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를 걸어갑니다
여름 내내 서쪽을 생각했습니다
서쪽 끝으로 가면 언덕의 쑥처럼 나는 흔해져 있을 거야
내 머리 위엔 구름 말고 무언가 항상 있었지요 모자를 벗으면 영혼을 벗은 것 같고 다시 고쳐 쓰면 무언가가 쏟아질 것 같은 느낌 검정개는 알고 있을 것 같아요 흡흡 비밀스런 냄새를 맡으며 나의 페이지 어디에도 그 개는 있었으니까
언젠가 그 개는 너를 위험에 빠뜨릴 걸
절망보다 더 까맣게
친구가 말했습니다
다시 모자를 고쳐 쓰고 강가를 산책합니다
크로커스 꽃은 떼로 피고
털이 검은 검정개가 생각납니다
어디까지 개일까?
개들은 사람의 어디를 가장 오래 기억할까
기억하지 마라
이렇게 사람이 많이 들어 있는
이렇게 숨겨진 벌레와 꽃이 많은
이런 개라면
그림자 좀 봐 봐 사람일 거야
밤에는 따뜻한 흰 이불을 덮고도 잠들지 못합니다
사랑의 처음은 크로커스일까 개일까 사과 한 알일까 뱀일까 이런 잠에서 자꾸 깨어납니다
꽃 앞에 강물은푸르게 출렁거립니다
검정개를 데려오지 마
사람도 개도 쫓아가면 멀어졌습니다
멀어지자 자꾸 멀어지자
크로커스 꽃 구경을 하다 검정색 개털을 달고 밤늦게 돌아왔어요
오늘 4킬로미터를 더 걸었습니다
크로커스 꽃은 개가 안 돼요 검정이 안 돼요
언젠가 시 대신 이 꽃을 그릴 것 같아요
[해바라기밭의 리토르넬로], 민음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