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에서 왔어요 [김개미]
나이지리아에서 왔어
나이는 몰라
사장님이 그러는데 내가 한국에 온 지 삼십 년 됐대
아빠는 부인이 다섯이야
엄마는 둘째 부인이나 셋째 부인일 거야
나한테 뽀뽀를 잘 해줬어
근데 난 넷째 부인을 닮은 것 같아
일 끝나면 공장사람들은 다들
고향 얘기를 해
그럴 때면 나도 고향에 가고 싶어
하지만 잘 모르겠어
혼자 가만히 있을 때면
고향에 가고 싶지 않은 것도 같아
고향을 생각하면 이상해
내가 아는 고향과 진짜 고향이 다르면 어떡해?
내가 아는 바로 그 고향에 갔는데
기쁘지 않으면 어떡해?
내가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젊고 어리고
나만 혼자 늙었을지도 몰라
난 멀리 와서 매일 일을 해
이젠 아는 사람들도 모르는 사람들과 똑같아졌을 거야
고향에는 일자리가 없어
사람들은 낮에도 자거나 술을 마셔
가족을 괴롭히면서 시간을 보내
난 그런 사람들만 알아
그런 사람들 뿐이니까
결혼은 내 일이 아니야
난 결혼한 적 없어
결혼하고 싶었던 여자는 있었지만
그 여자는 아빠의 다섯째 부인이 됐어
한국에서 그 소식을 들었어
그날 난 손을 다쳤어
월급을 받으면 나이지리아로 보내
아빠는 그 돈으로 다섯 명의 부인과 열세 명의 동생들과
몇 명인지도 모르는 손자들을 돌봐
하도 오랫동안 안 가서
아빠가 돌보는 사람들이 다 내 가족인지도 모르겠어
청바지 염색하는 일은 재미없어
하지만 다른 일을 몰라
한국에서 그 일만 했어
난 사장보다 공장을 더 잘 알아
사장이 세 번 바뀌었지만 난 안 바뀌었어
아빠 얼굴이 나보다 어려
기억 속의 아빠는 놀면서도 바빠
몸에 귀금속을 두르고 다녀
귀금속은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힘이 있어
아빠가 그걸 다 어디서 얻었는지 몰라
난 얼굴도 피부도 피도
나이지리아 것이지만
나이지리아는 나의 것이 아니야
나이지리아로 추방된다면 못 견딜 거야
이제 난 나이지리아에서 사는 방법을 몰라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난 한국의 것이야
고향이 있다면
쉬는 날 모이는 친구들
나이지리아 말로 이야기하고
나이지리아 말로 노래하고
나이지리아 말로 춤추고
나이지리아 말로 술 먹고
나이지리아 말로 싸우는
그 자리에 있어
그래도 눈은 놀라워
어려서 못 본 건 볼 때마다 신기해
속눈썹에 앉은 눈송이가 녹을 때
차갑고 또 따스한 느낌이 들어
내 것은 금방 녹는 눈송이 속에 있어
- 작은 신, 문학동네, 2023
* 세상은 점점 넓어져서 비행기만 타면 어디든지 간다.
나이지리아, 하면 수도가 라고스라는 것,
라고스는 항구도시이고 남쪽으로 가는 중간지점이어서 외국 문물을 일찍 받아들였다는 것,
그래서 외국 정부에 가짜 문서를 보내는 정도의 남다른 머리를 가졌다는 것,
여중생을 수백명을 납치해가는 무시무시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
그렇게만 알았던 나이지리아인이 한국에 와서 일을 한다니.
세상은 넓어진 게 아니라 좁아진 거다.
먼훗날에는 이 나이지리아인이 누군가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한국국적을 취득해서
한국인으로 살아갈 날도 있을 게다.
네팔인, 우즈베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등등등 그들이 한국을 먹여살릴 날이 오고 있다.
아니지 이미 온거나 다름없다.
외국인을 봐도 신기해 하지 않는다.
나이지리아인의 얘길 듣다보니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수도는 라고스에서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단다.
이제는 외울 필요가 없어졌다.
첫댓글 죄송합니다 눈물 나는 이런 시를 함부로 아무데나 퍼담아서 ...
ㅎㅎ 나이지리아로 퍼가진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