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 박민혁
해가 쨍한 하늘이 펼쳐져 있다. 자꾸만 저 높은 것의 눈을 피하게 된다.
천변을 따라 걸으며 산책에 약간의 인생을 할애해 보았지만, 물속에 고
개를 처박고 떠 있는 청둥오리 놈들만 몇 마리 보았다.
‘몰라볼 만큼 변한 것 같다’라고 말하자 당신은 변한 것은 자신이 아니
라 우리의 관계라고 짚어준다.
길을 가로막고 사진 속에 봄을 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와 봄을 바
라보며 잠시 멈춰 선다. 사진 속에 담기는 봄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나
를 힐끗댄다. 우리는 서로를 골고루 의식한다. 아주 잠시 누구도 소외되
지 않는다. 가던 길을 간다.
어떤 얕은수가 나를 가볍게 속여 넘기고 있다.
기백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길 위에 누군가 피를 뚝뚝 흘리며 걸어간
흔적이 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일종의 순례를 떠올린다. 사실 지난 늦
은 밤 젊은 취객의 주먹다짐 같은 서사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감당할 수 없는 자본을 가져본 적 없어서인지 나의 물욕은 자주 선의에
서 비롯된다. 많은 돈을 벌 생각이지만, 고로 아직 나는 충분히 고답적이
다.
그 새끼가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게 ‘사인해 주세요’ 한다면 나는 괜히 그것을 ‘사인(Sign)해 주세
요’가 아니라 ‘사인(死因)해 주세요’로 짓궂게 들을 텐데,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죽은 이유가 당신이게 해주세요’가 되는 것이고, 설령 그런 사람이 많
아져 내게 일종의 팬덤이 생긴다면 나로 인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는 셈
이고,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인 셈이 되는 것이고,
어떤 얕은수가 나를 가볍게 속여 넘기고 있다.
철공소 앞을 지난다. 철근을 자르는 사람 주위로 가루 되어 날리는 불을 하
염없이 바라보는데 스콜처럼 전 생애가 한 번씩 쏟아졌다. ‘좋은 인생이었다
……’라고, 천천히 입술을 움직여 말해본다.
ㅡ웹진 《님Nim》(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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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열두번 이상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하면서도
초지일관하는 이들이 드물고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무성합니다
지난 토요일, 초임지 국민학고 100주년 한마음잔치에 초대받아 다녀왔습니다
50년전 제자들은 갓 스무살 젊은 선생님에게 매맞은 걸 기억하더군요^*^
물론 같이 운동하고 보이스카웃 활동 한 일, 육상대회 참가 등을 떠올린 제자들-
모두 환갑진갑을 지낸 터라 말끝 처리가 어정쩡했습니다
몰라볼 만큼 변하지는 않은 몇몇 얼굴이 조금 더 반갑더라구요
다음에 또 만나자고 작별의 말은 나누었는데....
좋은 인생이 아니라 괜찮은 청춘이었다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