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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위로 씨를 뿌려라
전도서 11:1-10
하나님의 평화가 말씀을 듣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다. 성경에 있는 3대 감사절은 모두 농사절기와 관련이 있다. 11월 셋째 주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그리스도교가 전래될 때 함께 온 것이다. 물론 우리 민족에게도 음력 시월은 높을 상(上)자 상달이라고 하였고, 이 맘 때는 추수동장(秋收冬藏)의 계절이었다.
감사절은 창조절기의 핵심이다. 또한 내 삶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은 늘 최상의 순간이다. 감사는 만족과 여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감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렇듯 감사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고백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기회이다.
신앙의 기본은 그 바탕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 삶과 역사 가운데 나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가장 기본이 되는 마음이 바로 감사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마음’이 되어야 진정한 감사를 느낄 수 있다.
마틴 루터는 “감사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소리 없는 기도”라고 하였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하면 주님께서 거룩하게 역사해 주신다는 것이다.
지난 주 수요일에 포항 일대에 지진이 일어나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못 된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그러니 포항시민의 두려움은 남의 일이 아니다.
수능이 1주일 연기되었다. 포항시에서 수능을 치룰 4,300명의 문제가 아니라, 60만 모든 수험생 모두의 문제가 되었고, 온 국민과 학부모의 관심사가 되었다. 진앙지는 단지 포항시 북구 흥해읍일 뿐인데, 그 영향은 국민 모두가 받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산다. 감사도 마찬가지다. 늘 감사의 파장 속에 자신을 두라. 나 때문에 선한 영향력이 극대화될 것이다.
1)
본문은 전도서의 결론부(11-12장)의 시작이다. 전도자가 앞에서 허무한 인생을 논해왔다면, 이제 이를 극복하고 지혜롭게 사는 삶의 방법을 전한다. 한 마디로 모험과 가능성을 향해 도전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1).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은 좀 더 다양한 번역을 한다.
“돈이 있거든 눈 감고 사업에 투자해 두어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공동번역).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새번역).
여러 가지 해석은 모두 가능하다. 모두 불확실성 속에서도 과감히 신뢰하라는 의미이다. 투자는 투기가 아니다.
왜 떡(빵)을 강물 위에 던지는가? 이 말을 이해하려면 그 당시 중동 사람들의 속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동 사람들의 속담 중에 ‘네 빵을 물 위에 던지라 그러면 그대에게 어느 날 반드시 보상되리라’는 말이 있다. 아랍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에게 공통의 속담이라는데, 평소 ‘선행을 하라’는 뜻이다.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그다드를 통치하던 왕이 어느 날 왕자를 잃어버렸다. 왕자는 티그리스 강에서 놀다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것이다. 왕은 군대를 동원해 아들을 찾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했다. 그러나 강 하류까지 샅샅이 수색했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왕은 자기 아들이 죽은 줄 알고 크게 낙망하였다.
그런데 여러 주간이 지난 후에 뜻밖에 어느 바위 위에서 왕자가 발견되었다. 아이는 살아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왕자는 강으로 떠내려가다가 강 한복판에 있는 바위에 걸렸다. 그런데 종종 가죽주머니가 떠내려 오더란다. 그 안에는 빵이 들어 있어서, 왕자는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한다. 가죽 주머니 바깥쪽에는 ‘모하메트 벳 핫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왕은 자기 나라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서 수색을 해 보았다. 상류에 정말 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가죽주머니에 빵을 담아서 강 하류로 떠내려 보낸 것이다. 왕이 그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속담대로 했을 뿐입니다. ‘선행을 하라, 빵을 물 위에 던지라, 그러면 그대에게 어느 날 반드시 보상되리라.’
핫산은 자기가 물 위에 떠내려 보내는 이 빵조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혀 계산하지 않고 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기대하지 않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2)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말 뒤에, 또 다른 권고가 나온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2).
믿지 못할 세상일수록, 위험에 대비해 네 몫을 분산해 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는 무슨 재앙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달걀을 한 광주리에 담지 말라’는 속담도 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위험을 분산시킨다.
그럼에도 전도서는 말한다.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4).
‘모험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인류문명은 큰 강변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이 범람하고 나면 배를 타고 강에 나가 강물에 씨를 뿌렸다. 얼마 후에 강물에 떠내려간 씨앗이 홍수가 몰고 내려온 주변의 옥토에 떨어져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되었다.
본문은 고대 중동지역의 농경 풍습을 염두에 두고 주어진 말씀이다. 강물 위에 씨앗을 던지는 것은 지금 당장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어 그것은 풍성한 열매가 되어 던진 자에게 도로 돌아온다.
신앙생활의 원리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어떠한 태도로 물 위에 던져야 할까? 전도서에서 ‘물 위에 던진 떡’이나 ‘여럿에게 나누어 준 몫’은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약삭빠르고 똑똑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부질없는 짓 같다. 사실 누군들 자신의 투자에 대해 다 확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6).
늘 알맞은 날씨를 기다리는 사람, 온갖 유리한 조건만 찾는 사람은 성공은커녕, 일을 할 수 없다.
전도서는 계산하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내 손에 쥐고 있을 때만 그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장차 나와 함께 썩어 버리고 만다. 내가 붙들고 있는 물질, 그것은 결코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러니 선을 행하는 일은 남는 장사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 의미 있는 열매를 얻는다고 한다. 예수님도 산상설교에서 같은 교훈을 말씀하신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 6:19-20).
그곳은 도둑이 침범할 수 없다. 녹슬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늘에 어떻게 보물을 쌓아 둘 수 있는가? 선을 베푸는 일이다. “적선합쇼!” 이 말을 허투루 듣지 마라. 선을 행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탕이며, 감사의 실천이다.
3)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감사제를 드리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늘 조상부터 내려온 역사를 회고하였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이끌어 주셨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신명기 26장 5-10절은 해마다 반복하며 아뢸 봉헌사이다.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신 26:5-10).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첫 열매’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다는데 대한 감사와 감격이 담겨있다. 이것은 역사 가운데 구원을 행하신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의 의미이다.
봉헌사는 겨우 6절이지만 조상 아브라함과 출애굽 그리고 광야의 여정 등 수백 년의 역사를 압축하고 있다. 제사장은 첫 열매를 제단에 바쳐 하나님께 봉헌하고 경배한 후, 이 음식을 레위인과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포함해 함께 나누며 잔치를 벌이게 한다. 망국과 유랑의 역사가 대부분인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감사절은 얼마나 가슴이 벅찬 은혜의 시간인가?
우리나라 역사도 비슷하다. 1946년에 만든 ‘귀국선’이란 노래가 있다. 가수 이인권이 불렀고, 김연자와 심수봉도 리바이벌하였다. 그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깃발을/ 갈매기야 울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그들은 나라 잃고, 남의 나라에서 온갖 차별에 시달리다가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는 귀국선에 올랐다. 그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눈물의 씨앗을 바다 위로 뿌렸을까? 이제 희망의 씨앗을 바다 위로 뿌리고 있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해마다 감사제를 드려야 마땅한 민족이다.
내가 카자흐스탄 인민배우 문공자 님에게 직접 배운 추수의 노래도 씨앗을 뿌리는 희망으로 가득하다.
“이 넓은 논판에 씨 뿌려/ 풍년의 가을이 돌아오면/ 누렇게 누렇게 벼 이삭/ 우거우거져 파도치지/ 에헤야 뿌려라 씨를 활활 뿌려라/ 땅의 젖을 짜 먹고 와싹와싹 자라나게.”
우리 신앙생활은 나 홀로가 아니다. 이웃과 민족의 역사를 담아내야 한다. 감사는 공동체적일 때 아름답다.
요즘 경제가 전부인 시대이다. 흔히 ‘먹고사니즘’이라고 말한다. 경제도 먹고 사는 일의 한 부분일 뿐인데 마치 행복, 미래를 모두 좌우하는 모든 가치의 문제처럼 취급된다.
사람들마다 평범한 희망이 있다. ‘제 때에 밥을 먹고, 제대로 일을 해서, 평안히 잠을 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한테 사람이 먹히고,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한테 사람이 치이고, 사람이 잠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잠에 빠져 산다고들 한다. 그래서 불편하고, 불안하고, 병에 걸린다.
벌써 20년 전에 겨우 30대 후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가까운 선배목회자가 있다. 내가 병문안 했을 때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신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자연치료로 포도요법을 하고 있었다. 몇 알의 포도를 앞에 놓고 한 시간 째 먹었다.
그는 암에 대해 퍽 공부를 하였다. 당시 인터넷이 아직 없던 시절이라 암 병동에 있으면서 암 환자들의 공통점을 찾아 본 것이다. 그의 진단은 과장되었지만, 예방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암에 걸릴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했다. 성격이나 일에 꼬장꼬장 한 사람, 미워하는 대상이 있는 사람,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부모님께 불효하는 인간 그리고 예외가 더 많지만 혈액형이 A형인 사람이다.
그는 자신도 암에 걸린 후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자신의 질병을 즐겁게 고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얼마 후에 평화롭게 죽었다.
나는 그 선배의 말을 새겨들었다. A형인 내 혈액형만 빼고, 내 인생을 수술하려고 노력하였다. 마음을 평화롭게 갖고, 일을 여유 있게 하며, 남을 인정하고 격려하며,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특히 나야말로 부족한 죄인임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 그래서인가? 건강하게 산다. 그래서 또 감사한다.
우리는 마치 강물 위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처럼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으나,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한다.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5).
내 삶은 강물 위로 던져진 씨앗처럼, 그 미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씨앗이 땅에 닿아 환경과 조건이 주어질 때 생명은 자라게 마련이다. 우리 인생은 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지녀야 한다. 줄기가 뿌리에 닿아있듯이, 내 생활과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늘 감사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 흔들리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씨앗을 뿌리자.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내 삶의 열매를 책임져 주신다. 지금 내 현실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만세반석을 나는 지녔는가?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러한 ‘감사의 기본기’가 내게 있는가? 내 믿음의 기본기는 바로 감사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에 복을 주시길 빈다. 그리고 늘 감사의 마음을 잃지 말고 1년 365일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감사절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린다.