지만 저의 힘과 능력이 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과 동행했을 때,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파리가 실수해서 그만 커피 잔속에 빠졌습니다. 그때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쓴맛 단맛 다 봤다.” 인생을 살다보면 쓴맛과 단맛을 봅니다. 그럴 때 사랑에 빠지면 살맛이 납니다. 앞에서 읽어드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커피라는 시를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커피가 아무리 맛이 있다 해도, 사랑이 아무리 감미롭다 해도, 아무리 커피를 좋아하는 그대일지라도, 커피만으로 그대의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듯이, 사랑만으로 그대의 가슴을 채울 수는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커피는 사랑하는 이와 마시는 커피랍니다.” 우리도 하나님과의 사랑에 “푹” 빠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에 “푹” 빠져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성경 말씀에 “푹” 빠져 살면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올까요? 여전히 허전하고 신경질이 나고 피로할까요? 오히려 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신나는 인생을 삽니다. 더 나아가 영원히 꿀맛이 나는 인생을 삽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면 그런 인생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잘 받아먹으면 영원히 살맛이 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영적 미각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자는 새롭고도 초자연적인 감각, 곧 신령한 미각을 지니게 된다. 성경은 영적 미각과 영적 식욕의 대상을 언급하고 있다. 성경은 영혼의 달콤한 음식이다. 은혜 받은 심령은 하나님의 계명을 정금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긴다. 이를 가리켜 영적 미각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에서 맛볼 수 있는 단맛이라고 선언한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조지 보언은 “우리의 마음은 말씀 속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만족할 수 없는 내 영혼은, ‘내게 말씀을 주소서’라고 외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은 “내 인생살이에 단맛을 더해주소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외침을 외면하지 마시고, 우리 영혼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더해주십시다. 그러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모두 단맛이 나는 인생을 살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