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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출신 컴퓨터 엔지니어가 훌륭한 영업 실적을 낼 수 있을까. 한국에서 30년 넘게 기업 간 거래(B2B)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사장에 오른 `전설적인 세일즈맨`이 인맥을 이용하거나 부적절한 금전적 보상에 대한 약속을 하지 않고 `정직한 영업`을 할 수 있었을까. 기존의 선입견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실화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세일즈 성장 무한대의 공식` 저자 마크 로버지와 한국IBM 고객영업부문 대표를 역임한 이장석 한국영업혁신그룹(KSIG)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로버지는 2007년 단 3명으로 차고에서 시작한 마케팅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허브스폿(Hubspot)`에 들어가 7년 만에 `0`에서 1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전 세계적으로 1만명이 넘는 고객을 확보했다.
이장석 대표는 1986년 IBM 영업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이래 약 30년간 IBM에서 일하면서 제품 영업, 협력사 영업, 고객 영업 등 모든 영업 부문을 이끈 경험을 갖춘 유일한 인물이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대표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업계에서 회자된다. 미국 서부 스타트업의 세일즈 선임부사장과 한국IBM의 영업 부문 대표가 가진 공통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들 모두 B2B 영업을 다루는 책을 최근에 출간했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바라보는 `영업`은 더 이상 을이 갑에게 제공하는 부적절한 금전적 보상이나 감성 영업이 아닌 `체계적인 프로세스`라는 점이다.
영업 또는 세일즈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일종의 `설득하는 기술(art)`로 간주하는 오해를 범한다. 1898년 광고·영업의 대가 E 세인트 엘모 루이스가 `세일즈 깔때기(Sales Funnel)`를 창안한 이래 소비자의 구매 경로인 AIDA(주의·관심·욕구·행동) 분석의 기본 틀은 마케팅의 아버지 필립 코틀러의 5A 모델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영업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이 본격화한 것은 IBM에서 38년간 근무한 제임스 코타다 미국 미네소타대 수석연구위원이 1993년 `영업 및 마케팅 관리를 위한 TQM(TQM for Sales and Marketing Management)` 책을 펴내면서부터다.
마찬가지로 B2B 영업 교육, 현장 영업 등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마이클 웨브가 2006년 `6시그마 방식의 영업 및 마케팅(Sales and Marketing the Six Sigma Way)`을 펴내기까지 체계적이고 측정 가능한 프로세스로 영업을 분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21세기 디지털 경제가 심화되면서 로버트 프라이어가 2015년 출간한 `Lean Selling`이 가장 최근에 영업을 새롭게 바라본 시각이다.
영업 혹은 세일즈는 통상 `구매자가 경제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판매자가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된 반복적이고 측정 가능한 체계적인 프로세스`로 정의된다. 로버지가 2007년 기업들의 마케팅 방식을 아웃바운드에서 인바운드로 바꾸도록 돕는 허브스폿에 합류하면서 화두로 삼은 개념이 `확장과 예측 가능한 매출 성장`이다. 로버지는 디지털 세계에선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데이터가 축적되기 때문에 세일즈는 예측 가능한 프로세스라 주장한다. 그는 기업의 세일즈팀을 키우는 △채용 공식 △교육 공식 △관리 공식 △수요 창출 공식△세일즈 기술과 실험 등 다섯 가지 공식을 제시했다.
이장석 대표는 올해 1월 펴낸 저서 `세일즈 마스터`에서 실제로 자신이 기획하고 교육하고 실천했던 노하우를 풍부한 성공·실패 사례와 함께 담았다. 이 책에서 이 대표는 가장 먼저 기존 B2B 영업에 대해 가졌던 세 가지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오해는 `고객=기업`이라는 막연한 생각이다. 계약의 상대방은 기업이지만 영업 활동 상대인 다양한 조직과 직급 체계 내의 개인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는 `관계 중심 영업`이란 미신이다. B2B 영업은 거래 규모가 크고 고객의 의사결정이 주관적인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거래의 핵심인 `가치`를 상대방에게 제공해야 한다. 셋째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영업보다 단순하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솔루션과 다양한 고객 접점 채널이 나타나면서 B2B 영업의 내부 프로세스는 B2C보다 복잡한 경우가 많다.
매일경제 비즈타임스는 최근 로버지와 서면으로, 이 대표와는 대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디지털 세상에서 영업이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을 물었다. 이하는 각각 진행한 일문일답.
■ `세일즈 성장 무한대의 공식` 저자 마크 로버지
"타고난 영업사원? 교육·관리시스템이 세일즈 천재 만든다"
―마크 로버지, 당신이 책 말미에 밝힌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세일즈맨보다 컴퓨터 엔지니어, 변호사, 투자은행가, 전략컨설턴트가 되고 싶어 한다. 세일즈 과학화와 세일즈 리더십의 중요성을 당신은 어떻게 설득하는가.
▷나 역시 22세 때 기업가인 동시에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다.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앞선 제품 지향적인 기업가 중 일부는 영업·마케팅 실행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창업자들을 지적하고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사업이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내린 결론은 앞으로 몇 년간 성공 여부는 제품 품질보다는 영업·마케팅 실행과 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질 것이란 점이다. 인터넷의 힘을 손에 넣은 고객과 데이터 기술 기반 세일즈팀이 결합하면 과거의 기만적이고 비윤리적인 저급한 상술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고객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고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인재들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5가지 세일즈 확장 공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세일즈 채용 공식`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기업 현장에서는 교육과 관리보단 세일즈맨의 타고난 성격에 기대는 경우도 많다. 평범한 사람이 교육과 관리 시스템으로 세일즈 천재가 될 수 있나.
▷가능하다. 영업직원마다 `기회 적합성(opportunity fit)`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회사의 최고 세일즈맨은 다른 회사에선 최고가 아닐 수도 있다. 기회 적합성은 비즈니스 단계, 제품 복잡성, 구매자, 지역 등과 같은 비즈니스 맥락에 따라 다르다. 런던의 의료기기 세일즈 직원이 한국의 푸드테크 스타트업으로 온다면 평균적인 세일즈 실적도 내지 못할 수 있다.
―당신은 업종마다 이상적인 세일즈맨 특징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업종별로 필요한 이상적인 세일즈맨의 미덕에 관한 예를 들자면.
▷업종별 차이는 산업을 넘어서는 요인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거대 항공기 제조사와 3D프린터를 만드는 벤처회사의 경우 서로 이상적인 영업사원이 다를 수 있다. 지난해 저가 상용제품을 방문판매하는 회사와 협업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최고 세일즈맨의 특징은 직업 윤리, 친밀감 형성, 거절의사 다루기 등이었다. 포천 500 고객사에 비싸고 복잡한 제품을 판매한 회사와도 일했다. 그들의 경우 고객 니즈 개발, 비즈니스 통찰력, 사내 정치 이해가 요구됐다.
―당신은 유능한 세일즈맨의 5가지 특징으로 코칭 수용 역량(coachability), 호기심(curiosity), 성공 경력(prior success), 지성(intelligence), 노동윤리(work ethic) 등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어떤 게 특히 중요한가. 각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5가지 기준은 허브스팟에서 사용한 것으로 다른 영업 환경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에서부터 중요한 가치다. 기술을 사용해 영업팀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역량이 향상됐기 때문에 코칭 수용 능력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대부분 영업사원이 현장에 있었고 기본적인 판매 행동 데이터조차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날 기술 발전으로 개별 영업사원의 경험을 분석하고, 가장 시급한 문제를 파악하며, 영업사원의 코칭 계획을 구체화하는 게 가능해졌다. 호기심이 중요해진 건 인터넷으로 인해 오늘날 고객은 영업직원과 대화하지 않아도 제품을 써보거나 구매할 수 있다. 이는 영업사원을 제품 정보를 전하는 심부름꾼에서 깊은 수준의 고객 니즈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유능한 영업직원은 고객의 호기심과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사의 솔루션이 고객 니즈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신은 세일즈맨이 평소 SNS 활동에도 일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네트워크가 좁은 산업군이나 기밀 유지가 중요한 방위산업 분야 등에서도 활용 가능할 것 같진 않다.
▷SNS를 많이 쓰지 않는 보수적인 업계라고 해도 여전히 SNS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때 SNS는 신뢰를 쌓는 데 유용하다. 업계의 모든 사람과 이미 인맥으로 연결돼 있어도 영업사원은 업계 동향에 대한 블로그 게시물을 공유할 수 있다. 고객은 영업사원을 단지 제품 시연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 업계 혁신의 최전방에 서 있는 믿을 만한 조언자로 보게 될 것이다. 방위산업도 맥락은 복잡하지만 영업담당자를 믿을 만한 업계 조언자로 바라보게 만들 니즈는 여전히 존재한다. 잠재 구매자들에게만 기밀로 회람되는 등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 마크 로버지(Mark Roberge)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출신 엔지니어로 1997년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에서 컨설턴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2007년 3명에서 출발한 마케팅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허브스폿(Hubspot)`의 글로벌 세일즈·서비스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7년 만에 매출 0에서 100만달러, 1만명이 넘는 고객층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이에 허브스폿은 2011년 경영 전문잡지 INC가 선정한 `가장 빠르게 성장한 500대 기업(INC 500 Fastest Growing Companies)` 33위에 올랐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허브스폿 세일즈 부문 최고매출책임자(CRO·Chief Revenue Officer)를 역임하고, 지금은 회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부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선임강사(Senior Lecturer)로서 기업 영업과 마케팅, 기업 관리자와 스타트업 부트캠프 프로그램 등을 경영학 석사과정(MBA)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 한국영업혁신그룹(KSIG) 대표 이장석
"접대영업 고집하는 회사 오래 못 가…고객니즈 먼저 읽어라"
―영업조직을 바꾸기 위한 리더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일부 CEO들은 영업직원을 `위에서 가라면 가고, 고객이 오라면 오고, 술이나 마시는 애들`로 폄하한다고 저서에 지적했다. 영업팀을 혁신하려고 결심한 리더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출발점은 결국 사람이다. 더 깊게 영업 조직에서 가장 핵심 인재인 최일선 관리자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깨끗한 영업`을 하라고 리더가 아무리 주문해도 중간관리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하부 구조는 움직이지 않는다. 중간관리자를 리더의 지시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인사를 도구로 써야 한다. 난 3A로 중간 관리자들을 평가했다. 능력(Ability), 동기부여(Aspiration), 태도(Attitude)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태도다. 외형적인 숫자, 실적만 보지 말고 올바른 의식구조와 자세로 영업에 임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최근 투명성이 강화되면서 과거와 달리 부적절한 영업관행은 사라져 가는 추세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 `개인적 인맥`이나 `부적절한 금전 보상` 등의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과거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영업현장은 혼탁하다. 혁신의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 바뀐다. 영업조직이 혁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가 `리더의 방관`이다. 한 영업 리더는 법규 준수를 지키지만 목표성과의 70%를 달성하고, 다른 리더는 연말에 어떻게든 목표를 초과달성한다고 할 때 많은 CEO들이 후자를 선택한다. 난 그러다 회사 문 닫는 일 생긴다고 늘 경고하고 있다. 둘째는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다. 한 스타트업 CEO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동업자가 어느 고객과 같이 단란주점에 가자는 요구를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결정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답이 없는 문제다. 다만 리더가 방침을 세웠으면 이를 소신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권한다. `깨끗한 영업`을 고수하면 처음에 힘들겠지만 업계 평판이 생기면 오히려 덜 힘들 것이다. 계속 구태의연한 접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영업팀 리더와는 냉정히 갈라서라. 셋째는 `우리가 남이가` 문화다. 자신의 보스나 조직원이 잘못해도 고발하지 않는다. 이 모든 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결국 리더가 앞장서서 바꿔야 한다.
―`깨끗한 영업`의 기본은 고객 가치를 제공하는 일이다. 진정한 고객가치를 제안하기 위한 비결은 무엇인가.
▷오늘날은 디지털상에서 많은 정보가 공개돼 있기 때문에 고객이 모르던 제품을 새로 소개하는 식의 B2B 영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에는 자사의 솔루션이 어떻게 고객가치와 잘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가치 영업이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연비가ℓ당 16~18㎞라면 어떤 이는 그대로 `스펙`을 소개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1년 동안 얼마나 유류비를 아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제는 고객의 고민을 먼저 읽어내는 게 가장 먼저다. 큰 비즈니스는 고객의 고민 단계서부터 함께 문제를 해결할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이다. 컨설팅 산업이 고객의 아픈 지점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법론을 제공하는 업계다. 한국영업혁신그룹도 어떻게 보면 B2B 영업조직에 대한 컨설팅 회사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세일즈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는 본격적인 첫 시도라고 생각한다.
―고객의 고민을 함께해야 하지만 일개 영업사원이 업계 혁신의 구루나 권위자가 되긴 어려운 일이다. 이 같은 비즈니스 통찰력을 기르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보통 사람들은 전략이나 미래 먹거리라고 말하면 이는 경영진과 리더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영업조직이 가장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객을 가장 잘 알고 가장 많이 만나는 영업조직이 기업 전략에 문을 닫고 미래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에는 미래가 없다.
일부 영업사원들은 늘 전문성이 없다고 하소연하곤 한다. 난 산업과 비즈니스에 대한 전문성은 고객으로부터 배우라고 말한다. 영업사원들이 고객에게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 고객은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알려준다.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의식의 집요함이 필요하다. 그렇게 실천하면 통찰력 있고 차별화된 영업 출신 CEO들이 많이 배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