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91호
머위
문인수(1945~2021)
어머니 아흔 셋에도 홀로 사신다.
오래 전에 망한, 지금은 장남 명의의 아버지 집에 홀로 사신다.
다른 자식들 또한 사정이 있어 홀로 사신다. 귀가 멀어 깜깜,
소태 같은 날들을 홀로 사신다.
고향집 뒤꼍엔 머위가 많다. 머위 잎에 쌓이는 빗소리도 열두 권 책으로 엮고도 남을 만큼 많다.
그걸 쪄 쌈 싸먹으면 쓰디쓴 맛이다. 아 낳아 기른 罪,
다 뜯어 삼키며 어머니 홀로 사신다.
- 『홰치는 산』(만인사刊, 1999/ 천년의시작刊,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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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시인께서 훌쩍, 이 세상을 건너가신 게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언젠가 서울의 모 녹음실에서 뵈었을 때, 먼 길이니 또 보자고...
언젠가 대구의 모 식당에서 뵈었을 때,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고...
그러고는 아주 먼 길로 훌쩍 건너가버리셨지요.
어쩌면 문인수 시인이 시인으로서 평생을 지켜보고 살폈던 것은
소태 같은 세상을 건너고 있는 간난신고의 삶들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선생의 눈에는 저 고달픈 삶들이 전부 어머니처럼 보였을 겁니다.
아마도 "문인수의 서정"은 그런 것이었을 겁니다.
밤새 비가 내렸지만 여전히 날은 덥고, 장마는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전망입니다.
머위를 찜 쪄 쌈 싸먹고 싶은 날들입니다.
2023. 6. 26.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