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었다. 새소리조차 얼어 붙은 이 도요지에 난데 없는 굉음이 새벽을 뒤 흔들었다. 아슴프레한 잠결에 창문을 열었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마을에는 조반 짓는 연기가 굴뚝마다 솟아 올랐다. 서리를 하얗게 쓰고 서 있는 사과나무 가지사이로 자세히 살펴보니 뽕나무골 고요한 새벽을 난도질하는 것은 거대한 포클레인이었다. 육중한 몸체를 꿈틀대며 으르렁거리는 그놈은 고사포를 쏘아대는 모습으로 육박해 왔다.
45도 경사진 20년생 사과 밭에 모닥불이 화알 활 타고 있다. 우리 과수원과는 실개천 하나 사이에 둔 사촌 형님 댁 과수원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급하게 밭으로 나갔다.
사과나무는 언제 보아도 멋있다. 주황색 띠를 두른 육중한 포크레인이 코끼리 코처럼 생긴 바가지로 사과나무를 두어번 지근거리고 나더니 옹달샘 물 퍼내듯 언 땅을 푹 파 올렸다. 커다란 사과나무가 뿌리 채 뽑혀 솟아 올랐다. 그리고는 퍽하고 나가 자빠졌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밭둑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나는 다리에 힘이 쏘옥 빠져 버려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이럴 수가 있는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과나무는 추위도 아랑곳 없이 의연한 기개를 자랑하며 떡 버티고 서서 천하를 굽어보았다. 건강한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는데.
허망했다. 형님 내외분은 이 자갈밭을 일구어 구덩이를 파고 새끼 손가락 같은 묘목을 심고 자그마치 반평생의 시간과 정성을 바쳐 기르고 가꿔 온 것이다. 그런데 반평생의 보람이 단 2분 동안에 작살나다니, 사람으로 치면 한창 왕성한 의욕으로 일에 몰두할 장년인데 사과나무는 무참히 대학살을 당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악순환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생명이 끊긴다는 것은 인간이나 식물이거나 간에 너무나 처절한 아픔이다. 모닥불을 뒤로 하고 꽁꽁 얼어 붙은 잿빛 겨울 하늘을 바라보고 섰는 아주버님의 구부정한 어깨가 오늘 따라 더욱더 초라해 보였다.
지난 봄에는 앞집 과수원까지 온 식구들이 동원 되어 긴 긴 봄날을 사과나무 캐는 일로 보냈다. 젊은 일손이 없어 노인이나 부녀자 꼬막 손뿐이라 일은 더디고 힘은 몇 배로 들었다. 우리 마을은 42호 중 19 호가 과수원 집이었는데 모두 캐어 버리고 지금은 대여섯 집 남은 셈이다.
다른 농사도 그렇지만 과수원은 자식 기르듯 돌보지 않고는 힘이 드는 농사다. 첫째는 끝없는 애정이 있어야 한다. 자식의 얼굴만 보아도 무엇이 필요한 줄 금방 알아내는 본능적인 부성애나 모성애처럼 영농자도 마찬가지다. 함께 있는 시간에 서로 나누는 무언의 대화가 이루어질 때 거기 보은의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이다. 알맞게 전정을 해서 수세를 유지해 주어야 하고 갖가지 영양분을 공급해서 건강을 지켜 주어야 한다.
때맞춰 소곡을 해서 병충해에서 보호해야 한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열매가 맺혔다고 다 키우는 게 아니다. 대여섯 개의 열매 중에서 가장 실한 한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가위로 잘라 내야 가을에 실한 과일을 딸 수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불볕 더위 속에 소독을 하고 잡초를 뽑아 주고 과일이 크는 대로 고임대를 받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서둘러 동상을 입지 않도록 수확해야 한다.
지난 늦가을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는 우리 식구들을 얼마나 놀라게 했는지 모른다. 과수원 밭 가득 사과를 따 놓고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그래야만 저장력이 오래가기 때문이었다. 그때 라디오와 TV에서 영하 16도까지의 한파를 예고했다. 그날이 마침 벼 타작 날이어서 더욱 바쁜데 삼천여 평 사과 밭에 무더기로 모아 놓은 사과를 비닐이나 천막으로 덮기에는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인력도 인력이려니와 비닐이나 천막도 부족했다. 나중에는 이불장에 있는 담요, 밍크이불, 누비이불, 솜이불 할 것 없이 모조리 내다 다 덮고 나니까 자정이 지난 뒤였다. 코에서는 단내가 났다. 그렇게 갈무리를 했는데도 그이와 나는 온밤을 선잠으로 지새웠다. 이렇듯 고달프고 힘겨운 농사지만 나는 지금까지 사과나무가 좋아서 반은 미쳐 살아 왔다.
세상 어디에서도 만나기 힘든 순수한 삶, 정을 주면 주는 만큼 더 크게 되돌려 주는 자연의 섭리를 나는 여기서 전신으로 체험 했다. 아무리 작은 들꽃이라도 무한한 신뢰로 다소곳이 폈다 지우는 온유의 덕, 내가 어찌 반하지 않으랴.
우리 사과 밭에서 학자금이 나와 아이들 공부를 시켰고 자연 속에 그림 같은 문화주택도 지었다. 좋아 하는 음악,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늘 부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요 근래에 불어닥친 불경기는 여기까지 불어와 생산비 건지기도 힘든 실정이라 모두 가슴을 치며 사과나무를 캐고 있는 것이다.
온 밭에 벌러덩 나자빠진 사과나무는 처연하다. 어떤 것은 비스듬히 넘어져 엄살하는 시늉이고 어떤 것은 뿌리를 깡그리 내놓고 칵 죽어 버린 모습이다. 그들은 시린 얼굴로 나를 천착하는 것 같아 차마 바로 쳐다 보기가 면구스럽다.
아침 식사시간 정도 왕왕거리던 기계소리가 멎고 나니까 산속은 더 깊은 정적이 엄습했다. 마치 전쟁이 지나간 자리와 같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퍼지는 이맘때면 떼를 지어 날아와 우짖던 멧새들도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기계소리에 놀라 아주 산속으로 들간 모양일까. 아니면 한 두 마리 날아와 보니 어디 한군데도 깃들일 가지 조차 없으니 다른 숲으로 찾아간 모양인가, 모닥불도 꺼진 채 재티만 날린다.
아래쪽 밭에서 올려다보니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던 아담한 우리집은 어디로 가고, 한쪽 팔이 잘려나간 상이용사처럼 살벌한 언덕받이에 달랑 서 있는 우리집이 퍽 추워 보인다. 주머니에 두 손을 지르고 집으로 올라오는 나는 다정한 친구를 이별하고 돌아서는 심사다. 믿고 사랑한 사람에게 버림받는 심사다. 말할 수 없는 쓰라림이 울멍울멍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집으로 올라와 보니 그이는 엊그제 심은 사과나무 묘목에 짚을 덮어 주고 있었다. 그이의 믿음직스럽고 지성스런 손끝에 내 마음도 조금씩 풀리어 갔다.
나는 문득 스피노자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