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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봉사 일기
※ 이글은 2023년 새만금 잼버리 때의 경험을 공유하여 장단점을 파악하여 앞으로 2025 ‘아태 잼버리(아시아 태평양 지역)’ 같은 국제 행사를 또 할 때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았으며 합니다. 잘한 점은 또 참고하여 잘 이어 나갔으면 하고, 계획 수립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썼습니다.
미국 대통령 70%가 스카우트 출신이고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빌 게이츠, 우주인 암스트롱, 케네디, 닉슨 대통령 등 유명인들이 스카우트 출신입니다. 학업에 지친 한국의 청소년들이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 활동을 하여, 앞으로 한국에서 하는 2025 아시아 잼버리에서 만날 수 있는 더 많은 스카우트 참가자와 봉사자가 나와서 훌륭히 잼버리를 실수없이 치르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씁니다.
나는 여성회관, 예술회관 등 여러분들에게 잼버리를 열심히 홍보했습니다.
“세계적인 행사를 우리 전북에서 하는데 도민들이 너무 무관심하신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이 심판의 부정행위가 없는,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 올림픽>을 우리 고장에서 치른다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잼버리는 전 세계 미래의 지도자가 될 젊은이들이 드넓은 자연에서 만나 서로 협동하고, 친선과 문화를 교류하며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 가는 정말 멋진 행사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스카우트 단원 활동 못 했지만, 우리 가족들과 자녀, 손자들에게는 꼭 스카우트 활동을 하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우리 전북이 도약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런데 정작 주최국인 한국스카우트는 참가비를 지원해 줘도 참여자가 너무 부족합니다. 가족 중에 아이들 있으면 스카우트에 꼭 가입하여 잼버리에 참여하여 외국 학생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해주세요. 입시에 찌들어 공부만 하다가 지친 우리 학생들이 이번 대회에 참여하여 호연지기도 기르고 세계인과 친구가 되어 소통하고 이후에 해외여행 가서 만나 볼 친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렇게 말하며 정말 열심히 홍보하고 다녔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잘 정수 처리된 한국 수돗물 즉 K-워터를 자랑한다고, 보온병 1개씩 나눠주고 수도꼭지에서 직접 받아 먹으라고 했습니다.
개막식 날, 개막 공연을 보러 무대까지 가려면 왕복으로 가까운 곳은 1km, 먼 곳은 12km를 걷게 했고 그 폭염에 행진하려면 중간 중간에서 물을 3~10병은 줘야 하는데 공연장에서야 도착해서야 물을 주었으니, 그건 큰 실수였습니다.
가장 놀랐던 경험은 36도 폭염이라 물 5리터를 넘게 먹고도 15시간 넘게 오줌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내 생애 최고로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마치 내 온몸의 땀샘이 모두 열린 듯했습니다. 드디어 개막식 날, 개막 공연을 보러 무대까지 가려면 왕복으로 그 폭염에 행진하려면 중간 중간에서 물을 3~10병은 줘야 하는데 공연장에서야 도착해서야 물을 주었으니 108명이 쓰러졌습니다.
또 공연장에 와서는 아직 가수들도 오기 전인데 한국 음악만 듣고 ‘꿈에 그리던 K – pop의 나라에 와 춤을 추다니’ 하며 너무 감격에 겨워했습니다. 너무 흥분되어 춤을 추다가 수십 명이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이에 놀란 경찰과 소방서 측은 공연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의료봉사 나온 의사도 첫날부터 너무 많은 환자가 밀려오자 쓰러질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뉴스에는 대원들이 탈진해서 쓰러지고, 캠핑장 배수가 안 되고, 화장실 샤워장이 부족하고 불결하다, 나무 그늘 쉼터가 없다. 등 나쁜 보도만 쓰나미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다행히 보도가 나간 후 생수도 넉넉히 보급되고 아이스크림과 이온 음료 (포카리 스웨트) 등 많은 기부 물품이 제공되어 상황이 원만해졌습니다. 뉴스에는 그런 좋은 내용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편의점에서 물값을 두 배로 받는다는 둥 부정적 뉴스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 후 원가로 복귀시켰습니다.
나는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워 차갑게 만든 생수병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 공짜요( free cool water )” 외치며 종일 폭염 속에서 시원한 생수 나눠주는 일과 분실물 찾아 주기 업무를 스스로 찾아서 맡았습니다.
종이 상자에 ‘분실물 보관함’ (紛失物 保管函 : Lost and found) 이라고 우리말, 한문, 영어 삼 개국 언어로 써 놓고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도난 우려해서 내 앞에 놓았습니다. 분실물 찾아 주기 업무도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주는 일 만큼이나 보람 있었습니다. 나는 탈수 증세로 쓰러지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열흘 동안 내내 시원한 생수 배부와 분실물 찾아 주기를 미안한 마음으로 큰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맡아서 했습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물병을 가져가며 “땡큐, 땡큐” 를 연발할 때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 육십 평생 살면서 들은 땡큐 ‘감사합니다’ 소리보다 그때 더 많이 들었습니다.)
소방서 앰뷸런스가 간간히 환자를 후송하면 나는 소방공무원인 아들 생각이 나서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멀리서 우리나라를 찾아온 손님들이 쓰러지면,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낮 최고기온 36도의 폭염에도 나를 조금도 쉬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외국인 봉사자들도, 내가 영어가 좀 부족해서 외국인 학생들이 와서 도움을 요청하면, 대신 처리하라는 내 부탁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한국인 봉사자 중 내가 자주 부탁을 하자 오히려 정이 들어서 “아저씨가 기억에 남을 거예요.”라며 친근한 짜증 섞인 미소를 보였습니다.
긍정적인 점
(캠프 운영본부) 한국인 지도자 대장 한 분은 아들이 잘 지내고 있나 걱정이 되어 먼 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엄마 오지마세요! 다른 학생들도 엄마 보고 싶을 터인데 나만 엄마가 오면 눈치 보여요.” 라고 말하니 그렇게 어른스럽게 말하는 중학생 아들이 ‘잼버리 덕택에 성숙해져’ 있구나 하고 감격했답니다. 이00 대장님은 “선배 스카우트님이 돌아가시면서 잼버리 유물을 많이 주셨다”라고, 우리 봉사자들 앞에 잔뜩 쌓아 놓고 “두 개씩 골라가라” 하셨습니다.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하니 그러라고 하셔서 “우리는 주인이니까 손님으로 온 외국인 봉사자들 먼저 고르고 난 뒤에 우리가 골라 가면 어떨까요?” 했더니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세계인 봉사자들과 다 행복해하는 그 순간을 나는 비디오로 찍어서 지금도 가끔 보면 잼버리 봉사 활동 중 그 순간이 제일 행복했던 순간인 것 같습니다. 많은 선물을 아낌없이 외국인들에게 주면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라는 스카우트 정신을 보여주신 이00 대장님께 감사했습니다. 더 가져가라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적당히 자기 것만 챙기는 예의를 아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이번 잼버리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한류 열풍을 보러 이렇게 많이 왔으니, 한류를 창조하는 모든 예술인들의 대우가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벨기에에서 온 k라는 아가씨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자세하게 배부 물품목록, 국적, 이름, 주소, 이메일 주소 등을 엑셀 프로그램으로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접수할 터이니 한국인 보조 한 사람만 붙여달라고 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도록 칠판에 써 놓자고 제안했습니다. 접수는 원래 내가 해야 할 업무이기에 감사하게 그 업무를 보조한다고 했습니다. 오는 사람들에게 서류에 이름을 직접 쓰게 하니 대부분 악필이라 스스로 컴퓨터에 입력하게 했습니다. k양이 참가자 80% 접수 받으며 “팔레트는 1인당 2개라서 한 텐트에 2명이 잘 경우에는 4장 주지만 한 사람만 자면 2장 줍니다.” 하고 “갈 때는 철거해서 반납해야 합니다.” 등을 일일이 설명했습니다. 나는 듣고 있다가 k양이 실수로 말 안 한 것만 보충 설명하고, 타자 칠 때 꼭 손 세정제를 주면서 “미안하지만(sorry)” 손 닦고 접수하라고 정중히 말했습니다. 폭염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해서, 제일 아끼는 잼버리 티셔츠를 포장도 뜯지 않은 것을 주고, 더워서 얼음물에 내수건 적셔서 목에 두를 때 그녀 것도 적셔서 그만하라고 사양할 때 까지 목에 둘러 주었습니다. 다음날은 피곤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 락헬이라는 아가씨가 나머지는 했습니다. 그 아가씨도 접수 업무가 어려운 데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견해서 k양 선물한 것과 같은 잼버리 티셔츠를 주었습니다. 부대장 인도네시아인 티안히옹본씨는 유머로 항상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나는 동남아시아 쪽 영어 유머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젊은이들 중에 그 사람 유머까지 알아듣는 사람이 있어 대견했습니다. 영국인들이 일찍 철수하자 남는 그 예산으로 양보다는 음식 질을 높여서 납품하라고 주문했습니다. 폭염에도 우리보다 더 더운 나라에서( 적도 근처 나라는 보통 매일 40~50도) 온 그들은 우리나라 36도가 선선한 날씨이니 괜찮다며 훨훨 날아다니며 제일 부지런히 도와주어서 캠프에 큰 힘이 되고 분위기를 밝게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선물 교환이 아니고 내가 그냥 주는 선물이다”라고 다짐하고 주어서인지 ‘고맙게도’ 내가 선물 준 15명 중에 핀란드인 비르피 여사와 일본인 대학생 아소카만 내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주어서 받았습니다. 터널식 철골 구조에 넝쿨 식물을 심어 안개 분무를 뿌려주고 그 밑에 멍석을 깔아주니, 사람들이 그곳에서 쉬면서 자연스레 물물교환 시장을 열기도 하고 누워 쉬기도 했습니다. 외국인 중 가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리듬에 춤을 추어주는 모습이 재미있어 좋았습니다. 가끔은 “성희롱 문제 생긴 것 없냐?”는 순찰반도 왔었고, 컵에 담긴 고급 아이스크림도 50개를 누가 기부했습니다. 많은 물품을 기부해 주신 분들은 비록 뉴스에 일일이 나가지도 않은데도 잼버리를 잘 치를 수 있게 보내주신 성의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합계 8,000여명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전 대원에게 작은 휴대용 모기 퇴치 약 한 사람당 한 개씩 사만 삼천 개를 다 나눠주니 그 뒤부터는 모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부정적인 뉴스
‘국제적 망신이다.’ ‘불볕더위에 말라버린 잼버리’ 등 나쁜 뉴스만 들렸습니다. 좋은 기사는 눈감고 귀 막고 나쁜 것만 대대적으로 내는 한국 언론을 보고, 한국에 스카우트들을 보낸 세계 부모님들이 모두 걱정하는 통화를 했을 것입니다. 전 현직 교사들, 공무원 영어 잘하는 자원봉사자들, 고액 인건비 의사 간호사 등 무보수로 음지에서 봉사해 주고, 수많은 기부 물품 등을 보내준 기부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좋은 것은 기자들에게는 안 보이고 안 들리는지 집에 와보니 잼버리 나쁜 뉴스만 온통 방송했습니다. 처음부터 의도는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차년도 전북 예산 삭감할 사전작업이 되었습니다. 뉴스를 요약하면 1. 지휘 본부(컨트롤 타워)가 없었다. 여가부 김현숙 장관, 전라북도 지사, 부안군수, 잼버리 총괄 대장들이 유기적 협력이 부족 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이 바뀌니 담당자가 바뀌고, 잼버리 관련 해외 출장 99번 갔다 온 자들이 18명이나 전부 타 부서로 발령 나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4년에 한 번씩 하는 국제 행사인데, 2016년 유치가 결정되었으면, 한류열풍으로 미국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많은 인원 43,000명이나 온다고 하니 철저히 한 팀을 꾸려서 적어도 5년 동안 인사이동 없이 한 팀으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2. 프리(pre-) 잼버리가 없었다. : 일 년 전에 미리 예행연습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로 사람이 안 올 것 같아서, 배수 작업을 철저히 못 해서, 코로나로 위험하니 또 안 한다고 했다가, 대통령이 강력히 밀어 추진 했지만, 예행연습을 1년 전에 안 한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태풍에 전 국민이 발 빠르게 대처하여 그나마 실수를 만회했다고 세계 언론이 평했습니다. 3. 예산 배정이 늦었다. 93억 예산을 빨리 주었으면 폭염 대책, 방역, 등을 빨리했을 것입니다. 잼버리의 기본정신은 ‘미리 준비’하라 인데 이렇게 준비가 안 되었다니……. 4. 잼버리로 지지부진한 새만금 예산을 더 타내려 더운 곳인지 알면서도 유치했다. 대신 비닐하우스 식으로 타원형 넝쿨식물을 심어 안개 분무로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새만금 잼버리 홍보비는 7억인데, 한국 잼버리 대회 유치단장은 이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으면 이가 열여섯 개나 빠지셨습니다. 유치 실패한 부산 엑스포 공식적으로 편성된 홍보 예산만 5,744억인데 해외언론보다 안해도 되는 국내 언론에 6:4 세계언론에 더 홍보했는데 어떻게 사용했는지 국정조사도 하지 않고 내년 예산 삭감도 없었습니다?
5. 전체예산 중 문재인 정부 집행한 13.3% 156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예산중 74%인 870억을 중앙정부가 집행하고, 22.6% 265억을 전북이 집행했는데, 모든 잘못을 전 정부와 전북으로 돌리고, 그 핑계로 내년도 새만금 관련 예산을 78%인 5,500억을 삭감했다고 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여당은 전북도와 지자체 직원이 75% 일했으면서, 전북도지사가 중앙에 책임을 떠넘긴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북도민들은 놀라고 분노하여 여의도에 가서 국회의원들과 시, 도의원들이 연이어 여자의원들도 삭발하고 도민 오천 명이 예산 삭감 반대 시위했지만 힘없는 전북이라 새만금 예산 32% 깎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6.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 “새만금을 홍보하려고 새만금에 유치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국민과 종교계까지 나서서 후원을 해주는 등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여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격려도 필요하다.”라고 성숙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7. 잘 치러진 1991. 강원도 고성 잼버리는, 만 구천 명으로 새만금의 인원 절반도 안 됩니다. 무주 태권도 공원이나, 지리산이나 내장산 캠핑장 등 전국 산을 골라 배치해서 하면 더위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넓은 장소 찾는 어려움과 잼버리의 장기 자랑 춤과 노래자랑이 ‘시끄럽다’는 민원도 염려되었습니다. ※ 대부분 한국 언론의 부정적 보도에도, 세계 언론들은 태풍에 발 빠른 대처와, 친절한 한국인 k-pop 등 긍정적인 보도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년 새만금 세계 잼버리를 치르는 나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잼버리 운영권을 자동으로 가져올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치러야 했다. 하지만 잼버리 관계자 회의 결과 2025년 아태 잼버리를 반납하기로 했다. 너무나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열심히 일한 잼버리 자원 봉사자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
- 이글은 2023년 새만금 잼버리 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피땀 흘리며 봉사 활동을 하신 수많은 전 세계 스카우트 자원봉사자들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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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는 분은 아래글 더 보세요)
내 생애 가장 많은 땀을 흘린 날들
퇴직 기념 유럽 여행을 할 때도 ‘네 꿈을 펼쳐라: Draw your dream’이라고 써진 잼버리 홍보용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잼버리 배지 모자를 쓰고 다니며 자칭 민간 잼버리 홍보대사를 하였습니다. 이탈리아 해변에서는 결혼식 하는 신랑에게 잼버리 홍보 스카프를 결혼 축하 선물로 주며, 한국 잼버리 때 많이 오라고 하며 같이 사진도 찍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를 한국이 힘들게 폴란드를 누르고 유치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다음 26회를 폴란드에서 하는 조건’하에 양보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2023년 잼버리대회를 폴란드에서 시행했다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통에 긴장하고 있는 폴란드에 세계 스카우트들 누가 가고 싶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한국 잼버리 대회 유치단장은 이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으면 이가 열여섯 개나 빠졌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1991년도 고성에서 세계 잼버리 대회를 개최한 지 32년 만에 또 가져오려니 정말 힘들였나 봅니다.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한 지 35년 지났어도 올림픽 같은 세계대회를 또 한번 한국에서 한다고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입니다. 월드컵도 2002년 치르고 21년 되었으니 4년마다 하는 이 행사 또 한국에 더 가져오는 것은 무리인 듯싶습니다.
새만금은 원래 갯벌 지역이라 배수에 문제는 있지만 부지가 넓어서 많은 신청 인원, 사만 오천 명을 수용할 수 있고, 세계에 글로벌 공장용지 홍보도 하고, 주변에 민가가 없기에 ‘시끄럽다.’라는 민원 발생 소지도 적다는 이유로 선정되었습니다.
나는 대회가 열리기 몇 달 전부터 아예 잼버리 유니폼을 입고 삼삼오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면 어디든지 움직이는 홍보 판이 되었습니다. 여성회관, 예술회관 등 내가 평생교육과 취미활동 교육받는 장소마다 수업받는 분들에게도 잼버리를 열심히 홍보했습니다.
“세계적인 행사를 우리 전북에서 하는데 도민들이 너무 무관심하신 것 같습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이 심판의 부정행위가 없는,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 올림픽>을 우리 고장에서 치른다니 얼마나 영광입니까?
서로 이기려고 과열된 경쟁으로 안 좋은 뒷이야기가 늘 있기 마련인 국제 스포츠 대회에 비하면 잼버리는 전 세계 미래의 지도자가 될 젊은이들이 드넓은 자연에서 만나 서로 협동하고, 친선과 문화를 교류하며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 가는 정말 멋진 행사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스카우트 단원 활동 못 했지만, 우리 가족들과 자녀, 손자들에게는 꼭 스카우트 활동을 하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외국 여행하려면 오랜 시간 준비하고 큰 돈을 써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전 세계 150개국에서 온 에너지 넘치는 젊은이들을 구경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꼭 오셔서 구경하시면 해외여행 간 기분 나실 것입니다. 우리 전북이 도약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런데 정작 주최국인 한국스카우트 참여자가 너무 부족합니다. 가족 중에 아이들 있으면 스카우트에 꼭 가입하여 잼버리에 참여하여 외국 학생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게 해주세요. 입시에 찌들어 공부만 하다가 지친 우리 학생들입니다. 이번 대회에 참여하여 호연지기도 기르고 세계인과 친구가 되어 소통하고 이후에 해외여행 가서 만나 볼 친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렇게 말하며 정말 열심히 홍보하고 다녔습니다.
7월 19일에는 세계 잼버리 조직위원회와 관계기관 합동 대 테러 대비훈련도 하였습니다. 드론 테러 (폭탄, 화학) 대비, 인질 구출 ( 버스피랍 ) 훈련, 다수 부상자 발생 시 대비훈련 등을 하며 안전한 대회를 위해 철저히 했습니다.
잼버리 기간이 8.1 – 8.12까지이지만 3일 먼저 오라는 지시를 받고, 나는 IST(international service team)라 7.28일 저녁에 새만금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내가 속한 백제 허브 괴델레 서브 캠프에는 이 선생님과 변 선생님, 정 선생님 세분이 JMT(jamboree management team)라 5일 먼저 도착해서 사전 캠프 준비를 열심히 하신 모양입니다. 나는 준비한 찐 옥수수 등 간식을 드리며 앞으로 행사 준비에 대하여 토론하였습니다.
잼버리는 인디언 말, 즐거운 잔치라는 <시바리>에서 빌렸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잘 정수 처리된 한국 수돗물 즉 K-워터를 자랑한다고, 보온병 1개씩 나눠주고 수도꼭지에서 직접 받아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게 가장 큰 실수 정책)
차(茶)를 좋아하는 나는 녹차, 홍차, 커피 등을 준비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유비무환의 자세로 내가 먹을 간식도 좀 가져가며 정읍 약수(藥水)를 60리터 가져갔는데 (차는 약수로 끓여야 제맛이니까!)물을 다 마신 후에 매일 내 옷 빨래하는 빨래통으로 요긴하게 썼습니다. 스카우트 대원처럼 제한된 여건에서 최소한의 장비로 생존하려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챙겨간 다른 물건들도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일회용 칫솔과 면도날을 여러 개 가져가 무료로 쓰게 했는데, 남녀 공용인 칫솔은 다 떨어졌는데 면도기는 좀 많이 남았습니다.
가장 놀랐던 경험은 36도 폭염에 물 5리터를 넘게 먹고도 15시간 넘게 오줌 한 번도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내 생애 최고로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마치 내 온몸의 땀샘이 모두 열린 듯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직장에서 30년간 여름에 에어컨 있는 실내에서만 일했지, 폭염에 종일 실외에서 일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세계에서 손님들이 오신다는데 주인인 우리가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하신 이00, 변00, 정00 선생님은 연세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교장 선생님 출신들답게 세계 각국에서 오는 젊은이들이 당신들의 학생들인 양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드디어 개막식 날, 개막 공연을 보러 무대까지 가려면 왕복으로 가까운 곳은 1km, 먼 곳은 12km를 걷게 했고 그 폭염에 행진하려면 중간 중간에서 물을 3~10병은 줘야 하는데 공연장에서야 도착해서야 물을 주었으니. ( 그건 큰 실수였습니다.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세계적인 추세가 전부 물을 전부 사서 먹는 습관입니다. )
특히 유럽 쪽에서 온 참가자들은 15시간이나 비행기 타고 와서 시차 적응도 안 된 피곤한 몸을, 된더위로 푹푹 찌는 데 물도 제대로 안 준 상태에 개막식 K-pop 공연을 보러 힘들게 걷게 했습니다.
공연장에 와서는 아직 가수들도 오기 전인데 한국 음악만 듣고 ‘꿈에 그리던 K – pop의 나라에 와 춤을 추다니’ 하며 너무 감격에 겨워 흥분되게 춤을 추다가 수 십 명이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이에 놀란 소방서 측은 공연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의료봉사 나온 의사도 너무 많은 환자가 밀려오자 쓰러질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주최 측은 “잼버리 행사 중에서 제일 고대하던 k-pop 공연 보러 전 세계에서 왔는데 몇 사람 쓰러졌다고 공연을 중단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 며 전북 완주군 민속 농악 행진 공연만 제외하고 강행했습니다. 완주군 국악 퍼레이드 팀은 “우리가 폭염 속에서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왜 우리만 빼십니까?”고 항의하려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뉴스에는 대원들이 탈진해서 쓰러지고, 캠핑장 배수가 안 되고, 화장실 샤워장이 부족하고 불결하다, 나무 그늘 쉼터가 없다. 등 나쁜 보도만 쓰나미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다행히 보도가 나간 후 생수도 넉넉히 보급되고 아이스크림과 이온 음료 (포카리 스웨트) 등 많은 기부 물품이 제공되어 상황이 원만해졌는데도, 뉴스에는 그런 좋은 내용은 거의 보도되지 않고 편의점에서 물값을 두 배로 받는다는 둥 부정적 뉴스가 계속 나왔다. 그 후 원가로 복귀시켰습니다.
오전 오후 하루 두 번만 화장실 청소하기로 한 용역을 매시간 마다하게 하고, 정읍에서는 화장실 청소하는 자원봉사 팀이 와서 함께 한 덕분에 아주 깨끗해졌습니다. 나는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워 차갑게 만든 생수병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 공짜요( free cool water )” 외치며 종일 폭염 속에서 시원한 생수 나눠주는 일과 분실물 찾아 주기 업무를 스스로 찾아서 맡았습니다.
종이 상자에 ‘분실물 보관함’ (紛失物 保管函 : Lost and found) 이라고 우리말, 한문, 영어 삼 개국 언어로 써 놓고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장소에, 도난 우려해서 내 앞에 놓았습니다. 분실물 찾아 주기 업무도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주는 일 만큼이나 보람 있었습니다.
외국인 봉사자에게도 분실물 보관함 앞에 왔을 때 “분실물을 찾으러 올 때는 지도자와 같이 와서 찾아가야 하고, 찾아갈 때는 본인과 찾은 물건 들고 사진 찍어두세요. 여기에 3일만 보관하고 3일 후는 중앙센터에 보내 보관한다고 안내해야 합니다. 알고 계세요?”라고 하니 “알고 있어요.” 했다.
한 번도 내 곁에 와서 일하지 않아서 설명했는데 전에도 잼버리 활동을 한 경험이 있던 사람인 모양이었습니다. 잼버리 자원봉사를 위해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활용하기 위해 여태껏 준비했었는데 유창하진 않았지만 외국인과 소통이 되니 마음이 조금 뿌듯했습니다.
물병이 20개씩 묶어서 오니 끈을 칼로 자르고 매시간 아이스박스에 좀 넣으라고, 내가 시범을 보이고 좀 해주라 해도, 젊은 봉사자들은 처음 한 번만 하더니 더워서인지 나중엔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탈수 증세로 쓰러지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열흘 동안 내내 시원한 생수 배부와 분실물 찾아 주기를 미안한 마음으로 큰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맡아서 했습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물병을 가져가며 “땡큐, 땡큐” 를 연발할 때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 육십 평생 살면서 들은 땡큐 ‘감사합니다’ 소리보다 그때 더 많이 들었습니다.)
독일 청년인데 엄마가 한국 사람이라 하기에 “너 미국 주도로 태평양에서 하는 림팩훈련 아느냐?” 하니 “모른다.” 하기에 “ 림팩은 태평양에서 하는 다국적 연합훈련이다. 그런데 한국 잠수함은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 기술을 가진 독일에서 잠수함 기술을 배워서 본체는 만들고, 한국이 IT 소프트웨어 기술과 시뮬레이션 운용 기술은 세계 최고이므로 한국 잠수함이 항상 림팩 훈련에서 세계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
당신은 아빠가 독일인이니 몸도 제일 튼튼하고, 엄마가 세계에서 제일 머리 좋은 한국인이니 세계 최고들이 만들었으므로 세계 최고의 명품일 것이다.”라고, 말하니 수줍어하며 좋아서 웃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림팩 훈련 Rim of the Pacific Exercise; RIMPAC 처음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 미국이었다. 칠레, 콜롬비아, 프랑스,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네덜란드, 페루, 싱가포르, 대한민국, 타이가 점점 합류했다. 몇몇 옵서버 국가들이 초청받기도 하는데, 중국, 에콰도르, 인도, 러시아, 멕시코, 필리핀이 대표적이며 이들 국가는 2012년 정기적인 참여 국가가 되었다. 2014년 러시아와 타이, 에콰도르, 타이완이 환태평양 합동 연습에 참여하지 않았다.)
소방서 앰뷸런스가 간간히 환자를 후송하면 나는 소방공무원인 아들 생각이 나서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멀리서 우리나라를 찾아온 손님들이 쓰러지면, 정말 미안한 마음에 한낮 최고기온 36도의 폭염에도 나를 조금도 쉬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연구 보고에서 사람들의 탈진 원인 90%가 물 부족으로 기절한다는 기사를 읽어서 나는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외국인 봉사자들 중에는 100kg 넘을 정도로 몸이 무거워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조금 이해가 되는데, 날씬하고 미인인데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열심히 솔선수범해서 일하는 외국인들 열 서너 명엔 내가 선물을 주었습니다. 선물은 한국 잼버리 마크나 배지 등을, 내 자비로 몇만 원어치 사서 옷이나 모자에 붙이는 바느질값도 몇만 원 들여 미리 준비해서 주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나이를 좀 먹은 지도자들은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데, 스카우트 정신은 < 봉사 >인데 대원들 스스로가 알아서 하기를 바랐던 대장님은 나중에 본인이 실수하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선물을 주어서인지 외국인 봉사자들도, 내가 영어가 좀 부족해서 외국인 스카우트가 와서 도움을 요청하면, 대신 처리하라는 내 부탁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한국인 봉사자 중 내가 자주 부탁을 하자 오히려 정이 들어서 “아저씨가 기억에 남을 거예요.”라며 친근한 짜증 섞인 미소를 보였습니다.
한국인 지도자 대장 한 분은 아들이 잘 지내고 있나 걱정이 되어 먼 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엄마 오지마세요 다른 학생들도 엄마들이 보고 싶을 터인데 나만 엄마가 오면 눈치 보여요.” 라고 말하니 그렇게 어른스럽게 말하는 중학생 아들이 ‘잼버리 덕택에 성숙해져’ 있구나 하고 감격했답니다.
한 가지 고백할 게 원래 현장에서 술은 못 먹게 하는 게 원칙인데, 나는 혹시나 피곤할 때 한잔 마시고 밤에 자려고 ‘비상용’으로 오두개술 = 뽕 주를 큰 콜라병에 넣어갔습니다. 그런데 악기 공연해야 하는 한국 아가씨들이 콜라 색과 비슷하니 콜라인 줄 알고 마셨는데 “술이다!” 했지만 다른 아가씨들도 조금씩 나눠 마셔서, 공연하는데 술기운 덕분에 긴장이 풀어져 ‘연주하는데 부드러웠다.’라고 하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그 술은 마지막 폐막식 파티 때 먹자고 아끼다가 결국 태풍 때문에 갑자기 철수하는 바람에 먹지 못하고 실수로 거기 놓고 왔습니다. (아끼다가 0 됐다. 아니 안 먹고 철수했으므로 음주운전 안 해서 더 다행일까?)
선물 교환
나는 외국인들과 선물을 교환하려고 넉넉히 준비해 갔습니다. 잼버리 선물 교환 원칙은 나이 많은 사람은 연하자 에게 무조건 줘야 하고, 동년배끼리 선물 교환이 가능하고, 나이 적은 사람과 어른이 교환하려면 아이의 보호자 입회하에 교환하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선물에는 가급적 잼버리 관련 로고나 베지 마크 등이 붙어있는 것을 주로 교환해야 했고, 잼버리 관련 물품이 인기가 많아 그것이 선물 교환 관례였습니다.
나는 선물 교환이 재미있었지만, 불볕더위에 시달려서 자주는 못 하고, 두어 번 외국 아이들과 했는데 자기가 ‘과하게 받았다.’ 싶으면 작은 것 하나 더 줄지 아는 배려하는 분위기로 비슷한 값어치 교환을 하는 게 보기 좋았습니다. 이00 대장님은 “선배 스카우트님이 돌아가시면서 잼버리 유물을 많이 주셨다”라고, 우리 봉사자들 앞에 잔뜩 쌓아 놓고 “두 개씩 골라가라” 하셨습니다.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하니 그러라고 하셔서 “우리는 주인이니까 손님으로 온 외국인 봉사자들 먼저 고르고 난 뒤에 우리가 골라 가면 어떨까요?” 했더니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외국인들이 먼저 고르고 난 뒤에 우리 한국인들도 두 개씩 가졌습니다. 그래도 많이 남아서 하나씩 더 고르라고 하셔서 정말 고맙고 즐거워하며 모두 행복한 선물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계인 봉사자들과 다 행복해하는 그 순간을 나는 비디오로 찍어서 지금도 가끔 보면 잼버리 봉사 활동 중 그 순간이 제일 행복했던 순간인 것 같습니다.
바로 잼버리 스카우트 창시자 영국의 베이든 포우엘(Robert Baden Powell)경이 꿈꾸던 세상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하나 되어 즐겁게 행복하게 노는’ 그 꿈같은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많은 선물을 아낌없이 외국인들에게 주면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라는 스카우트 정신을 보여주신 이00 대장님께 감사했습니다. 더 가져가라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적당히 자기 것만 챙기는 예의를 아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한편 식당이 행사장 한쪽에 치우쳐 있어 버스를 놓치면 왕복 10~12km의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본부 무대와 식당은 중앙에 있어야 좋을 듯했습니다. 스카우트 행사가 약간의 군대식 행군이 있다지만 더운 날씨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밥 먹고 오면 다 소화될 것 같았습니다. 아침 식사 대기자 줄이 길 때는 200m 넘었습니다. 슬로바키아 온 동유럽 미녀와 얘기하다 보니 줄이 금방 짧아졌습니다. 얘기 도중 손수레가 지나가기에 위험하다 싶어 무심코 팔을 잡아 내 쪽으로 당겼는데, 성희롱(?) 운운하지 않아서 고마웠다고 해야 할까? 신경이 쓰였습니다.
배식 줄 앞에서 처음 보는 ‘할랄 음식: (Halal Food) 이슬람교 율법에 따라 이슬람교도(모슬렘)들이 먹어도 되는 식품은 이슬람식 음식이 건강에 좋다고 비 이슬람권 사람도 이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비건(began): 채식주의자 음식’, ‘보통 일반음식’ 등으로 음식이 세분화 되어있어 줄이 혼란해서 그녀에게 굿바이 인사도 못 하고 헤어졌습니다. 다행히 나는 아무 음식이나 거리끼면 없이 먹을 수 있는 체질로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했습니다.
나중에는 우리 봉사자들에겐 노란 띠를 주어서 줄 안 서고 우선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주었지만, 사실 봉사자가 부족해 바빠서 절반도 식당에서 먹지 못하고 캠프에 있는 간식으로 떼 울 때가 더 많았습니다. 식당에 타고 가거나, 응급환자를 위해 골프차를 캠프당 하나씩 배정했는데 그 차 열쇠가 다 똑같다는 것을 외국인 스카우트가 알아내어 우리 것 차를 도둑질해 가서 타고 다녀, 우리 팀은 제시간에 식사하러 식당에 못 가기도 하고 환자 수송을 제때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차 키를 전부 틀리게 배부했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많은 외국인들을 사귀고 싶어 잼버리 명함을 250장 만들었지만, 너무나 바쁘고 더위에 지쳐 아쉽게도 친교 할 시간이 부족해 우리 캠프 근무자 30여 명에게만 겨우 주고 별로 교류도 못 하고 끝나게 되어 아쉬웠습니다.
특히 이번 잼버리는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한류 열풍을 보러 이렇게 많이 왔으니, 한류를 창조하는 모든 예술인들의 대우가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습니다.
외국인 봉사자들
대만에서 온 한 청년 이름이 ‘주필화’인데 영어식으로 쓰니 ‘피카추’로 보여 내가 가져온 피카추 배지가 있어서 주었습니다. 그 청년도 보답으로 내게 쾌락(快樂)이라 써진 빨간 배지를 주어서 보니 품질이 국산보다 조금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예의상 모자 중앙에 박아서 쓰고 다녔습니다.
대만 아가씨 영어 이름 ‘비비안리’ 가 있어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온 주연 여배우와 이름이 같다.” 고하니 “그 배우를 모른다.” 하기에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보여주며 “아마 부모님은 그 배우를 아실 거야!” 하며 귀여워서 선물도 주었습니다.
우연히 대만 청년과 아가씨와 식당에 같이 밥 먹으러 가는 차 속에서, 궁금해서 “올 때 같이 왔니?” 하니 “아니요” 하기에 “그럼 갈 때는 같이 가니?” “아니요 한 시간 뒤 비행기로 가요” 해서 놀랐습니다. 대만을 매시간 운행하는 항공편이 있다니! 그렇게 대만 항공 수요가 많나?
누군가 그런 사적인 질문은 실례라고 했습니다. 같은 나라 사람이기에 이렇게 봉사 팀에서 만나게 되니 무심코 한 질문이었는데 국제적 매너에 대해 한 수 배웠습니다.
봉사자들 회의 시간에 근무 조를 만들고 돌아가면서 충분히 쉬고 일하자고 하며 조를 짰지만, 한국인들은 주인 정신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에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고 봉사했습니다.
드디어 2023. 8. 1일 오후부터 입영일 첫날, 정식 입영이 시작되었습니다. 나한테는 처음부터 외국인 접수를 보라고 하여 어떻게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접수 양식을 만들지 한국인 봉사자들과 고민했습니다.
벨기에에서 온 k라는 아가씨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자세하게 배부 물품목록, 국적, 이름, 주소, 이메일 주소 등을 엑셀 프로그램으로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접수할 터이니 한국인 보조 한 사람만 붙여달라고 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할 수 있도록 칠판에 써 놓자고 제안했습니다. 접수는 원래 내가 해야 할 업무이기에 감사하게 그 업무를 보조한다고 하며, 오는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서류에 이름을 직접 쓰게 만들었습니다.
컴퓨터 세대들이라 알파벳을 읽지 못할 정도로 악필로 써서, 우리가 그걸 보고 도저히 노트북에 입력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트북 자판을 주며 직접 입력하게 하니 서로가 일이 훨씬 더 수월했습니다.
k양이 80% 접수 받으며 “팔레트는 1인당 2개라서 한 텐트에 2명이 잘 경우에는 4장 주지만 한 사람만 자면 2장 줍니다.” 하고 “갈 때는 철거해서 반납해야 합니다.” 등을 일일이 설명했습니다. 나는 듣고 있다가 k양이 실수로 말 안 한 것만 보충 설명하고, 타자 칠 때 꼭 손 세정제를 주면서 “미안하지만(sorry)” 손 닦고 접수하라고 정중히 말했습니다. 종일 말하고 일하면서 점심에 겨우 빵 두어 개 먹고 일할 수 있는 그녀가 신기했습니다.
폭염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애쓰는 모습에 감동해서, 내게 배부된 것 중에서 제일 아끼는 잼버리 티셔츠를 포장도 뜯지 않은 것을 주고, 더워서 얼음물에 내수건 적셔서 목에 두를 때 그녀 것도 적셔서 그만하라고 사양할 때 까지 목에 둘러 주었습니다.
다음날은 피곤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 락헬이라는 아가씨가 나머지는 했는데, 그 아가씨도 접수 업무가 어려운 데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견해서 k양 것과 같은 잼버리 티셔츠를 주었습니다.
k양이 첫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반해서 며느리 삼고 싶은데 열여덟 살은 너무 어리다라며 농담도 했는데, 그다음 날부터는 밤에 딴 곳에서 놀다가 낮에 잠만 잔다고, 우리 한국인 대장과 갈등이 생겨 그 대장 밑에 못 있겠다고 항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장이 우리 팀 대원과 바꾸자고 말하니, 그쪽 팀장은 그럼 본인이 그만두고 퇴소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그것을 영국인 태리와 부대장 인도네시아인 티안히옹본씨가 몇 시간 동안이나 대화로 두 사람을 설득하여 화해시켰습니다.
부대장 인도네시아인 티안히옹본씨는 유머로 항상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나는 동남아시아 쪽 영어 유머는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내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간식 쫀득이를 한 번에 크게 한번 물어뜯어 먹어보라고 권했지만 (아마 힘들게 물어 당길 때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기 위해) 나는 “이가 부실해서 못 합니다.”하고 사양했습니다.
내가 레몬 향기 나는 모기 퇴치 약 분사용 홈 키퍼 같은 걸 뿌리자 티안히옹본씨는 “오우 코리아 향수”라고, 말했습니다. 모기약인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했는지는 몰랐습니다. 한국 젊은이들 중에 그 사람 유머까지 알아듣는 사람이 있어 대견했습니다.
날씨가 더운데 아침 배식을 새벽 4시부터 해야 하는데 첫날에 배식차가 8시에 늦게 오고, 텐트 번호와 팀 번호 등이 혼선이 와서 식품을 잘못 가져갔습니다. 할랄 음식, 비건 음식 등 구분도 어려워 혼란이 왔습니다.
늦다고 항의하는 한국인이 많아 배식팀장이 “외국인들은 조용한데 한국인들이 먼저 소동을 피우면 외국인들 앞에서 우리가 더 미안하니 좀 참아 달라”고 주문해서 진정시켰습니다.
이슬람 할랄 음식 등을 처음 만드는데, 우리 도시락 업체에서도 알바를 쓰니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을 듯했습니다.
영국인들이 일찍 철수하자 남는 그 예산으로 양보다는 음식 질을 높여서 납품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배식팀장이 말레이시아 두 청년과 스리랑카에서 온 청년 ‘스픈’이 제일 애썼다고 하기에 배식 팀 전부 4명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폭염에도 우리보다 더 더운 나라에서( 적도 근처 나라는 보통 매일 40~50도) 온 그들은 우리나라 36도가 선선한 날씨이니 괜찮다며 훨훨 날아다니며 제일 부지런히 도와주어서 캠프 분위기를 밝게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선물 교환이 아니고 내가 그냥 주는 선물이다”라고 다짐하고 주어서인지 ‘고맙게도’ 내가 선물 준 15명 중에 핀란드인 비르피 여사와 일본인 대학생 아소카만 내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주어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본 대학생 아소카는 헤어지면서 내 가슴에 못을 박고 떠났습니다. “굿바이 오지이 짱” 하기에 “오지이짱이 뭔 뜻이냐?” 하니 “그랜드 파더(할아버지)”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떠났습니다.
여자는 아줌마도 아가씨라고 불러주면 좋아해서, 남자들은 아줌마인 줄 알면서도 아가씨라 불러주는데, 아니 우리 애들이 결혼은 아직 안 해서 손주가 하나도 없는데 할아버지라니? 누구에게 욕먹고 한 대 맞은 것보다 더 서글펐지만, 내색도 못 하고 삭혀야 했습니다.
외모가 한국인과 비슷하니 그에게는 한국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내가 가끔 불러 일감을 주니까 한번은 짜증이 난 표정도 지었습니다.
영국 팀이 늦게 들어와서 영국인용 팔레트를 먼저 온 팀들이 다 써버려서 급히 더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무시하나 생각했는데, 미국에서 할 때도 영국 팀은 일찍 출국했습니다. 잼버리 창시국이라고 잼버리 행사 운영이 미숙하면 개최국을 비키라고 하고 자기들이 직접 운영한다는 소문과, 평생 한 번 가는 잼버리를 위해 영국 학생들은 이 년간 아르바이트해서 모아서 온 행사인데, 우리 준비가 부실하다고 손해 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잼버리 참가비는 선진국은 많이 내고 후진국은 적게 내지만, 후진국도 잼버리 올 정도 사람이면 잘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선진국에 속했습니다.
영국은 먼저 가면서 텐트도 철거만 하고 반납도 안하고 그대로 두고 가더니 우리나라 거제 해변에서 청소 봉사 활동 했다는 뉴스는 들었습니다.
와이 파이를 5일에야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잼버리 행사 전에 모든 공사를 마쳐야 하지만 철거까지 12월 말로 계약기간을 했다는 애매한 소문입니다.
물을 무료로 주니까 한 모금 마시고 버리고, 절반 마시고 버리고 하는 부작용이 생겨, 지원본부는 자기 이름을 물병에 써놓고 다 마시게 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몇 사람만 지켰습니다.
나는 물이 아까워 남이 먹다 남은 물병이나 포카리 스웨트 등은 감염될까 두려우면서도 버리지 못하고 나는 많이 마셨습니다. 다행히 별 이상 없었습니다.
집사람은 어느 무당이 내가 ‘잼버리 가면 아프다’ 했다고 건강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많은 사람이 쓰러진다니 친지들도 전화로 걱정해 주셨습니다.
태풍 때문에 일찍 철수하여 남는 물과 포카리 스웨트 등 수십 톤을 기부업체에서 회수도 않는다고 해서 창고 임대료를 지불해가며 보관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수많은 냉장고 등 관련 시설 장비도 어떻게 처리되는지 궁금했습니다. 음료수는 나중에 학교에 주거나 성공회 등에서 노인돌보미 사업자들에게 무료 배부하여 노인들에게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내가 사용한 텐트는 기념으로 중고 값이면 사고 싶었으나 잼버리 로고가 찍혀 로얄티 문제 등이 얽혀서 쉽게 가져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열흘간이나 햇볕에 사용한 텐트를 쉽게 팔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12시 넘어 들어오는 외국인 팀들도 있었고 막무가내로 텐트를 설치 해달라고 주문하는 팀들도 있으나, 원래 우리가 임대만 해주고 본인들이 텐트는 쳐야 하고 갈 때는 본인들이 철거 후 반납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철거와 마무리를 확인하는 외국인도 있었습니다.
불볕더위 때문에 영내 미로 찾기 코스 등은 대부분 야외 행사는 취소하고, 에어컨이 있는 시설 세 곳만 운영되었습니다. 주변 관광지 변산 해수욕장 물놀이 고사포 숲속 체험과 행글라이더 임실 사격장 등 영외코스만 운영되었습니다.
캠프 운영본부
세탁기와 건조기가 21대가 운영되지만, 왕복 1- 10km나 멀리 식당 옆에 떨어져 한곳에만 있고 줄 서서 기다렸다가 해야 했습니다.
나에게서 땀 냄새 날까, 염려되어 궁여지책으로 밤마다 샤워하며 세탁도 손빨래로 다 했습니다. 세탁기를 캠프별로 한 대씩 나눠서 설치했으면 좋으련만!?
뉴스에 부정적 소식만 연일 넘쳐났습니다. 덕분에 음료수, 우산, 모자, 아이스바 등 기부 물품이 엄청나게 쌓였습니다.
배부하다 남은 물품은 모기약이나 음료수, 비싼 썬크림 등도 책상 위에 놓고 자유롭게 양심껏 가져가라 했습니다.
터널식 철골 구조에 넝쿨 식물을 심어 안개 분무를 뿌려주고 그 밑에 멍석을 깔아주니, 사람들이 그곳에서 쉬면서 자연스레 물물교환 시장을 열기도 하고 누워 쉬기도 했습니다.
하얀 천을 넓게 현수막처럼 펴놓고 낙서와 그림 솜씨 자랑하라는 곳과 노래와 춤 솜씨 자랑하는 무대도 여러 곳 만들어 놓았습니다.
나는 낙서 현수막 맨 위에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만드세요” (welcome to korea, we wish you have a nice time in korea) 필기체 정자로 먼저 써놓고 만화 낙서를 권장했습니다.
도로에 물차가 다니면서 시원하게 물을 뿌려주며 도로를 식혀주기도 하고, 관광버스를 여러 대 세워놓고 에어컨을 틀어주며 쉼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아이디어랍니다.
일부 음식은 상할 우려가 있어 기부도 거절했습니다. (거절도 미안했습니다.)
젊은이들은 밤늦도록 두 세시까지 놀면서 세계시민의 우정을 다지는 게 보기 좋지만, 나는 11시 즈음 꼭 자야 내일 또 일할 수 있으므로 매일 11시에 평소 습관처럼 잤습니다.
나는 우리 캠프본부와 내 텐트 주변에 CCTV 촬영 중이라는 글을 컴퓨터로 뽑아서 여러 곳에 붙여서 인지, 내 텐트와 다른 텐트는 도둑맞지 않았습니다.
우리 팀 외국인 중에 “실제 촬영용 카메라 어디 있냐?” 고 물어보는 사람이 테리와, 티안홍씨 두 명 있었습니다. 나는 “휴대폰으로 찍습니다.” 고 답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사진 찍으러 여벌로 안 쓰는 휴대폰을 두 개 더 가져갔습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내 근거리 무선망 스피커를 가져가 여벌 핸드폰 유튜브로 검색해 올드 팝송, 우리 가곡, 명상 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들려줬습니다.
칠레에서 온 이사벨 여사는 60세쯤으로 나이가 좀 있는데도 매일 빈 물병에서 상표 라벨 비닐과 병뚜껑을 분리하는 일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열심히 해서, 내가 모자와 남는 비누 몇 개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물을 무료로 주니 빈 물병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이사벨은 내 별명, 실버벨과 같은 벨 자 항렬이니 당신은 내 동생이다.”고 농담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귀에 익은 올드 팝송을 틀어주니 좋다고 했습니다. ‘철새는 날아가고’(엘 콘도 파사: el condor pasa) 는 그 고향 지역 남미 민요라 특히 귀에 익은 음악인지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상대적으로 젊고 예쁜 봉사자에게는 대화를 많이 나누는데, 조금 나이 들어 보여서인지 그녀에게는 누가 말을 잘 안 하는 것 같기에, 내가 조금 말을 걸었더니 손가락에 생채기가 나자, 나를 찾아와 치료를 부탁해서 응급처치를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헤어질 때 힘 있게 나를 포옹 해줬습니다.
명상 음악을 켜니 나이 먹은 부대장 티안홍씨는 엄지척하는데, 젊은 일본 여대생 아소카는 두어 시간 지나자 그만 다른 걸로 해주라고 부탁했습니다.
외국인 중 가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리듬에 춤을 추어주는 모습이 재미있어 좋았습니다.
가끔은 “성희롱 문제 생긴 것 없냐?”는 순찰반도 왔었고, 밤 두 시쯤에 화장실이 백 미터 떨어져 있어 너무 멀어 중간 잡초에 실례했습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외국인 야간 순찰반이 자전거 타고 가다 “괜찮아요? (are you okay?)” 하기에 “괜찮다 (okay)”고 했습니다. 아마 어두운 곳에 혼자 구부정하니 서 있는 것이 이상하게 보인 모양입니다.
여자 샤워장을 외국인 남자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샤워하는 소란이 있었으나, 본인은 실수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밤에 천막으로 대충 만든 샤워장이라 한번은 이해가 갔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도 또 여자 샤워장 문을 그 외국인이 열자, 한국인 전주 팀 대원들이 우연히 많아서, 한국 팀에서 강력히 항의해도 잼버리 본부 측에서 그 외국인을 아무 조처를 하지 않자, 항의 차원에서 전주 팀은 전부 철수했습니다.
나는 피곤하여 지도자 화장실 따로 있는데 20m 뒤에 있는 것을 못 보고 대원들 화장실을 이용했습니다. 어느 아르헨티나 젊은이가 “지도자 화장실 있는데 왜 그리 안 가고 이리 왔냐?” 고 하기에 “미안하다 나는 아르헨티나 대통령 에바 페론도 알고 아르헨티나 탱고도 안다.” 고 너스레를 떨다가 나왔습니다.
그 뒤 지도자 화장실을 가니 이용자가 적어서인지 훨씬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한번은 내가 장식을 멋지게 해서 꾸민 새 모자를 머리 감고 깜박 잊고, 두고 나와서 다시 가보니 멋진 내 새 모자 대신 오래된 낡은 모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오호애재라’
전날 샤워장에서 내 물비누를 피곤해서 깜박 잊고 놓고 나와서, 화장실 비누를 가져다 샤워 후 도로 갖다 놓으려고 갔더니, 벌써 새것으로 누가 가져다 놓았습니다. 너무 날씨가 더워서 정신이 깜박깜박했습니다.
내가 노르웨이 여행 때 산 모자에 잼버리 마크를 붙여 쓰고 다녔습니다. 노르웨이(NORWAY)라고 앞에 크게 써진 영문자가 멋있어 보였는지 파나마 스카우트 대원이 교환하자고 했습니다. 흔쾌히 바꿔 주었는데 의외로 파나마모자 디자인도 해골 문양 비슷하여 멋있었습니다.
영국 팀이 미리 철수하기로 결정되자 헤어지기 아쉽다고 전부 돌아가며 포옹하고 헤어졌습니다. 나는 피부가 제일 검은 청년이 제일 말도 없이 풀 죽어 있는 듯하여 안쓰러워 조금 더 오래 안아 주었습니다. 유럽 미녀들은 포옹하기가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그녀들도 동양의 에티켓을 아는 듯 서구인끼리는 부담 없이 깊게 포옹하는데 동양인에게는 조심하는 듯 했습니다.
아이스크림
막대 꽂힌 아이스 바가 2,000개 들어왔습니다. 영국 팀, 미국 팀들이 철수하여 아이스바가 많이 남아 보관이 곤란한데 모두 무관심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녹을까 봐 아이스박스에 넣어두자 해서 팀원들과 같이 담아 뒀습니다. 후에 대형 냉장고가 와서 보관하여 사람들에게 나눠 주니 좋아했습니다.
컵에 담긴 고급 아이스크림도 50개를 누가 기부하기에 기분이 좋아 이00 대장님에게 보고하니 “누가 50개를 주고 갔어?” 하고 갑자기 화를 냈습니다. 나는 기분 좋아서 한 말인데 의외의 반응에 황당했습니다. (순간 이00 대장님은 관할 대원 숫자가 2000명이고 캠프본부 봉사자는 40명인데 누구에게 주기에도 어정쩡한 개수다.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누가 줬는지 기부자 명단을 쓰고 받아요.” 하고 말했습니다. 내 표정이 조금 일그러지며 “내 옆에 보조 근무자를 배치해 주십시오. 이쪽은 나 혼자 며칠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니 대장님도 아차 싶었는지 다음날 근무조를 보내 주셨습니다.
다음날 한 예쁜 걸스카우트 학생이 캠프에 와서 “우리 봉사 활동 왔어요, 저는 아저씨 이름 알아요 은종민씨죠? 제 이름은 ㅇㅇㅇ예요. 제 이름 이제 기억해주세요” 해서 내가 이름을 못 외어준 죄로 “그래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먹어라” 했는데 그 학생 주변 대여섯 명만 온줄 알았는데! 함께 온 친구가 전부 20명이라 했습니다.
깜짝 놀라 나는 인솔교사에게 “대여섯 명만 온 줄 알았는데! 20명은 별로 봉사 활동 한 것도 없는데 주기가 눈치 보입니다.” 했더니 인솔 교사는 “알았어요.” 하고 수긍했는데 곁에서 듣고 계시던 이00 대장님이 “전부 주세요! 너희들 은종민 선생님 덕으로 먹는 거다 ” 하시기에 고마워서 “ 아니 이건 이00 대장님이 주시는 것이다” 하고 애들에게 다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다음날 아이스크림 먹은 여학생이 또 와서 “아저씨 제 이름 기억하세요?” 하고 물으니 등에 땀이 났습니다. “ 64세가 넘으면 기억력이 떨어져 잘 잊는단다! 미안하다.” 말했지만 고문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외국인 어린 보이 스카우트가 귀여워 불러서 오라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키 작은 어린 순서로 주고 제일 키가 큰 여자가 있기에 “너는 어른 아니니?” 하니 “저도 어려요” 하며 카드를 보여준다. 잔잔한 미소를 짓고 기다리는데 성숙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내가 무료로 준다고 누가 소문냈는지 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몰려왔습니다. 다행히 모두 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녹아서 흐물흐물하다고 다른 걸로 바꿔 달라고도 했습니다.
더울 때는 텐트 안에서도 모자를 써야 덜 덥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날씨만 선선하다면 기부 물품으로 내 것처럼 무료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더위를 이겨내느라 젊은 남녀 대원 봉사자들은 아이스박스에 있던 찬물을 서로 뿌리면서 물장난하며 세계 젊은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보니 흥겨워 나는 비디오로 담아서 카톡에 올려줬습니다.
많은 물품을 기부해 주신 분들은 비록 뉴스에 일일이 나가지도 않은데도 잼버리를 잘 치를 수 있게 보내주신 성의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에피소드
외국인 봉사자 중 제일 먼저 온 핀란드인 여성분 IST(international service team) 비르피도 만났습니다. 나는 외국 이름 외우기를 잘못해서 사전에 받은 외국인 명단을 들고, 일주일 전부터 틈나는 대로 외웠습니다.
또 서양 이름은 길어서 암기가 어려웠다. 특히 결혼을 두 번 한 여자는 케네디 오나시스 재클린 하는 식입니다. 결혼 다섯 번 하면 다섯 남자 성을 전부 앞에 써야 하니 긴 단어가 대여섯 개가 넘어 두 줄 쓰는 여자 이름도 봤습니다. 그 많은 이름 중에 나는 내가 부르기 쉬운 이름 하나를 골라서 불렀습니다.
서양에 비하면 한국 여권 女權은 얼마나 신장하였는가? 결혼을 안만 여러 번 해도 자기 이름만 쓰면 되니 여자에게 한국은 축복의 땅이다.
핀란드 여성 이름이 “비르피” 라고 하기에 한국말로는 “당신 이름은 ‘비를 피해라’는 뜻과 비슷하다”고 일부러 말하며 농담도 걸어주고 이름도 외우려고 했습니다.
나이가 조금 연하기에 개인 신상은 안 물어보는 게 예의인데, “스카우트에 아이들 있습니까?” 무심코 물었는데 “이혼해서 아이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픈 데를 말한 것 같아서 미안했습니다. 아이가 없으니 청년들 행사에서 아이들 보는 재미로 왔는가도 싶었습니다.
‘소피’라는 여성분에게는 “당신 이름 한국말 뉘앙스가 뭔지 아십니까?” “몰라요” 하기에 “실례일까 봐 아무도 얘기를 안 한 것입니다.” “내가 말하면 화내지 마세요.” 하니 그녀가 “화 안 낸다.” 하기에 “한국말로 당신 이름은 소변(urinate) 뉘앙스입니다” 하니 미소 지으며 웃어넘겼습니다.
나의 조금 무례한 짓궂은 장난을 웃음으로 넘길 줄 아는 그녀는 미모만큼이나 넉넉한 인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대원들 진영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지역으로 크게 만여 명씩 나누고 그 안에서 2,000명씩 대원을 다섯 단지로 나눠 운영했습니다.
식당으로 가는 차 속에서 외국인들에게 “고구려는 중국과 대등한 힘 있는 나라였습니다.”라는 등 우리나라 역사 설명과 함께 캠프 이름 배경을 간략히 옛날 우리나라 지명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괴뢸레’(전에 잼버리 개최지였던 유럽지명)라고 이름 붙인 캠프에서 33명의 세계 봉사자로 운영본부에 소속하고 거기 2,000명의 음식 배식과 학생 스카우트들의 불편 사항 등 민원을 해결하였습니다.
한국인 17명 외국인 16명으로 조직되었는데 외국인들은 첫 며칠만 봉사하고 자기 나라 친구들 캠프에 가서 놀기도 하고 봉사자로서 책임감은 좀 부족해 보였지만 봉사자들에게 책임을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봉사자 근무 규칙은 3일간 일하고 하루 쉬는 조건인데, 외국인 봉사자들은 2일만 일하고 하루 쉬게 해 달라고 말하고, 하루 8시간 근무 후에는 일 끝났다고 냉정히 일 더 시키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국인 봉사자들은 주최한 국민이라 주인의식으로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못했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무리 잼버리 봉사자라지만 외국에 놀러 왔으니, 그것도 이해는 갔습니다.
젊은이들은 영어 실력이 좋은 사람은 외국 봉사자들과 원활한 대화로 많은 교류를 하고, 응급 환자가 생기면 자기 차로 직접 운전해서 병원에 후송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식당가는 전기버스를 타봤는데 옆자리에 미국인이 앉았습니다. “비디오 촬영 인터뷰 괜찮습니까?” 하니 “좋다” 고했습니다. “한국은 처음 방문입니까?” 하니 “아시아가 첫 방문입니다” 한다. “한국의 첫인상이 어떻습니까?” 물으니 “매우 놀랍고 한국인들이 아주 친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옛날에는 IT 등 첨단기술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배워 왔지만, 이제는 삼성이나 SK 등에서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걸 알고 계십니까?” 했더니 “OK” 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동양계 가무잡잡한 귀여운 아가씨에게도 인사하며 “비디오 촬영 인터뷰 괜찮습니까?” 하니 “괜찮다.” 해서 “타일랜드에서 왔고 이름이 라이팜” 이라 했습니다. “당신 이름은 네이팜 폭탄 이름과 비슷합니다.” 하니 그녀도 알고 있다며 같이 웃었습니다.
“당신은 IST(international service team)입니까?” 하니 “예 IST입니다” “나도 한국 IST이고 여기서 가까운 정읍에 살고, 그곳은 내장산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고 했다. 내가 “당신은 선생입니까?” “예 초등학교 선생입니다.” “당신은 스카우트 몇 명 인솔하고 왔습니까?” 하니 “혼자 왔습니다.” “한국은 처음입니까?” “예 처음입니다” “한국의 첫인상은 어떻습니까?” “재미있고 음식이 맛있고 사실 한국 드라마에 반해서 왔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깊은 감동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예”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헤어졌다.
중동 사람인가 이름이 ‘압달라’가 있기에 “당신이름 한국어 뉘앙스 뜻 아십니까?” “몰라요” 하기에 “네 이름은 한국말로 앞자리 달라는 뜻과 비슷합니다.” 하고 서로 웃었다.
밤에 예쁜 아가씨가 있기에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벨지움’ 이라 하기에 “참 예쁘고, 우아하다.” (beautiful, elegance) 했더니 “엘레강스?”
(elegance) 하고 프랑스어를 못 알아듣기에 영어 엘리건트(elegant)로 말하니 이해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벨기에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있는 나라여서 프랑스어를 잘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프랑스인과 갈등이 있어 못 알아들은 척했는가? 아니면 영어가 더 보편화된 세계 언어인가 헷갈렸습니다.
스웨덴 사람을 만났기에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가까이 붙어 있는 나라니 언어가 비슷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전혀 달라요 차라리 영어로 대화하는 게 더 편해요” 해서 또 놀랐습니다.
캠프에서 42명 중 3개 조로 나누어 회의하는데, 통역사가 한 명뿐이라 영어가 제일 약한 조장이 통역사를 모셔가고, 우리 조는 내가 조금 하는 듯하니까 나보고 통역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문법도 엉망인 내가 똥배짱으로만 더듬거리며 떠들었는데’ 잼버리 오기 전에 ‘회의 영어’를 ‘유튜브’에서 강의 좀 들어서 그냥 해보자 했는데, 다행히 외국인들이 알아들어서 공부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막판 한 문장은 쉬운 단어인데도 머리가 피곤해서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우리 팀 젊은 여자분이 통역해 주어서 무사히 회의가 끝났습니다. 내 생애 최초의 회의 통역이었습니다. 미리 조장님이 말할 내용을 번역기로 한번 해보고 대충 암기한 후 했으면 수월했을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부탁하는 바람에 그런 생각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외국인 소녀들이 수줍어서 속삭이며 빠르게 얘기하는 것은, 나는 도저히 못 알아듣는 것도 알아듣고 대화하는 나보다 영어 실력이 나은 대원이 더러 있었습니다. 아가씨들은 수줍어서 영어 통역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밤에 산책하는데 어두운 데서 사진 찍는 한국 걸스카우트가 여러 명 있기에, 내가 손전등으로 얼굴을 비춰 주었더니, 사진 찍은 후 영어로 ‘하이 파이브 한적 있습니까?’ 하기에 흔쾌히 ‘하이 파이브’ 해줬습니다. 복장에서 태극 문양이 있는 한국 여학생들인데, 내가 외국인인 줄 알고 영어로 말하는데 자연스럽고 발음도 좋아서 귀엽고 기특했습니다.
어떤 서양 여성이 영국인 테리에게만 간식을 주고 가기에 “왜 당신만 주고 갑니까?”라고, 물으니 테리는 “내가 환상적(I am fantastic.)으로 잘 생겨서입니다.”라고 내 농담을 받았습니다. 테리가 저녁에 발을 찬물에 담그고 있기에 “왜 그러냐?” 고하니 “벌레에게 물려서인지, 햇볕에 화상인지 모르지만, 발에서 열이 나서 식히고 있습니다.”라고 하기에 테리 위로 차원에서 외국인 봉사자들 대여섯 명 모이라 해서 기념사진 찍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모기에 덜 물리고 햇볕 차단 하라고, 내가 새것 축구 경기용 길고 두툼한 양말을 한 벌 주었습니다. 그때는 긴 양말을 안 신고 다니기에 빨간색이라 테리 취향이 아닌가 보다 했습니다. 나중에 페이스북 보고 축구 좋아하는 아들에게 선물했을 거라 추측되었습니다. 넉 달 뒤 12월에 영국에서 새만금에서 벌레에게 물려 머리 뒤에 종양이 생겨 종양 제거 수술했다고 페이스북에 사진이 보였습니다. “잼버리 때 봉사 활동 열심히 해서 고마웠는데 아주 미안하다.”라고 하니 소탈하게 “괜찮습니다.”라고 해서 고마웠습니다.
음료수 진열 냉장고 앞에 앉아 있는 나를 테리가 보더니 “ 당신 예리(sharp)하게 보인다.”라고, 갑자기 말했습니다. ( 나는 고맙다고 해야 하나 농담인가? 혼란스럽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인상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참 여러 가지로 본다고 느꼈습니다. 아무 말 안하고 있으면 좀 무능해 보인다고도 하고,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한다고도 했습니다. 학생 때 버스에 앉아 있으니 어느 아가씨가 좌석이 없으니 그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내 의자 팔걸이에 앉더니 방귀를 뀌어서, 본의 아니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습니다. 서울 지하철에서는 어느 작은이가 좌석이 없으니 승객 전부를 둘러보다가 내 앞으로 와서 “일어나요! 나 다리아파 죽겠어요.” 하고 나이는 들어 보이는데 아이 목소리로 말하기에 양보했더니, 내 옆자리 아가씨도 덩달아 얼른 일어섰습니다. 아가씨는 좌석 양보가 아니라 이상해 보이는 남자와 같이 앉아 있기 싫어서 일어선 듯 보였습니다. 왜? 사람들은 내게만 양보를 원하지? 이상하다. 내가 제일 만만해 보이나?)
온열질환 치료제가 사흘 만에 다 떨어져서 대학병원, 제약사에 약품 긴급 공수 요청해서 치료했다고 합니다. 합계 8,000여명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전 대원에게 작은 휴대용 모기 퇴치 약 한 사람당 한 개씩 사만 삼천 개를 다 나눠주니 그 뒤부터는 모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밤에 수돗가에서 빨래하는데 어느 백인 아가씨가 내 눈과 마주치니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습니다. 남자가 빨래하니 어색해 보였나? 밤에 여인의 미소는 유혹적으로 보여 여운이 오래 갔습니다.
통역사가 부족하다 보니 과로로 통역사가 힘들어했습니다. 하루는 어느 아가씨를 일일 통역사로 부르기도 하고, 밤에 회의 때만 와서 하는 미국 선교사 경력 목사님 통역사도 있었습니다.
나는 번역기를 사용하고 통역사를 가급적 부르지 않았습니다.
밤에 “무거운 것을 같이 옮깁시다.” 말하니 늙은 사람 셋만 일어나고 젊은이들은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더위에 힘들어서 “ 무거우니 옮기지 말고 물건 앞에서 배분합시다.” 하니 “다른 것도 배분해야 하니까 옮겨야 해요” 이렇게 옥신각신해도 한국 젊은이들은 앉아 있었습니다. 외국인은 손님이니까! 안 시켰습니다. 아가씨 봉사자들이 수박을 먹고 있기에 “팀장 선생님들 드렸어요?” 하니 “안 드렸어요.” 한다. 이유를 물으니 “그릇이 없어서”라기에 내 것 그릇을 배낭에서 꺼내서 내가 직접 수박을 대접했습니다. ( 젊은이들이 가져다드리면 더 맛있을 터인데! )
공부만 하느라 대접만 받고 커서 남을 대접 하는 것은 서먹해 했습니다. ‘군사부(君師父)’ 일체는 옛말이고 선생님과 부모들이 적잖이 자살하는 사건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님 때는 선생님에게 맞아서 이빨이 부러져도 부모가 가서 선생님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아들을 잘못 가르쳐서 선생님 속상하게 했습니다.”라고 사죄했습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하지 않는다고 몽둥이로 엉덩이를 시퍼렇게 맞아도 대부분 부모가 속으로는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우리 아들 공부 잘하겠네!’ 하고 겉으로는 “아팠겠다. 열심히 해라.” 하셨습니다. 한 부모 가족 아이들 부모들이 특히 예민하다는 통계 뉴스를 들었습니다. 지금 오륙십 이상 나이 드신 분들은 부모에게 효도는 하고, 자식에게 효도를 기대하면 안 되는 (꼰대 소리 듣는) 최초의 세대라고 말합니다.
태풍 하이눈
8.7 일. 해마다 여름이면 오는 태풍이, 잼버리 기간에는 안 오기를 기도했건만 역대 급으로 큰 태풍이 한반도를 관통한다고 뉴스에 나오니 모두 긴장했습니다.
갑자기 대책 회의를 하더니 오늘부터 차츰 철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128개 학교 기숙사, 기업 연수원 등으로 전국으로 분산 배치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전 계획대로 라면 전북 내 초중고등학교에 분산하여 배치해야 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거의 모든 대원들을 경기도와 수도권 일대로 분산 배치했습니다. (일부 인원은 충청도 지역으로 배치했습니다.)
전주에서 예정된 폐막식을 서울에서 폐막식과 K-POP 콘서트를 준비한 이유는 경기도 주변에 영국과 미국 대원 등 외국 대원들이 많은 것이 원인 아닐까 합니다. 심지어 새만금에 가까이 있는 부안 대원들도 경기도 파주로 보내고, 진안 대원들은 경기도 가평으로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정읍 대원들은 단대장님의 판단으로 지정된 대피장소로 이동하지 않고 임시로 귀가 조처하였다가, 다음 날 짐을 새로이 정리하여 폐막식 대피장소로 이동하였습니다.
새만금 큰 식당에서 밥 먹다가 천둥이 치니 세계 스카우트들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환호했습니다. 스카우트 정신은 모험정신 개척정신을 배우는 것일 수 있는데 태풍이 얼마나 강력할지 정확히 예측 못 하니 미리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조치였습니다.
식사 도중에도 갑자기 누가 박수를 치면 박수가 전염되어 모두 손뼉 치면, 나는 아이돌 스타가 나타난 줄 알고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면 아무도 없는데, 식사 도중에 세계 스카우트 젊은이들은 가끔 작은 일로도 손뼉을 치면 박수가 전염되어 모두 손뼉 쳐서 사소한 일로도 분위기를 즐겁게 했습니다.
한국 임원들은 비가 오니 외국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근심 어린 표정으로 비를 보자, 유럽 스카우트는 “비를 즐기세요.”(fun, fun) 하면서 오히려 우리를 위로했습니다.
어느 영국 아가씨는 가방 위에 앉다가 가방 안의 버튼 칼 (잭 나이프)의 버튼이 눌려 칼이 가방 안에서 펴져 엉덩이를 찔러 다쳤습니다.
한국 나이 든 간호사가 치료하며 딸 같은 나이라 안쓰러워 울상을 짓자 “엄마 웃어요.” ( mommy smile ) 를 연발하며 오히려 위로했습니다.
철수한다는 자국팀 버스를 보고 “저 버스 타고 간다.”라고, 어느 외국 봉사대원 아가씨가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캠프 대장님에게 말하고 가라”고 했더니 우리 대장님을 찾느라 눈빛이 초조해 다니기에 우리 대장님이 어디 가신 모양이구나 생각하고 “내가 나중에 말할 테니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이 많은 시설을 투자하고도 계획된 12일 중 4일을 못 쓰고 철수한다니 아쉽습니다. 추가 교통비, 숙식비를 지자체가 우선 부담 후 나중에 정산하기로 했다지만, 예비비 지출이 눈덩이처럼 많아진다고 합니다.
집안 형님과 통화하니 “기상 예고는 원래 강하게 올 것처럼 예고를 해서 태풍 피해에 미리 철저히 대비토록 하는 경향이 있으니 참고하라”고 했는데 역시 지나고 보니 그리 큰 태풍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역사상 삼만 년 만에 오는 가장 더운 날씨에 불운한 잼버리를 치렀다.”라는 뉴스였습니다.
영국 정부는 철수한 이유를 음식 미비, 화장실 불결, 샤워장 부족, 등을 이유로 들며 이년씩이나 저금해서 온 잼버리를 그렇게 보낼 수 없었다며, 항의 서한을 외교부에 보냈다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음식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물만 넣으면 따뜻해지는 발열체를 넣고 해 먹을 수 있는 등산용 비빔밥이 한글로만 사용 설명서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외국 아이들은 이걸 어떻게 먹느냐고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고 못 먹고 반품했었습니다. 원가 8,000원 식사비를 3,000원이라는 야전 등산용 식량을 보급하니, 가격을 아는 한국 대원이 항의해도 식사 공급업체의 대답이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잼버리란 야전에서 고난 극복훈련이지 호텔 생활을 즐기러 온 것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번 잼버리 대회 자원봉사자 활동을 통해서 많은 외국 친구와 사귀고 즐겁게 놀려고 기타도 전부 새것 줄로 바꾸고 수리해서 가져서 갔습니다.
덥고 내가 봉사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학생 신분으로 착각한 셈입니다. 기타는 꺼내지도 못하고 폭염에 쓰러지는 외국인들을 한 사람이라도 줄이기 위해 물을 한 병이라도 더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밤에 외국인 세 명이 한참을 얘기하고 있기에 “실례합니다.”하고 정중한 예를 갖추며 물을 주니 그들은 “땡큐” 하며 고마워했습니다.
휠체어에 타고 아파서 구급차에 탄 외국 아가씨가 흐느껴 울 때도 물을 주고 싶었는데, 환자에게 생뚱맞은 웬 물이냐? 라는 느낌을 줄까봐, 미모도 부담되어 주지 못해서 서운했습니다. 고생은 좀 한 것 같지만 많이 느끼고 많이 봉사한 보람을 느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 주차장에 있는 내 차를 찾으러 5km 넘는 길을 밤에 가기 힘들어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가는데 밤이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한국인 젊은 분이 자기도 너무 멀어서 힘든 경험이 있다고 하면서 잘 모르는 길을 친절히 찾아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도로 혼잡을 피하려고 한국 봉사자들 차를 주차장에 두고 끝나는 날만 와서 가져가라 하였지만, 거의 다 가져다 미리 사용한 것을 보니 나는 고지식한 편에 들었습니다.
내 캠프로 오는 도중에 밤이 늦었는데,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 잼버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쉬운 듯 어두운 밤길을 많이 걸어 다녔습니다.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어서인 듯싶었습니다.
누가 손을 들어 태워 달라기에 네 명을 내 캠프를 더 지나가는 길이지만 데려다주었습니다. 잼버리는 봉사하는 게 기본정신이고 내 아들 딸 같은 세계의 젊은이들이라 전부 사랑스럽게만 보였습니다.
내 캠프 들어가는 입구에서 밤이라 입구 길이 안보여서 하수도에 빠질 듯하자 외국 젊은이 들이 손짓으로 알려주어 안전하게 진입하였습니다.
고마워서 물 담은 아이스박스를 가리키며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봉사 활동을 하고 와보니, 잼버리 부정적인 면만 보고 새만금 예산 78%를 삭감했다는 뉴스가 나와 기가 막혔습니다.
전북 국회의원들과 시, 도의원들이 삭발 투쟁을 하고 전국의 전북출향인 까지 오천 명이 국회에 가서 난리를 쳐도, 힘없는 전북이라 들은 척도 안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이 전북 소방공무원 시험에 2023. 7월 합격하고 광주에서 연수중인데 다른 지역은 훈련 중 월급이 제때 나오는데, 전북만 월급도 늦게 주고 예방주사도 다른 도는 그냥 놔주는데 전북도만 자비로 삼만 원 하는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했다는 기막힌 소식도 있습니다.
뉴스만 보고 집사람 왈 “직장도 그만두고 집안일도 안 하고 폭염에 잼버리를 망해 먹고 와서 아들에게 피해주고 어디 가서 잼 자도 꺼내지 말어요.” 라고 했습니다.
봉사자인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그 소리 다 듣고도 참아야 했습니다. 차기 폴란드 잼버리를 건강이 허락만 된다면 또 가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집사람은 속없다고 할까? 철없다고 할까? 어떻게 평가할까? 분명히 좋은 소리는 안 할 줄 알지만 궁금합니다.
잼버리 뉴스
‘국제적 망신이다.’ ‘불볕더위에 말라버린 잼버리’ 등 나쁜 뉴스투성이다. 좋은 기사는 눈감고 귀 막고 나쁜 것만 대대적으로 내는 한국 언론을 보고, 한국에 스카우트들을 보낸 세계 부모님들이 모두 걱정하는 통화를 했을 것입니다.
나와 나이 든 퇴임 교장 선생님 세 분은 다음 날 주변 정리를 하고 9일에 퇴영하니 10일에 태풍 영향으로 비가 많이 와서 미리 철수를 잘했다고 느꼈습니다.
전 현직 교사들, 영어 잘하는 자원봉사자들, 고액 인건비 의사 간호사 등 무보수로 음지에서 봉사해 주고 수많은 기부 물품 등을 보내준 기부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좋은 것은 기자들에게는 안 보이고 안 들리는지 집에 와보니 잼버리 나쁜 뉴스만 온통 방송했습니다. 처음부터 무슨 의도는 없었겠지만 결과는 내년도 전북 예산 삭감할 사전작업이 되었습니다. 뉴스를 요약하면
1. 지휘 본부(컨트롤 타워)가 없었다.
여가부 김현숙 장관, 전라북도 지사, 부안군수, 잼버리 총괄 대장들이 유기적 협력이 부족 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이 바뀌니 담당자가 바뀌고, 잼버리 관련 해외 출장 99번 갔다 온 자들이 18명이나 전부 타 부서로 발령 나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4년에 한 번씩 하는 국제 행사인데, 2016년 유치가 결정되었으면, 한류열풍으로 미국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많은 인원 43,000명이나 온다고 하니 철저히 한 팀을 꾸려서 적어도 5년 동안 인사이동 없이 한 팀으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2. 프리(pre-) 잼버리가 없었다.
일 년 전에 미리 예행연습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로 사람이 안 올 것 같아서, 배수 작업을 철저히 못 해서, 예행연습도 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했다가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제일 큰 피해는 고스란히 준비를 입찰한 공사업체들 몫이었습니다. 안 할 거니까 축소해서 설계 다시 내오라, 해서 고쳐서 가면 다시 한다고 확대해서 해오라 했다가 예산이 부족하니 또 조금 축소해서 다시 설계를 빼 오라 했습니다.
코로나로 위험하니 또 안 한다고 했다가, 대통령이 강력히 밀어 추진 했지만, 예행연습을 1년 전에 안 한 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태풍에 전 국민이 발 빠르게 대처하여 그나마 실수를 만회했다고 세계 언론이 평했습니다.
3. 예산 배정이 늦었다. 93억 예산을 빨리 주었으면 폭염 대책, 방역, 등을 빨리했을 것입니다. 잼버리의 기본정신은 ‘미리 준비’하라 인데 이렇게 준비가 안 되다니…….
4. 속성으로 자랄 수 있는 나무를 심었으나 염분으로 다 죽었습니다. 대신 비닐하우스 식으로 타원형 넝쿨식물을 심어 안개 분무로 시원하게 해주었습니다.
5. 전체예산 중 문재인 정부 집행한 13.3% 156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예산중 74%인 870억을 중앙정부가 집행하고, 22.6% 265억을 전북이 집행했는데, 모든 잘못을 전 정부와 전북으로 돌리고, 그 핑계로 내년도 새만금 관련 예산을 78%인 5,500억을 삭감했다고 했습니다.
국정감사에서 여당은 전북도와 지자체 직원이 75% 일했으면서, 전북도지사가 중앙에 책임을 떠넘긴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치 실패한 부산 엑스포 공식적으로 편성된 홍보 예산만 5,744억이고 그밖에 부수적으로 들어간 비용도 있을 테니 6,000억 이상의 규모일 텐데!? 얼마를 어디에 어떻게 정확하게 사용했는지 국정조사 가야 하지 않을까요?
엑스포 홍보면 한국의 기술력 홍보에 중점을 두어야지 ‘강남스타일’ 등 케이팝 홍보에 중점을 두는 실수를 했다고 언론에서 보았습니다.
잼버리 보다 유치홍보 예산만 다섯 배나 많이 쓰고 유치하지도 못했는데 그 사건은 조용하고, 새만금은 잼버리는 유치 성공해서 폭염 속에서 어쨌든 힘들게 행사를 했는데 잘못된 것만 지적하고, 다음 해 예산까지 삭감해야 하는지 논리가 맞지를 않는다. 부산도 다음 해 예산 더 삭감해야 하지 않을까요? 힘센 곳은 아무리 잘못해도 별일 없는 듯 조금 신문에 보도하다 말고 조용하고, 힘없는 전북만 언론이 무참히 짓밟는다.
6. 잼버리 끝난 후에도 계속 감사 한다는 둥 새만금 잼버리 한곳 부지는 전체의 2%밖에 안 되는데 잼버리 파행 운영의 책임을 물어 새만금 전체예산 삭감했습니다.
30년 동안 지지부진하니 새만금 예산 배정을 안 하고 끌어오더니 큰 핑곗거리를 찾았습니다. 전북도민들은 놀라고 분노하여 여의도에 가서 국회의원들과 시, 도의원들이 연이어 여자의원들도 삭발하고 도민 오천 명이 예산 삭감 반대 시위했지만 힘없는 전북이라 32% 깎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24년 예산을 다른 도는 전부 전년 대비 증액인데 전북만 –1.6% 삭감했고 대통령 고향인 충남은 전국 최고 증가율인 12.8%를 전년 대비 증액했습니다. 너무한 예산안입니다.
6.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 “새만금을 홍보하려고 새만금에 유치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 하지만 국민과 종교계까지 나서서 후원을 해주는 등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여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 격려도 필요하다.”라고 성숙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7. 잘 치러진 1991. 강원도 고성 잼버리는, 만 구천 명으로 새만금의 인원 절반도 안 됩니다. 무주 태권도 공원이나, 지리산이나 내장산 캠핑장 등 전국 산을 골라 배치해서 하면 더위를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넓은 장소 찾는 어려움과 잼버리 장기 자랑 춤과 노랫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도 염려되었다고 했습니다.
세계 언론
1. 영국, 미국 팀은 안전하지 않고 불편하여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잼버리는 재난에 대한 모험이고 상황은 항상 변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한국의 발 빠른 태풍 대책 등을 긍정적 평하며 대원들은 즐겼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2. 같은 영어권인 호주 캐나다 대원들은 끝까지 새만금 캠프에 남으며 태풍에 전국 8도로 흩어졌지만, 그곳에서 다양한 한국을 체험했다고, 오히려 걱정하는 부모들과 즐겁게 대화하며 다음 잼버리에 또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3. 네팔 보이 스카우트는 “지구 온난화로 폭염이 와서 고생을 경험한 것이니 한국을 욕하고 싶지 않고, 지구 온난화에 대해 세계 친구들과 논할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평했습니다.
4. 그 밖에 많은 나라 스카우트는 “즐거운 경험이고 잼버리가 끝나고도 며칠 더 한국을 여행하며 한국의 매력에 흠뻑 취해서 갔다”라고 했습니다.
※ 세계 언론들은 태풍에 발 빠른 대처와, 친절한 한국인 k-pop 등 긍정적인 보도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5. 다음은 나의 스카우트 지도자 상급 훈련 사전과제 리포트를 소개합니다. 일주일간 사전훈련 받기 전에 미리 리포트를 제출하고, 심사한 후 훈련받을 자격 통과한 사람만 훈련받았습니다.
6. 나는 상급 훈련을 받고 영어나 불어 소통 능력이 있어야 대지도자 자격이 있는데, 지도자 수가 모자라 자격 미달인데 신분증에 ‘대지도자’로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남보다 열심히 했는지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조직위원장’이 주는 ‘감사장’과 ‘한국스카우트연맹총재 감사장’ 도 받았습니다. 다들 애썼으니 다 준 걸로 알았는데, 몇 사람만 준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7. 그래서 잼버리 끝나고 상급 지도자 훈련을 늦게라도 받았습니다.
【 상급 훈련 사전과제 】
가. 스카우트 규율 12가지를 쓰고 각각의 규율과 관련하여 지도자님 스스로가 실천하고자 하는 계획을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세요.
내용: 1. 스카우트는 믿음직하다. 7. 스카우트는 순종한다.
2. 스카우트는 충효 한다. 8. 스카우트는 쾌활하다.
3. 스카우트는 도움이 된다. 9. 스카우트는 근검하다.
4. 스카우트는 우애롭다. 10. 스카우트는 용감하다.
5. 스카우트는 예의 바르다. 11. 스카우트는 순결하다.
6. 스카우트는 친절하다. 12. 스카우트는 경건하다.
‣ 나의 실천 계획 : 2023. 새만금 잼버리 IST(International Service Team) 로 참가한 저는 2023.7.28. 일부터 새만금 현장에 미리 가서 손님맞이 준비를 했듯이 2025년 아태 잼버리도 봉사하고 싶습니다.
8.1일부터 외국팀 입국자들의 접수를 하면서 일일이 손 세정제를 주어 손을 닦고 컴퓨터 자판을 깨끗이 유지하여 방문자들이 손으로 전염되는 일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 폭염으로 많은 스카우트들이 탈수증상으로 환자가 속출하여 환자를 한 사람이라도 줄이기 위하여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고 냉수를 만들어 오고 가는 대원들에게 물먹고 가라고 (free cool water) 를 외치며 계속 물 공급을 하였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파는 물 인줄 알고 안 먹을까 봐, 폭염 속에서 물 공급을 열심히 하여 탈수 환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힘썼습니다.
‣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찾아서 물 공급 봉사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했습니다.
원래 3일 일하고 1일 쉬라고 하였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봉사하였습니다. 외국 대원은 2일 일하고 1일 쉬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오후 6시 넘으면 일과 끝났으니 더 일 시키지 말라는 외국인 IST도 있었지만 한국인 봉사자들은 거의 쉬지 못했습니다.
‣ 잃어버린 물건 찾아 주기 일도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빈 상자에 ‘분실물 보관함’ (紛失物保管函, Lost and found) 3개국 언어로 써놓고 찾아 주었습니다.
‣ 새만금 잼버리 행사 때 봉사한 것이 저의 일생에 최고 많이 땀을 흘렸지만 제일 행복한 봉사 활동 시간으로 기억하고 싶고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잼버리도 즐거운 마음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봉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 세계 및 한국스카우트 운동에 관한 역사를 탐색하고(서적, 홈페이지, 세계연맹 자료 등), 스카우트 운동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항목을 골라 스카우트 연표(年表)를 만드십시오.
내용: 1. 세계 스카우트의 역사
가. 운동의 발현
. 1907년 영국 육군장성이 베이든 포우엘(Lord Baden Powll)경이 영국에서 시작했습니다.
. 1907. 8. 1일 영국브라운시 섬에서 개최한 실험야영이 스카우트 운동의 시초였습니다.
. 청소년의 자기계발과 사회공헌의 목적으로 전 세계 청소년 운동으로 성장했습니다.
나. 스카우트 조직 및 구성
. 세계스카우트사무국 : 말레이시아 쿠랄라룸프르 위치
. 전 세계 6개 지역 (아시아태평양, 아프리카, 아랍, 유럽, 유라시아, 인터아메리카) 사무처 운영
. 171개 회원국 (2020. 1. 19 현재) 5천만 회원 보유
. 거버넌스 : 세계 스카우트 이사회(27명)가 주요 정책 의사 결정
매 3년 세계 스카우트총회 개최
. UN 및 산하기관(UNESCO, UNDP 등) 청소년 특별 자문기관
2. 세계 잼버리의 한국 유치에 대해
가. 1985. 독일 문헨에서 제30차 세계총회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의 등 네 나라가 유치 신청하여 17회
세계대회를 유치하였습니다.
. 7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스카우트의 역사에서 큰 업적이며 경 사였습니다.
. 강원도 ‘고성’과 전북이 유치전을 벌여 고성에서 분단의 현실을 보여주자는데 힘이
실려 1991년도에 개최하여 만구천 여명 인원으로 잘 치렀습니다.
나. 스카우트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누군가가 “스카우트운동은 무엇을 하는 운동 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어떻게 스카우트 운동을 설명하시겠습니까?
‣ 스카우트 운동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각자의 개성을 계발하여 이 사회에 충직하고 정의심이 강한 봉사자를 양성하는 데 있습니다. (월남 ‘이상재’ 선생님말씀)
‣ 인류의 평화와 행복과 번영을 위하여 유용한 청소년을 양성코자 함.
‣ 편안한 가정생활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친구들과 협조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활하는 법을 배우며 협동심과 자립심을 통해서
부모님 은혜에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다.
‣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항상 길러서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준비하고 있어야함
‣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하고 봉사를 실천합니다.
‣ 사회교육 과정에 참여하여 인격 형성을 돕는다.
‣ 컵스카우트의 (초등학생 스카우트) 규율처럼
1. 대원은 윗사람을 잘 따릅니다.
2. 대원은 남의 힘을 빌리지 않습니다.
3. 대원은 날마다 착한 일을 합니다.
‣ 비버의 약속 (유치원생 스카우트)
1. 신나게 2. 사이좋게 3. 내 힘으로 생활합니다.
‣ 하나님과 나라를 위하여 나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 스카우트 규율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 저의 예를 들자면 새만금 잼버리 행사 때 탈수 현상으로 기절하는 환자가 많이 생겨서 소방서 119에 실려 가는 환자가 있을 때
환자후송하는 소방관들을 도와주었습니다.
‣ 무거운 짐을 들거나 옮기는 작업하는 사람을 보면 가급적 도와주려 노력합니다.
‣ 외롭고 어려운 노인들을 보면 도와드립니다.
‣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으면 도와드리려 합니다.
‣ 도와드리고 나서 사례를 바라지 않습니다.
전체적 총평 (결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청소년 소녀들은 창의력이 필요하다.
한눈팔지 말고 학업에만 전념해도 험한 생존경쟁 세상 살아가기 힘들 텐데 무슨 캠핑이냐? 라는 한국의 대다수 부모들 생각입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70%가 스카우트 출신이고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빌 게이츠, 우주인 암스트롱, 케네디, 닉슨 대통령 등 유명인들이 스카우트 출신입니다.
닉슨 대통령은 한국 방문 시 박정희 대통령이 여러 훈장을 주겠다고 건의했는데 다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한국스카우트 총제가 주는 메달은 받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스카우트에서의 추억은 나이 들어서도 잊지 못하는 추억입니다.
학업에 지친 몸을 친구들과 캠핑은 창의력 계발에도 좋아서, 준 군대식 훈련 과정, 재미있는 게임 등을 베이든 포우엘 경이 책으로 제작했을 때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잼버리에서 만난 친구들은 성장 후 대부분 그 나라 유명 인사가 되어 해외 출장가면 유명인사로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해외 유명 인사들을 미리 사귀면 큰 자본이 됩니다.
학업에 지친 한국의 청소년들이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보이스카우트와 걸스카우트 활동을 하여, 앞으로 2025 아시아 잼버리에서 만날 수 있는 더 많은 스카우트 참가자와 봉사자가 나와서 훌륭히 잼버리를 실수 없이 치르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씁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4년 새만금 세계 잼버리를 치르는 나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잼버리 운영권을 자동으로 가져올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치러야 했다. 하지만 잼버리 관계자 회의 결과 2025년 아태 잼버리를 반납하기로 했다. 너무나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열심히 일한 잼버리 자원 봉사자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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