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 얽긴 추억들1
나의 어린 시절의 고향에는 이래저래 사연도 많은데 아주작고 좁은 인생영역 안에서 일어난 일들과 모듬살이 생활의 단면을 한 움큼만 담아 보려 하는데 담배에 얽긴 이야기부터 슬슬 시작해 보련다.….
지금이야 누구든지 농촌에도 기계화가 되니 울력[運力]필요가 덜하지만 한국전쟁 이전에는 더더욱 모든 것이 손에 의하니 품앗이가 적절했는데 도시에서는 이웃의 도움이 필요가 없으니 이웃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알 필요도 없다.
여자저고리도 지금처럼의 남녀구분이 없이 옷의 깃이 남자의 것 과 같은 방향이 오른쪽으로 되며 홀아비의 옷의 목이 닿는 부분인 동정 은 때가 더 많이 묻어서 보다 더 검었다.
노인들이 모이는 사랑방에는 옷고름을 맨 저고리를 걸친 노인들이 모이는데 대충 썬 잎담배를 긴 담뱃대에 얹어 꼭꼭 쑤셔 넣으니 공기소통이 안되고 뻑뻑 빠는데 대나무로 만든 설대가 니코틴에 의해서 막히면 연기가 쉽게 입으로 안 들어오니 양치질이 없고 끽연(喫煙)이 치아를 망가뜨려 이빨이 없는 노인이면 가뜩이나 합쭉 한 볼에 양 볼을 보면 개미귀신의 함정인양 쏙 들어가며 쪽쪽 하고 새앙 쥐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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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할 때면 착착 접힌 때 묻은 답배쌈지를 무명 띠로 질끈 동여맨 허리춤에서 꺼내어 담배를 왼손바닥에 넣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으로 비비어 대꼬바리(담뱃통)에 꽉꽉 눌러 넣고 부싯돌을 쳐서 말린 쑥의 솜털로 된 깃에 일단 불을 붙인 후 물부리를 빤다.
사랑방에서 문을 닫고 피우는 담배는 대개가 줄담배이며 집에서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복판이 쏙 올라온 재떨이에 세차게 내려쳐서 담뱃재를 떨어대니 대꼬바리의 골통은 부러지고 쭈그려지게 마련이다.
1950년경 담뱃대는 비싸니 대의 목이 부러지면 아버님께서는 닳아 못쓰게 된 숟가락(주석이 섞여 있어서 더 잘 녹음)을 숫 불에 녹여 유료로 고쳐주기도 했다.
담배설대가 막히면 볏짚의 홰기로 구멍을 통과시켜 뽑아내노라면 니코틴이 끈적끈적하게 묻어나오며 물부리에 구멍이 뚫린다.
애연가들이 늘 하는 말로 “식후 불연(不煙)이면 소화불량이라!”하는데 사랑방 안에는 연기가 안개 마냥 자욱하며 호롱불빛 가에는 햇무리 같은 동그란 무리가 생기는데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은 간접흡연이 된다.
담뱃대도 오래 쓰면 목이 삭아 얇아져 부러지는 것을 보면 니코틴은 산성(酸性)인가 보다.
담배 밭은 혹시 야미(뒷거래, 일어)로 내다 팔가 봐 면 직원이 나와서 포기수를 세어서 면에다가 보고를 했는데 전매품[monopoly]이기 때문이다.
담뱃갑 겉면에는'Monopoly Republic of Korea' 라고 써놓았었다.
돈이 귀한 어른들에게는 니코틴을 빼지 않은 독한 잎담배(葉草)는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호흡기 계통을 악화시켜 목구멍에 가래가 끓어 숨이 가래사이로 통하느라 코고는 소리같이 고르릉 고르릉 하는 노인들이 많았고 지금에와서보면 폐암이 되는데 수술을 못하니 그냥 죽을 수밖에 없었고 수명 또한 짧았다.
사랑에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긴 겨울밤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소문에만 의존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꽃이 귀동냥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가끔은 남의 집 며느리의 흠담, 곡가(穀價), 농사일의 정보, 면사무소에서 학생들 편에 동장 집으로 보내오는 공문내용 들의 이야기에 가끔은 갑론을박이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짚을 떡메로 쳐서 부드럽게 한 후에 꼬아 타래를 만들어 장날에 내다 파는 사람들도 있다.
가진자들은 벼를 100가마니를 사서 정미소에 맡겨놓고 곡가가 올라가면 벼로 받든지 더 편리하게 현금으로 챙기게 되는데 값이 헐할 때 사서 묵혀두었다가 비쌀 때 팔면 돈이 되었다.
니코틴과 타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이야긴데 내가 정비소를 할 적에 우리 집에 온 동생이 방안에서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는데 다른 층에 있는 아내가 금방 냄새를 감지하여 바깥에서 피우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내말이 “그까짓 것 가지고 뭘 불평 이야?” 하고 내가 일침을 놓았다.
그때는 내가 흡연가 들과 매일 접촉을 하니 간접흡연이 되어 남들이 피우는 담배냄새가 구수했지만 지금은 폐부가 깨끗해져 냄새가 역겹게 느끼니 그 당시의 아내의 불평이 지금의 나에게 미안(未安)으로 닥아 선다.
보충 설명을 곁들이면 내가 차를 고칠 적에는 낮에는 수돗물을 마시니 몰랐는데 지금은 언재나 샘물을 먹던 내가 혹시 수돗물을 마시면 역겨운 소독용 염소 냄새를, 벨트웨이를 달리면 배기 개스의 냄새를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당(唐, 당나라)성냥 조차도 없는 얇아서 찢어질 정도로 가난할 때라 대개의 집들은 불씨를 납작한 돌로 아궁이 속의 재를 덮어두었다가 떨치고 꺼지지 않은 불을 꺼내어 다시 사용을 했다.
우리 집만은 그래도 불씨를 간직하지 않았는데 유황을 까팡이(질그릇 깨어진 조각)에 불을 놓아 녹인 후에 헌 대나무삿갓을 손가락 길이로 잘게 잘라 양쪽에 묻혀 두 번을 쓸 수 있는데 부싯돌를 쳐 마른 쑥으로 된 깃에다 불을 부친다음 유황을 갖다 대면 파란 불꽃이 일어서 쉽게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가 있다.
포플러로 만든 성냥통에는 유리가루를 풀로 붙여 놓아 마찰열을 이용하는데 영어로 안전성냥(safety matches)이라고 덧 붙여 써 놓았는데 미국산은 황린[섭씨 60도에 발화]을 묻혀 놓아서 군화나 옷이나 아무데나 문질러도 발화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화경(火鏡)이라는 큰 볼록 렌즈하나만 있으면, 햇볕으로 초점을 맞추면 담배에 연기가 모락모락 나면서 여생이 끝 날 때까지 영구적으로 담뱃불을 붙일 수가 있다(모든 미국산 새 망원경에는 ‘해를 쳐다보면 눈이 탄다.’는 경고쪽지를 붙여 놓았다).
찬 공기가 구들장 밑으로 들어가면 온돌이 쉬 식으니 무쇠 제품의 부엌 아궁이에 철문을 달았는데 여기에는 “꼯 다드시오”라고 옛 문체로 공장에서 새겨 놓았는데 방만 덥히는 불을 군불(쓸모가 없는 불, 군것질, 군말 등이 있다)이라 한다.
아랫목 한곳만 따뜻하여 잠을 잘 때에는 큰 이불 한 채를 만들어 한쪽은 빨갛게 깃을 달아(발 냄새에 관계) 머리 쪽으로 하고 부채꼴로 누워 잠을 자는데 개는 입이 따뜻해야 하고 사람은 발이 따뜻해야 잠이 잘 든단다.
배가 아플 때는 보관한 아편을 먹으면 금방 낳으므로 상비약이 되며 만약 손가락이라도 베이면 약 대신 배추김치 잎이나 감고 어떤 때에는 된장을 바르는데 어쩌면 소금기의 멸균작용과 푸른곰팡이의 항생제 성분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며 된장은 구멍이 난 무쇠 솥을 때운 후에 새지 말라고 풀 대신 바르기도 한다.
나이가 젊으면 미래에 산다고 했고 늙으면 과거에 산다고 했다.
김천에는 매 5일마다 장이 서는데 노견(路肩)의 수건장사는 발이 시리면 열이 나라고 고춧가루를 신속에 넣었고 길가에 위치한 초가지붕 밑에 붙은 송판으로 된 간판에는 굵은 붓으로 쓴 붓방(筆房), 리발긔(理髮器)수선소, 모자세탁소 등이 있고 우립집도 그랬었지만 일본시대부터 내려오던 풍습 그대로 古物商(고물상)이라는 간판하나로 철공소, 철물전, 자전거포 등에 사용했다.
첫댓글 추억을 소환하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