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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카이 스크래퍼스 (SKYSCRAPERS) 원문보기 글쓴이: 인천토박이™
제2의 개항 꿈꾸는 이창길 인천 개항로 프로젝트 대장
인천엔 '개항로'라 불리는 길이 있다. 개항이란 '항구를 열어 외국과 통상하는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40년 전인 1883년, 우리는 일본의 강압에 못 이겨 제물포를 개항해야 했다. 지금은 인천항이다.
일본은 제물포에 살던 조선인들을 몰아내고 조선의 법이 닿지 않는 땅, 조계지를 만들었다. 이듬해엔 청나라에 이어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등 서구 열강들도 뒤를 따랐다. 이유야 어떻든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외국인들로 붐볐던 근대 도시다.
공교롭게도 인천항 건너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생겨 지금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의 3분의 2는 인천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인천에 오래 머무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한때 극장이 스무 개 가까이 있을 만큼 북적이던 인천항 주변은 언제부턴가 활기를 잃었지만 지금도 인천항에서 배다리삼거리까지 이어지는 1km 남짓한 길엔 개항로란 이름이 붙어있다.
2018년 '개항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항로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벌어졌다. 일을 벌인 이는 인천 토박이인 이창길 인천 개항로 프로젝트 대장이다. 초·중·고를 모두 인천에서 나온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오래된 것들의 가치'에 눈을 떴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에만 익숙하던 한국 청년의 눈에 100년도 더 된 건물을 자랑스러워하던 영국 친구들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멋져 보였다고 한다. 사회학을 공부하러 떠났던 그는 어느새 건축이 더 궁금해졌고 틈날 때마다 건축 책을 찾아 읽고 오래된 건물들을 보러 다녔다. 고향인 인천의 가치와 가능성에도 새롭게 눈을 떴다. 그는 인천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
인천 개항로가 가진 매력을 발견하다
그렇다면 왜 개항로였을까. 이번에도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오래된 것들의 가치였다.
"인천은 절반 가까운 땅이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예요. 다른 도시들이 원도심을 밀고 신도시를 지을 때 인천은 매립한 땅에 신도시를 만들었어요. 그 덕에 이곳 원도심은 100년 가까운 세월 옛 모습을 지킬 수 있었죠. 필지가 좁고 길어서 다른 도시들과 달리 길을 걸으면서 더 빈번하게 여러 가게들을 만나게 돼요.
또 찻길도 오래돼서 좁아요. 그러다 보니 길을 걷다 어디서든 쉽게 찻길을 건너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차들도 함부로 경적을 울리지 않죠. 사람들은 거리에서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어요. 곳곳에 숨어있는 골목길들은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또 다른 시간으로 안내하죠."
이창길 대장은 다른 이들은 무심코 지나쳤을 개항로만의 매력을 찾아냈다. 그는 이처럼 자신만의 눈으로 도시를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책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뻔한 분석으론 남들과 다른 그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
개항로를 되살리기로 마음먹은 그는 함께 할 동료들부터 모았다. 적어도 5~6년은 함께 일해 본, 세상을 보는 눈이 비슷한 동료들 십여 명을 모았다. 건축가, 조경가, 디자이너, 기획자, 요식업 종사자 등이었다. 지금은 열다섯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여럿이 같이 일을 해나가야 하는 시대예요. 내가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좋은 동료를 얻기란 쉽지 않아요.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일하려면 먼저 내가 매력적이어야 해요.
개항로 프로젝트는 하나의 회사라기보다는 여러 그룹들로 이뤄진 느슨한 연대예요. 새로 일을 벌일 때마다 그 일을 가장 잘 해낼 사람들을 모아 그룹을 만들고 그 그룹이 책임지고 일을 해나가죠. 단, 중요한 결정은 제가 내려요."
젠트리피케이션을 여러 번 겪었던 그는 처음부터 건물을 사들이기로 했다. 다행히 활기를 잃은 동네라 건물값이 비싸지 않았다. 건물을 살 때는 비워두지 말고 꼭 무언가 일을 벌여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그렇게 개항로 프로젝트가 사들인 건물이 벌써 20여 채다.
"처음부터 우리 같은 플레이어들이 건물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싼 건물은 1억 원 정도에 사들였으니 송도에서 보증금에 권리금을 낼 돈이면 여기서 대출을 받아 건물을 살 수 있었죠. 대출이자도 월세에 못 미쳤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에 알맞은 건물을 사들였고, 가게를 열어 열심히 일하면서 이자를 내고 있어요."
역할 다한 공간에 바로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매력 불어넣기
이 대표는 자신이 하는 일을 "역할이 끝난 공간을 바로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원하는 곳으로 되살리는 것"이라고 했다. 2018년 2월, 이비인후과 의원이던 곳을 카페 '브라운핸즈'로 되살린 것을 시작으로 카페 라이트하우스, 개항로본부, 메콩사롱, 개항면, 개항로통닭, 개항백화 등 지난 6년 사이 스무 개가 넘는 공간들을 열었다.
"카페 라이트하우스는 1960년대 말에 개원한 산부인과 의원이었어요. 문 닫은 지는 20년쯤 됐죠. 이곳을 빛을 테마로 한 아주 독특한 카페로 되살렸어요. 카페 한가운데엔 백열전구를 만들던 커다란 기계를 가져다 놓았죠. 지금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선 더 이상 백열전구를 만들지 않아요. 역할이 끝났다는 점에서 기계와 산부인과, 개항로가 다 같은 처지죠.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면서 다시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찾게 만들었어요."
개항로가 달라지고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서울 홍대와 을지로, 인천 송도신도시에 있던 가게들이 하나둘씩 옮겨왔다. 그렇게 새로 생긴 가게가 40여 곳에 달한다. 그러니까 지난 6년 사이 이곳 개항로엔 무려 60개의 버려진 공간들이 되살아난 셈이다.
그렇다고 그가 젊은이들이 좋아할 트렌드만을 좇는 건 아니다. 그는 2030세대만큼이나 5060세대도 찾고 싶은 공간을 만들려고 애쓴다.
"트렌디한 공간을 만들다 보니까 나이 드신 분들이 소외되더라구요.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라이트하우스에 안 들어와요. 어떻게 하면 그들도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을 만들까 고민했죠. 그래서 개항로통닭을 열 땐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의 경험에 주목했어요. 무엇보다 인천이라는 공간에 담긴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했죠."
개항로통닭엔 자유공원, 송도유원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등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 곳곳에 붙어있다. 족히 40년은 지났을 흑백사진부터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진까지.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나이가 어떻든 어딘가 익숙한 사진 속 배경을 보며 자연스레 이야깃거리를 떠올리도록 한 것이다.
"개항로통닭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깔려 있어요. 저는 이걸 공간의 밀도를 높였다고 표현해요. 이 공간은 2~3시간으로도 다 소화하지 못할 만큼 많은 이야깃거리와 즐길거리로 가득 차 있는 거죠. 실제로 수십 년 전 졸업 사진에 나온 어르신이 가게를 찾은 일도 있어요. 그야말로 이야기꽃을 피웠죠."
베낄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다
그에게도 힘든 시기는 있었다. 문득 누군가 호기심에 개항로를 찾는다고 해도 두 번 세 번을 되풀이해서 찾아올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땐 망할 것 같았다"고 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불안감의 근원을 찾아냈어요. 뭐든 베끼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베낄 수 없는 게 무얼까를 찾다가 결국 두 가지를 발견했죠. 하나는 '자신만의 철학', 또 다른 하나는 '흘러간 세월'이었어요. 그때부터 노포에 주목했죠. 마침 개항로엔 자신만의 철학으로 고집스럽게 세월을 지켜낸 노포들이 60곳 넘게 남아 있었어요.
노포는 절대 베낄 수 없어요. 수십 년 세월의 흔적이 차곡차곡 쌓인 건물과 공간, 긴 시간 다듬어진 손님을 대하는 태도, 음식을 만드는 주인장의 철학과 손맛, 대를 이어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그들만이 아는 추억들, 또 인천의 역사와 함께했던 이야기들은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어요."
그는 노포를 알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무작정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으며 자료를 쌓아갔다.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 가는 노포를 알림으로써 소비자에겐 또 다른 선택지를 주게 됐고, 개항로는 옛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매력적인 곳으로 거듭났다. 또 개항로 프로젝트는 노포를 만드는 데 들어갔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벌게 됐고, 무엇보다 개항로는 점점 더 베끼기 힘든 곳이 되어갔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쫄면을 개발한 곳이자, 한창땐 한 달에 4만 명이 먹을 면을 뽑을 만큼 번창했던 광신제면소와 함께 개항면이란 가게를 열었다. 이곳에선 광신제면소에서 받은 면을 진한 사골국물에 말아 낸다. 찾는 이가 많지 않던 광신제면소는 다시 면을 많이 팔아 좋고, 개항면은 따로 면을 뽑을 설비나 사람 없이도 장인의 솜씨로 뽑아낸 면을 받을 수 있어 좋다. 지금도 주말이면 하루 200명이 개항면을 찾는다고 한다.
그는 일을 할 때 비즈니스(돈벌이)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다 보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노포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젊은 층이 반응하기 시작하더라구요. 단순히 돈만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들이 먼저 알아챘고 자연스럽게 팬덤이 형성됐어요. 개념소비, 가치소비를 하는 거죠. 저는 MZ세대가 정말 현명하고 뛰어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어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개항로 프로젝트
개항로 프로젝트는 최근 개항로를 무대로 현장과 이론이 합쳐진 로컬 비즈니스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마계대학'이다.
"우리는 예술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디자인을 하고, 공간을 기획하고, 노포 어른 및 다양한 연령층과 협업을 하며 지역에서 비즈니스를 해왔어요. 지난 6년 동안 이곳에서 쌓아온 자원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는 결코 따라 하기 힘든 실제적인 교육을 진행하려고 해요."
마계대학의 핵심 가치는 직관, 전략 그리고 협업이다. 그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객관적 데이터만으로 예측해 낸 결과물보다 여전히 주관적 직관과 전략적 협업으로 만든 결과물이 더 매력적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직관과 전략 그리고 협업이 성공적인 로컬 비즈니스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것.
"로컬이 대세이고, 꿈을 실현하기에 로컬이 더없이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책에 나오는 객관적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지루해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편리한 것, 또 다수결은 더 이상 중요한 기준이 아니에요. 저는 데이터와 직관 중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직관을 고르겠어요. 그래서 개항로라는 캠퍼스에서 직관, 전략, 협업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돌이켜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또 전통, 문화, 역사, 지역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건 물론 뜻깊은 일이지만 이제는 그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일은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의 생각, 태도, 삶의 방식 그리고 가치관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게 어려운 일이고, 그게 바로 진정으로 세계가 놀랄 만한 가치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정부와 지자체가 로컬로 향하는 청년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른바 먹튀를 걱정하거나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고 재촉하진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돈을 버는 일만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고도 했다.
"능력이 뛰어난 청년들이 단지 돈이 없어서 뜻을 펼치지 못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에요. 설사 먹튀하는 이들이 다수라고 (가정)해도, 단 몇 팀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고, 그들을 뒷받침하는 게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사람을 평가할 때 돈으로만 평가하진 않았으면 해요. 시골에서 책방을 하면 돈을 벌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하면 안 되는 일이거나, 우리 사회에서 가치 없는 일은 아니잖아요.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데 자꾸 수익모델이 뭐냐고 묻는 건 우스워요. 지원 사업도 돈을 버는 트랙과 돈을 안 벌어도 되는 트랙으로 나누었으면 해요. 처음부터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런 팀들은 돈을 쓰게 만들어야 대한민국이 더 멋있어진다고 믿어요."
고비마다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며 어느덧 6년째를 맞은 개항로 프로젝트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앞날만큼이나 앞으로 마계대학을 거쳐 갈 이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들 또 다른 개항로의 모습도 궁금하다. 개항로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싶다면 이번 주말 시간을 내서 개항로에 들러 보는 건 어떨까.
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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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천줌인데 개항로 정말 매력있고 예뻐요! 오래된 가게들이랑 새로 생긴 가게들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서 굉장히 멋드러지고 특유의 감성이 있어요. 친구들 인천 올 때마다 항상 개항로쪽 데리고 가는데 늘 반응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