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88호
죽었다 깨도 모를 일
박제영
백세시대 특집 프로에 노부부가 나왔다.
어떻게 70년을 함께할 수 있었냐고
진행자가 물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대로 살았네요.
아내는 나를 죽이고, 나는 아내를 죽이고
매일 서로를 죽이다 보니 70년이 흘렀네요.
말문이 막힌 진행자가 눈만 껌벅껌벅
죽었다 깨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도
갓난 계집아이와 갓난 사내아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30년을 함께한 아내가 부엌칼을 갈다 말고 씨익 웃는다.
아내는 왜 웃었을까, 나는 눈만 껌벅였다.
- 『용인문학』 40호
***
유월의 첫째 주 월요일입니다. 오랜만에 졸시를 띄웁니다.
문장 수선이 호구지책이라 하루하루
다른 이들의 문장 수선에만 몰두하다 보니 내 문장을 너무 소홀히 한 듯합니다.
다른 이들을 챙기느라 내 식구들 소홀히 하면 안 될 일이지요.
하반기에 공교롭게도 제가 좋아하는 두 분으로부터 문학 특강 두 건을 청탁받았습니다.
한 분은 공주, 또 한 분은 삼천포에 사시지요.
춘천에서 가기에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라....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보다 더 뛰어난 문인들 앞에서 말입니다.
그래도 몇 마디는 해야겠지요.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하게 될 듯합니다.
글쟁이들에게 '문학(文學)'은 어불성설이다. '문작(文作)'이거나 '문예창작(文藝創作)'이라야 맞는 말이다.
글을 짓는 것이지 배우는 게 아니라는 얘기에 관해 약간의 설을 풀겠다는 것이지요.
좋은 글은 이해가 아니라 감동이 먼저다. 감동(感動)은 무엇일까. '감이란 스밈이요 동이란 번짐이다'
라는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시(詩)=시(市)+시(侍)+시(矢)+시(屍)+시(屎)"라는 얘기를 곁들이게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듯합니다.
좋은 글이 무엇인지, 좋은 글을 쓴다는 게 무엇인지는 죽었다 깨도 모를 일이라고 말입니다.
문장수선공이 어찌 거기까지 알겠습니까.
사족. 오늘 아침 춘천의 세월교(洗月橋, 콧구멍다리)를 철거하기로 시의회에서 최종 결정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씻을 곳을 잃은 달은 이제 어디서 씻어야 할까요?
2023. 6. 5.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