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를 위하여
김부조
오늘 하루쯤은
신문이 없었으면 한다
오늘 하루쯤은
텔레비전을 끄려 한다
먼동이 틀 무렵 새벽 강가로 나가
갓 깨어난 강물에 머리를 감고
밤새 달려온 풋풋한 바람에
낮은 자세로 안겨
새들이 다투어 전하는 여명의 비결을
귀담아 들어보려 한다
오늘 하루쯤은
휴대전화의 전원도 일찌감치 끄고
인터넷 접속도
오늘 하루쯤은 걸렀으면 한다
소리와 문자의 소통이 아닌
마음에서 빚어낸
침묵의 언어와 심상을 곱게 날려
따분한 텔레파시의 존재 논란에
미루었던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오늘 하루쯤은 심심한 생수가 무색할
구수한보리차를 팔팔 끓이고
습관성 커피를 잠재울
그윽한 녹차 향을 잔뜩 우려내려 한다
잃어버린 향기의 아련한 기억이
낯익은 춤사위로 고개를 들면
향내 나는 연필을 정갈하게 깎아
빛바랜 편지지라도 좋으니
소식 뜸한 고향 친구에게
황토빛 안부를 꼼꼼히 물으려 한다
오늘 하루쯤은 느지막이 집을 나서
무릎이 아려 올 때까지
버려진 흙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뜨거운 노을에 몸을 흠뻑 달구며
느긋하게 돌아오려 한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이면
창백한 형광램프와 타협한
그윽한 촛불을 밝히려 한다
그리고 오늘 하루쯤은 물으려 한다
나는 날마다 무엇을 잊으며
또 무엇을 잃어 가는지를
카페 게시글
설봉문학 좋은시 선정
설봉문학 / 설봉문인협회 2025년 2월 6일 좋은시 선정 / 아날로그를 위하여 / 김부조
AZH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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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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