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1-24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고통스럽도록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주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답니다. 그러나 나이가 먹고 하는 일이 달라서 한 친구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한 친구는 도시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돈도 많이 벌고 공부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도 둘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였고, 가장 친한 친구로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형제와 같은 사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둘이 결혼해서 동시에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두 사람은 자기 자식을 직접 잘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만나서 도시의 친구가 그런 제안을 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3년만 서로 바꾸어서 맡아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키우자, 그 동안은 서로 죽을 일이 있을 때까지는 서로 간섭도 하지 말고 만나지도 말자, 그래서 아이들을 제대로 한 번 키워보자.” 아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정말 아들을 바꾸어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교육방법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이들도 부모의 교육방법에 선선히 응했습니다.
도시에 사는 친구는 농촌에서 올라온 친구의 아들을 아주 극진하게 대접하면서 호강을 시켰습니다. 최고의 음식을 준비하고, 독선생도 들어앉히고, 좋은 옷으로 입혀 주었습니다. 그 부부는 항상 아이의 건강도 걱정하였고, 좋은 장난감도 갖추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농촌에서 온 아이는 몰라보게 도시에 적응해 나갔고 약속한 3년이 되었습니다. 도시의 친구는 3년 만에 아들을 만나러 시골에 내려오면서 자기가 그렇게 최선을 다 한 것처럼 자기 자식도 엄청나게 대접을 받고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자기 자식이 소꼴을 잔뜩 베어가지고 식식거리며 오는데 형색을 보니 옷은 아주 낡아 헤어지고 신발도 엉망이고, 뽀얗던 얼굴은 검게 변하고 도저히 봐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화를 버럭 내면서 “나는 네 자식을 아주 곱게 길렀는데 너는 내 자식을 이렇게 고생을 시켰다. 너한테 자식을 맡긴 내가 바보 같고 너는 믿을 놈이 못된다.”고 의절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멍하니 서있는 친구와 친구의 아이를 뒤로하고 아이를 데리고 도시의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도시에 온 아들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는 것입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단정하게 앉아서 기도하고,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밥도 잘 먹고는 책상에 앉아 혼자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부모님께 인사하고, 아침에 깨우기도 전에 스스로 일찍 일어나서 제 방을 청소하고,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렇게 아주 잘 사는 것입니다. 사흘이 되기도 전에 도시의 친구는 시골의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친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나는 자네의 아들을 손님으로 생각했다네, 그리고 자네 아들을 망쳐 놓았다네, 아들을 잘 가르쳐 준 자네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마음 상하게 한 나를 용서해 주게!”시골의 친구는 그냥 웃으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친구여, 나는 친구의 아들을 내 아들로 생각하고 산 것 뿐이라네,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이고 세상의 물리(物理)가 가르쳐 준 것이라네.”
자연 만물을 통해서 모든 삶의 지혜를 깨우쳐 스스로 깨닫고 공부하는 것은 세상의 문리를 터득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세상의 물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억지로 주입하고 있기에 교육이 점점 피폐해져 가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세상의 물리를 가르치고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의 지식과 주입된 교육에 의해서 살아야 한다고 강제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물리는 하느님의 법칙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직간접적인 계시를 통해서 세상의 물리를 터득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의 계시를 깨달을 수 없으며 하느님의 물리를 깨우칠 수 없고 진리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대전교구장이셨던 유흥식 나자로 추기경님은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때에 이 세상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도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은 이 세상의 눈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하늘의 지혜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마태 5,3-12 참조). 내 것을 사랑으로 나누는 마음이 있을 때, 이웃의 아픔에 연민을 가질 때, 주어진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대로 실행하려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수많은 예언자들과 왕들과 스승들이 그렇게 듣고 배우고 보고 알려고 하였던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수줍어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내부에 그것을 억눌러 두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고통스럽도록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의 통로여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스럽도록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성녀 마더 데레사)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11,1-10
그날 1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3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4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5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8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9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10 그날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 이사이의 뿌리가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져
겨레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의 거처는 영광스럽게 되리라.
축일11월 29일 성 쿠트베르토 메인 (Cuthbert Mayne)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 지역 : 영국(UK)
활동 연도 : 1543?-1577년
같은 이름 : 구트베르토, 구트베르투스, 구트베르트, 커스버트, 쿠트베르투스, 쿠트베르트, 쿳베르토, 쿳베르투스
성 쿠트베르투스 메인(Cuthbertus Mayne, 또는 쿠트베르토 메인)은 1543년경 영국 잉글랜드 데번셔(Devonshire)의 율스턴 파크(Youlston Park)에서 윌리엄 메인(William Mayne)의 아들로 태어나 린디스판(Lindisfarne)의 성 쿠트베르투스(Cuthbertus, 3월 20일)의 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영국 성공회의 신부인 삼촌이 그의 중등교육을 지원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공회 신자로 성장했다. 그는 옥스퍼트(Oxford) 대학의 세인트 알반 홀(St. Alban Hall)과 세인트 존스 대학(St. John’s College)에서 수학하여 1570년 4월 8일 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해 2월 25일에 교황 비오 5세(Pius V)는 국내외의 영국인에게 충성 맹세를 강요하는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을 파문하며 그녀의 강요에 복종하지 말며 강요당해 충성 맹세한 이들을 용서한다는 칙서 “Regnans in excelsis”(하늘 높은 곳에서 다스리시는)를 반포했다. 그러면서 영국과 가톨릭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 쿠트베르투스 메인은 옥스퍼드에서 성 에드문두스 캠피언(Edmundus Campion, 12월 1일)과 다른 여러 가톨릭 신자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1570년경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1573년 체포되기 전에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의 영국 대학(English College)으로 가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했다. 그는 1575년 사제품을 받고 두에 대학교에서 신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576년 4월 24일 성 요한 페인(Joannes Payne, 4월 2일) 신부와 함께 영국 선교를 위한 여정에 올랐다. 그는 콘월(Cornwall)에 도착해서 여왕의 명령에 저항하며 가톨릭 신앙을 지키고 있는 프랜시스 트레지안(Francis Tregian) 가족과 만나 그의 집사로 위장하고 은밀히 선교 활동과 사제직을 수행했다. 당시 두에에서 들어오는 선교사들은 여왕을 전복하려는 교황의 밀사로 여겨져 감시가 심했다. 결국 성 쿠트베르투스 메인은 선교 활동을 시작하고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1577년 6월 8일 체포되었다. 그가 머물던 프랜시스 트레지안의 저택을 급습한 이들이 가톨릭 관련 물품과 서적 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순회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콘월에 있는 론서스턴 성(Launceston Castle)에 갇혔다. 그해 9월 하순 재판이 시작되어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29일 론서스턴의 시장 바닥에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두에에서 성직 수업을 받은 첫 번째 영국인이자, 두에에 세워진 영국 신학대학 출신 중 최초의 순교자이다.
성 쿠트베르투스 메인은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일인 11월 29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오늘 축일을 맞은 쿠트베르토 메인 (Cuthbert Mayne)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