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들이 뱉은 침은 이윤애의 단화 위로 떨어졌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표정을 고수 할 뿐이었다.
"야! 들어가자. 괜한 애 건드리지 말고. 이윤애 너도 거기 서 있지 말고 얼른 들어가."
"어? 반장..."
재연이었다. 노는 것들도 꼼짝 못하게 하는 내 잘난 언니...
그때 내 뒤통수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재연아 안 들어가고...어? 재연이 안경 썼었니? 아까 춤추는 거 잘 봤다. 녀석 못하는 게 없어요."
내 머리를 쓰다듬고 가는 담임은 이제 1년이 다 지나도록 언니와 나를 구분 못한다.
시력이 나쁘지도 않는 나는 누군가가 재연이와 나를 구분하고 내 이름을 불러 주기를 원해서 안경을 쓰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구분을 못 한 다기 보다 나라는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는 듯 하지만 말이다. 집안 부모님도 내가 안경을 벗고 있으면 구분을 못하니 말이다.
나는 재연이 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천천히 방으로 걸음을 옮긴다.
5막 2장
<이윤애>
고3이 되기 전에 떠나온 마지막 여행이다. 문손잡이를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이 두렵다. 아이들 앞에만 서면 더듬어 지는 나의 말투는 그애들에 대한 나의 공포감이다.
이제 1년만 참으면 되는데...
대대로 불교 집안이었던 우리 집, 아직도 양반 상놈을 따지는 완고한 할머니...그런 집안에서 신을 받게 되어 집안 가족들이 등진 엄마의 여동생 나의 이모...그리고 나...
나에겐 나와 동갑인 오빠가 하나 있다. 쌍둥이는 아니지만 오빤 1월에 태어났고 나는 그 해 12월에 태어났다. 내가 그 해에 태어나게 된 이유는 다 오빠 덕이었다.
오빤 태어날 때 탯줄을 목에 감고 나와 주변인들의 걱정을 샀던 것이었다.
불교에선 탯줄을 목으로 감으면 불제자의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스님들이 염주를 목에 거는 것과 같은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귀한 장손을 불제자로 넘길 수 없으니 오빠의 사주를 대신 지고 가라고 그 해에 나를 가져서 낳은 것이었다.
나의 엄마는 바로 아이를 갖기 위해 오빠에게는 모유도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젖을 떼야만 아이가 들어서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나는 철저하게 오빠의 뒷받침을 해주기 위해 태어난 아이인 것이다. 그 뒤로 나는 7살 때까지는 스님들의 손에서 그 후로는 무당을 하는 이모 댁에서 자라게 되었다.
내가 무당 집의 아이라는 소문이 난 후로는 아무도 나와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 이모는 누구보다도 다정한 분이시지만 남들의 눈에 무당이라하면 부정한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문손잡이를 돌린다. 날카롭게 쏟아지는 아이들의 눈빛...
<재희>
"에이 씨발~선생들은 즈네들도 나가 놀면서 복도 나가는 문은 왜 잠그냐구."
"그년 땜에 그러지. 어제 미현이 년이 모텔 아줌마한테 술 사다가 학주한테 걸렸잖아. 그래서 가둔거지.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무슨 짐승 새끼냐? 가두게. 좇나 짜증나. 열 받는데 술이나 마시다가 자자."
새벽 2시쯤 방 아이들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10시쯤 선생들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소지품 검사를 했지만 학생들은 선생들의 눈을 피해 잘도 숨겨 두었고 특히 우리 반이 있는 4층은 재연이 덕에 검사도 대강하고 무사히 넘어 갔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재연이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며 재연에게 마냥 아부를 떤다. 주스 병에 포도주를 담아 온 아이가 술을 꺼내자 모두들 신이 나서 마셔대다가 잠이 든 것이었다.
나는 후덥지근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겨울에 더위이라니...
모텔 주인이 인심 좋게 보일러를 돌리는지 왠지 모를 더위가 나의 몸을 감싸고돌았다. 나는 바람을 쏘일 아량으로 모텔 복도로 나갔다. 어차피 복도 끝 문은 잠겼을 테니 복도를 거닐 수밖에 없었다.
"창이 높아서 밖이 보이지 않지?"
이윤애였다. 저 애는 또 왜 나와 있는지...
"넌 왜 나왔는데?"
"난 고양이... 소리가...시끄러워서. 우리 이모가 그러는데 고양이가 서글피 우는 날에는 저승의 문이 열려서 사람의 영혼을 데리고 간데. 그게 들리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런건 미신이야. 고양이 소리에 깨어 나오다니 보기보단 민감한가보다? 나도 아까 듣긴 들었는데, 신경 쓸 정도는 아니잖아."
그 애는 동그랗고 까만 눈으로 나를 빤히 응시했다.
"너도...들었...구나."
" 많고 많은 고양이 뭐 대단한 거 라고."
"재희야 네 인생은 언니한테 치여서 힘들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비꼼으로 들려 한마디 던져 주었다.
"그럼 너는 귀신한테 치여 힘들겠구나."
사실 마음에 있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괜스레 독한 소리가 나오고야 말았다.
"모든 것은 허위이며 환영이고 겉보기와는 다르지. 오늘밤은 잠자지 마라."
그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던지고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어둠에 묻혀 버렸다.
나는 내심 이윤애가 말을 더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에 놀라며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소란스러웠다.
'이 시간에 다른 학교 애들은 캠프파이어 하나?'
그때였다. 복도 끝의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반장 빨리 애들 깨워라. 나는 3층 애들 깨울테니."
"선생님 저 반장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불이야 불. 지금 지하 보일러실부터 위로 불길이 치솟고 있어. 얼른 깨워!"
허겁지겁 사라지는 선생을 보며 나는 까치발을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너무 높아서 밖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은 연기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불길이 치솟는 게 간혹 보였다. 아까부터 뜨거웠던 것은 화재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차례 차례로 방을 들려 아이들을 흔들어 깨워 내보내기 시작했다.
자다 일어난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며 나갔지만 그녀들이 3층쯤 내려갔을 때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불길의 사태가 심각했던 것이다.
이제 한 방만이 남았다. 이젠 숨도 쉬기 어려웠고 열기가 느껴져 왔지만 그곳에는 내 쌍둥이가 있었다.
구해야 한다. 내 쌍둥이 재연이가 있는데... 검은 연기를 뒤로하고 나는 방문을 연다.
1년후 고3 <재희의 쌍둥이 언니 재연>
"어머, 또 일등이야? 김재연 쟤는 무슨 책을 씹어 먹는다니? 진짜로 공부 잘한다."
"쟤 다 잘하는 걸로 유명하잖아. 새삼스럽게."
"하긴...그런데 좀 소극적으로 변하기는 했더라. 재연이가 원래 쌍둥이었는데 우리 수학 여행 갔을 때 죽었다나봐. 그것도 도망 갈 수 있었는데 자기 살리려고 방에 들어 왔다가... 그 뒤론 좀 성격이 변하긴 한 것 같더라."
"김재연이 쌍둥이었어? 왜 난 몰랐지? 재 원래 유명해서 쌍둥이였다면 다들 알았을 텐데?"
"동생이 원체 존재 감 없는 애였데. 그래도 재연이네 집 부모님은 충격으로 서울 뜨셨단다.
지금 친척집에서 학교 다니나 봐. 존 재감이 있네 없네 해도 부모 마음은 같은 거야. 다 같은 자식인 거지."
"쉿! 온다 조용히 해."
아이들은 다시금 수근거린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들리지는 않지만 시간이 흘러도 소문이란 잠잠해지지 않는다.
내 동생 재희...어릴 적부터 장녀인 나에게 가려 무엇 하나 제 맘대로 해보지 못한 착한 아이였다.
다른 동생들처럼 언니에게 투정 한번 부리는 일 없었고 다른 쌍둥이들처럼 나이 차이가 없다고 해서 언니에게 함부로 대하는 일 없이 묵묵히 조용히 지내던 아이...그러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한동안 나는 이어폰을 꼽고 살았다. 사고 이후로 친척들에게 걸려 오던 전화 벨소리 그리고 만나기만 하면 수근거림...정말이지 끔찍이도 귀를 틀어막고 싶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에요? 만약에 재연이가 죽었어봐. 이왕 누구라도 갈 거였다면 재희가 희생한 게 났지 뭐... 사실 재희가 잘하는 게 뭐 하나라도 있었나?'
그들에겐 내 동생이 죽었다기 보다는 두 상품 중 이왕이면 괜찮은 물건을 하나 골라 잡았다는 식이다.
재희의 펴보지도 못한 인생과 나의 죄책감 무너진 우리 가정은 어떻게 하란 말인지...
사고 이후 어머니는 재희에 대한 충격으로 쓰러지셨고 아버지의 사업을 정리 한 후 시골에서 요양 중이시다. 이렇게 부모님이 재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재희는 알고 갔을까?
차가운 손길에 나는 섬뜩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재희야...김재희..."
"어, 이윤애 구나. 윤애야, 나 재희 아니고 재연이야."
"몇 번 불렀는데...어디 아파?"
"어, 귀가 좀 멍멍하고 머리가 아파서, 병원 좀 가봐야 할까봐. 음악을 크게 들었더니 귀가 잘 안 들리네."
"그래..."
나는 순간 왜 그런지 모르게 그녀의 머리가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윤애야, 너 머리카락이 많이 긴데 좀 잘라봐. 시원해 보일 것 같은데."
"난 머리만... 자꾸 길어. 잘라주는 사람은 없는데... 길기만 하네."
내 눈에는 밝지도 않은 애가 머리만 길어서 다니는 뒷모습이 좀 갑갑해 보였다.
"재연아! 같이 가자."
반 아이 한 명이 윤애가 가는 모습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내 팔짱을 끼고서는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 칠판에 큼지막하게 '내일부터 d-day 100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유난히도 빨리 가는 고3의 하루는 수험생들의 피눈물로 돌아가는 듯 하다.
5막 3장
아침부터 교실이 소란스럽다. 어제 무슨 일인가 있었다지만 난 관심이 없다. 저럴 시간에 책 한자라도 더 볼 것이지...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꺄악, 진짜야?"
"그래. 주번이 아침에 교무실 가서 들었데. 어젯밤에 우리 야자 끝나고 나간 후 였나봐. 2학년 교실에 불이 켜져 있어서 수위아저씨가 누가 남아 있나 해서 들어 와 봤나봐. 그랬더니 애들 15명이 6반 교실에 앉아 있더란다."
"6반? 6반이며 그 반이잖아."
"그래. 그러니까 더 이상 한 거지. 그래서 아저씨가 3학년도 다 갔는데 2학년인 너희가 왜 남아 있냐고 물어 봤나봐."
"그래서? 응?"
"잠깐 침 좀 삼키고...물어 봤더니 그 애들이 한다는 말이 자고 일어났더니 아무도 없다고 자기네 반 애들 좀 찾아 달랬데."
"그게 무슨 소리야? 자고 일어나니 없다니."
"6반에 작년 화재 사고로 15명 죽었잖아. 자다가 못 깨어나서 질식사로."
"아, 맞다. 그게 6반이었지."
"어우야~나 무서워. 하필 수능 100일 시작부터 이런 일이 생기냐?"
"이건 내 추측인데 개네 들도 수능 준비하러 온 거 아닐까? 이제 100밖에 안 남았잖아."
"에라이~야 주둥이 닥치고 공부나 하자. 귀신이 수능은 무슨~"
"얘들아, 수위 아저씨 오늘 부로 학교 그만 두셨데."
"왜?"
"밤마다 2학년 6반 교실에 꼭 불이 켜진덴다. 그리고는 '어디로 갔지? 어디로 갔지?' 하는 소리가 계속 들린데. 다 자기네 반 애들 찾는 거 아니겠어?
"야~ 작년 6반이었던 애들 무서워서 공부도 못하겠다."
학교의 분위기가 갈수록 어수선해 지고 있다. 아이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온통 작년 일에 관해서만 신경이 집중되어 온종일 수근거린다. 정말이지 듣기싫다.
"흠. 요즘 학교가 어수선 한데 너희는 흔들리지 말고 공부나 해라.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건 너희가 몸소 느낄 것이다. 이맘때면 늘 도는 게 유언비어니까 공부에만 열중하도록...이상."
"차렷, 선생님께 인..."
"잠깐, 반장 거기 빈자리 뭐야? 두명씩이나."
"아직..."
"아직? 이것들이 정신이 있어 없어? 인사는 됐다. 아! 윤재연은 교무실로오고."
아침부터 호출이었다.
어수선 한 건 교무실도 마찬가지였다. 소문이라더니 진짜로 수위 아저씨가 그만 두었는지 선생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었다.
"재연아, 요즘 별일 없지?"
"별일이라니요?"
"아니 선생님들 사이에서 네가 요즘 말도 없어지고 공부만 한다고 해서. 애들이랑 대화도 않는다며?"
"..."
"그...그래. 선생님이 그냥 걱정되서 물어 봤다. 고3 때는 활동을 줄이는 것도 좋지. 가봐라."
교무실 문을 나오는데 학부형 둘이 교무실로 허겁지겁 들어온다.
"야! 특종이야. 어제 우리 반 애들 둘 결석했지? 어제 개네 엄마들 왔다 갔데."
"왜? 담탱한테 뇌물 줬다니? 대학원서 잘 써달라고?"
"뇌물은 시대가 어느 시댄데? 그게 아니라 개네 그저께 학교 끝나고 둘이 같이 집에 가는데 작년에 죽은 애들이 개네 기다리고 있었데."
"말도 안 돼. 그리고 왜 하필 개네 둘이냐?"
"개네 둘 작년에 같은 6반이어서 친했잖아. 개네가 집에 혼비백산해서 뛰어 들어 와 가지고는 귀신 봤다고 하고는 기절했단다. 무서워서 학교 못 오겠다고 했데."
"이게 무슨 일이래? 시험 앞두고 재수 없게."
애들은 요즘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각 반마다 작년에 6반이었던 애들은 한 두 명씩 학교 오기를 꺼려하고 어떤 아이는 수능 날까지 학교를 오지 않겠다며
가방을 싼 아이도 있다.
모두 듣기 싫은 소리뿐...정말이지 귀신이라는 게 있다면 난 재희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단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데
가엾은 내 혈육...
"요즘 작년 6반이었던 애들한테 전염병이 돈단다."
"나도 들었어. 무슨 숨을 못 쉬겠다고 픽픽 쓰러진다며. 학교에서도 점수에 반영 안 할 테니 시험 당일까지 집에서 공부하라고 했데."
"씨팔...나도 6반이었음 좋았을걸. 까짓거 귀신들이 와서 애들 찾아 달라고 하면 '교무실 가서 출석부 뒤져봐!' 라고 말하고 말지?"
"큭큭~귀신이 줄지어 서서 출석부 뒤지고 있으면 그것도 특종 감이다. 근데...우리반 윤재연도 작년 6반이었는데 아무 일 없나봐?"
"그러게...제 작년에는 노는 애들이랑 도 꽤 어울리고 활동 많이 하더니 요즘은 공부만 한다. 어른들이 큰일 겪으면 성격이 변한다더니 그 말이 맞나보다."
아이들은 모두 내가 성격이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재희를 앞세워 보내고는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겠는가...나에겐 하루 하루가 고비이다.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이윤애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나는 애들이 나간 후 이윤애에게 다가갔다.
"윤애야 할말 있으면 해."
"..."
"너도 요즘 숨막히고 그러니? 작년 우리 반 애들은 그렇다던데...넌 왜 그런지 알아?"
그녀의 무표정을 보고는 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묻고 있지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말하기 싫음 하지말고..."
"그 애들이 숨이 막히는 건 죽은 애들이 그 애들의 뒤에 앉아서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야."
당황스러웠다.
'무당 집에서 컸다는 소문이 있다더니...혹시 귀신을 보는건가?'
"윤재희 넌 걱정 하지마라."
난 멍하니 서있었다. 나와 재희를 구분 못하는 멍청한 아이의 말을 잠시라도 믿은 내가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됐다. 나 먼저 갈게."
나는 빈 교실에 그녀를 뒤로하고는 발걸음을 돌린다.
5막 4장
요즘은 매일같이 재희의 꿈을 꾼다. 내가 그애의 생각을 많이 해서일까 아니면 나 대신 죽은 것이 억울해서 일까? 요즘은 누군가가 내 옆에서 말만해도 나를 탓하는 말같이 들려 귀를 틀어막고 싶다.
"선생님 오늘 조퇴 좀 시켜주세요. 요즘 귀가 멍해서 수업시간에 잘 안 들려요."
"어? 그래. 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보다. 걱정말고 다녀와."
"감사합니다. 그럼..."
"재연아."
"네?"
"어머님은 좀 괜찮으시니?"
"아...네..."
교무실 문을 나서는데 다시금 선생님들의 수근거림이 느껴지는 듯 하다. 다들 재희일을 떠올리는 것일까?
병원에 도착하는 동안 내내 기분이 착찹하다.
"고3 이라고 했나요?"
"네."
"스트레스가 원인 인 듯 한데...검사 결과로는 이상이 없고...혹시 귀에 물이 들어가거나 그러진 않았죠?"
"네."
"고3 때는 민감해져서 종종 일시적으로 머리가 아프거나 한데 재연 학생은 그게 귀로 왔나 보네요. 걱정말고 당분간은 이어폰 사용하지 말아 보세요. 그게 원인 일수도 있으니."
"이어폰은 이제 꼽지 않는데...여하튼 잘 알았습니다."
고3병이 있다고 듣기는 해도 내가 걸릴 줄은 생각도 못해 보았다. 공부로 인해서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었는데, 어깨가 아픈 것 도 그 때문인가?
"윤재연 요즘 살빠지는 것 같지 않니? 애들은 고 3 되면 체중 분다고 난리들인데,저년은 어째 더 날씬해진다."
"신은 확실히 불공평하지. 이쁜게 공부도 놀기도 잘해요. 하긴 요즘은 윤재연 노는거 본 애들 없더라. 많이 조용해졌지. 야, 담배 있음 한가치 내놔봐."
"썩을 년아 네 꺼 펴."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뭐라고 수군거린다. 다시금 재희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나 대신 죽었다고? 정말이지 이젠 아무 말도 듣기 싫다. 빨리 수능이 끝나고
좀 쉬었으면...
"재희야..."
나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섬뜻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야! 이윤애, 나 재연이야. 아무리 멍청해도 사람 얼굴 정도는 구분하고 다녀!"
나도 모르게 엉뚱한 애한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쌍둥이니 착각 할 수도 있는 것인데...
"너희는 서로를 많이 생각해 주는구나."
"무슨 소리야? 어?"
그녀는 알 수 없는 말만 던져놓고 가버린다. 모두들 나를 탓하는 것이겠지.
'재희야 나 너무 힘들어. 그때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수학능력 평가 당일>
붉은 커텐 틈으로 겨울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준비하는 내 얼굴 위로 재희의 얼굴이 겹쳐진다. 살아 있었더라면 오늘 시험장에 나란히 들어갔을 텐데...
코트의 매무새를 잡고는 시험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소란스러운 시험장 앞. 사람들은 시험을 무슨 축제쯤으로 아는 듯 하다.
저들은 침묵의 미덕을 즐길 줄 모른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견뎌내지 못해 말을 하거나 소란스레 웃고 떠든다. 침묵을 어려워하는 저들...
시험이 시작되고도 아이들은 조용할 줄을 모른다. 매 쉬는 시간마다 정답을 맞추며 소란을 떤다. 그 와중에도 이윤애는 나만을 쳐다보고 있다. 볼수록 불쾌한 아이다.
다시금 귀가 멍멍해지고 통증까지 오고 있다. 아이들이 나를 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는다.
"윤재연 요즘 왜 저렇게 조용해? 시험 때라 긴장했나?"
"야! 서울 일등이 긴장은 무슨...재가 언제 공부로 긴장하는 거 봤냐? 그때 그 사고 이후로 좀 그런 거 같아. 동생이 죽었다나 봐. 재 동생이 그렇게 말이 없었다며..."
"쌍둥이라 닮아 가나 보지. 죽은 애랑 닮아 간다니까 좀 소름 끼친다."
"그러게 셤 시작하겠다. 자리에 앉자. 이제 외국어만 보면 끝이네."
시험 감독이 들어와 뭐라고 떠들어되기 시작했다.
"자, 이제 한 과목 남았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제발 조용히 좀 해줘. 문제에 집중 할 수가 없잖아. 나도 알아. 재희가 나 때문에 죽은거 안다고!'
"이제부터 듣기 평가를 시작하겠습니다."
PART A
W: Are you sure you corrected all the typing errors?
you want to make a good impr ession.
m: I'd better read through the...
"뭐라고 하는 거지? 잘 들리지 않는데...뭐라는 거야? 어?"
시험장의 아이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았다.
"학생 왜 그래?"
감독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시험장을 나와 세면장으로 뛰어 들어 갔다. 도무지 들리지가 않는다. 이번이 마지막 시간인데...세수를 하면 정신이 맑아 질 거야...긴장을 했나봐...
찬물에 세안을 하고 고개를 든 나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내 쌍둥이 재희가 나의 어깨에 매달려 내 귀를 꼭 틀어막고 있는 모습...내 볼에 자신의 볼을 맞대고 곁눈질을 하여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내 귀를 틀어막은 그녀의 손에는 퍼렇게 힘줄을 튀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봐... 내가 너희들은 서로를 많이 생각해 준다고 했잖아. 네가 듣기 싫어 하니 네 언니가 귀를 막아 주고 있는거야... "
재수 없는 계집애가 알 수 없는 말을 또 지껄이고 사라진다. 나는 다시 시험장으로 뛰어갔다. 저걸 잡아야해. 저년 때문이야!
"이윤애 거기서. 서란 말이야?"
시험장의 문을 벌컥 열었을 때 아이들은 나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학생 괜찮아?"
나의 앞을 가로서는 감독관을 밀어 제켰다.
"이윤애 어딨어! 나와!"
아이들이 수근거린다.
"재연이 재 왜 저래? 미쳤나봐."
"뭐라는거야 크게 말해."
"재연아, 그날 그 사고 날 이윤애 불에 타 죽었잖아. 보일러실에 갇혀서..."
'뭐지? 무슨소리지? 나에겐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정적...조용함...침묵
귓가에 소근거림...
나에게 곁눈을 맞춘 내 쌍둥이의 소근거림...
"학생, 정신 차려. 이봐 학생!"
5막 5장
<오래전 수학여행 날>
"에이 씨발~선생들은 즈네들도 나가 놀면서 복도 나가는 문은 왜 잠그냐구."
"그년 땜에 그러지. 어제 미현이 년이 모텔 아줌마한테 술 사다가 학주 한테 걸렸잖아. 그래서 가둔거지.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무슨 짐승 새끼냐? 가두게. 좇나 짜증나. 열 받는데 술이나 마시다가 자자."
"아! 맞아. 저쪽 방 애들 그 왕따 년 보일러실에 가둔다던데..."
새벽 2시쯤 방 아이들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10시쯤 선생들이 방마다 돌아다니며 소지품 검사를 했지만 학생들은 선생들의 눈을 피해 잘도 숨겨 두었고 특히 우리 반이 있는 4층은 재연이 덕에 검사도 대강하고 무사히 넘어 갔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재연이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며 재연에게 마냥 아부를 떤다. 주스 병에 포도주를 담아 온 아이가 술을 꺼내자 모두들 신이 나서 마셔대다가 잠이 든 것이었다.
나는 후덥지근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겨울에 더위이라니...
모텔 주인이 인심 좋게 보일러를 돌리는지 왠지 모를 더위가 나의 몸을 감싸고돌았다. 나는 바람을 쏘일 아량으로 모텔 복도로 나갔다. 어차피 복도 끝 문은 잠겼을 테니 복도를 거닐 수밖에 없었다.
"창이 높아서 밖이 안보이지?"
이윤애였다. 저 애는 또 왜 나와 있는지...보일러실에 갇히지 않았었나?
"넌 왜 나왔는데?"
"난 고양이... 소리가...시끄러워서. 우리 이모가 그러는데 고양이가 서글피 우는 날에는 저승의 문이 열려서 사람의 영혼을 데리고 간데. 그게 들리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런건 미신이야. 고양이 소리에 깨어 나오다니 보기보단 민감한가보다? 나도 아까 듣긴 들었는데, 신경 쓸 정도는 아니잖아."
그 애는 동그랗고 까만 눈으로 나를 빤히 응시했다.
"너도...들었...구나."
" 많고 많은 고양이 뭐 대단한 거 라고."
"재희야 네 인생은 언니한테 치여서 힘들겠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지만 나는 그게 비꼼으로 들려 한마디 던져 주었다.
"그럼 너는 귀신한테 치여 힘들겠구나."
사실 마음에 있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괜스레 독한 소리가 나오고야 말았다.
"모든 것은 허위이며 환영이고 겉보기와는 다르지. 오늘밤은 잠자지 마라."
그녀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던지고는 복도 끝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어둠에 묻혀 버렸다.
나는 내심 이윤애가 말을 더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에 놀라며 창 밖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소란스러웠다.
'이 시간에 다른 학교 애들은 캠프파이어 하나?'
그때였다. 복도 끝의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반장 빨리 애들 깨워라. 나는 3층 애들 깨울테니."
"선생님 저 반장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불이야 불. 지금 지하 보일러실부터 위로 불길이 치솟고 있어. 얼른 깨워!"
허겁지겁 사라지는 선생을 보며 나는 까치발을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너무 높아서 밖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은 연기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불길이 치솟는 게 간혹 보였다. 아까부터 뜨거웠던 것은 화재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차례 차례로 방을 들려 아이들을 흔들어 깨워 내보내기 시작했다. 자다 일어난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며 나갔지만 그녀들이 3층쯤 내려갔을 때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불길의 사태가 심각했던 것이다. 이제 한 방만이 남았다. 이젠 숨도 쉬기 어려웠고 열기가 느껴져 왔지만 그곳에는 내 쌍둥이가 있었다.
구해야 한다. 내 쌍둥이 재연이가 있는데... 검은 연기를 뒤로하고 나는 방문을 연다. 아이들은 술에 취해서 잠들어 있었다. 불이 난 것도 모르는체...
잠들어 있는 재연이...이애만 없었다면 난...내 인생은 달라 졌을텐데. 나는 재연이의 코트를 욕실로 들어가 물에 적신 후 입었다. 코와 입을 양 소매로 가린 채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온다. 내 안경은 재연이 에게 씌운 채...
이제 난 재연이가 되는거야.
김재희는 오늘 이 안에서 죽었어.
"선생님 재연이가 나왔어요!"
"재연아 괜찮니? 다친 곳은 없어?"
"선생님, 흑...애들이 술에 취해서 못 일어나요. 흑...제 책임이에요."
"건물이 무너진다. 모두 피해."
무너지는 건물을 바라보며 선생과 아이들은 나를 위로했다. 내가 많은 목숨을 구했다고...
그래 나는 김재연 이니까...
-뉴스 입니다-
오늘 새벽 2시경 설악산 근처의 e모텔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숙박 중이던 h여고 학생들 중 3명이 중상에 15명이 질식사 1명이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날 사고는 학생들의 장난으로 저지른 일이 화근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건 현장에 나가 있는 김인숙 기자 연결합니다. 김인숙 기자?
"네 김인숙입니다.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늘 일어난 사고는 수학여행을 왔던 학생들이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가두기 위해 쳤던 장난이 시초였습니다. 학생들은 이날 캠프파이어가 끝난 후 따돌림을 당하던 18살 난 이 모양을 보일러실에 끌고 가 묶은 후 자신들은 담배를 피우다가 나갔는데 이때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가 오랜 시간 바닥에 찌들어 있던 기름자국에 떨어지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 워낙 건조한 기후와 거센 바람으로 불은 삽시간에 옮겨 붙었고 복잡한 주차 난으로 소방차가 바르게 진입하지 못해 사상자는 더욱 많아 졌습니다. 요즘 대두되고 있는 왕따 문제가 비극을 초래 한 것입니다.
5막 6장
<재희>
'여기가 어디지?'
"재연아? 정신이 드니? 엄마야."
흐릿한 시야 속으로 엄마와 의사가 눈에 들어 왔다.
11월의 겨울 햇살을 하얀 병실 안으로 쏟아져 내려 내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커다란 창이 나있는 병실 안...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하고 어떻게 살았던거지?
"엄마...나 좀 일으켜 줘."
"그래...우리 재연이...엄마가 미안해. 흑... 재희 일 때문에 우리 딸한테 신경을 못 써 줬구나...엄마가 미안...미안..."
엄마는 나를 왜 재연이라고 부를까?
"엄마 나 재희야. 그 날 내가 잘못 했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이제 나 좀 알아 봐 줘. 응?"
"우리 예쁜 딸...이제 엄마가 지켜 줄게. 아무 걱정 마."
" 일부러 거짓말 한 건 아니었어. 나도 재연이 처럼 되고 싶었단 말야. 그리고 어느순간 내가 재연이가 된 줄 알았어."
"시험은 내년에 다시 보면 돼. 우리 재연이 공부 잘하는데 엄만 걱정 안 해."
"엄마 죽은 건 언니야. 나도 공부 해보니까 성적 잘나왔어. 나도 시작 해보면 다 잘할 수 있어 엄마. 그러니까 나 김재희 좀 알아...
나는 엄마를 향해 소리를 치다가 창으로 비치는 내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사람의 어깨를 부여잡고 매달려 있는 투명한 물체...
이제 내 어깨에 매달려 있는 건 언니가 아니라 나였다.
"엄마 잠시 나갔다가 올게. 우리 재연이..."
"네, 엄마."
엄마 말에 대답을 하는 건 내가 아닌 예전과 같은 밝은 모습으로 웃고 있는 재연이였던 것이다.
내 육체 속에 바뀐 영혼...
곁눈질을 하며 나에게 소근거리는 재연이의 목소리.
'재희야, 넌 걱정하지 말랬잖아. 크크크...'
첫댓글 넌이게재밌냐???무선거면무섭다궁해놔야디...오널잠다잤넹...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난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