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운구대에 누워 마지막 미사를 봉헌하게 되시는 임금순 마리아 할머니의 장례미사를 집전하면서, 먼저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위로를 전해드립니다. 97세의 나이로 선종하시게 되면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중에 곁에 계신 자매님들 중에 한 분이 듣더니 “호상이네요”하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유가족들에게 호상이 어디 있습니까... 죽음은 다 슬픈 겁니다. 여러분들은 행여나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아드님 파비아노 형제님과 통화하면서 사도예절을 원하신다고 하셔서 재차 여쭈어 보았습니다. 사도예절은 말씀의 전례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고별식만 하게 되면 5분이면 끝나게 되는 전례입니다. 생전에 미사도 잘 못 나가시고 아드님 본인도 본당에 봉사도 잘 못하신다는 자격지심에 어머니가 기도 못 받으시게 돼서 저는 재차 미사를 권했는데 사도예절만 하는 것으로 전화를 끊었다가 다시 사무실로 전화주셔서 장례미사 원하신다고 하니 다소 한시름 놓았습니다.
우리가 뭘 얼만큼 어떻게 하든 부모님께 받은 은혜, 갚을 길이 없습니다. 기도라도 해 드려야지요. 그런데 또 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기도라도 해 드린다, 기도나 한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도의 힘을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해 버리는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씩이나지요. 더구나 지금은 기도 밖에 뭘 더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기도가 전부라는 말입니다. 겨우 그것뿐이 할 게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에 사활을 걸고, 부활을 바라고 희망하며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유가족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성당 식구들이 한데 모여 기도하는데 그 기도를 주님께서 별거 아니게 받아주시겠습니까? 둘이나 셋이 모여 내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에 당신도 함께 있겠다 하셨으니, 반드시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마리아 할머니를 위해서, 이 한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다함께 엄청난 힘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집에 가셨을 때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 들어 발 디딜 틈이 없으니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은 병자친구를 들것에 누입니다. 그리고 지붕 위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붕을 뜯어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으로 자기 친구를 들 것에 밧줄을 달아 내려보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본 게 아닙니다. 그 누워 있는 친구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고쳐달라고 말 한마디 나온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공로를 쌓은 것도 없습니다. 중풍병자로 누워있는 친구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중풍병자를 위한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시는 겁니다.
그렇다고 임금순 마리아 할머니께서 아무런 공로가 없으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기도가, 유가족들의 기도가, 그 믿음이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초상이 나면 절하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라는 개념도 있지만 일단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겁니다. 천국을 가든지 지옥을 가든지 주님께 넘겨진 심판입니다. 그 교리에 의하면 기도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연옥교리를 믿으며 기도합니다. 우리들이 기도한 공로와 그 정성으로 하루빨리 연옥의 고통을 면하고 천국에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지요.
마카베오서에 전쟁을 치르고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이 마카베오서를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신교 성경에는 마카베오서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경에는 구약 맨 마지막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는 누가 구원받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느 한 사람의 일생 전부를 놓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저 사람 지옥갈 거야, 천국 갈거야 하고 함부로 말해선 안됩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언제 어떻게 구원으로 이끌어주실 지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생전의 공로와 희생, 봉사, 선행을 보시고 구원으로 이끌어주십사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만 기도할 뿐이지만 기도가 전부입니다. 우리 모두 이 미사 중에 임금순 마리아의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정성되이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 주님 임금순 마리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
첫댓글 기도가 전부... 아멘...
아멘.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