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의 동시(童詩) 필사
‘할아버지, 박범진입니다.
핸드폰이 생겼어요. 010-4735-4895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웬일이야 벌써 폰 선물 받고.. 범진이 축하한다.
핸드폰! 잘 사용하면 약이고 잘못 쓰면 독이다. 알고 있지..
폰 보는 시간보다 책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뇌가 발달하는 거..
좋은 점 보다 나쁜 게 더 많아.. 명심하고 관리 잘해라..
할아버지 문자, 전화 잘 받고.. 알았지!’ ‘네’
초등 2학년이 쥔 핸드폰!
앞선 걱정에 좋은 생각을 잡아 카톡에 넣었다.
‘범진아, 할아버지가 보낸 동시!
노트에 그대로 옮겨 인증 사진 보내라. 오늘 숙제다.’
‘비 오는 날’ –이안-
‘창가에 놓인 화분 하나가/ 번쩍, 일어서더니/
집 밖으로 뒤뚱뒤뚱/ 걸어 나갔다//
두 번째 화분도/ 번쩍, 일어서/
집 밖으로 뒤뚱뒤뚱/ 걸어 나갔다//
세 번째 화분도/ 일어서려다 말고/
내 쪽을 돌아다보며/ 한마디 했다//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너도 하나 들고/ 얼른 아빠 따라와!’
오랜만에 본 동시 속에 손자 가정을 그렸다.
마지막 연 ‘너도 하나 들고’는 아빠의 요구였다.
비 오는 날, 식구들이 총출동..
부지런한 엄마가 첫 번째 화분,
두 번째는 엄마 힘든 걸 못 보는 착한 딸,
이제 남은 남자는 둘!
휴일이라 피곤한 아빠도 고개를 돌려 미적미적 눈치 보다 일어났다.
아들에게 ‘너도 하나 들고 얼른 아빠 따라와!’
유쾌한 집안 분위기였다.
손자가 인증 사진을 보냈다.
반응이 신기해 답을 냈다.
‘범진아, 잘 옮겨 썼어. 이것을 필사라고 해.
좋은 시 쓰면 좋은 말 배우고 익히는 거야.
띄어쓰기 잘하고 글씨 크기도 똑같이 써.
한석봉 엄마가 고르게 떡 자르듯..
글자 크기 들쭉날쭉 쓰지 말고 키 높이 맞춰.
몇 군데 틀린 곳, 앞으로 자세하게 살펴 천천히 쓰렴..
날아가는 새처럼 쓰지 말고..
점찍는 것과 찍지 않은 것까지 중요해.
동시라 내용 쉽다.
잘 생각하면 무슨 뜻인지 알 거다.
자꾸자꾸 꺼내서 읊어.
모른 낱말 검색하면 뜻풀이 알 수 있어.
첫 필사 예쁘게 잘 옮겼다. 수고했어.’
지인에게 자랑하고 싶어 알렸다.
‘범진이 글씨를 또박또박 잘 쓰네요.
3~4학년 글씨 같아 보여요.
손자 글쓰기 통해 마음의 양식 쌓게 하신 할아버지 사랑 감동이네요.’
‘어제 폰 개통하여 밧줄 삼아 통제하려는데 잘 따라 주네..’
문득 어머니의 성경 필사 노트에 손이 갔다.
필체 흐름이 손자와 같았다.
이제 갈바람 통과하는 빨래처럼 잔 슬픔도 말라 갔다.
그래도 그리움에 사무쳤다.
다음 날 새벽, 강단에 행복 나뭇잎이 떨어졌다.
산소, 빛, 물 부족의 결과였다.
늦더위를 가을 주머니에 넣을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번쩍, 일어서 걸어 나가고 싶은 나무였다.
안수집사님과 화분을 현관으로 밀었다.
1자 비에 흠뻑 젖으며 생기가 돌았다.
아침 숙제 내는 일이 큰 숙제였다.
‘범진아, 새 날이 밝아 온다.
새로운 선물 받은 하루의 시작이다.
행복이 기다린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좋은 생각과 선한 마음으로 친구들, 선생님 만나렴.
게으름 피우면 끝이 없고 좋은 열매 기대할 수 없다.
다른 숙제 많아도 필사 길들이면 잘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한 유명 시인 이름은 김개미!
기억하고 써 보렴.
‘벌레가 되면’–김개미-
‘나는 벌레가 되면/ 돌 밑에 숨지 말고/ 민들레 밑에 숨어야지//
나비가 오면 조금 기어 나와/ 날개를 구경해야지//
벌이 오면 대궁을 껴안고/ 진동을 느껴야지//
나 같은 아이가 오면/ 예쁘다는 말을 잔뜩 들어야지//
‘범진아, 숙제 잘해 기쁘다.
절대 미루지 말고 차분하게 옮겨라.
왜 이런 시가 세상에 태어났는지 생각을 많이 하렴.
할아버지 말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시는 깊은 생각에서 나온 글,
마음을 넓혀 주는 특효약이다.
시를 사랑하면 무슨 일이든 자신감이 붙는다.
한글 근력을 키워 고급 언어의 전달자가 된다.
글도 잘 쓰고 문학에 관심도 깊어진다.
바늘로 우물 파는 것처럼 더디지만 창대할 거다.
두고 봐. 힘내!
오늘 행복이 묻어나는 시간 보내길 기도할게..’
한 날은 빵! 터졌다.
‘힘내라, 감나무’ –임미성-
‘감나무가 불어 놓은 풍선/ 퐁 터뜨리면 안 되니까/
까치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고 얇은 것이 바로 풍선이니까//
감나무는/ 풍선을 쥐고 있으려고/ 대신,/ 잎사귀를 다 놓아준다’
필사한 느낌? ‘까치가 쪼아서 감이 터질까 봐 불안했습니다.’
어제 잔소리는 길었다.
‘범진아! 종달새 알지.
알에서 깨어난 새! 애써 일어나 걷고,
날갯짓으로 노래하다 어느새 하늘이 자기 것이 듯 나는 새!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동시! 그대로 느껴라.
그저 궁금해하고 자주 꺼내 읽어.
그러면 그 시와 비슷하게 쓰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거야.
시 좋아하는 자. 처음보다 달라지며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드라이아이스가 하얀 연기로 변한 것처럼 말이다.
인사성 밝고, 누나 배려하고, 친구 잘 사귀고..
또 감추어진 재능 발견하고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노래 잘 부른 넌, 시를 노래로 전할 수 있을 거다.
동시! 반복해서 쓰고 읊어라.
날마다 자람이 너에게 큰 만족이길 기도할게..
숙제 미루지 말고 미리미리 하렴..’
‘풀잎과 바람’–정완영-
‘나는 풀잎이 좋아, 풀잎 같은 친구 좋아/
바람하고 엉켰다가 풀 줄 아는 풀잎처럼/
헤질 때 또 만나자고 손 흔드는 친구 좋아.//
나는 바람이 좋아, 바람 같은 친구 좋아/
풀잎하고 헤졌다’
오늘도 느낀 점! 간단히 보내?
‘풀잎과 바람 아주 좋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박범진!! 넘 맘에 든다야!
2024. 9. 28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