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2주일 - 유혹과 시련 딛고 꿋꿋이 믿음의 길로
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cpbc 기자입력 2024.06.19.08:40수정 2024.06.19.08:40
렘브란트 작 ‘갈릴래아 호수의 폭풍’, 1633년
갈릴래아 호수는 길이가 약 20㎞, 동서의 폭이 11㎞ 정도이고, 둘레는 50㎞ 이상, 최고 수심은 40m가 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호수입니다.
해수면보다 200m 이상 낮고, 남쪽과 북쪽은 양쪽 방향을 따라 흐르는 요르단 강에 연결되어 있으며, 동쪽과 서쪽으로는 병풍 같은 벼랑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골짜기가 바람의 통로 역할을 함으로써 호수 서쪽인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과 시리아 사막에서 오는 동풍이 마주치게 되면 폭풍이나 돌풍이 발생하여 세찬 물결이 일어나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배를 이용해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던 중 거센 돌풍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대부분 어부 출신으로 배를 다루는 전문가들이었는데, 그들이 몹시 두려워했을 정도로 심한 풍랑이 일어났고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 거의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태평하게 배 뒤편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한마디 말씀으로 바람과 호수를 잠잠하게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돌풍으로 요동치는 호수의 물결은 하느님을 반대하는 세력들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력들의 공격을 권능의 말씀으로 다스리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행동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은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데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하고 매우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하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권능에 대한 믿음을 요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으로 준비되어 있다면 그 어떤 적대 세력의 유혹과 시련도 제자들은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제자들의 배는 교회 공동체를,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삶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거센 바람으로 세찬 물결에 부딪히며 위태롭고 힘들게 항해하는 배는 위기와 시련을 겪는 교회 또는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어떠한 갈등이나 위기를 겪지 않고 아무런 문제 없이 항상 평탄한 길만을 걸으며 성장하는 공동체가 어디 있겠습니까? 삶의 역경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공동체나 사람이라도 나름대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으며 지내왔을 것입니다.
‘항상 햇빛만 나면 사막이 되고 만다’라는 아랍 속담이 있습니다. 공동체 성장 과정이나 우리 인생의 여정에도 늘 맑은 날만 이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끔 흐린 날도 있고 많은 비가 내리는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
비 온 후의 땅이 더 단단해지듯이 여러 형태의 고난과 시련이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과정에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같은 배를 탔고 공동의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순조로운 항해의 순간뿐 아니라 풍랑을 겪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서 모진 풍파를 겪게 될 때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하고 예수님께 솔직하게 우리의 마음을 표현합시다. 솔직한 마음의 표현은 좋은 기도의 시작입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위로와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어떤 시련과 고통이 닥쳐올지 모르는 우리의 삶이지만 죽음까지도 쳐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며 살아갑시다.
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