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李대통령의 '만찬 불참' 어떻게 볼까… 前 삼성임원의 경험담
왜 자꾸 쓸데없이 대통령이 나서서 분란을 키우는지 모르겠다
필자가 임원 때 현 회장님을 모시고 전체 임원회의 후 저녁 만찬이 있었다.
저녁 만찬 중 우연히 회장님과 화장실에서 만났다. 당시 필자가 상무 때니 회장님이 필자를 기억할 리 없다고 생각하고 간단히 인사만 하고 지나려는데 회장님이 화장실 내에서 "김 상무님" 하고 필자를 불러 세웠다.
우리 회장님은 모든 임직원들에게 항상 "님"을 붙이고 존대를 했다. "김 상무님, 이번에 XX 지역으로 발령 나셨던데 그 지역이 회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더구나 그 지역이 최근 아주 어려우니 나가셔서 반드시 성과를 내주세요"라고 당부를 했다.
그룹의 그 많은 임원들 중 필자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 신기했는데 필자가 인사발령 나는 지역까지 알고 있으니 감격했다. 화장실에서 겨우 몇 분 간의 만남이었지만 그 인연이 계속 이어졌다.
한창 해외에서 법인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1년에 두 번 본사에서 법인장 전략대회를 한다. 대부분 부회장님이 CEO니 전체회의를 직접 주관했다. 회의가 끝나고 저녁 만찬이 있는데, 그날 저녁에 필자는 개인적으로 일이 있어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후 부회장님을 만나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부회장님이 "이봐 김상무... 당신 그날 만찬에 왜 참석 안했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제가 참석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부회장은 "이 자리에 올라오면 한번만 둘러봐도 누가 참석했는지 안 했는지 다 알게 돼..."라며 "그래서 누가 내게 불만 있는지도 알지" 말하며 웃었다.
만찬장에는 수백 명의 임직원이 참석하니 혼잡하기도 하거니와 아주 고위급 임원이 아니면 한 개인의 참석 여부를 절대 알기 어렵다. 하긴 군대에서도 사고치는 관심사병은 항상 주시하니, 죽 한번 둘러보면 알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필자의 과거 직장생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유엔회의 후 트럼프 대통령이 주관하는 145개국의 대표들이 모두 참석하는 저녁 만찬장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뉴스가 보도되어 필자의 과거 경험담을 올리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재명 대통령은 외교상 큰 결례를 했다. 더구나 현재 관세협상이라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관련되어 있는 국가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에게는 더욱 해서는 안 될 짓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대통령이 만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까봐 알아서 피한 것 같다. 대통령 본인이 백악관에서는 '노벨평화상'이니 'Peace maker'니 'Pace maker'같이 혀에 살살 녹는 발언을 했다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태도가 돌변했으니 트럼프 대통령을 마주하기가 많이 민망스러웠을 것 같다.
개인 간의 일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이는 엄연히 국가의 공적 영역의 일이고 현재 대미관세 문제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우리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더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고 설명하고 우리 협상팀의 입지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무이다.
그런데 자신이 민망하고 불편하다고 피했다면 비겁한 것이고 대통령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불편해도 국익을 위해서 만나야 했다. 특히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트럼프 대통령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래야 한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사람이 정성을 다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진정 훌륭한 리더는 힘든 일을 아래에 맡기지 않고 직접 나서서 해결한다. 공은 아래로 돌리고 책임은 리더가 져야 한다. 그래야 부하들이 리더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른다. 조폭처럼 뒤만 잘 챙겨준다고 훌륭한 리더가 아니다. 그런 리더는 자주 부하를 희생시키기 때문에 위험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자. 이재명 대통령의 '태도 돌변'을 이미 보고 받았을 테고 심기가 상해 있었을 것이다. 참모진의 보고가 없더라도 만찬장에서 많은 인파 속에서 한 번만 둘러보아도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참석했는지 여부를 금방 알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지 않은 사실을 알았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필자가 서두에서 비유를 들었지만 트럼프 대통령 같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호불호가 확실하고 생각이 단순하다.
만찬 불참석같이 간단한 일로 즉시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적대적인 사람으로 판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사람에게 어떤 조치를 취해 왔는가?
이런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의심과 불신을 심어주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에 이로울까?
도대체 왜 그 시간에 뉴욕으로 날아가 별 볼 일도, 별 도움도 안 되는 무슨 투자 서밋행사에 참석한다는 말인가?
무슨 월가의 중요 인사들을 만났다는데 그들은 이 대통령이 참석해서 홍보발언 몇 마디 한다고 한국에 투자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월가의 거물들은 대부분 사모펀드 인사들이어서 철저히 수익 위주로 움직인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의 사정이 어떤가.
노란봉투법이니 상법개정안들은 해외에서 투자가 몰려들 만큼 기업에 절대 우호적이지 않다. 환경이 하도 열악하게 변하여 있던 투자도 나가려 하는데.
뉴욕 월가의 누가 바보가 아닌 이상 한국에 투자하겠는가? 모두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급조한 서밋같아 보인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월가의 거물이라는 이 사람들이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정말 중요한 거물이 이런 무익한 자리에 참석했을 리도 없고 참석자도 마지 못해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심기가 상해 ‘한국에 한푼도 투자하지 마’라고 말하면 한푼도 투자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일부 언론은 이 대통령이 대미관세 협상 전략 차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피했다고 하는데 정말 말도 안되고, 웃음 짓게 만드는 개그 같은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막연하게 말하지 말고 더 정확히 설명해봐라. 어떤 측면에서 어떤 전략인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 10월 말에 APEC 회의가 경주에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을 포함해 21개국에서 정상들이 참석한다. 당연히 대통령 주관 만찬이 있을 거다. 그런데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 주관 저녁 만찬에 참석하지 않고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의 미군들과 저녁식사를 하겠다고 가버리면 이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은 어떤 심정이고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우리 언론은 어떻게 보도할까? 모두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다 이해된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주최 만찬에 참석 안 해놓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 주관 만찬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진보언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예의를 안 지킨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아직은 APEC이 있으니 만회할 기회는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 만찬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이대통령 본인의 의사인지, 참모진의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악수 중의 악수다.
몇 번 말했지만 전혀 도움도 안 되는데 왜 자꾸 쓸데없이 대통령이 나서서 분란을 키우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들은 대미 관세협상에서 악재 중 악재다. 개인적 감정이나 국내 지지층을 위한 제스처는 제발 그만하고 국익에만 신경쓰면 좋겠다.
2025-09-27
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구 지역장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