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1년의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주관 중인 황제 요안네스 6세 칸타쿠제누스.
왕좌 바로 뒤에는 테두리를 금색으로 장식한 배 모양의 하얀 모자와, 파란 가운을 입은 바랑고이 근위병들 여덟 명이 서 있다. 그의 Historiae Kantakouzenos는,‘도끼 든 바랑고이’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1,122년의 Eski Zagra는, 바랑고이가 ‘긴 방패와 외날 도끼로 무장’했다고 언급한다.
아내 헬레나(그의 동맹자인 짜르 이반 알렉산데르의 누이)와 둘 사이의 아들 스테판 5세 우로쉬와 함께한, 1,345~1,355년 로마니아의 그리스 지역의 자칭 짜르인 스테판 두샨
1,309~1,311 까탈루냐 동지회가 테살리아를 분탕질하고 케피소스의 라틴인들에게
결정적 승리를 거둔 시점에서, 절정에 이르다.
1,318 에피로스와 테살리아에서 최후의 비잔티움인 통치자들이 죽고, 외국인 왕조가 계승하다.
1,321~1,328 안드로니쿠스 2세와 그의 손자 안드로니쿠스 3세(1,328~1,341)사이의 내전이
1,321~1,322, 1,327~1,328년에 벌어지고, 전자의 퇴위로 일단락되다.
1,326 부르사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함락되어 그 첫 수도가 되다.
1,328 불가리아가 북부 트라키아를 침공하지만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되다.
1,329 오스만 투르크가 비잔티움을, 펠레카논 전투에서 이기고 그 다음 날 벌어진 필로케레네
전투에서 또 다시 꺾다. 비잔티움령 아나톨리아가 필라델피아와 몇 개의 해안 마을을 외에는
그 다음 몇 해 안에 모두 떨어지다.
가을에 비잔티움은 키오스를 수복하고, 그 이탈리아인 방어군 대부분은 그 결과 제국에
근무하게 되다.
1,330 세르비아가 벨부지드 전투에서 불가리아 에게 승리하다. 비잔티움이 이 년 후 루소카스트로
전투에서 불가리아에게 패배 하기 전까지 다양한 국경 지대 마을과 요새를 점거하다.
1,331 오스만이 니카이아를 빼앗다.
1,333~1,340 안드로니코스 3세가 에피로스와 알바니아에 원정을 가서,
마침내 에피로스와 테살리아를 정복하다.
1,334 스테판 두샨 휘하의 세르비아가 마케도니아를 침공하다.
1,337 오스만이 니코메디아를 빼앗다.
1,338 오스만이 사쿠타리를 빼앗다.
1,341~1,347 아들 요안네스 5세 팔라이올로구스(1,341~1,376, 1,379~1,391)의 편에 선
태후 안나와 요안네스 6세 칸타쿠제노스 사이의 내전이 후자의 공동 황제(1,347 ~1,354)
인정으로 끝나다.
스테판 두샨이 비잔티움 제국의 알바니아에 마지막으로 남은 거점들을 휩쓸 기회를 잡다.
1,346 스테판 두샨이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를 정복하면서 ‘세르비아인과 그리스인의 황제’를 자칭하다.
1,348 세르비아가 북부 그리스, 에피로스 그리 고테살리아를 정복하다.
1,352~1,357 요안네스 6세가 그의 아들 마타이 오스를 제위 계승자로 인정하려는 시도를
한 결과로, 내전이 재발하다.
요안네스 5세는 베네치아, 세르비아, 불가리 아의 지원을 받았던 반면 제노바와 오스만은
칸타쿠제노스 가문을 지지하다. 마타이오스가 1,353년 황제임을 선포하지만 요안네스 6세가
1,354년 퇴위한 이후 요안네스 5세를 지지하자, 1,357년에 그 시도를 단념하다.
1,354 오스만의 발칸 정복이 갈리폴리 탈취로 개시되다.
비잔티움 제국이 10년 안에 콘스탄티노폴리스, 테살로니카, 모레아 그리고
약간의 섬들과 흩어진 도시로 퇴락하게 되다.
1,355 세르비아 왕국이 스테판 두샨의 죽음에 이어 공중분해되다.
1,361 오스만이 디디모테이코스를 빼앗고 에스 키 바바에서 비잔티움과 불가리아 군세를
물리친 후에, 1,366년에 아드리아노플로 천도하다.
1,364 비잔티움이 앙키알루스를 빼앗다.
1,365 비잔티움 제국이 아드리아노플을 수복하러 진군하는 세르비아, 헝가리, 보스니아, 왈라키아
군세에 가세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다. 이들이 오스만에게 결정 적으로 패배하다.
1,366 사부아의 아마데오 6세가 이끄는 십자군이 제국을 위해 갈리폴리와 메셈브리아를
회복해주다.
1,371 오스만의 세르비아 정복이 케르노멘 전투에서 국왕 부카신에게 승리를 거둠과 함께 시작되다.
1,372 불가리아와 비잔티움이 오스만의 봉신 국가가 되다.
1,373~1,385 안드로니쿠스 6세(1,376~1,379)가 부친 요안네스 5세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내전이 또 다시 제국을 괴롭히다.
안드로니코스는 제노바의 지지를 받은 반면 요안네스는 베네치아의 지지를 받았으며,
둘 다 다양한 때에서 오스만의 지지를 번갈아 얻다.
요안네스가 안드로니 쿠스의 계승권을 박탈하고 안드로니쿠스의 동생 마누엘을 후계자로 하다.
1,376 안드로니쿠스 4세가 요안네스 5세에 대 항하는 데 도움을 받는 대가로 오스만에게
갈리폴리를 할양하고, 제노바의 도움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면서
요안네스와 마누엘을 포로로 잡다.
1,379 요안네스 5세와 마누엘이 베네치아의 도움으로 탈출하다.
요안네스 5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는 데 오스만의 도움을 얻는 대가로, 봄마다 부대들을 오스만에게 지원하기로 합의하다. 안드로 니쿠스 4세를 부정의 여지없이 후계자로 다시 인정하는 건만은 반강요당하다.
1,385 안드로니쿠스 4세의 죽음으로 그 아들 요안네스 7세가 셀림브리아의 통치자로 임명되다.
1,387 오스만이 3년 동안의 포위 후 테살로니카를 빼앗다.
1,389 오스만이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다.
1,390 마누엘이 구하러 올 때까지 오스만이 요안네스 5세를 크리시아 필리-Golden Gate-요새에서
포위하면서, 요안네스 7세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입성을 돕다.
요안네스 7세가 직후 셀림브리아로 물러나면서 오스만의 봉신이 되 다. 가을에 그와 마누엘 둘 다, 소아시 아에 남은 비잔티움의 최후 도시 필라델피아를 오스만이 함락하는 것을 돕는, 비잔티움 분견대를 이끌기로 서약하게 되다.
1,392~1,394 오스만이 불가리아(1,393)와 테살리아를 복속시키다.
1,395 오스만이 모레아에서 비잔티움을 패배시키다.
1,396 비잔티움-헝가리의 오스만에 대한 연합 원정대가 니코폴리스에서 파괴당하다.
1,402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를 마침내 하지만,
뒤이어 앙카라 전투에서 티 무르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다.
오스만이 때문에 1,403년에 일시적으로 약해지면서, 마누엘 2세 팔라이올로구스(1,391~,1,425)와 테살로니카 및 수많은 마을과 섬들 그리고 요새들을 반환하고 모든 비잔티움인 포로들을 풀어주기로 조약을 맺다.
1,411 오스만 내전에서 잘못된 쪽을 지원하는 바람에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일시 포위.
1,422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성전에서 또 실패하다.
1,423 오스만의 포위 아래의 테살로니카가 베 네치아에게 양도되다.
1,427 모레아가 미스트라, 글라렌짜 그리고 칼 라브리타에 기반을 두는 세 데스포데스 령으로 재조직화되다.
1,429~1,430 모레아 데스포데스령이 아카이아 대공 켄투리오네 자카리아를 꺾고,
자카리아의 죽음에 뒤이어 아카이아 공국을 흡수하다.
1,430 오스만이 8년 동안의 포위 후 테살로니카를 되찾다.
1,442 황제 요안네스 8세(1,425~1,448)의 동생 데메트리오스가 오스만 부대의 지원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나 실패하다.
1,444 모레아의 비잔티움인들이 아테네, 테베, 보이오티아를 빼앗다.
1,453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면서 비잔티움 제국 멸망.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1,448~1,453)가 투르크 세력이 도시로 진입한 후 벌어진
시가전에서 살해당하다.
1,458~1,460 오스만이 모레아 데스포데스령을 정복하다.
1,461 오스만이 트레비존드를 포위해서 함락.
첫댓글 서방세력은 그리스와 발칸을두고 지들끼리 옥신각신 하면서 싸운걸 보면 차라리 동방에 집중해서 남은영토를지키든했어야했는데... 정말 제국의 적은 터번이였군요....거침없이 밀고오는데 견제할세력은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