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직 개구리(蛙)가 없는 것이 인생의 한(恨)이다 !!
唯我無蛙人生之恨(유아무와인생지한)!! 나는 오직 개구리(蛙)가 없는 것이 인생의 한이다
와이로(蛙利鷺)라는 고사(故事)가 있다. 혹시 일본어 와이로(わぃろ뇌물)와 혼동하면 안 된다. ※わぃろ(와이로賄賂)-는 일본어로 “뇌물”을 의미한다. 와이로(蛙利鷺)는 “개구리와 백로”라는 뜻이다
고려 제18대 의종(毅宗) 임금이 하루는 시종(侍從)없이 혼자서 미행(微行)을 나갔다가 마을과 떨어진 곳에서 날이 저물었다.
다행(多幸)스럽게도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주인에게 하룻밤 재워 주기를 부탁을 했다.
집주인은 자기 집에서는 잘 수가 없으니 조금 더 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의종(毅宗)임금은 할 수 없이 그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집을 나오다 보니 대문에 붙어있는 글이 있었다.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나(我)에게는 개구리(蛙)가 없는 게 인생의 한(恨)이다” 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의종(毅宗)임금은 “도대체 개구리가 무엇일까?”
의종(毅宗)은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배울 만큼 배우고 임금으로서의 지식(智識)은 갖추었지만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중에 “개구리 와(蛙)”자가 있기 때문에 문장 전체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개구리가 무슨 뜻인가를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感)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에 들려 저녁밥을 시켜 먹으면서 주막주인에게 외딴 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주막주인은 말하기를 그 집 남자는 과거(科擧)에 한두 번 낙방(落榜)하고 집에 들어앉아 마을에도 잘 안 나온다고 말하면서 집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말을 들었다.
주막주인의 말을 듣고 궁금증이 발동(發動)한 의종(毅宗)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자고 가기를 승락받았다.
잠자리에 누운 의종(毅宗)임금은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도저히 잠이 들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궁금하게 여겼던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이 무슨 뜻인지를 들을 수 있었다. 집주인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옛날에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鶯앵)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烏오)가 같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듣고 있던 까마귀가 대뜸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내기 내용은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조건으로는 백로(白鷺)를 심판(審判)으로 하자고 했다.
이 제안에 꾀꼬리는 속으로 어이가 없어 웃었다. 다른 시합 같으면 모르지만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목소리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꾀꼬리에게 노래시합을 제의 하다니 속으로 기가 막혔다.
하지만 월등한 목소리의 노래 실력을 자신한 꾀꼬리는 시합(試合)에 응(應)했다. 그날부터 꾀꼬리는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내고자 있는 힘을 다해 노래 연습을 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안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의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 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白鷺)한테 뇌물로 가져다주고 까마귀에게 유리한 노래 결과를 부탁한 것이었다.
약속한 3일이 되었다. 꾀꼬리와 까마귀는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白鷺)의 판정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白鷺)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동안 꾀꼬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게 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백로(白鷺)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주고 까마귀가 결과를 잘 봐 달라고 뇌물을 쓰게 되어 본인이 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와이로(蛙利鷺)는 일본어 わぃろ(와이로賄賂)와 같은 결과의 의미가 되었다.
그 후 꾀꼬리는 크게 낙담하고 실의(失意)에 빠졌다. 그리고 “唯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나에게는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라는 글을 대문 앞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이 글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으로 그 이름이 역사에 빛나는 고려 때 최고의 문인(文人)이며 문신(文臣)인 이규보(李奎報)의 일화(逸話)중 하나이다.
이규보(李奎報)는 임금한테 불의와 불법(不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 급제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 란 말이 생겼다.
와(蛙)-개구리 와. 이(利)-이로울 이. 로(鷺)-백로 로.
이규보(李奎報)선생의 실력(實力)이나 지식(智識)은 어디에 내놔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돈도 없고 빽없고 정승(政丞)의 자식(子息)이 아니라는 이유(理由)로 과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규보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白鷺)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여 초야(草野)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의종(毅宗)임금은 이규보(李奎報)의 품격이나 지식이 고상(高尙)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자신(自身)도 과거(科擧)에 여러 번 낙방(落榜)하고 전국(全國)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臨時) 과거(科擧)가 있다 하여 개성으로 올라가는 중 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의종(毅宗)임금은 궁궐(宮闕)에 돌아와 즉시 임시 과거를 열 것을 명(命)하였다.
과거(科擧)를 보는 날, 이규보(李奎報)도 과거시험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準備)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이 시제(詩題)를 내 걸었다.
시제(詩題)는 바로 “唯我無蛙 人生之限(유아무와 인생지한)” 여덟 글자였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李奎報)은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한 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였다.
그리고 고려 이후로 그 이름이 청사(靑史)에 빛나는 이 땅의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 그 유명한 이규보(李奎報)의 시문집(詩文集)이다.
이런 일이 어찌 고려 조선조에만 있었던 일일까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서도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권력과 돈과 빽으로 사는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농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