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목은 반어법적으로 달았음을 이해하시기 바란다.
올바른 이신칭의에 대한 구원론을 말하면 반대 입장에 있는 분들이 제일 먼저 인용하는 구절이 야고보서의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공격한다.
말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이해를 할수 있다.
수 차례 말하지만 말씀은 상반되는 구절들이 많기 때문에 문자로 서로 들이 대면 서로 충돌하고 모순이 된다.
그래서 문맥과 말씀의 의도에 따라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야고보서2장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구절은 여*와 증인들이 매우 선호하는 구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논쟁을 벌인 곳이 여증이다.
여*와 증인들은 이 구절 행함있는 믿음을 특히 강조하며 구원도 현재까지만 구원을 받은 상태라 말한다.
그리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듯 하지 않은가?
이단 감별사들이 맨 먼저 이단 판명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상한 교주 단체 빼고 구원론인데 그 잣대가 정통 복음 이신칭의 이다.
물론 기성교단 목사도 이신칭의를 전하지만 쉬운 구원 단 세포적 엉터리 구원으로 만들어 교인들이 구원 받은 줄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사역자들이 상당히 많으며 구*파들은 엉터리 죄사함으로 이신 칭의를 왜곡하여 다른 복음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행위 구원론자들이라고 해서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들도 똑 같이 십자가 대속을 이야기 하고 예수님 피로써 속죄 거듭남 다 말하고 있다.
근데 하나 같이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 피로써 구원 받았지만 믿음은 순종이기때문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열매 맺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얻을수 있다라고 복음을 왜곡하고 있다.
맞는 말 같지 않는가?
사실 성경에는 이런 구절들이 수도 없이 많기때문에 그런 주장을 펼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막12:24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그러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으로 전신 갑주를 입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물론 구원받은 자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성령을 좆아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거듭났기 때문에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지, 복음을 정확히 받아들이지 않고 막연하게 말씀을 따라 살면 구원 받았겠지, 천국 가겠지라고 생각해봐야 그것은 본인 착각인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이 말씀은 성령으로 확신이 어떤 신비로운 체험이 아니라 복음을 들을때 성령의 역사로 마음 깊이 확신되어 지는 것이다
오늘날 교단 교파들의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의 내용과 교리가 밀가루 반죽처럼 혼합되어 있다.
올바른 복음의 말씀을 잘 분별해야 한다.
로마서11장
6 만일 은혜로 된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구원이 분명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에베소서2장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로마서 3장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것이 전혀 없다.
로마서 4장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다시 야고보서 2장 말씀을 보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이 서로 모순되면 성경은 거짓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거짓이 된다.
두 구절이 사실은 같은 말씀이다.
구원얻는 행함있는 믿음은 십자가의 구속을 믿는 믿음이다.
그렇다고 믿으면 행함이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도 아니다.
물론 믿고나서 열매 맺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믿음있는 그리스도인도 날씨처럼 변덕스럽다.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처음 믿을때 보다 오히려 더 못할수도 있다.
또 신앙의 연륜이 쌓여 날이 갈수록 장성한 그리스도인도 있고 각자가 다 다른 것이다.
야고보서 2장에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실례 3가지를 들고 있다.
너무 길어질것 같아 두가지 실례에 대한 해석을 간단히 말씀 드리겠다.
야고보서 2장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만약에 그 형제 자매가 이웃이나 교회 다니는 신자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런 베푸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과 길바닥에서 오갈때 없는 노숙자를 데려와서 먹이고 씻기고 재워주고 돌보고 있는가?
만약 실천 못하고 있으면 죽은 믿음이라 대부분 신자는 십자가 구속을 믿고도 지옥에 가야 할것이다.
위의 말씀의 뜻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랑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이다.
그 믿음이 너를 구원 하겠느냐?라는 말씀도 그렇게 안하면 구원을 얻을수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 입으로만 말하고 속으로는 형제를 조금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네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아느냐?
정말 사랑을 안다면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궁핍한 형제를 도와 주어라.
구원 받았다가 행함이 없으면 구원이 취소된다라는 말씀이 아니라 행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믿음으로만 구원받았다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구원받았다라는 말씀이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으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라는 말씀이다.
빌립보서 1장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사랑의 실천을 얼만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중심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복음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라 하는 말씀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도 심판 받을 자처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는 말씀이지 우리가 나머지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아니다.
구원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만이 하신다.
오직 주님의 대속 십자가의 피로써만 죄사함 받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구원을 받은 것이다!
야고보서 2장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또 누구한테 베풀고 안 베풀고에 따라 구원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평생 죽기 직전까지 베풀지 않다가 죽을때 다가와서야 베풀면 구원이 통과 된다는 말인가?
우리 이웃뿐만 아니라 교회안에 있는 형제 자매에게도 똑 같이 적용된다.
또 한가지 실례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행함이 아니다.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6절 한구절 말씀만 뚝 떼서 행함있는 믿음을 강조를 하는데
25절 기생 라합 이야기도 잘 이해 해야 한다.
기생라합은 적국의 정탐꾼을 숨겨준 창녀이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적국의 간첩을 숨겨준 반역한 창녀인것이다.
기생라합이 창녀 생활을 회개 한것을 가지고 행함있는 믿음이라 한 것인가??
그런 내용이 있는가?
그녀가 한 행함은 적국 정탐꾼 숨겨주고 빨간 줄 매단것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강조하는 행함있는 믿음인가??
적국 간첩을 숨겨 준 반역을 한 그런 행위가 행함 있는 믿음인가??
이 말씀은 다른 의미인것이다.
빨간 줄을 매단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이다.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믿음도 십자가의 피를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움직이는게 행함있는 믿음이다.
오늘날 강조하는 행함있는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
은행을 믿기 때문에 우리가 은행까지 가서 큰 돈을 맡긴다.
믿지 않으면 은행에 아예 가지를 않는다.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기러 움직여 가는 것이 행함있는 믿음이다.
또 한 말씀을 보자.
요한복음17장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행함있는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믿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요한1서 4장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아는 믿음이 행함있는 믿음이다.
무조건 죄사함 받고 믿습니다!한다고 구원 받은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당연히 말씀을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순종도 은혜에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구원받기 위해서 행함으로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쓰러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구제 불능 같지만 주님이 이루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 기뻐하며 십자가만을 붙들고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방향성을 가지고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고전 15장
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롬 6장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