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포트 [장이지]
이건 아는 아이의 이야기. 자기가 대학 때 좋아했던 남자
애 이야기래. 아는 것도 많고 취미도 비슷하고, 처음에는 키
가 작아서 싫었는데, 이야기하다보니 더 좋아지더래. 뭐더
라,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국 영화도 함께 보고, D.H. 로
렌스 소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대. 차도 마시러 다니고. 네
번째 만나는 날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커피포트를 들고 왔
다는 거야. 동문회 갔다가 받았다면서 자기는 있다며 주더
래. 걔네 집이 신림이잖아.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지. 그땐
이미 그 남자애한테 빠져서 그게 또 좋아 보이더래. 예쁜 것
은 아니지만, 실용적이고. 아무튼 그 아인 남자애를 자기집
에 초대했대. 다섯번째는 자기집에서 보자고. 자자고는 하
지 않았지만, 그게 그 소리지. 매일 문자로나마 연락하면서
지내다가 역사의 날이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되더래. 전
화도 받지 않고. 혹시 무슨 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하면서
조마조마했대. 그래, 물론 집은 모르고. 그러고는 끝이지 뭐
야. 벌써 십 년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다니까. 그
러면서 그 아이가 그래. "그 커피포트는 뭐였을까?" 그러
게, 그게 뭘까?
- 레몬옐로, 문학동네, 2018
* 살면서 몇번인가는 애인이 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훗날 돌아보면 역사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경우가 있었다.
무언가를 받을 때 사실 대개의 남자들은 무딘 편이라 그냥 주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떡볶이 사주께,라든지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이야,라든지 이거 졸업 선물이야,라든지
받을 때는 그냥 이런 때라서 주는 거구나, 생각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아, 그것은 마음을 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던 목도리는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워낙 내가 모자, 목도리, 시계, 반지 등을 몸에 두르지 않기 때문에 그저 그런 선물로 받았다.
최전방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군부대로 면회온 후배도 이 먼곳까지? 왜? 궁금했었다.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은 한편으로는 운명이었겠지만 역사가 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커피포트는 왜 주었을까?
왜 연락을 끊어버렸을까?
커피포트는 잘 쓰고 있을라나.
궁금해지는 오후다.
첫댓글 나도 그 궁금증에 퀘션마크를 다는 오훕니다^^
먼뎃님들이 그리워 커피포터의 끓는 물처럼 서로 꽁달거리며 뛰어 오르는 비개는 6월의 휴일입니다
모임때마다 화분은 왜 주셨을까?
시사랑회원들을 좋아하니까. 명백한 답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