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시인을 괴롭힌 만성 기침… ‘낭성 섬유증’이 아니었을까
펠릭스 조셉 바리아스(Felix-Joseph Barrias), ‘쇼팽의 임종(Death of Chopin)’,
1885년, oil on canvas. 110X131cm, 폴란드 쿠라쿠프 국립미술관 소장.
○ 투병과 사망 : 파리로 돌아온 쇼팽은 개인교습 말고는 일절 다른 연주 활동도 못할 만큼 중병에 걸려 있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힘들었고, 누군가 업어주지 않으면 2층으로 올라가지도 못했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면도와 옷매무새만큼은 단정히 했다고 한다.
쇼팽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자신의 첼로 소나타 도입부를 연주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를 채 다 듣기도 전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연주를 중단시켰다. 이후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두려워하던 것과 똑같이 살아 있는 채로 묻히는 것을 막아달라는 육필 메모를 남겼으며, 자정 즈음 몸이 어떠냐는 의사의 질문에 "이제는 안 아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결국 1849년 10월 17일, 쇼팽은 "어머니...나의 어머니..."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
○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은 낭만주의 시대 폴란드 태생 프랑스의 작곡가·피아니스트로 피아노 협주곡, 마주르카, 폴로네즈, 연습곡, 야상곡 등 많은 피아노곡으로 유명하다. 어린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여 7세에 작곡, 출판을 했고, 8세에 공개 공연을 했다. 16세에 엘스너에게서 교육받으면서 낭만주의를 접했다. 쇼팽은 음악적으로는 감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했으며, 새로운 기교 넘치는 운지법을 개발했다. 또한 낭만주의를 추구했지만 낭만적인 치장보다는 고전적 순수함이 있었다. 쇼팽의 대표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곡으로는 〈연습곡(Etude)〉 Op.10·〈야상곡(夜想曲)〉 제2번 op.9·〈폴로네이즈(Polonaise)〉 제6번 '영웅(Heroic)' op.53·〈즉흥 환상곡(Fantasy-Impromptu in c# minor)〉 op.66 등이 있다.
✺ KBS 1[예썰의 전당 제26회 · 영원한 이방인의 노래, 쇼팽]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은 반평생 이방인으로 살아갔다. 또한 쇼팽의 음악은 아름답고 섬세한 선율로 사랑받아왔다. 그의 선율 속엔 우리가 몰랐던 쇼팽의 결핍이 담겨있다는데. 지금, 이방인 쇼팽의 삶과 음악을 다시보기로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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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릴 정도로, 그의 모든 인생을 피아노에 바쳤다. 첼로 소나타 같은 곡을 만들 때도 항상 피아노를 화려하게 넣었다. 약 200곡에 달하는 작품들은 거의 모두 피아노를 위한 것이다.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 〈사육제의 정경〉, 1886년. 밤의 정취를 따뜻한 색채로 표현한
이 그림처럼 녹턴(Nocturne)은 음악으로 밤을 노래한다. ⓒ Philadelphia Museum of Art.
쇼팽은 야상곡(夜想曲)으로 불리는 녹턴(Nocturne)을 세련된 장르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녹턴은 3~4분 내외 간결한 21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른손이 서정적인 가락을 마치 노래하듯 연주하는데, 감미로운 멜로디는 감정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쇼팽은 스무 살경에 프랑스 파리로 와서 활동했는데, 평생 고국 폴란드를 그리워했다. 자신이 죽으면 시신을 폴란드로 보내달라고도 했다.
쇼팽은 18세기에 흔했던 결핵으로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죽음과 관련된 최근 연구에서는 사망 원인으로 다른 질병 가능성이 제기된다. 낭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이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이는 희소한 유전질환으로 폐, 췌장, 부비동 등에 물혹 같은 것이 많이 생기고, 그 안에 점액이 끈적하게 쌓이는 병이다. 백인에게서는 출생아 3500명 중 1명 정도로 흔한 질환이지만 동양권에서는 증례를 보고할 정도로 드물다.
쇼팽의 키는 170㎝였지만, 평생 동안 몸무게는 45㎏ 미만이었다. 갈수록 눈에 띄게 수척해졌고 호흡기 감염이 잦았다. 기침할 때 피가 섞여 나오고, 만성 기침에 시달렸다. 전형적인 낭성 섬유증 증세로 볼 수 있다. 쇼팽의 여동생 에밀리도 14세에 사망했는데, 이 또한 낭성 섬유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낭성 섬유증은 현재에도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 감염 관리와 충분한 영양 공급이 최선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50세를 넘기기가 어렵다. 39세의 짧은 삶을 보낸 쇼팽, 연애도 피아노 작곡도 압축해서 많이 남겼다. 당대 평균수명 40세이던 시절에도 손자를 봤다고 하니, 수명이 짧으면 모든 게 급한 법인가보다.
펠릭스-조셉 바리아스(Felix-Joseph Barrias)의 ‘쇼팽의 죽음(Death of Chopin)’은 쇼팽이 세상 뜬 지 36년 후에 그린 작품으로, 바리아스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다수의 그림을 그렸다.
✵ 쇼팽의 어록 :
* 타악기처럼 두들기기만 하는 피아노 소리는 지루하다. 내가 콘서트에 갔는데 누가 그런식으로 연주한다면 내 반응은 둘중에 하나다: 집에 가든가 졸든가. 피아니스트의 목적은 피아노로 하여금 노래, 노래, 노래하게 하는 것이다.
* 피아노의 미스터치는 인간의 것입니다. 왜 모든것이 완벽해야 하겠습니까? 완벽 그 자체로 불완전함입니다. 마치 나의 도쿄에서의 연주처럼 말입니다.
* 나는 장군이다. 건반이 내 병사들이며 나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 나에게 있어서 논리는 항상 (연주의) 가이드가 되지만 그것이 공연의 목표는 아닙니다. 3가지가 조정되어야 하고 그 중 하나라도 튀어서는 안 됩니다. 학자가 돼버릴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지성은 피합니다. 슈말츠[25]가 돼버릴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감성은 피합니다. 기계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테크닉은 피합니다.
* 내가 끔찍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말하겠습니다. 내 연주가 매우 명확하기 때문에, 내가 실수를 하면 당신이 그것을 듣게 됩니다. 다이내믹 조절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난 단 한개의 미스터치도 없을 것입니다. 결코 엄두 내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마치 나의 도쿄에서의 리사이틀처럼 말입니다.
* 말하자면 음악을 열어서 그 뒤에 뭐가 들어있는질 확인해야 한다. 바흐든 누구든 음표는 다 같기 때문이다.
* 악보는 성경이 아니며 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음악은 그 점들 뒤에 있는 것이다.
● 우리나라 최초의 쇼팽 콩쿨 우승자 조성진의 Polonaise In A Flat Major, Op.53 (영웅)
https://youtu.be/d3IKMiv8AHw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조선일보 2024년 02월 08(목)(김철중 영상의학과 전문의, 논설위원 겸임, 의학전문 기자·안상현 기자),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